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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국호는 '''코친차이나 왕국'''(交趾王國)으로 역본 및 내각령에 따라 정식 영문 명칭은 'Kingdom of Cochinchina'이다. '코친차이나'라는 명칭은 1516년, [[말라카]]를 항해하던 [[포르투갈]] 상인들이 베트남 [[다낭]]에 상륙해서 사용한 것이 시작인데, '코친'(Cochin)은 [[베트남]]을 가리키던 [[말레이어]], '쿠치'(Kuchi)에서 차용되었고, 인도 [[말라바르 해안]]에 위치했던 [[코친 왕국]]과 구별하기 위해 '차이나'(China)라는 단어를 추가했다. 그 후 서구에서는 [[쩐 주]]를 통킹(Tonkin), [[응우옌 주]]와 인도차이나 남부를 코친차이나(Cochinchina)로 구분해 표기했으며 [[응우옌 왕조]]가 성립된 이후에는 지금의 [[메콩강 삼각주]]를 포함한 인도차이나 반도 남부만을 일컫는 말로 의미가 축소되었다. | 공식 국호는 '''코친차이나 왕국'''(交趾王國)으로 역본 및 내각령에 따라 정식 영문 명칭은 'Kingdom of Cochinchina'이다. '코친차이나'라는 명칭은 1516년, [[말라카]]를 항해하던 [[포르투갈]] 상인들이 베트남 [[다낭]]에 상륙해서 사용한 것이 시작인데, '코친'(Cochin)은 [[베트남]]을 가리키던 [[말레이어]], '쿠치'(Kuchi)에서 차용되었고, 인도 [[말라바르 해안]]에 위치했던 [[코친 왕국]]과 구별하기 위해 '차이나'(China)라는 단어를 추가했다. 그 후 서구에서는 [[쩐 주]]를 통킹(Tonkin), [[응우옌 주]]와 인도차이나 남부를 코친차이나(Cochinchina)로 구분해 표기했으며 [[응우옌 왕조]]가 성립된 이후에는 지금의 [[메콩강 삼각주]]를 포함한 인도차이나 반도 남부만을 일컫는 말로 의미가 축소되었다. | ||
베트남에서는 과거 [[응우옌 왕조]] 시절 [[코친차이나의 군주|코친차이나 왕]]에게 하사한 작호, '남기국왕'(南圻國王)에서 유래한 호칭인 '남끼'(Nam Kỳ) | 베트남에서는 과거 [[응우옌 왕조]] 시절 [[코친차이나의 군주|코친차이나 왕]]에게 하사한 작호, '남기국왕'(南圻國王)에서 유래한 호칭인 '남끼'(Nam Kỳ)라고 부르기도 하나 일반적으로는 '자오찌'(Giao Chỉ)로 칭한다. 국내에서는 [[광둥어]]로 '가우지'(交趾, Gaau1 zi2)라 축약해서 부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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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24일 (일) 18:5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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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Kingdom of Cochinchina 광둥어: Gaau1 Zi2 Wong4 Gwok3 베트남어: Vương quốc Giao Chỉ 프랑스어: Royaume de Cochinchine 크메르어: ព្រះរាជាណាចក្រនៃកូសាំងស៊ីន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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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친차이나 왕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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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in Sing City Skyline (night).jp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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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친차이나 전경[1] |
코친차이나 왕국(광둥어: 交趾王國 가우지웡궉, 베트남어: Vương quốc Giao Chỉ 브엉꾸옥자오찌)은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나라로 약칭은 코친차이나(광둥어: 交趾 가우지, 베트남어: Giao Chỉ 자오찌)다. 국토 면적은 총 72,123 km2로 인도차이나 반도 남부가 해당되며, 북쪽엔 캄보디아, 동쪽으로는 베트남과 국경을 접하며 서쪽과 남쪽은 타이 만과 맞닿고 있다. 인구는 680만 명으로 인도차이나 반도 내에서 가장 적다. 수도는 반싱(濱城), 최대도시는 룽힝(隆慶)이다.
