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럼 프레드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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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럼 프레드릭 1세
Willem-Frederic
빌럼 프레드릭 초상화
빌럼 프레드릭 초상화
니우홀란트 왕가 문장
니우홀란트 왕가 문장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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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우홀란트 연방 국왕
재위 1815년 6월 15일 ~ 1845년 1월 15일
즉위식 1815년 6월 15일
후임자 빌럼 프레드릭 2세
이름
빌럼 게오르그 프레드릭 반 오라녜-로데베이크
(Willem George Frederik van Oranje-Lodewijk)
신상정보
출생일 1774년 12월 15일(1774-12-15)
출생지 네덜란드 네덜란드 헤이그
사망일 1846년 4월 21일 (70세)
사망지 니우홀란트 연방 니우홀란트 바타비아
가문 오라녜 로데베이크 왕가
부친 오라녜 공 빌럼 5세
모친 프로이센의 빌 헬미나
기타 친인척 빌럼 1세

빌럼 게오르그 프레드릭 반 오라녜-로데베이크(네덜란드어: Willem George Frederik van Oranje-Lodewijk, 1774년 12월 15일 ~ 1846년 4월 21일) 빌럼5세의 아들이자, 빌럼1세의 남동생이며 니우홀란트 연방의 제1대 국왕이다.

초기 생애

가족

빌럼 프레드릭은 네덜란드 공화국 헤이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빌럼5세와 빌헬미나 공주로 형제,자매로는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초대 국왕인 빌럼6세(빌럼1세)와 누나인 프레데이카 루이스 빌헬미나가 있다. 그는 그의 부모가 영국의 조시 2세의 손자였기 때문에 영국 왕실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교육과 군 복무

그는 어릴때 부터, 똑똑했고 군사 분야에 관해서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그의 스승들은 프레드릭 스탬포트 장군,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 역사가 헬만 톨리우스였다. 그의 오촌이 공작으로 있는 브라운슈바르크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후에, 프레드릭은 1792년 기병중장과 포병 대장의 계급장을 수여받으면서 군 복무를 시작하였다. 1793년 나폴레옹 전쟁으로 네덜란드 공화국이 프랑스로 부터 공격을 받자, 네덜란드를 방어하기 위해 프레드릭은 불려갔다. 그는 전쟁터에서 고무적인 리더이자 선두를 이끄는 리더로서 브라반트 북서부 지방의 방어를 맡게 되었다. 이후 베른과 메닌에서 형인 빌럼 6세의 밑에서 근무하였다가 1793년 9월 12일 플랑드르 베르비크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어깨에 총을 맞는 평생 낫지 못하는 부상을 입게 되었다. 이후 1794년 기병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795년 프레드릭은 프랑스와 네덜란드군이 싸우고 있는 프리슬란트에서 군대를 후퇴시키기를 원했으나 그의 아버지인 빌럼 5세가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패배하였고 1795년 1월 네덜란드에는 프랑스의 괴뢰국인 바타비아 공화국이 세워졌고 그의 가족들은 사촌 조지 3세가 왕인 영국으로 피신하였다.

오스트리아에서의 군 복무

프레드릭은 1796년 5월 영국을 거쳐 비엔나로 향하였다. 거기서 소장이라는 계급을 부여받아 폰 바텐슬레벤의 부대와 아치두케 찰스의 부대에 있는 여단을 지휘했다. 이후 크레이의 지휘를 받아 독일 남부와 나사우를 수비하였다. 이후로도 독일에서의 전투에 참여하였고 1797년 1월에 있었던 켈에서의 전투에서는 가장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네덜란드의 식민정부들이 홀란트 왕국에 협력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식민정부의 동요를 막기위해 빌럼 5세는 프레드릭을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파견하여 그들의 동요를 막고, 프랑스군으로 부터 대항하도록 하였다.

네덜란드령 동인도 시기

1795년 3월 845명의 군을 이끌고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도착한 프레드릭은 당시 네덜란드령 동인도 총독이었던 피터르 판 오버스튼레이튼을 만나 네덜란드 세력에서 이탈 하지 말 것을 호소하고 해체되었지만 영향력이 어느정도 있는 동인도 회사의 잔존 세력과 식민정부 관료들을 규합하여 네덜란드 세력으로 부터의 이탈을 방지하고자 하였다. 이탈을 방지한 빌럼 프레드릭은 피터르 총독과 함께 도로를 건설하고, 요새를 다시 구축하고 군사학교를 설립하여 프랑스군이 침공할 경우에 대해 대비해나갔다. 1812년 6월 욕야카르타와 수라카르타에서 발생한 대규모 학살로 인해 책임자였던 피터르 총독이 사임하자, 당시 동인도 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프레드릭이 총독에 임명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프레드릭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는 빌럼 6세는 오히려 다른 사람을 총독으로 파견하고 프레드릭을 귀국시키고자 하였으나, 국내 여론의 반발이 극심하였기 때문에, 프레드릭을 동인도 총독으로 임명하였다. 이 과정 속에서 빌럼 6세는 언제 프레드릭이 배신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프레드릭 역시 빌럼 6세가 자신을 언제 제거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서 둘 사이의 관계는 악화되어갔다.

총독이 된 프레드릭은 자바섬 전역을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영향력 하에 뒀으며, 다른 섬들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기 시작하였다.

독립 선언

나폴레옹 전쟁이 종전 한 직후, 빌럼 6세는 네덜란드 연합왕국 국왕이 되었다. 또한 전쟁 기간 동안 영국이 관리한 식민지들을 돌려받고, 다른 식민지 경영에도 열의를 보였다. 그 중 동인도는 가장 관심사였다. 프레드릭이 언제 배신을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네덜란드령 동인도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보유한 프레드릭을 그곳에 두는 것은 상당한 위험이었다. 그로인해 프레드릭에게 입국할 것을 명령하고 네덜란드군 1300명을 동인도 제도로 보내었다. 이는 프레드릭에게는 귀국 할 경우 자신의 신변이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미 불신이 쌓인 관계에 빌럼 1세의 이러한 조치는 빌럼 프레드릭에게 독자적인 세력 구축의 선택을 의미했고 곧 “독립” 이었다.

총독이었던 프레드릭은 1815년 5월 15일 “왕위계승” 이라는 명분하에 네덜란드에서 보낸 병력이 타고 있는 선박을 격침시키면서 독립전쟁을 선포하였다. 영국을 만나, 동인도 제도가 관리하고 있으며 영국이 원하는 지역 일부를 양도하는 대신 영국이 독립전쟁에서 지지 및 지원해줄 것을 승인받았다. 또한 당시 빌럼 프레드릭은 동인도 제도에 존재했던 엘리트 원주민 계층, 이주민 계층에게 본인의 통치자 등극에 찬성을 해주는 것으로 인도네시아계 원주민에게는 차별을 철폐하고 자유를 주는 것을 약속하였다. 또한 유럽으로 이주한 이주민 들에게도 네덜란드 본토인과의 동일 한 대우를 약속하였으며, 이미 자리를 잡은 식민지 기득권층에 대해서도 기득권을 강탈하지 않음을 약조하여 그들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즉, 동인도 제도의 보호자를 자처함으로써 동인도 제도의 합법적인 통치자가 되었고 1815년 6월 15일 니우홀란트 연방의 성립을 선포하고 초대 니우홀란트 국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