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요약 없음 |
편집 요약 없음 |
||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3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 |||
8번째 줄: | 8번째 줄: | ||
! colspan="2" style="width:450px; color:#ca9b0a; background:#1b0e64;" | 대한제국 제 22,23, 24대 내각총리대신<br>대한제국 제국호국경 겸 구국자<br>{{large|김창암}}<br>金昌巖 <nowiki>|</nowiki> Kim Changam | ! colspan="2" style="width:450px; color:#ca9b0a; background:#1b0e64;" | 대한제국 제 22,23, 24대 내각총리대신<br>대한제국 제국호국경 겸 구국자<br>{{large|김창암}}<br>金昌巖 <nowiki>|</nowiki> Kim Changam | ||
|- | |- | ||
! colspan="2" | <div style="margin: -5.0px -9.0px">[[파일: | ! colspan="2" | <div style="margin: -5.0px -9.0px">[[파일:대호국경대신 김구.png|450px]]</div> | ||
|- | |- | ||
! rowspan="2" width=25% style="color:#ca9b0a; background:#1b0e64;" | 출생 | ! rowspan="2" width=25% style="color:#ca9b0a; background:#1b0e64;" | 출생 | ||
73번째 줄: | 73번째 줄: | ||
[[대한제국 (아침해의 원유관)|대한제국]]의 정치인, 군인, 호국경, 독재자 겸 사상가. | [[대한제국 (아침해의 원유관)|대한제국]]의 정치인, 군인, 호국경, 독재자 겸 사상가. | ||
아돌프 히틀러, 도조 히데키, 베니토 무솔리니와 함께 추축국 대표하는 인물이자, | 아돌프 히틀러, 도조 히데키, 베니토 무솔리니와 함께 추축국 대표하는 인물이자, 그의 호를 따라 한국에서 ''''하얀 호랑이''''로 불리기도 했던 인물이다. | ||
1931년부터 1944년까지 총 13년동안 한국의 정권을 잡고 있었으며, 첫 임기와 두번째 임기가 끝난 이후엔 아예 총리직을 폐직하고 새로운 직책을 만들어 전시체제를 명분으로 그 자리에 앉았다. 짧게나마, 죽기 전까지 1년 간 일본 제국이 지원했던 대한 공화국 정부의 대막리지 또한 겸임했었고, 이후 파고다 공원에서 총살됬다. | 1931년부터 1944년까지 총 13년동안 한국의 정권을 잡고 있었으며, 첫 임기와 두번째 임기가 끝난 이후엔 아예 총리직을 폐직하고 새로운 직책을 만들어 전시체제를 명분으로 그 자리에 앉았다. 짧게나마, 죽기 전까지 1년 간 일본 제국이 지원했던 대한 공화국 정부의 대막리지 또한 겸임했었고, 이후 파고다 공원에서 총살됬다. | ||
91번째 줄: | 91번째 줄: | ||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김창암은 나라를 위해 이 전쟁에 참전할 것에 동조하며 교사직을 사퇴한 뒤, 군인이 되었다. 얼마 뒤 그는 육군 보병으로서 독일령 칭다오에 파견되었고, 이곳에서 상등병까지 진급했다. 이후, 전쟁이 끝나자 전역하여 일상으로 복귀했고, 그의 이력에 군인으로서의 명성이 추가되었다. |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김창암은 나라를 위해 이 전쟁에 참전할 것에 동조하며 교사직을 사퇴한 뒤, 군인이 되었다. 얼마 뒤 그는 육군 보병으로서 독일령 칭다오에 파견되었고, 이곳에서 상등병까지 진급했다. 이후, 전쟁이 끝나자 전역하여 일상으로 복귀했고, 그의 이력에 군인으로서의 명성이 추가되었다. | ||
그러나 | 이후 청도 재향군인회에서 꽤나 유명해지면서 그의 이름이 한국 사회에 점차 알려졌고, 1920년대에는 군인들과 청도동지회라는 모임을 창설하는 등 꽤나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나갔다. 당시 김창암은 전쟁에서의 경험담과 자신의 사상 등을 담은 책을 집필하거나 학술적인 탐구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고, 일이 잘 풀리면서부터는 국내에서 문학적으로도 꽤 명망이 높은 인물로 거듭났다. | ||
그러나 이 집필기간과 재향군인회와의 지속적인 모임을 가지면서 그의 사상에는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바로 파시스트적인 면모였다. 어느 순간 그는 자신이 읽은 서적에 담겨있던 내용들을 합쳐서 나름대로 독창적인 사고를 개창하였는데, 금관작전 시행 당시에 황족들이 구출되자 왕도정치의 모범을 대한이 보인 순간이라고 주장하는 등, 국수주의적인 성향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고, 이후 이 성향을 다른 방향으로 뻗쳐나가게 된다. | |||
== 입당, 그리고 쿠데타 == | == 입당, 그리고 쿠데타 == | ||
123번째 줄: | 125번째 줄: | ||
<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1);"> | <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1);"> | ||
= 기타 = | = 기타 = | ||
전 세계에서 재임한 추축국의 지도자들 중 가장 연장자였다. | |||
평상시 군복 정장이나 백색 두루마기를 주로 입고 다닌 바람에, 제 2차 동아시아 전쟁 당시 대한제국과 전면전을 벌였던 소련군이 만든 한국인의 이미지가 '''안경을 쓰고 흰 도포와 군모를 착용한 파시스트'''로 각인되는데 영향을 줬다. 이는 미국에도 어느정도 영향을 줘서, 당시에 나온 선전만화들을 보면 비슷한 한국인 캐릭터 묘사들을 볼 수 있다. | |||
</div> | </div> | ||
<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1);"> | <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1);"> |
2024년 4월 25일 (목) 02:37 판
[ 국가 목록 ]
[ 소개 ]
|
대한국 역대 내각총리대신 | ||||||||||||||||||||||||||||||||||||||||||||||||||||||||||||||||||||||||||||||||||||||||||||||||||||||||||||||||||||
[ 펼치기 · 접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