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우토모(영어: Budi Utomo,네덜란드어: Boedi Oetomo)는1908년, 5월 20일에 설립된 인도네시아 최초의 민족주의 단체이다. 1908년 자바의 의사였던 와히딘 수디로후소도(Wahidin Soedirohoesodo:1857∼1917)[1]가 창설하였으며, 인도네시아 어"숭고한 노력"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개요

네덜란드는 17세기 초부터 인도네시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1824년 체결된 런던조약에 따라 영국으로부터 인도네시아 지배권을 승인 받았으며, 완강히 저항하던 자바 섬의 토착 왕국들을 무력으로 굴복시켰다.[2] 350년이 넘는 네덜란드의 통치는 인도네시아 민족해방운동의 가능성을 말살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미약하나마 민족적 색채를 띠는 문화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것이 발현된 것이 바로 부디 우토모의 창설이었다.

활동

부디 우토모(부디 우또모)는 네덜란드령 동인도 최초의 민족주의 색채를 지닌 식민지인들의 정치기구였다. 부디 우토모(부디 우또모)의 회원은 고등교육을 받은 현지인, 정부 관료 등으로 구성됐다. 이들 단체의 목적은 대중 교육을 주요 활동 목표로 삼아 계몽 운동을 벌였으며, 이후에는 상업 및 산업 등 경제적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사업 운영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였다. 부디 우토모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1910년에는 가입 회원만 1만 명이 넘어 자바 전역의 40여 개의 지부를 가질 수 있었고, 식민 정부도 정식 기구로서 부디 우토모(부디 우또모)를 인정했다.

한계와 해체

부디 우토모의 목적은 비정치성을 추구하는 것이었으나,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동인도 국민평의회에 대표자를 내세우는 등 정치적 기구로 변모해 갔고 자바 지방 정부에서도 정치적 역할을 하게되었다. 그러나 부디 우토모는 자바인들의 문화적ㆍ경제적 지위 향상을 추구하는 문화운동 단체로서의 역할로 그쳤을 뿐, 정치적 목적을 지닌 정당으로서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결국 네덜란드령 동인도 식민 정부에 협조하는 비정치적 활동에만 치중하던 중 대중들의 외면을 받다가 1935년 공식 해체되었다.

각주

  1. 누산타라 연방대학교(당시에는 하멩쿠부워노-빌럼 의료 대학)의 STOVIA 출신이다.
  2. 다만, 네덜란드령 동인도가 굴복시키지 못했던 욕아카르타 같은 기존 왕국들에 대해서는 식민지 내 자치 지역으로서 효율적인 통치를 시도하였으며, 이들 역시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지배를 암묵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이들 식민 정부를 통해 근대화를 수용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