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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GM 재생 후 감상 주세요.










톡.

톡,

토독.

톡, 토독, 톡, 톡….

손마디 끝이 테이블을 두드리는 박자가 암실에 울려퍼졌다. 온 주위가 깔린 어둠인 탓에 소리는 더욱 선명했다.

무성의하게 내어지는 박자로 미루어보건대, 남자가 얼마나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시간을 죽이고 있을지는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약속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껏 본대에서 떨어져나와, 구태여 단독행동을 하는 이유도 홀로 정보를 캐내기 위함이었다.

위탁 교육을 위시한 포섭 제안. 굳이굳이 더 걸고 넘어졌고, 그 끝에 겨우 마련해낸 배후를 알아낼 수 있는 자리였다.

톡.

다만 냇가에 내놓은 아이들이 너무 신경 쓰여서. 남자는 지나치게 객관적이었고, 객관화한 자신의 감은 대개 틀리지 않았다.

토독….

자신이 없는 본대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서. 때문에 남자는 가급적 이 밀담을 빨리 끝마치고 제 목표를 달성한 뒤 학교로 복귀하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톡.

남자의 작은 장단이 멈추었고, 남자는 입을 뗐다.

"무기 정도는 그럴 수 있겠거니 하겠는데…."

터벅.

터벅,

터벅….

다만 그 암실 속 어둠에 몸을 숨긴 이들의 발걸음이 그 공백을 메웠다. 남자가 말했다.

"숙련된 능력자 여럿이서 온다는 얘기는 없었지, 아마."

"여유롭군 그래."

남자는 고개를 돌려 대답이 들려온 쪽을 돌아보았다. 물론 그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는 일은 없었고, 내린 어둠만 자리했다.

"기껏 위협했는데 태연해서 서운해?"

"그만. 약속을 먼저 어긴 건 네쪽일 텐데. 그쪽 학생들이 시설을 습격했다더군."

철컥.

쇳덩어리가 후퇴했다가 전진하는 묵직한 소리.

…아무래도 기껏 '겨우 마련해낸 배후를 알아낼 수 있는 자리'가 파해졌다는 의미일 테다.

"…아. 그래?"

"시설을 습격하기 용이하도록 네가 틈을 벌러 온 모양이지. 불 보듯 뻔해. 우린 더 이상 너를 신뢰할 수 없다."

또, 푸욱 내쉬어지는 한숨 소리. 그새를 못 참고. 이 아기 된장국들. 따위의 중얼임 소리.

"제타. 세타. 입실론. 저 자를 사살해."

"아하하. 거 봐…."

이윽고 푸른 눈이 번뜩이고, 안광에 희미하게나마 어둠이 걷혔다.

"내 감은 절대 안 틀린다니까. 민호야."

김영희가 중얼이며 웃었다.

바람이 느껴졌다.


*


―――챙!


두 날붙이가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대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불씨까지 튀겨대며.

"그새 솜씨가 많이 늘었구나, O. 내 아들."

"………닥쳐, 쓰레기. 날 그딴 식으로 부르지 마…!"

김신기가 검을 비틀어 크게 올려휘둘렀고, 맞붙었던 두 검이 교차하며 떨어졌다. X가 한발짝 뒤로 밀려났다.

"지금이라도 돌아오면 받아줄 의향이 있다. 위에는 내가 잘 말해주마, 아들아."

"하하… 헛소리 지껄이지 마. 내가 다시 돌아간다고? 당신도 내가 어떻게 대답할지 잘 알잖아…!"

"쯧………. 아쉽긴 하다만."

하지만 다시 한발짝, 아니. 두발짝.

검귀가 자세를 낮추어 거리를 좁혔고, 순식간에 그의 섬뜩한 눈이 김신기의 코앞에 와있었다. 커다랗게 검을 휘둘러올린 자세가 갈무리되기도 전이었다.

"………!"

"…팔 하나 정도는 없어도 내가 너를 사랑하는 데엔 변함이 없을 거다, 아들."

텅 빈 김신기의 팔을 향해 X의 칼날이 빠르게 질주했다. 자세를 고쳐 막아내기엔 이미 늦은 듯 싶었다.

늦은 듯 싶었고….

….

"느려."

섬광이 번뜩였다. 그러자 검의 궤적이 커다랗게 비틀어져 김신기의 팔 옆으로 지나갔다.

또, X의 복부에 뒤늦게 한 번의 권격이 가해졌다. 결코 무겁지는 않았으나, 날카롭고 예리한 권격. 덧붙여…

저릿한 전격까지.

