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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잉글랜드 외의 3개의 지역이 동군연합한 연합왕국.
한때 북해 유전을 통한 자원 경제로 호항을 누렸으나 녹색 혁명 이후 경제가 무너지며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다.


무너진 균형
신께서 국왕을 보호하시니 왕국은 번영과 축복 속에 살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역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으며 테러리즘의 공포가 국가를 장악하고 결국 영국인들을 자신들의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공포는 편집증이 되고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며 정부가 모든 사람들을 감시합니다.

영원할 것 같던 균형추가 무너졌습니다. 연합왕국은 분열을 맞이하고 있으며 영국 제도가 피로 물들고 있습니다.
오늘도 그들의 하루에 해가 저물고 네온의 인조빛이 그들의 얼굴을 형형하게 비춥니다. 꿈과도 같은 도시의 야경 속에서, 누군가는 악몽을 꿉니다.


주요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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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Greater London
한때 세계의 중심지이자 제국의 심장이였던 런던은 탄압과 공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템스강 남부의 램버스는 길거리와 홈구장에까지 채워진 판잣집과 노숙자들, 폭동으로 인해 불에 탄 차량들과 잔해들이
기념비처럼 남아있으며 북부의 부유한 자치구들은 그들의 재산을 노리는 악질 범죄자들과
억압적인 정부라는 새로운 적에 맞서 싸워야만하는 상황 입니다.


버밍엄
Birmingham
민주주의의 고향이자 노동자를 위한 도시인 버밍엄은 이제 거대한 난민 수용구들과 이들을 감시하기 위한 경찰 검문소가 설치된 암흑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아랍, 아프리카, 카리브해의 여러 인종들이 섞인 이 도시는 다양한 암시장이 형성되어있고
영국 각지로 수출되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곳에 간다면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모습에 매료 될 지도 모릅니다.



역사



2011년부터 2017년 까지, 러시아의 중동 개입과 10년 평화 시기 동안의 분쟁들로 고유가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고 이로인해 전 유럽에서 에너지 위기를 겪게 된다. 영국과 노르웨이는 북해 유전을 확장하며 이를 통해 충분한 연료를 확보한 것은 물론 이를 전유럽에 수출하며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 호황을 맞이한다. 엉국은 유럽 연합과 관세 철폐로 분쟁이 발생하였고 이때부터 영국은 브렉시트 운동이 거세지며 영국 정치권을 뒤흔들게 된다.

테레사 메이 총리 시절에는 원유 수출 과정에서의 관세 문제로 붉어진 브렉시트를 마무리 지으며 유럽 연합에서 최종적으로 탈퇴한다. 그러나 이는 다른 연합왕국 구성국들과 제대로 합의가 되지 않은체 시간에만 집중하여 급하게 이루어진 것이었다. 유럽 연합 탈퇴로 아일랜드와 교역이 자유롭지 못하게 된 북아일랜드에서 첫번째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고 북아일랜드의 보수 개신교도들은 중심으로한 자경단과 충돌이 이어지며 폭동으로 커지게 되었다. 폭도들과 자경단 모두 총기로 무장하기 시작했으며 얼마 뒤, 시내에서 작은 총격전이 여러 차례 발생한다. 치안 불안으로 영국 정부에서는 무장 경찰과 근위 공수사단을 투입하였고 강경 진압이 이루어졌다. 이후 폭도들은 청사를 점거하고 인질극을 이어갔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인질 대다수가 사망했고 이어 민간인 오사로 인한 피해까지 속출하게 되었다. 이는 영국에서 내부로 부터의 분열이 시작되는 신호탄이었으며 북아일랜드는 이후 몇년 동안이나 크고 작은 교전이 이어지는 전쟁터가 된다.

