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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 ==
== 상세 ==
변화당은 양김의 정치적 결별과 야권 단일화 실패에 환멸을 느낀 [[김정식 (변화)|김정식]]이 '''국민중심 수권정당 건설'''을 목표로 자신의 정치적 동지들과 일반 시민들이 모여 1988년 2월 8일 창당하였다. 초창기에는 양김의 단일화 실패로 돌아선 유권자들과 청년층을 겨냥해 양김의 대안임을 자처했고, 당시에는 서구식 사회 개혁, 과거사 청산 요구, 일해재단 및 정수장학회 해체, 최저임금 1,000원 인상 등을 주장했다.
변화당은 1988년 창당 이래 제6공화국과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 만큼 속칭 '''개혁 세력'''을 대표하는 정당으로서 1995년부터 2004년까지, 2014년부터 2028년까지 두 번의 전성기를 맞은 정당이다.


하지만 6공 초기까지만 해도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은 등록이 취소된다는 법적인 제약이 있었기에 등록 취소와 재등록을 반복해야 했고, 당의 공약들 또한 진보정당 못지 않게 급진적이었다보니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늘 존재해왔다. 실제로 변화당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자를 내지 못해 두 차례나 등록 취소를 당한 적이 있었으며, 이 때문에 정당으로 다시 등록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는 후대의 증언이 있다.
양김의 정치적 결별과 야권 단일화 실패에 환멸을 느낀 [[김정식 (변화)|김정식]]이 '''국민우선 수권정당 건설'''을 목표로 자신의 정치적 동지들과 일반 시민들이 모여 1988년 2월 8일 창당하였다. 초창기에는 야권 단일화를 원했던 유권자들과 청년층을 겨냥해 '양김의 대안'임을 자처했고, 서구식 사회 개혁, 과거사 청산 요구, 일해재단 및 정수장학회 해체, 최저임금 1,000원 인상 등을 주장했다. 하지만 창당 당시에는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은 등록이 취소된다는 법적인 제약이 있었기에 등록 취소를 당해야 했고, 당의 공약들 또한 진보정당 못지 않게 급진적이었다보니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다.<ref>실제로 변화당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자를 내지 못해 두 차례나 등록 취소를 당한 적이 있었으며, 이 때문에 정당으로 다시 등록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는 후대의 증언이 있다.</ref>


1995년 8월 28일, [[주영민 (변화)|주영민]] 대표가 태평로(現 세종대로)에서 삼김의 권위주의적 정치와 문민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는 [[태평로 연설|연설]]을 낭독해 사실상 '''민주적 대안정당'''임을 선언했고, 30년 넘은 삼김시대에 피로감을 가진 국민들의 지지 속에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변화당은 삼김을 '''시대착오적인 정치 집단'''<ref>김영삼,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배출한 자유당과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삼김정치 청산을 내세운 것을 감안하면 가장 빨랐다고 할 수 있다.</ref>으로 간주하여 정치 개혁 의제와 민주적 정당 운영을 전면에 내세웠으며 당 대표의 일부 권한 폐지, 청년당 신설, 미래정치연구소 설립 등 활발한 당 혁신 사업<ref>변화당의 당 혁신 사업은 16대 대선 이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2020년대 이후에도 몇 번의 변동을 제외하면 여전히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다.</ref>을 펼쳤다. 이러한 쇄신 행보는 15대 총선에서 원내 입성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소위 ''''개혁 세력''''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995년 8월 28일, [[주영민 (변화)|주영민]] 대표가 태평로(現 세종대로)에서 삼김의 권위주의적 정치와 문민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는 [[태평로 연설|연설]]을 낭독해 사실상 '''민주적 대안정당'''임을 선언했고, 30년 넘은 삼김시대에 피로감을 가진 국민들의 지지 속에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변화당은 삼김을 '''시대착오적인 정치 집단'''<ref>김영삼,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배출한 자유당과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삼김정치 청산을 내세운 것을 감안하면 가장 빨랐다고 할 수 있다.</ref>으로 간주하여 정치 개혁 의제와 민주적 정당 운영을 전면에 내세웠으며 당 대표의 일부 권한 폐지, 청년당 신설, 미래정치연구소 설립 등 활발한 당 혁신 사업<ref>변화당의 당 혁신 사업은 16대 대선 이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2020년대 이후에도 몇 번의 변동을 제외하면 여전히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다.</ref>을 펼쳤다. 이러한 쇄신 행보는 15대 총선에서 원내 입성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소위 ''''개혁 세력''''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2024년 5월 15일 (수) 20:3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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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시대는 "만약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했다면?"을 바탕으로 제작된 시즌제 대체역사물입니다.

