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의 노이기니아 왕국 Deutsches Königreich Neuguine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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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기니아 왕국 | |||||||||||||||||||||||||||||||||||||||||||||||||||||||||||||
Königreich Neuguine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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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노이기니아 왕국(독일어: Neuguinea Königreich Deutcher) 혹은 노이기니아 왕국(독일어: Neguinea Königreich)는 오세아니아와 태평양에 위치한 프로이센식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며, 북쪽으로 대한국의 필리핀과 미합중국령 괌·북마리아나 제도가 위치하여, 서쪽으로는 대한제국, 극동화국의 식민지들이, 남쪽으로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위치한다. 국토는 흔히 '카이저빌헬름슬란트'라 불리는 노이기니아섬과 태평양의 여러 군도들을 포함한다. 전체 면적은 1,016,116km2이며, 국토 대부분이 밀림이다. 인구는 12,195,300명이며, 대부분이 수도인 헤르베르트쇠헤주와 비스마르크주, 노이기니아섬 동부에 밀집해있다. 독일의 오랜 통치기간 동안 원주민들은 독일인에게 동화되어 남방독일계 노이기니아인이 되었으며, 이는 전체 민족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독일계 노이기니아인과 남방독일계 노이기니아인을 제외하고는 4.8%만이 동화되지 않은 원주민에 해당한다. 동화되지 않은 원주민들은 대부분 노이기니아섬 중서부 밀림 혹은 산지에서 원주민 생활을 계속하고 있으며, 때때로 국토 개발부분에서 이들과 마찰을 맺기도 한다.
노이기니아섬은 1526년, 탐험가 메네세스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되었으며 '파푸아'라 이름 붙인다. 1545년 탐험가 레테즈는 북쪽 해안선을 따라 항해한뒤 6월 20일 상륙하면서 '뉴기니'라는 이름을 붙인다. 1884년, 독일 노이기니아 회사의 설립과 동시에 독일령 노이기니아가 수립된다. 1900년부터 태평양의 여러 군도 제도들이 독일령 노이기니아에 통합되었으며, 1910년, 빌헬름 2세의 아들인 요아힘을 국왕으로하는 노이기니아 왕국 건국되면서 독일령 사모아 또한 통합된다. 프란츠 2세를 거쳐 현재 국왕이자 3대 국왕인 빌헬름1세가 즉위하면서 독립하게 된다. 프란츠 2세까지만 해도 왕국은 사실상 총독이 다스렸으며, 국왕은 독일 본토에서 생활하며 왕국을 대표할 뿐이였다. 그러나 빌헬름 1세는 헤르베르트쇠헤주에 호엔촐레른-헤르베르트쇠헤 성을 건설하고 생활하기 시작한다.
군주가 다스리는 입헌군주제 국가로 현재 군주는 빌헬름 2세으로 2025년 9월 22일 즉위하였다. 프로이센식 입헌군주제이기 때문에 군주에게 모든 행정권이 귀속된다. 뿐만 아니라 군사권과 외교권 등 여러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수상은 오토 프리드리히 레오폴트 폰 자모아로 2018년 6월 11일 임명되었다.
노이기니아 왕국의회가 입법기관이며, 양원제로 노이기니아 왕국 국민의회와 노이기니아 왕국 융커의회로 나뉜다. 총 747석이며, 하원 547석, 상원 200석으로 구성되어있다. 총선은 하원만 4년마다 치뤄지며, 소선구제로 의석이 채워진다. 상원의 경우 선거가 치뤄지지 않는 세속적 의회이며, 10년에 한번 새로 열린다. 여당은 노이기니아 국왕당이며, 주요 야당으로는 사회민주당, 협상당, 보수당, 충성당이 있다. 금지 정당으로는 보통 군주제 반대 이념과 단일 국가 반대 성향의 정당이며, 공산당, 연방당, 부족당 등이 주요 금지 정당이다.
명목상 전체 GDP는 478억 2996만$이며, 구매력 평가 전체 GDP는 441억 9576만$이다. 공식화폐는 노이기니아 마르크이며, 1$당 약 3.407M이다. 실업률은 2.5%로 꽤나 낮은 편이다. 국가번호는 598, 국가코드는 095, NG, KNG가 있다. 시간대는 UTC-AEST에 속하며 +10~+13를 사용한다.
