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Βασιλεία τῶν Ῥωμαίων), 혹은 니케아 제국(Νίκαια) 은 아나톨리아 서부에 자리잡은 구 로마 제국(-* 1204)의 잔존국이다. 로마의 잔존국 가운데 가장 규모가 거대하며,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어 향후 콘스탄티노플을 수복할 때에 그 주인공이 될 가장 유력한 국가라고 평가받고 있다. 현재 공식적인 수도는 니케아지만, 실질적인 수도로 기능하는 것[1]님페온이다. 국가의 원수는 "로마 황제"이며 라틴 제국과 서유럽의 외국에게는 니케아 황제 혹은 그리스 황제라고 불리고 있다. 황제 이외 제국의 주요한 기관으로는 원로원과 군대, 그리고 시민이 있는데 이 중 원로원은 입법기관이었으나 제정 수립에 들어 사실상의 명예적 자문기관으로 기능하였던 구 로마 제국의 원로원을 테오도로스 황제가 그대로 니케아에 설치한 것이다. 그 다음으로 군대는 제국의 군사력을 표현하는 가장 막강한 수단이나 가치로써 황제의 명을 받들어 국내외의 평화를 유지하는 충성스런 로마군이다. 시민은 말 그대로 니케아 제국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로써, 황제에 대한 여론을 표현하는 로마의 3기관 중 하나이다. 제국은 이 3기관의 균형이 적절히 유지되어 공화주의적 전제군주제라는 개념을 유지하였다. 이렇게, 니케아 제국은 1204년 이전의 로마 제국 정체를 가장 확고히 가지고 있는 잔존국임을 알 수 있다. 1204년 4월 13일, 4차 십자군의 공격으로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자 라틴 제국이 성립된 이후에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했던 아나톨리아에서는 콘스탄티노스 라스카리스가 일시적으로 황제로 재임하였으나, 대관받지 못해 황제로 인정되지는 못했다. 그의 사망 이후에 테오도로스 라스카리스가 로마인의 황제로 즉위 및 공식적으로 대관하니, 이것이 현재 니케아 제국의 성립이다. 현재 니케아 제국은 라틴 제국과의 대립과 룸 셀주크와의 부분적 적대 관계를 통해 2면의 가(假) 전선을 두고 있기 때문에, 불가리아 제국과의 혼인 동맹을 구축하여 "적의 적은 동맹"이란 생각을 통한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니케아/연표