무엇보다 2020년에 들어서며 녹색 혁명의 여파로 석유 자원의 수요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고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영국 경제는 대봉쇄와 맞물려 무너지게 된다. 영국에서는 정치권 사이의 대립이 심화되었고 사회적으로도 인종, 성별, 재산에 따라 분열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영국에서 브렉시트 운동이 거세 질때 등장한 정당이 있었으니 바로 국민연합당 이었다. 국민연합은 자이르 보우소나루에 영향을 받아 세계화와 영국의 이민정책에 반대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주창했고 보수당과 노동당의 양당 체제에 질린 영국인들의 지지를 받아 2020년 총선에서 15석을 확보한다. 반면 보수당이 288석, 노동당이 287석을 확보해 교착 상태였고 의석 수 차이가 하나 밖에 되지 않아 두 정당들은 국민연합을 자기 편으로 끌고 오기에 급급했다.

당시 영국은 대봉쇄로 인한 인플레이션를 막기 위해 국채를 대규모로 발행하기 시작했으며 복지 예산을 삭감하였다. 국채금리가 증가하며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 상황에 극단주의를 종식시키고 영국의 부활을 구호로 내세우던 제이콥 리스모그가 총리로 취임하며 상황은 바뀌게 되었다. 미국의 롬니케어의 영향을 받아 보호 무역을 진행하였으며 이민 쿼터를 강화하고 브렉시트로 난민 문제에서 자유로워져 난민 수용을 연간 5만명으로 제한하게 된다. 또한 아이원 월 정책을 계승하며 중국, 러시아와의 무역을 제한하였다. 이후 BBC를 공영 방송사에서 사기업으로 전환 시키고 노동당과 TUC(영국노동총회) 사이의 비리를 이유로 노동조합과의 전쟁을 선포했으며 국가기관의 노동조합을 금지하고 노조가 정치권과 연대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노동조합기준조례를 공표한다.

제이콥 리스모그의 급진적인 정책에 중앙 정부와 사이가 안좋던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와 사이는 더욱 틀어 졌다. 북아일랜드에서는 벨파스트 협정이 채결 된 지 20년만에 조직적인 아일랜드 민족주의 무장단체, '얼스터 방위군'이 결성되었고 스코틀랜드에서는 북해 유전 확장 당시 스코틀랜드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 대우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며 마찰을 일으켰다. 영국 정부는 강경책을 제시, 영국에 대한 반란 행위로 규정하고 에든버러와 벨파스트에 전투 경찰을 배치하며 대치를 이어간다. 집권 초기의 혼란한 상황이 진정되며 다수의 보수당 지지자들은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상황을 바로 잡은 인물로써 칭송하며 지지하였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영국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내부로부터 무너져가고 있었다. 2026년 여름, 이상기후로 80일 연속으로 서유럽 전역에 비구름이 형성되며 영국의 지반이 약화되었고 이는 홍수 사태로 이어졌다. 강에서 불어오른 물은 상수도를 통해 들어가 마을과 도시에서 역류 했으며 이로 인해 수많은 영국인들이 집을 잃고 이재민이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노동당 급진파 제러미 코빈가 노동당에서 이탈해 반유대주의-반서방주의 성향의 좌파당을 창당해 수많은 지지를 받으며 국민연합당을 앞질러가기 시작했다. 이 결과로 영국 귀족원 의석들은 대부분 급진파로 채워졌고 노동당과 보수당의 온건파는 몰락하게 되었다. 외부에서는 아일랜드에서 신 페인 정당이 당선되고 아일랜드 통일을 재추진하며 분리독립 요구가 커져갔다. 이러한 상황에 내부의 분리주의 운동은 거세졌고 자신들을 스코틀랜드 국민군이라 주장하는 단체가 다우닝가를 테러하며 영국 전역에서는 분리주의 세력에 의해 국가의 안보가 위협 받는다며 강경한 대응을 요구하는 시위가 번지게 된다.

웨스트민스턴에서는 국가 위기 상황을 명분으로 COS에 대한 접근을 허가하는 법안을 통과하기 위해 당시 의석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국민연합과 좌파당이 일시적으로 손을 잡게 된다. 본래 COS는 국가의 감시를 최소화 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통한 접근만이 허용되었으나 이 법안이 통과 된다면 국가 기관이 수동으로 COS를 감시하고 분석할 수 있었다. 이 뜻은 국가가 개인을 더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한다는 셈이었다.