모든 설정은 공식이자 허구임을 밝히며, 자세한 정보는 각 링크를 참고하십시오.

변화당
영문명 Party of Change
표어 이제는 전환이다
시대교체로 더 유능한 대한민국
등록일 1988년 2월 8일 (1차 등록일)
1989년 5월 7일 (2차 등록일)
1993년 1월 19일 (3차 등록일)
해산일 1988년 4월 26일 (1차 등록일)
1992년 3월 24일 (2차 등록일)
2028년 n월 n일 (3차 등록일)
당색
민트색 (#00F1BA)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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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당 당사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74길 12 여의도동)
대표 김민우 / 2선 (21·22대)
원내대표 -
사무총장 -
정책위의장 -
정책연구소
청년조직
국제조직
     

개요

변화당(Party of Change)는 대한민국의 제3지대, 진보정당이며, 김현수 정부의 입법여당이다.

상세

변화당은 1988년 창당 이래 제6공화국과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 만큼 속칭 개혁 세력을 대표하는 정당으로서 1995년부터 2004년까지, 2014년부터 2028년까지 두 번의 전성기를 맞은 정당이다.

양김의 정치적 결별과 야권 단일화 실패에 환멸을 느낀 김정식국민우선 수권정당 건설을 목표로 자신의 정치적 동지들과 일반 시민들이 모여 1988년 2월 8일 창당하였다. 초창기에는 야권 단일화를 원했던 유권자들과 청년층을 겨냥해 '양김의 대안'임을 자처했고, 서구식 사회 개혁, 과거사 청산 요구, 일해재단 및 정수장학회 해체, 최저임금 1,000원 인상 등을 주장했다. 하지만 창당 당시에는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은 등록이 취소된다는 법적인 제약이 있었기에 등록 취소를 당해야 했고, 당의 공약들 또한 진보정당 못지 않게 급진적이었다보니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다.[1]

1995년 8월 28일, 주영민 대표가 태평로(現 세종대로)에서 삼김의 권위주의적 정치와 문민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낭독해 사실상 민주적 대안정당임을 선언했고, 30년 넘은 삼김시대에 피로감을 가진 국민들의 지지 속에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변화당은 삼김을 시대착오적인 정치 집단[2]으로 간주하여 정치 개혁 의제와 민주적 정당 운영을 전면에 내세웠으며 당 대표의 일부 권한 폐지, 청년당 신설, 미래정치연구소 설립 등 활발한 당 혁신 사업[3]을 펼쳤다. 이러한 쇄신 행보는 15대 총선에서 원내 입성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소위 '개혁 세력'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어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낙선·낙천 운동과 높은 존재감 덕분에 제3당에 올라 16대 국회의 캐스팅보터가 되었으나,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로 인해 개혁 세력의 주도권이 열린우리당으로 넘어갔고, 끝내 17대 총선에서 4석만 건지고 참패했다.[4] 결국 오랫동안 당 대표를 유지해왔던 주영민이 사퇴하고, 37세의 김민선이 새 당 대표로 취임하였다.