테오도로스 라스카리스 시대

  • 1207년 11월 27일, 니케아의 황제가 라틴 황제 보두앵을 암살하였으나 알려지지 않다, 제위는 전임 황제의 형제인 앙리 플란데런이 이어받다
  • 1208년 3월 14일, 니케아 국내 기록을 시작하다.
  • 1208년 3월 모일., 황제가 수도인 니케아, 그 외에 칼게돈, 키지코스 등에 대규모 논밭을 지으라 명하다
  • 1208년 4월 16일, 주후 * 1208년 첫 궁정 알현하다
    • 동日., 제국 영토 전역의 토지 조사 사업 요청에 대하여 황제가 비용의 문제로 이를 거부하다
    • 동日 2., 라오디케아 군수 마누엘이, 황태제 미하일과 그의 군대가 라오디케아를 약탈하여 마을과 농장을 수탈한 것에 대하여 배상을 요구하였으나 황제는 병사를 두둔하여 이를 거부하다
  • 1208년 5월 10일, 타르소스 현지의 주민 대표단이 타르소스의 무너져가는 성벽에 대하여 제국의 보수와 지원금 제공을 요청하였으나 황제의 설득으로 제국 경제에 무리를 주지 않고 성벽 보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다
  • 1208년 8월 11일, 테오도로스 황제의 혼인정책으로 하여금, 니케아 황녀 에이레네가 테살로니카의 요안니스 바타제스와 부계 혈통의 혼인(테오도로스 1세의 남계 후사가 없을 시)을 약속하는 약혼식을 거행하다
  • 1209년 3월 10일, 황제가 니케아 성채의 아성을 둘러 축성할 것을 명하다
  • 1210년 10월 31일, 제2황녀 헬레네(* 1210년 출생)를 불가리아 황태자 코즈마와 약혼토록 하다(니케아-불가리아 동맹)
  • 1210년 11월 1일, 황제 테오도로스 1세가 병치레에 시달리기 시작하다
  • 1211년 2월 15일 황제가 룸의 술탄 슐레이만 2세를 니케아로 초청하기로 하여 룸에 사절을 파견하다, 룸의 술탄이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다
  • 1211년 4월 10일, 슐레이만 2세가 룸으로 돌아가다, 양 군주의 우정으로 니케아와 룸 사이의 우호관계 형성되다
  • 1211년 6월 13일, 황제의 병치레가 완쾌되다
  • 1211년 8월 17일, 박해받는 정교회 신도들을 위하여 니케아가 콘스탄티노플로 사절단을 파견하다, 라틴 황제 앙리가 그들을 두팔벌려 환영하며, 정교회 신도들을 보호하겠노라 약속하다
  • 1212년 1월 19일, 에이레네 라스카리나와 요안니스 바타제스가 혼인하다
  • 1212년 1월 28일, 트라페준타 제국의 폰토스 문화가 형성되어 로마 본래 문화와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하다
  • 1212년 10월 28일, 니케아가 6,200명의 대군을 이끌고 라틴인들이 점거한 칼리오폴리스 지역을 침공하다
  • 1213년 3월 20일, 아우구스타 안나 앙겔리나가 제1황자 테오도로스와 제2황자 콘스탄티노스 쌍둥이를 건강하게 출산하다, 계승권은 라스카리스 왕조에게로 돌아오다
  • 1215년 3월 11일, 칼리오폴리스가 제국의 품으로 돌아오다, 지방관으로 귀족 가문의 세라피온 무잘론을 파견하다
  • 1218년 6월 8일, 니케아가 라틴인들이 점거한 아이노스 지방을 침공하다
  • 1219년 8월 23일, 아이노스 지방이 제국의 품으로 돌아오다, 라틴인들의 제국이 테살로니카와 셀림브리아 지방 두 영토로 양분되다
  • 1221년, 니케아의 도심이 라틴인들에게 점거당한 옛 수도 콘스탄티노플보다 번성하다(니케아 개발도 31, 콘플 개발도 29)
  • 1221년 11월 25일, 황제가 니케아에 원형 성채를 둘러 지을 것을 명하다
  • 1222년 2월 4일, 14년만에 신년 궁정 알현을 거행하다
  • 1222년 9월 26일, 니케아의 프로피로옌니토스 테오도로스 라스카리스(당시 9세)가 필리스 무잘로나(당시 1세)와 약혼하다
  • 1225년 8월 4일, 니케아에 원형 성채가 완공되다
  • 1226년 * 12월 15일, 니케아 황녀 프로피로예니타 헬레네 라스카리나와 불가리아 신임 황제 코즈마와 혼인하다
  • 1227년 1월 26일, 테오도로스 황제가 예루살렘에 대한 성지순례를 시작하다
  • 1227년 3월 27일, 황제의 예루살렘 성지 도착
  • 1227년 4월 26일, 황제, 니케아로 환궁
  • 1227년 11월 28일, 라틴 동란 이전 출생 황후의 종말, 로마인의 아우구스타 안나 앙겔리나 서거
  • 1227년 6월 8일, 라틴 제국 황제 오통(사망 당시 15세)이 자기네 봉신들에게 죽다! 라틴 제국이 점점 분열할 기운을 보이다, 라틴 제위는 전전임 황제 앙리의 동생이자 그 부친 플란데런공 바우더베인 7세의 6남 외스타슈가 이어받다
  • 1228년 3월 25일, 테오도로스 황제가 궁정 알현을 거행하다
  • 1228년 10월 22일, 십자군 계열의 통치자의 아들이 다스리던 제국의 자치 키비르하이오타이 지역 둑스 프란체스코(당시 14세)가 그리스 문화를 수용하다
  • 1229년 1월 16일, 테오도로스 라스카리스 황제가 셀림브리아 지역을 수복하기 위하여 라틴 제국에 전쟁을 선포하다
  • 1231년 6월 1일, 제국이 셀림브리아를 수복하다, 라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주변 영토가 모두 상실되다
  • 1231년 7월 9일, 파플라고니아 둑스가 제국에 입조하다
  • 1232년 9월, 파플라고니아 둑스가 황제의 윤허를 받지 않고 멋대로 콘스탄티노플을 수복하고자 군대를 파병하여 황제가 전쟁을 중단시키다
  • 1233년 6월 21일, 콘스탄티노플 수복, 니케아군이 시내로 입성하다
  • 1233년 9월 2일, 라틴 제국 정부가 항복하여 니케아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최종 수복하다
  • 1237년? 니케아가 라틴 제국을 치고자 하였으나 이피로스의 선 전쟁에 양쪽에 동맹 관계를 맺고 있던 불가리아의 개입이 활성화되다, 라틴 제국이 이피로스에게 항복하여 니케아와 이피로스간의 전쟁이 전개되었는데 이에 불가리아가 이피로스를 지원하여 니케아군이 대패하다
  • 1238년 10월 19일, 니케아의 공동황제이자 테오도로스 (1세) 황제의 장남 테오도로스가 사냥 중 사고로 사망하다, 제위가 테오도로스 황제의 형제 마누엘로 옮겨갈 뻔 하였으나 황제는 자신의 차남 콘스탄티노스(한때 상속권을 박탈하였던)의 상속권을 회복하고 공동 황제에 임명하는 조치를 취하다
  • 1239년 4월 14일, 테오도로스 황제 67세를 일기로 붕어