역사
노이기니아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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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이전
약 6만년 전, 노이기니아섬에 인류가 정착한다. 그들은 해수면이 현재보다 낮아 섬들과 섬들 사이의 거리가 크지 않을때 바다를 통해 도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등 고대 문명에서 농경이 행해지고 있을 무렵 노이기니아 섬에서는 신석기 농경이 시작되었다고 추정된다. 고구마류를 이용한 농경이 고원지대에서 발달하여 자체적인 작물화에 성공하였다. 오스트로네시아계 민족들이 들어와 고구마나 돼지 등 현재에도 주식으로 삼기 이전에는 해산물 등을 주식으로 삼았다. 원주민들은 유럽인이 노이기니아섬을 발견했을때, 뼈, 나무, 석기 등을 이용한 독자적인 농업 생산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해안가의 도자기, 조개장식, 식품류를 통해 내륙과 교류를 이루었다.
1526년에서 1527년, 포르투갈의 탐험가인 호르헤 드 메네제스가 멜라네시아계 원주민들의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보고 곱슬머리라는 뜻의 말레이어 '파푸아'에서 따와 이름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1545년, 카스티야의 선원인 이니고 오르티스 데 레테스는 원주민들의 모습이 마치 아프리카의 기니만 인근의 아프리카인과 닮았다고 생각하여 섬에 '뉴기니'라는 이름을 붙인다. 유럽인 탐험가들은 이후 계속해서 노이기니아섬에 대해 탐험을 계속했지만 16세기 대항해시대를 통해 발견된 이후 19세기 신식민지시대가 되기 전까지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독일령 노이기니아
오토 핀슈는 1879년부터 1882년에 걸쳐 태평양 원정을 갔다온다. 독일로 돌아온 오토 핀슈는 은행가 아돌프 폰 한세만이 대표로 있던 식민지 확장 관련 소규모 단체에 가입한다. 식민지 확장에 관심이 있던 단체에 가입한 오토 핀슈는 본인이 다녀온 태평양 원정에서 본 현 비스마르크 제도와 노이기니아섬에 식민지를 건설할 것을 권하였다.
1884년 11월 3일, 오토 핀슈와 아돌프 폰 한세만의 금전적인 지원하에 비스마르크 제도, 노이기니아섬, 솔로몬 제도에 독일 제국의 식민지가 설립된다. 그와 함께 아돌프 폰 한세만은 새 식민지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며 금전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회사를 설립하는데, 이것이 독일 노이기니아 회사이다. 독일령 노이기니아는 명목상 독일 황제의 국가이며 독일 황제가 임명한 총독에 의해 운영되나, 사실상 식민지 설립에 큰 공이 있는 독일 노이기니아 회사가 운영했다. 그러나 1899년이 되면서 독일 제국 정부는 이 지역을 직접 통치하기 시작했다.
1880년대 중반, 독일 교회 당국은 노이기니아에 대한 선교를 개시한다. 프리드리히 파브리를 중심으로 선교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선교자들은 기후로 인한 질병 등에 노출되기도 하며, 식민지 정부와 원주민들과의 전쟁으로 인해 선교는 어려움에 직면했다. 선교자들과 원주민들은 전통에 관한 문제로 큰 갈등을 빚었으며, 이로 인해 선교는 거의 중단되기 시피한다.이후 선교는 어떠한 진전도 없이 수십년이 지난 1910년, 노이기니아 왕국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노이기니아 정부의 선교자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과 원주민에 대한 강압적인 탄압으로 인해 대부분의 원주민들이 기독교를 믿게 된다.
독일 황제와 독일 국왕의 노이기니아
1910년 12월 17일, 빌헬름 2세는 막내 아들인 요아힘 폰 프로이센 왕자에게 노이기니아의 독일 국왕의 작위를 하사한다. 독일령 노이기니아는 "독일 황제와 독일 국왕의 노이기니아"라는 이름으로 독일 제국의 가맹국이 되었다. 그러나 프란츠 1세는 명목상의 노이기니아의 독일 국왕으로, 독일 제국 본토에서 생활하며 사실상 수상이 노이기니아를 다스렸다.
