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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송 데첸
파일:치송데첸.jpg
재위 755년 ~ 797년
대관식 755년?
출생일 742년
사망일 797년
부친 치데 축첸
전임자 치데 축첸
후임자 무네 첸포

치송 데첸(중국어: 赤松德贊, 742 ~ 797년)는 토번국의 37대 왕으로 토번에 불교를 도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왕이다. 전승에 의하면 인도의 승원장 샨타라크시타(Shantarakshita)와 성자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를 토번에 불러들여 법보를 전하게 했다고 한다.  

즉위

755년에 치데축첸이 암살을 당해 죽고 그의 아들 치송데첸이 왕이 되었다.  

생애

치송 데첸은 치소당이 안사의 난으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 당을 공략하여 당 서부의 하서, 농우 지구를 점령했다.

761년 치송 데첸은 불교 금지령을 철회하고 인도에서 고승을 불러들여 불교를 부흥시켰으며 763년 10월에 당의 장안을 점령하여 금성 공주의 조카 이승굉을 제위에 올렸으나 진중에 역병이 유행하고 당의 반격이 이루어지자 보름만에 장안에서 철수했다.

792년에서 794년까지 2년간 치송 데첸은 중국의 승려 마하연(摩訶衍)과 샨타라크시타의 제자 카말라실라(Kamalashila)가 각각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입장을 대변하는 논쟁을 벌이도록 하였다. 결국 치쏭 데짼은 카말라실라가 대변한 소승불교를 참 가르침으로 인정했다.   763년 치송 데첸이 북쪽으로부터의 당의 압력에 맞서 내보낸 20만 병력은 국경의 당군을 무찌른 뒤 당시 당의 수도인 장안까지 며칠간 점령, 당시 황제인 대종이 대피해야 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당군은 장안을 수복했지만 이는 토번이 안록산의 반란으로 혼돈기를 맞은 당을 충분히 위협할 강대국임을 보여주었다. 783년 당과 토번 사이에 협정이 맺어져 현재 중국의 칭하이성인 코코노르(Kokonor) 지방 영토를 모두 토번이 차지했다. 치송 데첸은 778년 타이족의 나라인 남조(南詔)국의 이몹순(Imobsun) 왕과도 손을 잡아 당의 사천 일대를 공격했다.   치송 데첸은 서쪽으로도 영토 확장을 추진해 아무다리아(Amu Darya) 강에 이르렀다. 그러자 아바스 왕조의 5대 칼리파 하룬 알라시드(Harun al-Rashid)는 위협을 느껴 당과 동맹을 맺었다. 치송 데첸의 나머지 재위 기간동안 토번은 서부의 아랍 전쟁에 집중했다.

같이 보기


전임
치데 축첸
제37대 토번 찬(贊)
755년? ~ 797년
후임
무네 첸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