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 (승리의 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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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세계 대전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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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유럽 전구의 진행 상황
날짜1939년 7월 16일 ~ 1946년 -월 -일
니혼 제국의 항복
장소전세계
결과

미텔유로파 연합의 승리

교전국

미텔유로파 연합
도이치 (승리의 왕관) 도이치 연방 제국
운가르 (승리의 왕관) 운가르 왕국
불가리아 (승리의 왕관) 불가리아 차르국
우크라이나(승리의 왕관) 우크라이나 왕국
발트 연합 (승리의 왕관) 발트 연합 공국
리투아니아 (승리의 왕관) 리투아니아 대공국
북이탈리아 도이치 정부 (승리의 왕관) 북이탈리아 도이치 정부
스페인 (승리의 왕관) 스페인 왕국
알바니아 (승리의 왕관) 알바니아 왕국
아라비아 (승리의 왕관) 아라비아 왕국
이란 (승리의 왕관) 이란 왕국
타일랜드 (승리의 왕관) 타일랜드 왕국

…기타 연합국

제국 동맹
브리튼 (승리의 왕관) 브리튼 제국
프랑라이히 (승리의 왕관) 프랑라이히 제2제국
러시아 (승리의 왕관) 러시아 제2제국
아메리카 (승리의 왕관) 아메리카 합중국
벨기에 (승리의 왕관) 벨기에 제1왕국
바타비아 (승리의 왕관) 네덜란드 제1왕국
니혼 (승리의 왕관) 니혼 제국
폴란드 (승리의 왕관) 폴란드 제2공화국
세르비아 (승리의 왕관) 세르비아 제3왕국
루마니아 (승리의 왕관) 루마니아 제2왕국
크로아티아 제2공화국 (승리의 왕관) 크로아티아 제2공화국
보스니아 (승리의 왕관) 보스니아 공화국
포르투갈 (승리의 왕관) 포르투갈 공화국
덴마크 (승리의 왕관) 덴마크 왕국
스칸디나비아(승리의 왕관) 스웨덴 왕국
스칸디나비아(승리의 왕관) 노르웨이 왕국

…기타 동맹국
지휘관

도이치 (승리의 왕관) 빌헬름 2세 (-1941)
도이치 (승리의 왕관) 빌헬름 3세 (1941-)
운가르 (승리의 왕관) 카로이 4세
불가리아 (승리의 왕관) 보리스 3세 (-1943)
불가리아 (승리의 왕관) 시메온 2세 (1943-)
우크라이나(승리의 왕관) 빌김 2세
발트 연합 (승리의 왕관) 아돌프 프리드리히 폰 메클렌부르크 공작
리투아니아 (승리의 왕관) 민다가우스 2세
북이탈리아 도이치 정부 (승리의 왕관) 프리드리히 카를 폰 프로이센
스페인 (승리의 왕관) 알폰소 13세 (-1941)
스페인 (승리의 왕관) 알폰소 14세 (1941-)
알바니아 (승리의 왕관) 윌리엄 1세 (-1945)
알바니아 (승리의 왕관) 윌리엄 2세 (1945-)
아라비아 (승리의 왕관)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이란 (승리의 왕관)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타일랜드 (승리의 왕관) 라마 8세

…그 외

브리튼 (승리의 왕관) 에드워드 8세
프랑라이히 (승리의 왕관) 나폴레옹 6세
러시아 (승리의 왕관) 알렉산드르 4세
아메리카 (승리의 왕관) 웬들 윌키
벨기에 (승리의 왕관) 레오폴 3세 (-1943)
벨기에 (승리의 왕관) 보두엥 1세 (1943-)
바타비아 (승리의 왕관) 빌헬미나
니혼 (승리의 왕관) 쇼와
폴란드 (승리의 왕관) 이그나치 모시치츠키
세르비아 (승리의 왕관) 알렉산디르 1세
루마니아 (승리의 왕관) 카롤 2세
크로아티아 제2공화국 (승리의 왕관) 야코프 그레고리치
보스니아 (승리의 왕관) 안드레이 하라미야
포르투갈 (승리의 왕관)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덴마크 (승리의 왕관) 크리스티안 10세
스칸디나비아(승리의 왕관) 구스타프 5세
스칸디나비아(승리의 왕관) 호콘 7세

…그 외

제2차 세계 대전(Zweiter Weltkrieg)는 1939년 7월 16일부터 1946년 *월 **일까지 치러진,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피해를 낸 전쟁이다.