1914년 3월 8일, 카이저빌헬름란트주의 빌헬름산 부근의 한 개척자 캠프를 원주민 부족이 공격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개척자 캠프는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50여명의 독일인이 실종되었다. 라헤 내각의 구스타프 루트비히 폰 라헤 수상은 현 노이안할트주에 대한 공격적인 개척을 지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군대 또한 동원되어 원주민들은 동화되거나 서쪽으로 도망쳐야했다. 하지만 정부군 측의 피해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갔으며, 1919년 새로운 내각이 탄생하면서 개척은 온건적으로 바뀌어갔다. 이로 인해 현재 노이안할트주의 서부지역에는 원주민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1928년 미합중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유럽을 거쳐 아시아와 남태평양까지 다다랐다. 보수당의 카타리네 내각은 보수적인 대처로 인해 민심을 잃어 1929년에 슈베린 에르하르트 폰 카타리네는 수상직을 사퇴하였다. 슈베린 에르하르트 폰 카타리네의 차기 수상으로 사회민주당의 오스발트 카를 펜들러가 선출되었다. 최초의 사회민주당 수상이자 내각으로 케인스의 개혁을 따라 국가적인 공공사업을 진행하였다. 현재의 주요 철도와 고속도로가 이때 건설되었다. 또한 킴베, 델타부르크, 노이단치히 등 현재의 여러 대도시들이 건설되었다. 펜들러 내각의 개혁의 성공으로 인해 사회민주당에 대한 지지도가 증가한다. 이로 인해 차기 내각 또한 사회민주당의 하인츠 쾰러가 수상의 직을 가지게 된다.
독일인의 노이기니아 왕국
1975년 1월 23일, 프란츠 2세가 페루의 리마에서 사망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왕위는 프란츠 2세의 장남인 빌헬름 1세에게 향한다. 1월 24일, 갑작스럽게 독일 제국 본국은 노이기니아의 독립을 선포한다. 이로 인해 큰 혼란에 빠진다. 빌헬름 1세는 1월 28일에 선거의 실시를 명령한다. 단 4일의 기간만 주어진 선거를 위해 독립 이전 존재했던 정당들의 노이기니아 지부가 독립적인 정당으로써 선거에 참가한다. 1975년 선거에서 노이기니아 사회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였으나, 30%를 고작 넘긴 수준이였다. 제1대 국민의회가 2월 3일 개회하였으며, 같은 날, 각 지역의 융커들로 구성된 제1회 융커의회도 개회하였다.
1975년 2월 4일, 제1대 국민의회가 개회하고 하루 뒤 빌헬름 1세는 에른스트 폰 노이안할트를 수상으로 임명함으로써 노이안할트 내각이 조각된다.
지리
노이기니아는 노이기니아섬을 본토로 미크로네시아에 위치한 카롤리넨 제도와 멜라네시아에 위치한 비스마르크 제도, 살로모넨 제도, 폴리네시아에 위치한 나우루섬과 자모아 제도를 영토를 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북쪽에 위치한 노이기니아의 지리는 매우 험준하다. 노이기니아섬의 중심과 북쪽에는 산악지역이 펼쳐져 있으며, 이로 인해 섬의 평균 해발고도가 4000미터 이상이다. 적도가 근처에 위치해 전 국토가 열대 우림에 뒤덮혀있다. 노이기니아 고원으로 불리는 중부에는 해발 4884미터의 카이저 산과 해발 4509미터의 빌헬름 산이 위치한다. 영토가 불의 고리에 완벽히 일치하며, 이로 인해 화산 분화나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 헤르베르트쇠헤주의 짐프손하펜구 또한 두개의 화산에 의해 피해를 받았고, 테피치부르크구와 같은 중심지에도 피해가 발생하였다.
영토의 대부분은 열대우림 기후에 해당하나, 해발 1000미터 이상의 고산지대는 고산 기후에 속한다. 북부 지역은 연 평균 3000mm의 강수량을, 남부 지역은 연 평균 1000~2000mm의 강수량을 가진다.
정치
노이기니아의 정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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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
노이기니아 국왕 폐하 |
왕국정부 |
행정 구역 |
선거 |
노이기니아는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국가로, 노이기니아의 헌법에 의해 군주는 국가의 모든 행정권과 군권 등을 가지는 프로이센식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수상은 군주에 의해 임명되며, 내각은 군주에 의해 임명된 수상이 조각한다. "노이기니아의 국민권을 가진 모든 노이기니아 국민"은 4년 마다 치뤄지는 왕국의회의 하원에 해당하는 국민의회의 의원을 투표할 수 있다.
노이기니아 왕실
노이기니아 왕실 |
호엔촐레른-노이기니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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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기니아 왕가는 군주와 그 일가를 일컫는 말이다. 1910년, 독일 제국의 빌헬름 2세의 요아힘 왕자를 국왕으로 하는 노이기니아 왕국이 성립된다. 프란츠 1세와 프란츠 2세는 독일 본토와 먼 남태평양의 어느 섬나라에 대해 관심이 없었고, 사실상 수상이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1975년, 빌헬름 1세가 즉위하면서 노이기니아는 완벽하게 독립하였으며, 빌헬름 1세는 노이기니아의 군주의 직위의 포기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독일 본토와 먼 남태평양의 어느 섬나라를 빌헬름 1세는 통치하기로 결정하였고, 새로운 독립국의 정치체제는 계속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가 되었다.
