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제15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1992년 3월 24일
14대 총선
1996년 4월 11일
15대 총선
2000년 4월 13일
16대 총선
투표율 72.57% 감소 4.74%p
선거 결과

국민회의·자민련 171석 (57.2%)
(42.5%) 127석 신한국
정당 지역구 전국구 총합 비율
신한국당 99석 28석 127석 42.5%
새정치국민회의 68석 31석 99석 33.1%
자유민주연합 51석 21석 72석 24.1%
무소속 1석 - 1석 0.3%

대한민국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또는 15대 총선대한민국 제15대 국회 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이다. 1996년 4월 11일에 실시하였고, 각 지역구에서 1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소선거구제를 통한 직접선거로 219명을, 비례대표인 전국구에서 80명을 총 299명을 선출하였다.

92년의 경선 이후 결별한 김영삼 대통령은 상도동계 인사를 데리고 민주정의당과 영합해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김대중민주연합의 당명을 변경한 새정치국민회의로 대선에서 다시 맞붙었지만, 결과는 김대중의 진땀승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직후 여소야대를 해결하기 위해 통일국민당과 교섭을 시작했다. 당시 대선에서 예상외로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패배한 정주영은 김대중의 제안에 의해 국무총리직을 제안받았으나, 이를 고사했다. 정주영은 특히 대선 당시 민주자유당측의 흑색선전에 시달리며 고초를 겪었는데, 이는 결국 대선 직후 정계은퇴 선언으로 이어졌다.

정주영의 은퇴로 통일국민당을 접수한 김종필은 본격적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교섭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그 유명한 DJP연합이 구성된다. 김종필을 국무총리로 하되 몇몇 내치에 대해 책임을 지고 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김종필은 이를 수락했고, 이 연합은 김대중이 다시 대선 출마를 선언한 1998년 7월까지 이어진다. 이후 1995년 김종필은 신정치개혁당과 통일국민당을 합쳐 자유민주연합을 창설한다.

민주자유당은 대선 패배 직후 좋지 않은 여론을 환기하기 위해 93년 4월 신한국당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신한국당은 창당 직후 보수에게 큰 지지를 받지 못한 정당으로 이었다. 특히 대구의 민심은 김종필의 통일국민당-자민련에 더 쏠려있었다.

15대 총선을 앞두고 김대중 정부는 무난한 경제, 빠른속도로 성장하는 수출규모와 함께 큰 지지를 받았다. 물론 지지층은 국민회의 지지층과 자민련 지지층으로 나뉘었지만, 어찌되었든 정부에 대한 지지는 높은 상태로 선거에 돌입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국민회의-자민련 연대의 압승이었다. 이런 압승의 배경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자유민주연합 사이의 격전지 단일화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의 체급과 관계 없이 단일화를 요구했기 때문에 자민련은 전국적으로 꽤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선거 정보

선거 결과

정당별 당선자 수

지역구 국회의원 결과

비례대표 국회의원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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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