통상적으로 전쟁이 시작된 때를 1939년 7월 16일 나폴레옹 6세프랑라이히 제3제국브레타뉴 제1왕국에 선전포고한 것으로 본다. 1946년 *월 **일, 니혼 제국의 수도인 도쿄에 수만발의 포탄과 폭탄을 투하한후 붕괴된 황거에서 쇼와 덴노를 사살하고 도쿄를 불태운 이후 니혼 제국 정부가 항복하면서 사실상 끝이 났으며, 다음날, 메이지 신궁터에서 체결된 항복협정으로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항복협정에서 새 니혼 정부는 전날의 도이치의 만행에 어떠한 배상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명시하였다. 이 결과로 니혼 제국의 여러 식민지들은 독립하였고, 몇몇 도시는 도이치령 동아시아에 합병되었다.

배경

제1차 세계 대전은 이전의 전쟁과는 다르게 정치지도를 크게 변경시켰는데, 프랑라이히외스터라이히-운가르 제국, 러시아가 붕괴되었다. 1915년 러시아 제1제국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다. 한편, 도이치, 그로스브리튼 일랜드 연합 왕국, 불가리아 같은 기존의 동맹국들은 영토를 얻고, 1915년에는 러시아 제1제국, 1916년에는 프랑라이히 제3공화국, 외스터라이히-운가르 제국, 1917년에는 이탈리아 왕국이 각각 붕괴하면서 멸망하였다.

프랑라이히 제3공화국이 무너진 이후 베를린 조약을 통해 프랑라이히 제4왕국이 선포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왕정은 프랑라이히 국민들의 반감을 불러왔으며, 그것이 프랑라이히인의 독자적인 정부가 아닌 역사적으로 악연이 깊은 도이치브리튼에 의해 세워진, 그들의 꼭두각시 정부였기 때문에 이 반감은 전국민적으로 발생한다. 제4왕국에 대한 반감이 쌓여가던 도중 1928년, 세계 대공황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배상금을 갚기 위해 화폐를 마구 찍어내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프랑라이히의 경제는 완전히 무너진다. 이로 인해 극단주의가 판치게 되었으며, 내각 내에서도 극좌와 극우의 대립이 심화되었다. 1929년 4월 11일, 나폴레옹 6세가 이끄는 반정부군이 파리에서 쿠데타를 일으킨다. 파리 시민들은 쿠데타에 동조하였고, 손쉽게 프랑라이히 제4왕국나폴레옹 6세가 장악한다. 나폴레옹 6세프랑라이히 제4왕국의 왕좌가 비어있는 것을 이유로 섭정이 되었고, 5달뒤, 나폴레옹 6세프랑라이히 제3제국을 선포하고는 프랑라이히인의 황제에 오른다.

러시아 제1제국은 1915년에 발생한 10월 혁명에 의해 붕괴되어 러시아 공화국이 탄생한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공화국도이치와의 전쟁을 계속 진행했고, 이에 불만을 품은 볼셰비키들이 2월 혁명을 일으켜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선포한다. 그러나 러시아 공화국의 정부인사들과 군주주의자, 자본주의자들이 모스크바차리친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제1차 러시아 내전이 발발한다. 제1차 러시아 내전도이치브리튼의 강한 지원하에 백군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으며, 러시아 공화국이 다시 수립된다. 러시아 공화국이 들어서자 백군으로 참전해있던 군주주의자 몇몇은 반발하여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이들의 쿠데타는 완벽하게 진압되었고, 쿠데타에 가담하지 않은 군주주의자들은 장교를 사퇴하고 정계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1928년 세계 대공황으로 러시아의 경제는 무너졌고, 이에 정계에서 물러나있던 군주주의자들이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전 러시아 제국 황태자러시아의 황제로 옹립한다. 알렉세이 2세러시아 제2제국을 선포하였다.

