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ni, 2021.12.03~2022.12.03 (1Y) | CC-BY-SA 3.0
강한쟁기
Strong Frozen War | 江寒爭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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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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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시내에서 시위 중인 시민들.

개요

THE 킹 탄핵 시위는 보통 3983現년 2월 13일부터 3996現년 10월 24일까지 수도 클레어에서, 리무브 사태로 독재의 길을 걷고 있는 THE 킹 행정부에 대항하여 진행된 대규모 시위이다. 대외적으로 이 대규모 시위를 상징하는 색상은 검은색인데, 이는 THE 시티의 민주주의가 완전히 몰락의 위기에 처해있음을 의미한다.

상세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이미 진행되었었던 리무브 사태 때의 시위 당시와 달리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과 간절함을 갖고 강경하게 행정부에 대항했다. 이번에도 평화 시위 끝에 얼마 못 가 원동력을 잃고 시위가 종료될 거라 예상했던 THE 시티의 기대와 달리 시위는 시위가 최초로 시작한 3983現년부터 전성기였던 3986現년을 지나 13년이 지난 3996現년까지 그 원동력을 잃지 않고 장기화되었다. 당시의 시민들의 모습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THE 시티의 민주주의를 돌려놓겠다는 각오가 가득 차 있었다.

4013現년에 타츠 문명 민주체제 3차 시위[1]가 일어나기 전까지 관련된 시위 기록을 모두 갈아치우는 압도적인 규모의 시위였다. 시위의 전성기였던 3986現년 5월 기준 최대 인원은 추산 2321만 명 참가로, 전체 인구의 약 70%가 참가한 셈이다. 인구 비율로만 보면 타츠 문명 민주체제 3차 시위보다 더 큰 규모다. 심지어 이 시위는 3983現년부터 시위대가 완전히 해산한 3996現년까지 총 13년 간 진행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는 시위가 되었다.

하지만 시위대 내에서의 민주당과 노동당 사이 정치적 갈등, 경찰의 강경 진압과 THE군의 개입, 너무 장기화된 시위로 인해 점차 그 원동력을 잃기 시작했고 결국 시위를 주최한 민주노동연합이 3996現년 10월 24일 시위대 전면 해산을 발표하면서 시위는 의미있는 결과 없이 실패로 끝났다. 시위가 끝나면서 THE 킹 행정부의 일인독재 중앙집권제는 THE 시티에 완전히 정착하게 되었다.

원인

시위대가 이런 초대형 규모의 시위를 벌인 이유에는 첫째로 리무브 사태로 인한 일인독재 체제에 대한 대항, 둘째로 THE 시티 경제 위기로 인해 사실상 디폴트 상태에 접어든 경제, 셋째로 그동안 수차례의 시위를 진행해왔음에도 묵살한 행정부에 대한 분노, 이 세 가지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사실 리무브 사태 당시까지는 파장이 지금처럼 그렇게까지 크진 않았다. 물론 당시에도 일부 정치 세력들이 시위를 일으키긴 했으나 이것도 하나의 조항만으로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국가원수가 자진 사퇴할 시 국가원수는 그 후계자를 지정할 권한을 가진다.
헌법 제56조, 구 헌법 기준

그러다 다시 행정부에 대한 반감이 커진 시발점은 THE 시티 경제 위기였다. MSR 연합을 중심으로 많은 국가들이 THE 시티에 대해 동시다발적으로 단교와 경제제재를 가하고 동시에 내부 경제도 악화되면서 경제 중견국이라 평가받던 THE 시티의 경제는 완전히 주저앉았다. 굳건히 400억대를 유지하고 있던 GDP는 230억 S까지 내려갔으며 특히 THE 시티의 수입, 수출금액 1~3위를 담당하던 매직 빌리지, 눈 치우는 마을, 레인 포레스트가 동시에 단교하자 수출액은 메가 시티보다 낮아졌다.

명목 GDP만 50% 이상, 시가총액은 72%가 하루만에 감소해버리자 물가는 훌쩍 치솟아올랐으며 국민들의 일자리를 담당하던 대기업들은 하나둘씩 THE 시티에서 철수하고 중소기업들은 줄줄이 파산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었다는 소리다.

결국 국회의 양 정당을 담당하고 있던 민주당과 노동당은 연합하여 민주노동연합을 설립했으며, 실업자들과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시위대가 조직되었다. 그렇게 3983現년 2월 13일 클레어의 총통 집무실을 시작으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전개

시위가 시작한 3983現년부터 3987現년까지 시위는 전성기를 맞았다. 최대 인원 23,000,000명이 참여했으며 클레어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 전체에 시위대가 가득 찰 정도였다.

그러나 3987現년부터 THE 시티는 경찰 총동원령, THE군의 개입을 통한 강경 대응을 예고했으며, 행정부가 무력을 사용하는 행각까지 발각되었다. 그러나 시위대의 동력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 이미 저물어가고 있었고, 시위는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위대 대부분이 너무 장기화된 시위에 지치면서 시위 현장을 떠났고, 동시에 시위의 주최였던 민주노동연합이 민주당 세력과 노동당 세력 간 갈등이 조장되면서 3996現년 10월 24일 결국 민주노동연합이 시위대 전면 해산을 발표, 시위는 끝을 맺었다.

결과

시위대가 노력했지만 의미있는 결실은 맺지 못했다. 오히려 시위가 끝나며 THE 킹 행정부의 일인독재 중앙집권제는 THE 시티 내에 완전히 자리잡을 수 있었다.

일부 시민들은 이런 독재국가를 떠나 이민을 하기도 했다.

각주

  1. 이쪽은 전 인구의 1/2 이상인, 최대 70,000,000명이 시위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