현황

정강 및 정책

정강

모두의 내일을 위한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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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은 모두의 내일을 함께 만들어가는 정당이다. 반만년의 역사와 빛나는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는 3.1 독립운동 정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고, 공산주의 침략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국난극복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하나 된 국민의 힘으로 전쟁의 폐허에서 가난을 극복하고 선진경제를 이룩했으며,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민주화를 성취했다. 우리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변화와 개혁을 주도해 더 나은 내일을 향해 앞장서 나갈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세계질서의 대전환과 북한의 핵무장, 지구환경 변화와 거듭되고 있는 질병과 재난, 경제의 질적 변화로 인한 불확실성과 양극화의 심화, 인구절벽 등 중대한 위기 앞에 서 있다. 국가적 위기 해결에 앞장서야 할 정치는 국민이 부여한 권한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오히려 국민 분열을 조장하는 등 사회적 혼란과 함께 정치불신을 심화시켜 왔다. 이제 우리는 지난 과거를 반성하고 성찰함과 동시에 다가오는 미래 변화를 선도하고, '기회의 나라, 공정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이 약속한다.

우리는 모든 국민이 공정하고 다양한 기회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임을 깊이 인식하고, 입시와 취업, 병역 등 우리 사회 전반에서 반칙과 특권이 허용되지 않도록 한다. 국민 누구나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를 보장할 것이며, 개인의 존엄과 창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제도를 마련한다.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하여 경제민주화를 구현하고, 사회적 양극화 해소에 앞장서며, 편법과 부정부패에 단호히 대처하여 공동체 신뢰를 회복한다.

우리는 갈등과 분열을 넘어 국민통합을 위해 노력하며 진영 논리에 따라 과거를 배척하지 않는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새마을 운동 등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산업화 세대의 '조국 근대화 정신’과 자유민주주의를 공고히 한 2‧28 대구 민주운동, 3‧8 대전 민주의거, 3.15 의거, 4.19 혁명, 부마항쟁, 5.18 광주 민주화 운동, 6‧10 항쟁 등 현대사의 '민주화 운동 정신’을 이어간다.

우리는 다가올 미래의 변화를 선도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제·사회 변화를 예측하고, 미래 성장 동력과 일자리 창출에 국가의 역량을 집중한다. 더 나아가 미래 세대와의 공존을 위해 전 지구적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저탄소 청정에너지에 기반한 친환경사회 건설에 앞장서 나간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정치를 지향하며 국민을 위한 실용적인 정치, 미래세대를 위한 책임정치를 실천한다.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유능한 정부를 만들고, 실질적인 권한의 분산을 통해 지방분권 시대를 연다. 법이 약자에게 드리운 그늘을 걷어내고, 공평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도록 사법제도를 개선해 나간다.

우리는 일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고,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으며, 노력한 자에게 합리적 보상이 주어지는 노동시장 조성에 앞장선다. 안심하고 기업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경제적 성장을 돕는다.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고 쾌적한 노동환경을 만들고, 노동시장의 고용안전망을 강화해 나간다.

우리는 누구나 경제적 자립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개인 중심의 복지 체계 개편에 앞장서고, 소외계층을 위한 국가의 책임과 의무를 강화한다. 모든 영역이 성인지 관점에서 작동되는 양성평등사회를 지향하며 성폭력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장선다. 아이 낳아 키우는 것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양육이 중심되는 사회제도와 문화를 마련한다.

우리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지향한다.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남‧북한 간의 개방과 대화, 교류 협력을 통해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공동체의 발전을 추구한다. 지속적인 국방력 강화를 통해 튼튼한 안보를 구축한다.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주변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의 확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한다. 세계 각 지역과의 경제 및 통상외교를 강화하고 대한민국의 국익 신장을 위한 전방위적 외교를 능동적으로 전개해 나간다.

자유당은 국민 모두를 위한 정당으로서 내일의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우리의 믿음을 선언한다.

모두의 내일을 위한 약속은 정강으로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국민 통합미래 변화를 앞장서서 이끄는 혁신과 개혁을 두 개의 기둥으로 역사관, 시대정신, 핵심 정책 기조를 설명하고 있다.