그로스브리튼 일랜드 연합 왕국제1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이였으나, 전쟁처리과정에서 도이치 제국과의 갈등이 발생하였고, 아일랜드 독립 전쟁에서 패배한 것과 세계 대공황으로 인해 내각에 대해 큰 반감이 발생하였다. 이에 몇몇 의원들은 국왕에게 권력을 주어야한다는 브리튼 국왕당을 창당하였고, 이들은 내각불신임으로 일찍 치뤄진 1934년 브리튼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여 1당이 된다. 1당이 된 국왕당조지 5세의 권력을 증가시키고 브리튼 제국을 선포한다.

니혼 제국 또한 제1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이였으나, 아시아에서 도이치 제국과의 영향력 충돌로 인해 큰 갈등이 발생한다. 이후 그들은 브-니 동맹을 계속해서 갱신해나갔다. 1928년, 대공황이 발생하여 경제가 붕괴된 니혼 제국 내에서는 내각에 대한 불만이 발생하였고, 결국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다. 한편 조선총독부훗요동도에 진주해 있던 관동군만주 사변을 일으켜 봉천 군벌을 점령하였다. 정부는 군사행동의 정당성과 이후 전쟁을 확대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발표하고 사건을 공인하였다.

1935년, 프랑라이히 제3제국, 러시아 제2제국, 브리튼 제국파리에서 3국 동맹 조약을 체결한다. 3국 동맹 조약이 발표되자 니혼 제국브니 동맹을 이유로 새로운 동맹을 요청했고, 이에 3국과 니혼 제국모스크바에서 제국 동맹 조약을 체결한다. 제국 동맹 조약은 동유럽에 대한 러시아 제2제국에 대한 영유권 인정과 프랑라이히 제2제국라인강 서부 지역의 영유권을, 브리튼 제국지중해에서의 패권, 니혼 제국아시아 패권을 서로 인정하였다.

전쟁 전 사건

반프로이센 봉기

1935년 11월 13일, 제국령 알자스-로트링겐에서 대공황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제국령 알자스-로트링겐 정부는 군대를 동원하여 시위를 진압하였고, 시위는 자연스럽게 폭력시위로 변한다. 이후 제국령 알자스-로트링겐반도이치 전선은 시위를 주도하였고, 도이치 제국 내의 반도이치 전선 지부가 봉기를 일으켜 봉기는 전국적으로 확산된다. 이에 도이치 제국은 30만명의 군대를 동원하여 봉기를 진압하였고, 1936년 1월 16일에 봉기는 완벽하게 진압되었다. 그로부터 이틀뒤인 1936년 1월 18일, 도이치 제국 100주년 기념식에서 제국령 알자스-로트링겐을 포함한 5개국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도이치 연방 제국이 선포되었다.

동부 분쟁

1937년 12월 22일, 러시아러시아-백루테니아 국경을 넘어 스몰렌스크에 군대를 진주시킨다. 그러나 도이치 연방 제국러시아 제2제국의 군사 행동에 대응하지 않았으며, 이에 러시아 제2제국러시아-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브란스크에 군대를 진주한다. 이에 1938년 1월 11일, 도이치 연방 제국민스크 조약을 체결하여 백루테니아우크라이나의 영토 일부를 러시아에게 할양하고 불가침 서약을 받아내었다. 그러나 7개월 뒤인 8월 7일, 러시아 제2제국백루테니아 내의 러시아인의 보호를 명목으로 다시 한번 러시아-백루테니아 국경을 넘어 군대를 진주시켰고, 주민투표를 통해 백루테니아를 완전히 합병해버렸다.

