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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글씨 색|orange|1910년}}]]부터 새로운 전함의 무장을 고려하면서, 이 함급에 대한 설계 작업이 시작되었다. 다른 해군이 30.5cm (12인치) 이상의 포로 방향을 정했다는 것이 분명해졌고, 따라서 차기 독일 전함도 더 큰 함포를 운영해야 했다. [[독일 해군 무기부|{{글씨 색|orange|독일 해군 무기부}}]]는 32cm (13인치)의 포를 제안했지만, 1910년 [[5월 11일|{{글씨 색|orange|5월 11일}}]] 회의에서 [[알프레드 폰 티르피츠|{{글씨 색|orange|알프레드 폰 티르피츠}}]] 제독은 예산의 제약으로 더 큰 무기의 채택을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1911년|{{글씨 색|orange|이듬해}}]] [[제2차 모로코 위기|{{글씨 색|orange|제2차 모로코 위기}}]](아가디르 사태)의 여파로 티르피츠는 [[대영제국|{{글씨 색|orange|영국}}]]이 위기에 개입한 것에 대한 대중의 항의를 재빨리 받아들여 해군을 위한 추가 자금을 충당하로독 [[독일 제국의회|{{글씨 색|orange|독일 제국의회}}]](라이히스타그)에 압력을 가했다. 이것은 더 강력한 전함을 위한 개방을 제공하였고, 티르피츠는 1911년 중반 34cm (13.4인치) 포로 무장한 함선을 위한 기금을 요청했다. | |||
그 해 [[8월|{{글씨 색|orange|8월}}]] 설계 담당자는 35 cm (13.8인치), 38 cm (15인치), 40 cm (15.7인치) 포로 무장한 함선에 대한 연구를 준비하였다: 40cm 구경은 영국에 의해 제조될 수 없다고 잘못된 가정했기 때문에 당대 최대 구경이라고 여겨졌다. 다음 달 회의에서 선호되는 디자인은 5개의 포탑에 35cm 대포 10개 또는 4개의 포탑에 40cm 대포 8개로 무장한 배였다. 무기부는 목표물을 타격할 확률이 25% 더 높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35cm 함포를 지지했다. 티르피츠는 2연장 포탑과 3연장 포탑이 혼합된 포탑에 대해 문의했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글씨 색|orange|오스트리아-헝가리}}]] [[테게토프급 전함|{{글씨 색|orange|테게토프급 전함}}]]의 포탑을 조사한 결과, 3연장 포탑이 여전히 너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결함들 중에는 무게 증가, 탄약 공급 및 발사 속도 감소, 그리고 포탑 중 하나가 불능화되면 비교적 심각해진 전투력 상실 등이 있었다. | |||
설계 연구에 따르면 35cm 함포로 무장한 경우 약 2만9천 톤에 약 5970만 마르크를, 40cm 함포로 무장한 경우 약 6천만 마르크, 2만8250톤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두 계획안 모두 가격이 너무 비싼 것으로 판명되었다. 건조부는 38cm 함포 8문으로 무장한 2만8100톤 정도의 전함을 제안해 한 척 당 5750만 마르크로 비용을 줄였다. 이 설계는 [[9월 26일|{{글씨 색|orange|9월 26일}}]] 차세대 전함의 기준으로 채택되었고, 38cm 포의 채택 결정은 [[1912년|{{글씨 색|orange|1912년}}]] [[1월 6일|{{글씨 색|orange|1월 6일}}]]에 공식적으로 내려졌다. 1912년까지 설계에 대한 작업은 계속되었으며, 이전 '''쾨니히급 전함'''에서 채택된 장갑 배치의 추가 개발을 포함하였다. 원래 이 함선들은 8.8cm (3.5인치) [[대공포|{{글씨 색|orange|대공포}}]] 8문으로 무장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실제로 탑재되어 건조되지는 못했다. 계획되어 건조되는 동안 [[디젤 엔진|{{글씨 색|orange|디젤 엔진}}]]의 개발이 문제를 겪고 있었기 때문에, 설계 담당자는 전통적인 [[증기 터빈|{{글씨 색|orange|증기 터빈}}]]을 도입했지만, [[SMS 작센|{{글씨 색|orange|3번째 함}}]]이 건조 준비를 마쳤을 때 신뢰할 수 있는 디젤 엔진을 장비할 수 있길 희망했다. | |||
[[1912년|{{글씨 색|orange|1912년}}]]에 통과된 [[해군법|{{글씨 색|orange|제4차 해군법}}]]에 따라 선박에 대한 자금이 배정되었다. '''제4해군법'''은 1912년 해군 대열에서 3척의 새로운 드레드노트급 전함과 2척의 경순양함 그리고 15,000명의 추가 장교와 사병 확보를 위한 기금을 배정받았다. 1912년에 건조된 기함은 [[데어플링어급 순양전함|{{글씨 색|orange|데어플링어급 순양전함}}]]이었고, [[SMS 바이에른|{{글씨 색|orange|바이에른}}]]과 [[SMS 바덴|{{글씨 색|orange|바덴}}]]을 위한 자금후원은 다음 해에 할당되었다. [[SMS 작센|{{글씨 색|orange|작센}}]]에 대한 기금은 [[1914년|{{글씨 색|orange|1914년}}]] 예산에서 배정되었고, [[SMS 뷔르템베르크|{{글씨 색|orange|뷔르템베르크}}]]에는 [[1915년|{{글씨 색|orange|1915년}}]] 예산에서 지원되었다. '''바덴'''은 마지막으로 남은 [[브란덴부르크급 전함|{{글씨 색|orange|브란덴부르크급 전함}}]]인 SMS 뵈르트를 대체했고, '''뷔르템베르크'''과 '''작센'''은 각각 카이저 빌헬름 2세 함과 카이저 프리드리히 3세 함을 대체했다. '''바이에른'''은 예비 함대로 배정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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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margin-left:14px;"><span class="mw-collapsible mw-collapsed" id="mw-customcollapsible-BKSS10"><span