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신덕수
辛徳秀
본명
고토쿠 덴지로(幸徳傳次郎)
고토쿠 슈스이(幸徳秋水)
출생
1871년 11월 5일
일본제국 고치현 하타군
사망
1956년 5월 4일 (향년 84세)
대한국 평흥도급시 흥덕구 평흥대학병원
국적
일본 제국 (1871 ~ 1924)
대한제국 (1924~)
정당
사회민주당 (1901~1909)
신사회동맹 (1923~1930)
사회민주당 (1930~1945)
역임 직위
대한공산당 상임고문
1951년 2월 3일 ~ 1955년 1월 7일
가족관계
모로오카 지요코(슬하 1남)
간노 스가(슬하 1남)

개요

일본제국 출신 대한국의 사회주의자, 사민주의자, 아나키스트.

생애

1871년 일본제국 고치현에서 태어났다.

1887년 나카에 조민의 문하생이 되면서 자유 민권 사상을 접하게 되고 관련 활동을 지속하다 1901년 일본 사회민주당 결성에 참여한다.

1909년 8월 3일 니가타에서 애인 간노 스가와 휴가를 보내던중 자신과 간노 스가에 대한 대역죄로 수배령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니가타 인근에 정박하고 있던 한국 어선을 타고 그대로 망명, 강릉에 도착한다.
망명 직후 우연히 만난 일본어에 유창했던 대학생 김천호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6개월간 은둔생활을 하다 춘천에서 체포, 송환을 위한 재판을 받는다. 하지만 김천호가 변론에 큰 도움을 주었고 한국 정부에서도 사회주의 활동을 하지 않고 자택에서 조용히 머무를 것이라는 약조를 받고 풀려난다. 이후 한국 정부와 일본간의 마찰이 벌어지지만 몇년뒤 잠잠해진다.

1912년 춘천에서 할빈으로 건너간 그는 반체제적이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언론 <자유신보>를 창간, 김천호에게 한국어 번역을 맡기고 자신은 주필을 맡는다. 이때부터 자신의 이름 맨 앞글자와 비슷하게 생긴 신(辛), 성의 두번째 글짜인 덕(德), 그리고 김천호가 추천한 빼어날 수를 붙여 신덕수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 자유신보는 연예인들의 염문같은 것을 다루는 3류 타블로이드 신문이었다. 하지만 신덕수는 꾸준히 지면을 할애하여 사회주의 서적의 번역본을 올리거나 정치평론을 싣는등 소극적인 사회주의 활동도 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