전쟁의 진행 과정

개전

브레타뉴 침공

1939년 7월 15일, 프랑라이히 제국브레타뉴 왕국에게 합병을 요구한다. 그러나 도이치인 이주 계획을 통해 브레타뉴 내에서는 도이치인의 비율이 늘어났으며, 도이치인 이주 계획에 맞서 진행되었던 스코틀랜드인 이주 계획으로 인해 스코틀랜드인웨일스인의 비율도 늘어났다. 때문에 프랑라이히인국왕뿐인 브레타뉴 제1왕국프랑라이히 제3제국의 요구를 거절한다. 이에 프랑라이히 제국낭트에서 반도이치 전선을 통해 프랑라이히인에 대한 테러를 일으킨다. 낭트 자작극이 발생하자 프랑라이히 제3제국브레타뉴 제1왕국 내의 프랑라이히인 보호를 목적으로 브레타뉴 왕국을 침공한다. 낭트 자작극프랑라이히의 소행이라는 것을 깨닳은 도이치 연방 제국브레타뉴 침공을 중지하기를 요구하였으나, 주 도이치 프랑라이히 대사는 그 자리에서 거절하였다. 이에 도이치프랑라이히 제3제국에게 전쟁을 선포하였고, 제국 동맹 조약을 이유로 브리튼 제국러시아 제2제국, 니혼 제국이 참전하였다.

전쟁에 참전한 브리튼 제국은 곧바로 브레타뉴 반도를 봉쇄하였고, 브레스트를 포함한 여러 항구 도시에 포격을 퍼부었다. 브레타뉴 국경에서는 프랑라이히군의 공격이 계속되었고, 낭트 전투에서 프랑라이히 제3제국은 포병과 모니터함을 이용하여 낭트에 포탄을 쏟아부었고, 브레타뉴군은 강력한 화력에 큰 피해를 입고 퇴각하였다. 퇴각한 브레타뉴군은 을 잇는 반-렌 방어선을 개설하였으나, 에서의 브리튼 함대의 포격과 에서의 프랑라이히 제3제국의 공격으로 인해 곧바로 무너져내렸다. 8월 3일, 브레스트가 함략되었고, 다음날인 8월 4일, 브레타뉴 제1왕국은 항복한다.

도네츠크 공세

1939년 7월 18일, 러시아 제2제국도이치 연방 제국에게 선전포고한다. 선전포고 직후 러시아 제국우크라이나 국경에 포격을 퍼부었으며, 빠른속도로 서쪽으로 진격해나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왕국빌김 2세가 혈우병이 걸려 전쟁 뿐만 아니라 국정을 관리할 수 없었고, 이에 그의 동생인 빌헬름 지기스문트 폰 프로이센이 대신 정권과 군권을 잡고 전쟁을 지휘해야했다. 그러나 이는 빌김 2세의 승인을 받았어야했는데, 7월 18일에 빌김 2세는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고, 다음날인 7월 19일이 되어서야 지기스문트 폰 프로이센이 군권을 잡는것을 승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국경에서의 전투가 모두 우크라이나의 패배로 끝난 상태였고, 우크라이나흑해의 섬이라고 불릴 정도로 주변에는 동맹국이라고는 베사라비아만 있었기 때문에 동맹국들의 지원을 받을 상황도 못되었다. 때문에 빌헬름 지기스문트 폰 프로이센이 군권을 잡자마자 니진, 폴타바, 도네츠크, 마리우폴을 잇는 동드네르프 방어선을 개설한다. 그러나 동드네르프 방어선드네르프강 서쪽의 영토는 지킬수 없었고, 정부를 오데사로 옮기고 빈니차키예프를 잇는 방어선에 민병대를 배치하였다.

1939년 8월 8일, 러시아 제2제국동드네르프 방어선의 중요 거점 중 하나인 도네츠크를 집중 공격한다. 러시아 제국의 강력한 화력과 물량을 이틀 정도 막아낸 도네츠크는 함략되었고, 도네츠크마리우풀의 방어대는 자포리자멜리토폴로 퇴각하였다. 한편 도네츠크에서 생각한 것보다 피해가 많자, 진격은 조금씩 늦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우크라이나 왕국은 재정비를 진행하였다.