어느샌가 김신기의 앞에는 백하민이 서 있었다.

"…느려?"

X가 다시 주춤거리며 물러나더니 고개를 들어 백하민을 노려보았다. 도신처럼 서슬퍼런 그의 눈이 번뜩였다.

"못 알아먹었냐? 느려터졌다고…."

다시 X가 검을 들어올리던 찰나, 그의 발치 아래서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펑.

"이 자식아."

굉음과 함께 터져오른 화염기둥이 그를 뒤덮는 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벙찐 눈의 김신기에게로 선신제가 벅찬 숨을 몰아쉬어대며 뛰어왔다.

"먼저 뛰어들면 어떡해, 이 바보들아!"

"니가 느려터진 걸 어떡하냐?"

"이, 이게. 선배한테 한다는 말이, 이익."

"그리고 너도 좀 무대포로 뛰어들지 마라, 김신기. 우린 뭐가 돼?"

백하민이 고개를 돌려 내리깐 눈으로 태연히 김신기를 응시했다. 그 푸른 눈에는 질책 한 점 담기지 않아있었다. 차라리 그것보다는… 뭐랄까. 우리를 믿어보라는 무언의 권유.

때문에 김신기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곧이어, 은백색의 참격 여럿이 화염기둥을 찢었다. 갈가리 찢긴 화염이 흩날리고, 그 사이로 검귀의 안경이 불꽃색에 비쳐 번뜩였다.

"그럼 같이 뛰어들어보자. 저 쓰레기한테."

….

한편.

전장 뒤편에서, 임봄이 자세를 낮추어 널브러진 시체의 목 위로 검지를 짚었다. 커튼처럼 흑색으로 늘어뜨려진 그녀의 머리칼 사이로, 어둠이 한껏 스민 푸른 눈이 말 없이 넘실댔다.

실험체이자 작은 아이였던 그것의 옆에서, 묵묵히 팔짱을 끼고 있던 이수빈이 변함 없이 차가운 눈을 한 번 꿈벅이고는 입을 떼었다.

"살아있어?"

"…."

여전히 봄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딱딱히 굳은 그것의 목만큼이나 그녀의 입술도 한참을 굳었다. 마른 침만 삼키며 미간을 찌푸렸나.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서은우가 임봄 대신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 심장박동 소리가 멈춰있어. 세포도 이미 모두 비활성화된 상태야."

"그렇겠지. 쯧."

"…사람이, 어떻게 같은 사람한테 이런…."

"………."

안타까움과 원망, 분노와 슬픔이 뒤섞여 어린 임봄의 물음에 아이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광경에 익숙해져버렸다는 것에도 말문이 막혔다. 잠시간 무거운 침묵 끝에, 저 멀리서 터져나온 폭음이 침묵을 깼다.

"…더 할 말은 없겠네요. 가서 도와주죠."

길령이 거대한 사념체를 불러내며 말했다.

그녀의 눈 역시 무거운 감정이 어둡게 내려앉아있었으나, 그럼에도 령은 그것을 고요히 죽은 눈 아래로 묻어두기로 했다. 당장은 당장에 집중하기로.

"…그래~ 저 바보들, 우리 없으면 안 돼. 가서 도와주자. 나랑 봄이가 보조할게."

서하진이 금안을 번뜩이며 덧붙였다. 태연한 체 하고 있었으나 힘이 들어간 그녀의 목소리에도 분명 분노가 잔재했다.

"그래, 뭐. 나는 하민 공주랑 임…."

"…봄이에요."

"아무튼. 지키면서 후방 엄호한다. 가. 탱커들."

"그러면 탱커 둘은 가서 짓뭉개주죠, 은우 선배."

"맞아요! 서포팅은 우리가 할 테니까 가서 탱킹이나 하라구요!"

자연스레 한 술 뜨는 유한열을 무표정하게 쥐어박는 길령의 뒤로, 은우는 얌전히 두 팔을 괴이한 육편으로 뒤섞어 흉기에 가깝게 변이시켰다.

뒤섞이고 바뀌는 그의 능력처럼, 서은우는 딱히 아무런 부정 않고 그들의 의지에 뒤섞이기로 결정한지 오래였다.

다만, 그러면서도 서은우는 초예지에 가까운 동물적 본능으로 지레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야지. 가자, 령."

아무래도 이 무대포 아기된장국들 탓에 계획이 꼬인 누군가가 꽤나 화나있을 것만 같다는… 그런 직감.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