노이기니아의 헌법의 3장은 군주의 권한을 서술한다. 헌법에 따라 노이기니아의 군주는 모든 행정권이 귀속되며, 군권과 장교임명권, 외교권, 의회의 개회와 폐회의 권한, 훈장 수여의 권한을 가진다. 또한 왕립군과 근위대는 암묵적, 공개적으로 군주의 명령에 복종해야한다.
노이기니아 왕가의 성씨의 정식 명칭은 폰 호엔촐레른-노이기니아로, 호엔촐레른가에 속해 있다. 1975년 독립 당시 호엔촐레른헤힝겐가에서 분가하여 호엔촐레른노이기니아가로 가문의 이름을 바꾸는 안이 국민의회까지 통과하였으나, 융커의회에서 이를 부결시킴으로써 노이기니아 왕가는 계속 호엔촐레른헤힝겐가에 속하게 된다.
왕국정부
왕국정부는 노이기니아의 중앙 정부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로 역할에 따라 나뉘어 진다. 왕국수상을 정부수반으로 하여 왕국내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1975년 독립과 함께 전신인 국가정부를 전신으로 설립되었다.
왕국수상
왕국수상은 왕국정부의 정부수반이자, 행정부를 대표한다. 군주에 의해 임명되며, 왕국내각을 조각할 수 있다. 수상의 임기는 확실히 정해져있지 않으며, 사임을 하거나 군주에 의해 해임될 경우 새로운 수상이 임명된다. 현 수상은 오토 프리드리히 레오폴트 폰 자모아로 제5대 왕국수상이다. 왕국수상의 전신은 국가수상으로 독립과 함께 왕국수상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왕국내각
왕국내각은 수상에 의해 조각된 왕국정부의 내각을 일컫는 말으로, 행정부의 주요 국가기관이다.
왕국의회
왕국의회는 노이기니아의 입법기관으로 양원제를 채택하여, 상원인 융커의회와 하원인 국민의회로 나뉜다.
국민의회
여당 | ||||
국왕당 174석 ( 31.81% ) | ||||
야당 | ||||
사회민주당 133석 ( 24.31% ) |
협상당 124석 ( 22.67 % ) |
보수당 74석 ( 13.53% ) |
충성당 42석 ( 7.68% ) |
왕국 국민의회는 왕국의회의 하원에 해당하는 입법 기관으로, 4년의 임기를 가진 547명의 국민의원으로 이루어진다. 소선거구제에 따라 국민의원은 4년마다 치뤄지는 노이기니아 왕국의회 선거로 선출된다.
융커의회
여당 | ||||
국왕당 71석 ( 35.5% ) | ||||
야당 | ||||
충성당 42석 ( 21% ) |
보수당 33석 ( 16.5% ) |
협상당 32석 ( 16% ) |
사회민주당 22석 ( 11% ) |
왕국 융커의회는 왕국의회의 상원에 해당하는 입법 기관으로,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으며 세습되는 200명의 귀족 출신 의원으로 이루어진다. 5년마다 새로운 의회가 열린다.
정당
노이기니아왕 Neugunieer König | |||||
빌헬름 1세 Wilhelm I |
프리드리히 3세 Friedrich III |
빌헬름 2세 Wilhelm I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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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기니아왕 Neugunieer König | |||||
프란츠 1세 Franz I |
프란츠 2세 Franz I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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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기니아의 왕 König von Neuguinea | |||||
빌헬름 1세 Wilhelm I |
빌헬름 2세 Wilhelm I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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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령 노이기니아 식민 정부 |
Prinz von Neuguine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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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세대 | ||
제2세대 | ||
제3세대 | ||
제4세대 | ||
굵은 글씨는 노이기니아 국왕으로 즉위했음을 의미 |
Königreichskanzl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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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국 국가수상 | |
노이기니아 왕국 국가수상 | |
노이기니아 왕국수상 | |
황제 폐하의 태평양 국가 독일 국가정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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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황제와 독일 국왕의 노이기니아 노이기니아 국가정부 | |
독일인의 노이기니아 왕국정부 | |
원내정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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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외정당 | |
금지정당 | |
사라진 정당 | |
행정 구역
노이기니아의 행정 구역은 주현군구로 이루어져있다.
경제
국방
노이기니아는 모병제 국가로 7만 7천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해양 국가이나, 경제력으로 인해 육군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왕립해군과 왕립공군은 2척의 구축함과 몇대의 헬기를 가지고 있는게 전부이며, 왕립육군 또한 대부분이 보병으로 이루어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