1939년 11월 18일, 러시아 제국이 방향을 틀어 드네르프강 서쪽으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동부에 비해 배치된 군대가 적고 전선도 긴 서부 전선은 우크라이나 왕국군이 이미 방어를 포기하고 서드네르프 방어선으로 퇴각해있던 상태였다. 때문에 러시아 제국은 이틀만에 서드네르프 방어선으로 진격했고, 11월 22일부터 키예프를 공격하였다. 러시아 제국의 주력이 키예프를 공격한 것과 달리 우크라이나 왕국은 주력병력은 2차 방어선으로 물리고 민병대를 사용하여 시가전을 펼쳤다. 러시아 제국의 주력이 민병대에 의해 진격을 저지당하는 동안 우크라이나 정부의 허울뿐인 키예프 가짜 정부는 전투를 치르며 퇴각한 것으로 포장되었고, 전후 우크라이나 정부에 수도를 버리고 도망친것에 대해 타격이 가해지지 못했다. 12월 8일, 러시아군은 키예프 점령을 선언하였으나, 이후에도 키예프 내부의 우크라이나 게릴라가 그들의 군시설을 공격하여 공격에 지장을 입혔다.

러시아 제국이 주력을 동원하여 키예프를 공격하는 동안 서드네르프 방어선 전역에서는 우크라이나의 일방적인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을 각개격파하였고, 러시아 제국의 주력또한 키예프에서의 피해로 인해 3달만에 진행된 공격은 다시 한번 휴식기에 들어갔다. 그러던 1939년 12월 11일, 리비우 함략을 시작으로 옛 갈리치아-로도메리아의 지역에서 폴란드군이 후퇴하였고 이로 인해 고립되었던 우크라이나 전선동부 전선으로 통합되었다. 전선이 통합되자 중앙유럽 연합의 군사적지원이 우크라이나로 밀려들어왔고, 빌헬름 지기스문트 폰 프로이센의 방어전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발트해 전선

1939년 8월 13일, 러시아 제국리투아니아 대공국빌뉴스 공격을 시작으로 스보로포 공세를 개시하였다. 리투아니아군은 거의 모든 병력을 동원하여 빌뉴스를 방어했으며, 빌뉴스 전투에 발트 주둔 도이치군 또한 참여하였다. 전투는 몇달간 계속되었으나, 러시아 제국빌뉴스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한편, 북부의 러시아군은 매우 빠른 속도로 서진하여 공세 4일만인 8월 17일에 리가를 공격한다. 러시아 제국의 공격에 발트 연합 공국다우가바강 북부의 리가는 함략당하고 말았지만, 다우가바강을 끼고 방어전에 돌입했다. 러시아 제국의 바른 진군으로 인해 에스토니아 지역에 발이 묶인 발트군을 구출하기 위해 도이치 연방 제국대양함대가 출동한다. 이에 러시아발트 함대가 이에 대응하였고, 해전이 발생한다. 세계 최강 함대라는 타이틀을 차지했었던 발트 함대였으나, 상대는 세계 2위의 대양함대였다. 발트해 해전으로 인해 러시아 제국발트 함대 대부분을 격침당하고, 에스토니아 철수를 막지 못하였다. 빌뉴스리가에스토니아 철수로 인해 수비 병력이 새로 충원되어 방어는 더욱 견고해졌고, 러시아 제국스보로포 공세를 중단해야 했다.

