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로시아 내전
파로시아 비이크리거 / Parossian Civil War

파로시아 공화국의 수도 페넥토리아 시내에서 폭발하는 항공 폭탄
날짜전후기 131년 5월 5일 ~ 전후기 131년 12월 18일
장소파로시아 반도 전역
결과 사실상 라이녹족의 승리, 파로시아 왕정 복고
국가 연맹의 권한 확대, 무전기 시작
교전국

복위파

라이녹 반군
루이나 제국[1]

제담 후세 혁명정권

파로시아 공화국
남방 연합 제국[2]
지휘관

복위파

알리사 2세
드라이제 맘루카
스티브 4세

제담 후세 혁명정권

제담 후세
마후타 2세
병력

복위파
21만명
4만명

총 25만명

제담 후세 혁명정권
38만명
6만명

총 44만명
피해 규모
병사 사망자 6만명
병사 부상자 11만명
병사 사망자 8만명
병사 부상자 15만명

개요

파로시아 내전(파로시아 비이크리거, Parossian Civil War) 또는 파로시아 전쟁(파로시아 크리거, Parossian War)는 전후기 131년 파로시아 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보통 이 전쟁을 기준으로 대전기무전기를 나눈다.

배경

원래 파로시아 반도 지역에는 라이녹족이 터를 잡고 살고 있었지만 전전기 1100년경 파로시아 반도를 지배하던 마크트 제국이 현재의 론한 지역에 거주하던 마르카족을 파로시아 서쪽에 강제 이주시키면서 두 민족의 갈등은 시작된다. 초기에는 양측 모두 나름 사이 좋게 살아갔지만 전전기 41년 연합 왕국의 식민 지배가 시작되며 상황이 바뀌게 된다.

연합 왕국의 식민 통치가 시작되며 영국과 가까운 서쪽 지역은 성장한 반면 동쪽 지역은 점점 낙후되어갔다. 그렇게 격차가 점점 벌려지던 중 극단적인 마르카 민족주의자던 제담 후세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라이녹족이던 파사 왕가를 몰아내고 파로시아 공화국을 설립한다. 이후 정권을 잡은 제담 후세는 라이녹족을 차별하는 법안을 차례대로 입안시켰고 라이녹 족의 분노는 쌓여간다.

혁명은 파로시아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매우 큰 사건이였다. 특히 루이나 제국은 파로시아로부터 막대한 양의 석유를 수입하고 있었고 이 석유들은 루이나 제국의 전차와 군함을 굴리는데 사용되고 있엇다. 하지만 혁명 이후 후세 정권은 파사 왕가와 관련되어있던 루이나 제국의 대한 석유 수출을 중단하였고 이로 인해 루이나 제국에서 유가가 치솟는 등 큰 혼란이 발생한다. 결국 이를 두고볼 수 없던 루이나 제국은 당시 파로시아 왕정 복고를 위한 반란을 준비하던 반군에게 대규모로 무기를 공급하게되고 충분한 힘이 모인 반군이 후세 정권에게 선전포고하며 전쟁이 시작되게된다.

  1. 의용군 파병
  2. 의용군 파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