한편 영국의 상황을 보고 찰스 3세와 왕실은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으며 영국인들에게 방관자로 낙인 찎혀 비난 받으며 군주제 존재가 위협받던 상황이었다.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했던 찰스 3세는 자기자신의 손으로 기본권을 억압하는 법들을 결제 한다는 것에 큰 회의감을 느끼고 공식석상에서 몇달에 모습을 들어내지 않았다. 이읏고 찰스 3세는 캐서린 왕세자비와의 짧은 대화를 끝에 영국의 옛 법령에 의거, 영국 의회 해산을 위한 조서를 작성한다.


[ 분기점: 찰스 3세의 조서가 전달되다. ]

[ 분기점: 찰스 3세의 조서가 전달되지 못하다. ]

웨스트민스턴에서 COS를 수동적으로 관리 할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되게 된다. 이로써 COS는 '정부통신본부 GCHQ'의 관리 하에 놓이게 되고 그동안 숨겨져 왔던 스코틀랜드 국민군의 주요 수뇌부와 회원들의 상세 프로필을 확보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영국 정부는 '지평선 넘어'로 명명된 스코틀랜드 국민군 소탕 작전을 진행, 약 2달간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영국군과 저항군 사이의 교전이 일어났고 이로인해 많은 스코틀랜드인들이 영국을 떠났다. 얼스터 내전과 같은 대학살극은 벌어지진 않았으나 1600년대의 잉글랜드 내전이후 처음으로 영국 본토에서 일어난 대규모 전투에 전 세계가 충격을 받았다.

당시 일부 영국인들은 유럽 연합 세력에 의해 영국이 안보적으로 위협 받고 있으며 이 배후에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독일이 존재한다 믿었고 수많은 가짜 뉴스를 SNS를 통해 퍼나르며 영국인들을 선동했다. 이 결과 영국의 유럽으로부터의 완전 분리라는 하드 브렉시트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이 온동의 영향으로 외국인 이민자들은 집단 린치와 같은 혐오 범죄의 표적이 되었고 음모론을 지지하는 단체들이 난민 보호소를 습격하는 일도 벌어 졌다.

2034년 총선에선 영국의 정통 정당이었던 보수당, 노동당, 자유민주당이 크게 세력이 약화되어 큰 지지를 받지 못하고 묻히게 된다. 반면 영국의 MDTO 탈퇴, 영구중립화, 공화주의, 노동자 정부를 주창하던 제러미 코빈의 좌파당과 영국의 군주제 폐지, 급진적 신 자유주의, 하드 브렉시트, 미국과의 연대를 강조하던 국민연합이 새로운 양당 체제를 형성하며 맞붙게 된다.

영국은 자원의 저주로 인해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걸었으며, 그 결과는 영국의 새로운 극단주의 창궐이라는 결과로 다가왔다.



사회


  • 사회 분열

북아일랜드에서의 참사와 브렉시트 이후 영국에서 철수하는 기업들이 증가하며 영국의 경제적 기반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에 영국 정부는 브렉시트의 타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인종, 종교, 이민 문제를 끊임없이 부각시켰다. 특히 독일과 영국을 비교하며 이민자와 난민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고취했고 그 결과, 타인종과 종교를 대상으로 한 혐오 범죄, 그리고 보복 테러가 한동안 영국 전역을 휩쓸었다. 또한 브렉시트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에서는 잉글랜드 본토 출신의 사람과 그러한 가치관에 대해 기피하는 문화가 형성되었으며 영국 내부의 분열이 심해지고 있다.

지속적인 테러로 인해 미국과 프랑스에 이어 세 번째로 도시운영체계를 치안 유지룰 위해 도입했다. 런던은 이전부터 스마트 도시로써 개발되어 왔기에 1달간의 시범 운영이후 바로 도입이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