라인 공세

1939년 8월 25일, 네덜란드 왕국림부르크 탈환을 명분으로 제국 동맹에 가입하고 도이치에 선전포고한다. 이에 도이치 연방 제국벨기에 전선을 안정시키기 위해 저지대 공세를 계획한다. 저지대 공세네덜란드 전선이 안정되었을때 진행되었어야 하였으나, 네덜란드 전선을 맡은 아우구스트 빌헬름 폰 프로이센은 "새로운 전선은 필요 없다."라며 저지대 공세를 앞당겼다. 결국 9월 5일, 저지대 공세가 개시되었다. 그러나 도이치군은 아른헴에서 네덜란드의 저항에 부딫쳤고, 10일만인 9월 15일, 제1차 아른헴 전투도이치의 패배로 끝나게 되었고, 동시에 저지대 공세는 실패한다.

제1차 아른헴 전투도이치의 완벽한 패배로 끝나게 되자, 벨기에 왕국은 9월 17일에 베를린 조약을 파기하고 제국 동맹에 가입, 다음날에 도이치에게 선전포고 한다. 이에 브리튼 제국네덜란드 왕국을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로테르담으로 수송하였고, 이들을 황립해군을 통해 호송하였다. 그러나 도이치대양함대는 이들을 포착하였고, 라인강 해구 앞바다에서 해전이 벌어진다. 대양함대는 수송 부대를 집중 공격하였고, 수송부대의 절반이 수장되고만다. 절반의 부대를 잃었지만 나머지 부대를 모두 호송한 황립함대는 본격적으로 대양함대와 전투를 치뤘으나, 잠수함들과 전함의 포격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고 퇴각해야했다.

1939년 10월 5일, 프랑라이히 제3제국벨기에를 통하여 도이치 주력이 주둔해 있는 알자스-로트링겐을 우회해 라인강에 도달, 알자스-로트링겐을 포위하여 도이치의 주력을 붕괴시킨후 빠르게 도이치를 끝낸다는 라인 공세를 개시한다. 제1군은 메츠강을 따라 진격하여 림부르크에서 라인강으로 진격하였다. 제2군은 외펜말메디로 향하다가 알자스-로렌 포위 작전이 수정됨에 따라 룩셈부르크로 진격, 룩셈부르크을 지나 북으로 향하던 제3군과 함께 비트부르크에서 저항병력을 분쇄하고 모젤강에 도달하였다. 이후 전열을 재정비하여 라인강까지 진격하였다. 제3군은 비트부르크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원만하게 라인강에 당도해 제1군을 지원하였다.

라인 공세가 성공하자 알자스-로트링겐도이치 주력군은 포위당할 위험에 놓인다. 그러나 군부는 위치사수를 명하고 북부의 군대를 이동시켜 알자스-로트링겐 북부로 이동시켰다. 그러나 프랑라이히 제국라인 공세가 끝나자 마자 이들을 포위하기 위한 작전을 준비하였다. 라인 공세 이전에는 바덴을 점령하여 이들을 포위하는 소규모 전술을 준비하였으나, 라인 공세의 시작과 동시에 도이치의 허리를 끊는 남부 양단 작전으로 계획이 완전히 수정된다. 제2군은 11월 5일에 남부 양단 작전을 시행하여 마인강을 따라 진격하였다. 그러나 11월 25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알자스-로트링겐 북부로 이동하는 도이치군에게 발각되어 전투가 발생한다. 프랑라이히 수뇌부는 첫날에는 이 전투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나, 전투가 점차 길어지면서 불길한 징조를 느낀다. 이에 제3군 일부를 빼내어 원래의 안이였던 바덴 포위 작전을 일부 수정하여 슈트라스부르크를 통해 도이치의 주력군을 포위하기로 한다. 그러나 12월 25일, 도이치 군부는 이들에게 후퇴를 명하며 빠른 후퇴를 진행하는 산타 작전을 시행시킨다. 산타 작전 이틀만에 알자스-로트링겐의 주력군은 라인강까지 후퇴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슈트라스부르크에서 프랑라이히군과 전투가 발생하였다. 도이치군은 병력 후퇴에 중점을 두고 점차 슈트라스부르크 시가지에서 발을 뺏으며, 기동부대를 이용하여 시가지 외곽에서 프랑라이히군의 발을 붙잡아 놓는다. 결국 산타 작전도이치의 완벽한 전술적 전략적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튤립 공세

