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기니아 내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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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노이기니아 노이기니아 근위대 노이프로이센군 서부친정부군 지원국 |
혁명 정부 혁명군 서부혁명군 공산주의자 의용군 지원국 파일:노르웨이연방공화국국기.png 노르웨이 파일:칠레인민공화국국기.png 칠레 | ||||||
지휘관 | |||||||
빌헬름 왕태자 델베르트 폰 노이야르스 에른스트 폰 노이프로이센 만프레트 올렌도르프 |
프리츠 폰 넨도 모리츠 바이에를라인 율리우스 디트리히 지크 오트 | ||||||
병력 | |||||||
132,000명 7,000명 24,000명 9,700명 총 합계: 172,700명 |
94,000명 37,000명 18,300명 총 합계: 149,300명 |
노이기니아 내전(영어: New Guinean Civil War, 독일어: Neuguineer Bürgerkrieg)은 2025년 11월 4일, 11·4 사건으로 발생한 노이기니아의 내전이다. 빌헬름 왕태자가 이끄는 왕국정부와 프리츠 폰 넨도와 모리츠 바이에를라인이 이끄는 혁명 정부 간의 벌어지고 있는 내전이다.
노이기니아 혁명 정부는 "부패한 호엔촐레른 왕실로부터 노이기니아를 구원하고 민주 공화정으로의 이행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빌헬름 2세가 즉위식을 이유로 노이쾨니히스베르크에 머물때 11·4 사건을 일으켜 빌헬름 2세와 자모아 내각의 청차관들, 대관식을 위해 노이쾨니히스베르크에 방문한 극동 하바롭스크 왕국, 칠레 인민 공화국, 아랍 에미레이트, 대성제국, 제3공화국의 정상의 인질을 잡는다. 노이쾨니히스베르크를 탈출한 빌헬름 왕태자는 헤르베르트쇠헤로 돌아가 혁명 정부와의 전쟁을 선포하여 내전이 시작된다.
배경
범죄와의 전쟁
2024년 10월 28일 오전 4시경, 헤르베르트쇠헤 노이볼린 구역에서 갱단 간의 총격전이 발생한다. 노이기니아 근위대에 의해 진압이 되었으나, 총격전이 발생한 곳은 헤르베르트쇠헤궁에서 고작 대로 하나를 사이에 둔 거리였다. 이로 인해 총기 규제법이 왕국의회 양원을 통과한다. 그러나 16일 후인 11월 13일, 헤르베르트쇠헤에서 다시 총격전이 발생한다. 지난 총격전과 같은 갱단 사이에서 발생하였으며, 진압에 투입한 왕립육군과 근위대에서 피해가 발생하였다.
두 사건들로 인해 빌헬름 1세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였으며, 갱들을 비롯한 여러 범죄에 대한 강경 진압을 선언했다.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된지 약 4개월뒤, 정부의 공식적이며 강경한 대처로 갱들은 서로 단합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3월 9일과 9월 4일의 전투로 큰 피해를 입었으나, 진압군에게도 큰 피해를 입히며 계속해서 연합을 유지해나갔다.
군 내 비리 조사
헤르베르트쇠헤에서의 전투 이후 군대 내 비리에 대한 의혹이 증폭된다. 조사 결과 군대의 몇몇 장교가 갱들의 연합에 무기를 빼돌렸음이 밝혀진다. 이 사건은 공론화되어 노이기니아 근위대가 경찰 중에도 부패한 자가 있을 수 있다며 조사를 담당했다. 조사는 꽤나 성공적으로 수많은 비리를 발견하고 비리 장교를 체포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기 시작한다. 그러나 독립적인 단체인 근위대가 국가의 최고 군사 단체에 대해 어떠한 사법적 조치 없이 독단적으로 조사와 체포를 진행했다는 점에 대해 군부의 불만이 증폭되어갔다.
그러던 중 라헤에서 한 비리 장교의 체포 과정 중 근위대와 비리 장교의 휘하 병사들 간의 무력 충돌이 발생한다. 비리 장교는 일부 병사에 의해 체포에 성공하였으나, 이로 인해 빌헬름 1세는 근위대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면서 군부의 불만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