과거 자유당의 강령과 달리 역사관의 변화로는 먼저 3.1 운동 정신과 임정 법통론을 명시했을 뿐만 아니라 소모적인 역사 논쟁을 없애기 위해서 산업화 세대의 '조국 근대화 정신’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공고히 한 현대사의 '민주화 운동[5] 정신’을 계승한다고 썼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의 호남행과 맞물려 이해되는 대목이다.

여러가지 국가적 위기에 맞서 '기회의 나라, 공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며 모든 국민이 공정하고 다양한 기회를 누리도록 하는 것을 시대정신으로 보고 핵심 정책 기조를 기회와 공정, 미래 변화 선도, 노동의 존중, 경제적 자립, 약자와의 동행, 평화 통일을 지향하는 외교 안보 등 6가지 주요 핵심 가치로 보면서 거시적인 당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10대 신념

10대 신념
1. 우리는 모든 사람이 자유와 인권을 보장받고 행복하기를 원한다고 믿는다.
2. 우리는 권위주의를 거부하며, 부당한 간섭과 통제를 받지 않을 때 보다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3. 우리는 공정하고 다양한 기회가 주어질 때 스스로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
4. 우리는 개인의 이익을 넘어선 공공의 선이 존재하고, 자유는 공동체를 깨뜨리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된다고 믿는다.
5. 우리는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시대 변화에 앞장서는 것이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믿는다.
6. 우리는 다양한 교육의 기회가 균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7. 우리는 쾌적한 환경과 안전한 일상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국가의 최우선 과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고 믿는다.
8. 우리는 국가와 사회가 스스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믿는다.
9. 우리는 정치가 정직하고 겸손해야 하며 모든 권력은 분립되고 견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10.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평화통일이 한반도 전체의 번영과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믿음도 강령의 일부로서 영국의 마이클 하워드 전 영국 보수당 대표가 발표했던 '보수주의자의 신념’을 벤치마킹해 자유당이 시대의 변화와 상관없이 공유할 수 있는 핵심 가치로 규정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2차 대전 전후 서구의 보수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러셀 커크의 1953년 작인 '보수주의 정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도 보인다.

100년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는 당의 신념과 믿음이라고 주장하며 위의 10가지 믿음이 정당 구성원의 행동과 당의 핵심 기조 설정, 정책 구현 방향에 연결되어 지속가능한 당의 뿌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라고 한다. 전반적으로 자유민주주의(1, 2, 10번)와 공화주의(4, 8, 9번), 보수주의(5번) 이념과 사회 정의와 관련된 공정성과 다양한 기회(3번), 기존의 보수가 중요하게 생각하던 국가안보에 사회권을 포괄한 확장된 안보관(7번), 교육에 있어 다양한 기회의 균등(6번)의 개념 및 가치가 들어간 것으로 파악된다.

과거의 보수정당들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은 첫 번째, 공화주의 이념이 메인으로 부상하고 두 번째, 공정과 기회라는 사회 정의의 구현을 핵심적인 가치로 내세우고 있으며 세 번째, 사회권을 전적으로 수용하고 네 번째, 교육과 관련된 가치가 10대 신념 중 하나로 부상했다는 점이다.

기본 정책

10대 정책
1. 모두에게 열린 기회의 나라
  • 누구나 누리는 선택의 기회
  • 모두에게 공정한 대한민국
  • 맞춤형 교육 기회 보장
  • 다양성 기반의 미래 교육 생태계 조성