라인 공세라인강 서쪽의 공업지대를 잃은 도이치 연방 제국 수뇌부는 역공을 준비한다. 그것은 라인 공세로 인해 동맹군의 우선 순위에서 밀려난 네덜란드를 공격하기로 한다. 도이치 수뇌부는 라인 공세 이전에 진행했던 저지대 공세에 조금의 수정을 가해 튤립 공세를 준비한다. 제1차 아른헴 전투에서 패배한 것을 기억하여 그들은 아른헴 돌파를 공세 성공의 지름길이라 여기고 앞으로 일어날 제2차 아른헴 전투를 중점으로 저지대 공세 계획을 수정하였다.

1939년 12월 13일, 튤립 공세가 개시된다. 공세는 북부에서 시작하여 20분 간격으로 남부의 부대로 공세가 이어졌다. 때문에 네덜란드군은 북부를 중점으로 공격하는 것으로 파악하여 전선 북부로 군대를 집중시켰다. 북부로 병력이 이동하자 전선 곳곳에 구멍이 발생하였고, 이 구멍을 도이치돌격대와 기동부대가 빠르게 돌파하였다. 결국 국경 방어선은 남부부터 빠르게 붕괴되었고, 아른헴으로 도이치군이 밀어닥쳤다. 네덜란드의 방어선을 빠르게 돌파한 도이치군은 이틀만인 12월 15일에 주요 지역인 아른헴으로 진격하였고, 곧바로 네덜란드군과 시가전이 벌어진다. 그러나 제1차 아른헴 전투 이후 아른헴 복구를 위해 민간인이 아른헴에 있었고, 네덜란드군은 이들이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도록 보호함과 동시에 도이치군을 막아내야했다. 아른헴네덜란드군이 민간인 보호로 인해 병력이 분산되자 도이치돌격대는 병력 분산으로 인한 방어선의 구멍을 중화기로 넓혔고, 네덜란드군은 빠르게 무너져내렸다. 이후 프랑라이히 제국브리튼 제국의 지원이 도착했지만 별 도움이 되지 못한체 결국 아른헴에서 퇴각해야했다. 제2차 아른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도이치군은 사기가 높아졌고, 튤립 공세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제2차 아른헴 공세에서 패배한 동맹군위트레흐트로 퇴각해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도이치군은 위트레흐트로 진입하기 이전에 포격을 개시하여 도시를 파괴하고 다리를 붕괴시켜 보급선을 마비시킨후 공격을 개시하였다. 제2차 아른헴 전투 때와 같이 돌격대가 선봉으로 투입되어 방어선에 구멍을 내었고, 이 구멍을 일반 부대가 파고 들었다. 또한 위트레흐트 중앙을 흐르는 강을 이용하여 도이치군이 후방을 교란하였다. 결국 위트레흐트 전투도이치의 승리로 끝났으며, 라인강 북부의 네덜란드동맹군들은 완전히 포위당하게 된다. 이후 1940년 1월 11일에 암스테르담이 함략되었고, 1월 26일에는 로테르담이 함략되면서 네덜란드군과 이들을 지원하러 온 동맹군들은 덴하그에 포위되고 만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 브리튼 제국은 철수 작전을 진행하였고, 이에 대양함대가 철수 작전 중인 황립함대를 공격하면서 덴하그 해전이 발생한다.

브리튼 황립함대라인 하구 해전 때처럼 대양함대가 수송선을 공격할 것으로 예상하고 수송선의 호송을 강화하였다. 그러나 대양해군은 오히려 주력함을 목표로 잡고 이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HMS 요크의 격침을 시작으로 HMS 샤리비디스, HMS 헤르미온느, HMS 시리우스가 격침되었으며, 수송선 십수척이 U보트에 의해 격침되었다. 덴하그 철수 작전은 결국 성공하였으나, 브리튼 황립해군의 피해는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