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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원시주의는 무위자연을 주장했던 도덕천존까지도 자연의 일부라 치부하여 도교까지도 부정하는 사상 운동이다. 진(辰)나라의 예학자(禮學子) 허단보(許端甫)에 의해 조직화되고 부활한 학문으로, 초기 원시주의의 경우에는 예학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농학(農學)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나, 다양한 분파가 탄생한 현재에는 해당 명칭은 사용치 아니한다.

상세

허단보의 부부서(醬瓿書)[1]에서 평하기를, "하늘이 성인보다 높을지언데, 제아무리 성인의 가르침이 높다 하여도 하늘의 가르침을 어길 수야 있을쏘냐."

이러한 내용을 기반으로 한 것이 원시주의인데, 인즉, 원시주의는 도교와 유사하게 하늘에 바탕을 두어 자연적인 이치에 따르는 것을 최선이라고 보았다.

학파

단보학

허단보가 제시한 이론이 따르는 학파로, 단보는 유배를 떠나 유배지에서 객사하였으나 민중을 통해 원시주의의 단보학은 부활하였다.

허단보는 전언문(傳言文)을 활용한 저작활동을 펼쳐 민중이 그의 가르침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고 그 결과물이 나타난 것이었다.[2]

그 때문에 단보학은 민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특히 단보는 민중의 정신을 항상정신(恒常精神)과 원대정신(怨懟精神), 호방정신(豪放精神)으로 구분하였는데, 각개 항상정신은 맞서지 않는 것, 원대정신은 원망하는 것, 호방정신은 일어나 싸우는 것을 말한다. 이중 제일은 호방정신이며 타파해야 할 사회의 적폐로 항상정신이 제일이요, 원대정신도 그 다음이라고 보았다.

옛 동방의 역사를 통해 단보학자들은 민중의 힘이 강한 것은 국가의 권력이 약하고 민중이 통제받는 것이 아닌, 민중의 연합체이기 때문에만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보았으므로, 민중의 권위를 높이는 것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대표적으로 단보가 언급한 "인재의 비세습성"이다. 이는 인제는 한 세대에 내려준 것이라는 말로, 하늘, 즉 이치는 어떤 핏줄이 아니라 인물을 탄생시킨다고 한다.

그 외에도 개인적인 사상에 대한 긍정과 욕망에 대한 수용 등이 있는데, 궁극적으로 민중에게 있어서 지배층에 의해 억압받지 않는 국가를 건설하고자 함이 드러났다. 이후 농민운동을 통해 정부와 협상한 단보학파는 진(辰)의 정치 사상을 자유주의적으로 개혁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사상을 바탕으로 삼아 단보학에서는 자유로운 원시사회를 동경하며 사회를 점진적으로 개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호명학(湖明學)

비타협적 원시주의.

김호명(金湖明)이 단보학파의 타협을 지적하며 분리된 학파로 급진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민중주의적인 방식을 더욱 강하게 주장해, 소공동체를 통한 완전한 원시사회로의 회귀(回歸)를 표방하였다.

이들은 단보학파와 완전히 단절된 것이 아니며, 단보학파의 일부가 호명학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고, 단보학파에서도 동의하며 배척하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 대하여 위(衛)씨 왕조는 거부감을 표하고 있으나, 현재까지는 표면화된 갈등은 아니다.

게오르기아 원시주의

사실상 원시주의라는 명칭의 근원이다. 신대륙 원주민의 사회 체계를 지향점삼음으로서 회복주의의 일파와 결을 같이하며, 현재의 게오르기아 공화연맹의 정치 체제와 매우 유사하며, 게오르기아 공화연맹 학계에서 심도 깊이 연구되고 있다.

  1. 부부란 냄비받침을 의미한다(...).
  2. 특히 민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의 형태를 띈 작품도 많이 창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해당 이야기를 정말 단보가 사상을 민중에게 알리기 위해 저술하였는지는 불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