2. 변화를 선도하는 경제혁신

  • 메가트렌드 예측과 규제 인식 전환
  • 과학기술 기반 융합 산업 발전
  • 지역의 재탄생


3. 약자와의 동행, 경제민주화 구현

  • 사회 양극화 해소
  • 경제민주화 구현
  • 국민 주거 안정


4. 일하는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

  • 미래의 노동
  • 안정적이고 유연한 노동시장 조성
  • 양질의 일자리 창출
  • 생명을 최우선 하는 노동환경 조성


5. 국민과 함께 하는 정치 개혁

  • 국민과 함께 만드는 정치 개혁
  • 유능한 정부 혁신
  • 국민에 의한 권력기관 개혁
  • 언론자유를 지키는 개혁


6. 모두를 위한 사법 개혁

  • 법의 그늘이 없는 사회
  • 권력으로부터 완전한 독립
  • 미래형 사법제도 도입


7. 깨끗한 지구, 지속가능한 대한민국

  • 미래세대와의 공존
  • 저탄소 청정에너지 혁명
  • 지속가능한 대한민국


8. 내 삶이 자유로운 나라

  • 국민 행복 구현
  • 모두가 함께 행복한 돌봄 공동체
  • 아이 낳아 키우는 것이 행복한 사회


9. 남녀 모두가 행복한 양성평등사회

  • 양성평등사회의 실질적 구현
  • 성폭력 없는 사회


10. 우리의 번영과 안전을 보장하는 외교안보

  • 더 크고 더 좋은 나라 통일 대한민국
  • 북한의 비핵화와 외교지평의 확대
  • 힘을 통한 평화
  • 헌신과 희생에 대한 예우

상징

당명


  • 영어: Liberal Party of Korea

  • 중국어
    • 정체자(번체자): 自由黨
    • 간체자: 自由党
    • 표준중국어 발음
      • 한어병음: Zìyóudǎng
      • 한글 표기: 자유당
      • 한글 한자음: 자유당

  • 일본어
    • 신자체: 自由党
    • 구자체: 自由黨
    • 발음 표기
      • 가나 표기: じゆうとう
      • 로마자 표기: Jiyuto
      • 한글 표기: 지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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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

자유당 당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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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책임질 우리는 하나
자유와 정의 넘치는 희망한국 만드세
미래 위한 횃불 들고 함께 나아가자

(후렴)
민족의 꿈을 이루는 새희망 자유당
국민과 하나되어 사랑받는 자유당

헌신과 봉사의 열정 모아서
희망찬 미래 향하여 우리 두 손 잡았네
21세기 대한민국 함께 열어가요
다시 국민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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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국민 곁에 우리 함께 승리하자
새로운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가자

지금 국민 곁에 가슴속에 큰꿈을 향해
우리 함께 달려가 자유당과 손잡아

우리 곁에는 항상 자유당 뿐이야
거친 세상에 부딪혀 다 이겨내리라
절대 포기는 없어 국민의 행복을 위해
어떤 시련이 와도 다 모두 이겨낼거야

보다 나은 미래 우리 함께 만들어가
다시 하나되어 가자 자유당과 손잡아

다시 국민 곁에 우리 함께 승리하자
새로운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가자

지금 국민 곁에 가슴속에 큰꿈을 향해
우리 함께 달려가 자유당과 손잡아

(2절)
우리 곁에는 항상 자유당 뿐이야
거친 세상에 부딪혀 다 이겨내리라
절대 포기는 없어 국민의 행복을 위해
어떤 시련이 와도 다 모두 이겨낼거야

보다 나은 미래 우리 함께 만들어가
다시 하나되어 가자 자유당과 손잡아

다시 국민 곁에 우리 함께 승리하자
새로운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가자

지금 국민 곁에 가슴속에 큰꿈을 향해
우리 함께 달려가 자유당과 손잡아

우리 함께 달려가 자유당과 손잡아

자유당의 당가는 1997년에 제정되었으며, 민주노동당 당가 같이 너무 운동권 느낌이 크지 않는 데다가, 민주통합당과 국민의당 같이 지나치게 가볍지 않아 중장년층 지지자에게 호평을 받았다. 최근에는 일부 지지자 모임을 제외하면 거의 사용하지 않는 당가이지만 자유당의 역사를 통틀어 회자되고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한편 2012년 새누리당으로 개칭하면서 내놓은 당가는 곡조가 너무 동요같다는 이유로 세대를 불문하고 혹평을 받았으며, 2017년 자유당으로 환원된 이후 내놓은 '필승 자유당'과 2020년 공개된 '승리를 위한 행진'은 당가는 아니지만 준당가 내지는 응원가로 주로 사용된다.