과거에는 프놈, 첸라, 캄부자 등 크메르족이 지배하던 지역이었으나 17세기 초, 후 레 왕조의 중신이자 광둥성 출신 화교였던 야우사이딕(游世迪 유세적)[2]이 응우옌 주와 찐 주의 대립을 피해 화인들을 이끌고 반싱에 정착한 것이 시작이다. 이후 캄보디아와 혼인 동맹을 맺으며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고 18세기 중반에는 메콩강 하류 전역까지 차지해 오늘날의 국토를 이루었다.
19세기 중반에는 동남아시아에 진출하려는 프랑스와 충돌했고, 1887년에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편입되면서 식민지가 되었다. 코친차이나는 프랑스의 식민 지배 기간 동안 계속하여 독립 운동을 벌였고,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일본 제국에 지배를 받기도 했다. 종전 후에는 프랑스 연합으로 복귀했으나 점진적으로 주권 회복에 나섰고 1953년 10월에 완전 독립을 이루어냈다. 그후 친미 외교 정책을 펼치며 1956년엔 동남아시아 조약기구(SEATO)에 가맹했다. 정권을 이끌던 레이보우궝(利保光 이보광)은 토지 개혁을 추진해 자영농을 육성하는 한편, 미국에게 북베트남 폭격을 위한 군사기지를 제공하고 경제적 원조를 받았다.
오늘날에 코친차이나는 메콩강 삼각주에서 나오는 풍부한 농산자원과 1960년대부터 추진한 공업화를 통해 인도차이나 반도 내에선 경제 선도국으로서의 지위를 과시하고 있다. 1988년부터는 과이치 섬을 역외금융센터이자 자유무역지대로 지정해 해외 투자를 장려하고 관광업을 활성화하는 등 경제 구조의 다각화를 꾀하면서 꾸준한 경제 성장율을 유지하고 있다. 허나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특히 총리직을 세습하고 있는 레이보우궝 일가가 경제적 부를 독점하고 있어[3] 소득 재분배가 이루어지고 않고 있고, 이에 불만을 가진 시민들을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는 등 정치적 혼란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가 상징
국호
공식 국호는 코친차이나 왕국(交趾王國)으로 역본 및 내각령에 따라 정식 영문 명칭은 'Kingdom of Cochinchina'이다. '코친차이나'라는 명칭은 1516년, 말라카를 항해하던 포르투갈 상인들이 베트남 다낭에 상륙해서 사용한 것이 시작인데, '코친'(Cochin)은 베트남을 가리키던 말레이어, '쿠치'(Kuchi)에서 차용되었고, 인도 말라바르 해안에 위치했던 코친 왕국과 구별하기 위해 '차이나'(China)라는 단어를 추가했다. 그 후 서구에서는 쩐 주를 통킹(Tonkin), 응우옌 주와 인도차이나 남부를 코친차이나(Cochinchina)로 구분해 표기했으며 응우옌 왕조가 성립된 이후에는 지금의 메콩강 삼각주를 포함한 인도차이나 반도 남부만을 일컫는 말로 의미가 축소되었다.
베트남에서는 과거 응우옌 왕조 시절 코친차이나 왕에게 하사한 작호, '남기국왕'(南圻國王)에서 유래한 호칭인 '남끼'(Nam Kỳ)라고 부르기도 하나 일반적으로는 '자오찌'(Giao Chỉ)로 칭한다. 국내에서는 광둥어로 '가우지'(交趾, Gaau1 zi2)라 축약해서 부른다.
각주
- ↑ 위에서부터 코친차이나의 수도인 반싱의 야경, 반싱 노트르담 대성당, 룽힝에 위치한 문묘 사원이다.
- ↑ 베트남어로는 주테딕(Du Thế Địch) 혹은 호를 따서 띠엔다이(仙旲, Tiên Đài)라 부른다.
- ↑ 대표적으로 레이가이닥의 장남인 레이사우찬은 재정부 대신과 국부 펀드인 코친차이나 투자공사 사장을 겸임하고 있으며, 차녀인 레이귄자우는 국내 최대 기업 중 하나인 프레이 노코르 그룹(PNC)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