제위는 2남 콘스탄티노스 라스카리스가 이어받아 콘스탄티노스 11세로 즉위하다

콘스탄티노스 11세 시대

  • 1239년 모월 모일., 황제가 형의 아내였던 필리스 무잘로나와 혼인하다
  • 1241년 11월 3일, 콘스탄티노스 11세 황제의 첫 아들 탄생, 알렉시오스 1세를 기리는 의미에서 이름을 알렉시오스로 정하다
  • 1242년 2월 7일, 황제가 즉위 후 처음으로 궁정 알현을 거행하다
  • 1245년 4월 3일 라틴 제국과의 최후의 전쟁, 라틴 제국을 구 로마 내에서 완전히 추방하다
  • 1246년 2월 25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수도를 환도하다
  • 1247년 5월 21일 니케아, 테살로니카 전역에 대한 수복 전쟁 선포하다
  • 1248년 9월 10일, 테살로니카 정식 수복하다, 개선식 갖다
  • 1250년 3월 20일, 황제가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를 떠나다
  • 1251년 8월 14일, 로마의 잔존국 중 하나였던 트라페준타 제국, 룸에 의해 멸망하다
  • 1252년 9월 29일 조사: 제국군 총원 10,000명 돌파하다
  • 1259년 2월 28일, 니케아의 룸에 대한 전쟁 선포, 옵세키움 전역 수복 목표하다, 니케아-불가리아 동맹군 총합 25,130명 VS 룸군 6,309명
  • 1260년, 대제국 몽골의 분할(금장 칸국, 일 한국, 몽골 제국)
  • 1261년 6월 26일, 도릴라이움과 프리기아 등등 옵세키움 전역 수복하다
  • 1261년 7월 4일, 공동황제이자 황제의 아들 알렉시오스가 블라디미르의 대공 세볼로드 2세의 고명딸 프레드슬라바와 혼인하다

분류

  1. 테오도로스 황제는 니케아에서 기거하지만 정부의 기본적인 모든 기능과 집행은 님페온에서 이뤄진다. 황제 역시 니케아와 님페온을 자주 오가는데 님페온에서 주요한 모든 결재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수도가 님페온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