class="mw-customtoggle-BKSS10" style="color:#FFF;">{{글씨 색|lightgray|ᐳ}}</span>{{여백|0.2em}}[[지크프리트급 전함#목차|{{글씨 색|#827763|4}}]] <span class="mw-customtoggle-BKSS10" style="color:#FFF;">{{글씨 색|lightgray|'''둘러보기'''}}</span></span><span class="mw-collapsible" id="mw-customcollapsible-BKSS10"><span class="mw-customtoggle-BKSS10" style="color:#FFF;">{{글씨 색|lightgray|ᐯ}}</span>{{여백|0.2em}}[[지크프리트급 전함#목차|{{글씨 색|orange|4}}]] <span class="mw-customtoggle-BKSS10" style="color:#FFF;">'''둘러보기'''</span></span></sp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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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26일 (월) 20:47 판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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ᐳ 1 개요ᐯ 1 개요
ᐳ 2 동형함 목록ᐯ 2 동형함 목록
SMS 지크프리트 | SMS 오딘 | SMS 에기르 | SMS 토르 | SMS 뇨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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ᐳ 3 설계ᐯ 3 설계
1910년부터 새로운 전함의 무장을 고려하면서, 이 함급에 대한 설계 작업이 시작되었다. 다른 해군이 30.5cm (12인치) 이상의 포로 방향을 정했다는 것이 분명해졌고, 따라서 차기 독일 전함도 더 큰 함포를 운영해야 했다. 독일 해군 무기부는 32cm (13인치)의 포를 제안했지만, 1910년 5월 11일 회의에서 알프레드 폰 티르피츠 제독은 예산의 제약으로 더 큰 무기의 채택을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이듬해 제2차 모로코 위기(아가디르 사태)의 여파로 티르피츠는 영국이 위기에 개입한 것에 대한 대중의 항의를 재빨리 받아들여 해군을 위한 추가 자금을 충당하로독 독일 제국의회(라이히스타그)에 압력을 가했다. 이것은 더 강력한 전함을 위한 개방을 제공하였고, 티르피츠는 1911년 중반 34cm (13.4인치) 포로 무장한 함선을 위한 기금을 요청했다.
그 해 8월 설계 담당자는 35 cm (13.8인치), 38 cm (15인치), 40 cm (15.7인치) 포로 무장한 함선에 대한 연구를 준비하였다: 40cm 구경은 영국에 의해 제조될 수 없다고 잘못된 가정했기 때문에 당대 최대 구경이라고 여겨졌다. 다음 달 회의에서 선호되는 디자인은 5개의 포탑에 35cm 대포 10개 또는 4개의 포탑에 40cm 대포 8개로 무장한 배였다. 무기부는 목표물을 타격할 확률이 25% 더 높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35cm 함포를 지지했다. 티르피츠는 2연장 포탑과 3연장 포탑이 혼합된 포탑에 대해 문의했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 테게토프급 전함의 포탑을 조사한 결과, 3연장 포탑이 여전히 너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결함들 중에는 무게 증가, 탄약 공급 및 발사 속도 감소, 그리고 포탑 중 하나가 불능화되면 비교적 심각해진 전투력 상실 등이 있었다.
설계 연구에 따르면 35cm 함포로 무장한 경우 약 2만9천 톤에 약 5970만 마르크를, 40cm 함포로 무장한 경우 약 6천만 마르크, 2만8250톤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두 계획안 모두 가격이 너무 비싼 것으로 판명되었다. 건조부는 38cm 함포 8문으로 무장한 2만8100톤 정도의 전함을 제안해 한 척 당 5750만 마르크로 비용을 줄였다. 이 설계는 9월 26일 차세대 전함의 기준으로 채택되었고, 38cm 포의 채택 결정은 1912년 1월 6일에 공식적으로 내려졌다. 1912년까지 설계에 대한 작업은 계속되었으며, 이전 쾨니히급 전함에서 채택된 장갑 배치의 추가 개발을 포함하였다. 원래 이 함선들은 8.8cm (3.5인치) 대공포 8문으로 무장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실제로 탑재되어 건조되지는 못했다. 계획되어 건조되는 동안 디젤 엔진의 개발이 문제를 겪고 있었기 때문에, 설계 담당자는 전통적인 증기 터빈을 도입했지만, 3번째 함이 건조 준비를 마쳤을 때 신뢰할 수 있는 디젤 엔진을 장비할 수 있길 희망했다.
1912년에 통과된 제4차 해군법에 따라 선박에 대한 자금이 배정되었다. 제4해군법은 1912년 해군 대열에서 3척의 새로운 드레드노트급 전함과 2척의 경순양함 그리고 15,000명의 추가 장교와 사병 확보를 위한 기금을 배정받았다. 1912년에 건조된 기함은 데어플링어급 순양전함이었고, 바이에른과 바덴을 위한 자금후원은 다음 해에 할당되었다. 작센에 대한 기금은 1914년 예산에서 배정되었고, 뷔르템베르크에는 1915년 예산에서 지원되었다. 바덴은 마지막으로 남은 브란덴부르크급 전함인 SMS 뵈르트를 대체했고, 뷔르템베르크과 작센은 각각 카이저 빌헬름 2세 함과 카이저 프리드리히 3세 함을 대체했다. 바이에른은 예비 함대로 배정되었다.
ᐳ 4 둘러보기ᐯ 4 둘러보기
제1차 세계 대전의 독일 해군 군함 (1939~19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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