2021년 4월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해 유승민, 태영호 등 오세훈 캠프 소속 정치인들과 청년들이 부른 '지금 다시 하나되어'가 공개되었다. 당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국민곡인 '하나되어'가 발표된 지 22년 만에 공개하는 것으로, 당시 코로나19 상황이다보니 방역수칙을 준수하여 가창자들이 순차적으로 녹음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성악가 노희섭의 KOREA를 개사한 '다시 일어나 승리하리라'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전용 응원곡인 '다시 국민 곁에'가 선거 유세나 행사에 사용되는 등 준당가로 취급받고 있다.

계파

계파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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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유 비유
친유
김웅
김세연
오신환
유의동
친안
이태규
정점식
최연숙
지성호
친나
김근태
구자근
정희용
김선동
친오
서강석
김경호
권택기
강철원
무계파 · 소장파
최재형
김용태
김병민
윤상현
친홍
조경태
하영제
홍문표
홍문종
본 계파 구성은 민주당과의 야권 통합 직전공정당 출범 이후를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정당별 계파 (민주 · 자유 · 변화 · 사회 · 진보 · 통합 · 시민 · 공정)

윤석열 정부 후기 ~ 김현수 정부 초기 (야권통합 이전) 기준 자유당의 주요 계파는 다음과 같다.

  • 유승민 비상대책위원장 중심의 친유
  •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 중심의 친오
  • 안철수 전 의원 중심의 친안
  • 홍준표 전 대구광역시장 중심의 친홍
  • 나경원 전 대표 중심의 친나
  • 윤석열 전 대통령 중심의 친윤

지지 기반

다른 정당과의 관계

역사

역대 전당대회

창당대회(1997년) 제1차(1998년) 제2차(1998년) 제3차(2000년)
대선 경선(2002년) 제5차(2003년) 제6차(2004년) 제7차(2004년)
제8차(2006년) 대선 경선(2007년) 제10차(2008년) 제11차(2010년)
제12차(2011년) 제13차(2012년) 제14차(2012년) 대선 경선(2012년)
제16차(2014년) 제17차(2016년) 대선 경선(2017년) 제18차(2018년)
제19차(2021년) 대선 경선(2021년) 제21차(2023년) 제22차(2024년)
대선 경선(2026년)

역대 지도부

역대 선거

출신 대통령

산하 기관

여의도연구원

상임고문단

청년의힘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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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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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제로 변화당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자를 내지 못해 두 차례나 등록 취소를 당한 적이 있었으며, 이 때문에 정당으로 다시 등록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는 후대의 증언이 있다.
  2. 김영삼,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배출한 자유당과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삼김정치 청산을 내세운 것을 감안하면 가장 빨랐다고 할 수 있다.
  3. 변화당의 당 혁신 사업은 16대 대선 이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2020년대 이후에도 몇 번의 변동을 제외하면 여전히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4. 사실 변화당도 참여정부 초기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여왔으며, 대통령의 여당 지지 발언은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탄핵 반대를 적극적으로 외치면서 참여정부의 손을 들어줬었다. 그래서 탄핵 이슈 당시 민심의 다수가 열린우리당에 동정했지만 의외로 변화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많았으므로 탄핵 반대에 대한 동정 효과로 얻은 것에 가깝다. 만약 대통령 탄핵 이슈에 소극적이었거나 탄핵 소추에 찬성했었다면 무려 세 번째로 등록 취소 사태를 맞을 수 있었다는 최악의 상황이 될 수 있었기에 이 것만큼은 면했다.
  5. 구체적으로 민주화 운동 기념사업회법 등에서 정한 7가지 운동(2.28 학생민주의거, 3‧8 대전 민주의거, 3.15 의거, 4.19 혁명, 부마항쟁, 5.18 광주 민주화 운동, 6월 민주항쟁)을 적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