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돌로 작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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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의 일부 | |||||||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페라에 진입한 그리스 군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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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그리스 왕국 영국 이탈리아 왕국 프랑스 | 비잔티움 | ||||||
지휘관 | |||||||
에프티미오스 카넬로풀로스 조지 밀른 카를로 스포르차 루이 프랑셰 데스프레 |
마누일 6세 팔레올로고스 마르코스 달라세노스 | ||||||
병력 | |||||||
약 51,300명 | 약 35,000명 | ||||||
피해 규모 | |||||||
1,130명 사망 448명 부상 |
1,335명 사망 341명 부상 |
단돌로 작전(그리스어: Επιχείρηση Δάνδολος)은 그리스 왕국을 주축으로 한 영국, 이탈리아 왕국, 프랑스 등 제1차 세계 대전의 연합국이 비잔티움을 점령하고자 벌인 작전이다. 암호명 '단돌로'는 제4차 십자군 당시 동로마 제국 침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인 엔리코 단돌로의 이름을 딴 것이다.
20세기 초 그리스의 대외 정책의 기조는 위대한 이상(그리스어: Μεγάλη Ιδέα)에 의거한 국민 국가를 세우는 것 이었고, 이는 영국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총리가 약속한 사항이었다. 산스테파노 조약 이후 비잔티움은 독립에 성공하였으나, 러시아 제국과 발칸 동맹 일부를 제외한 국가들은 그리스의 손을 들어 주어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수 년이 지나 1918년 11월 12일 프랑스를 주도로 한 연합군이 무드로스 정전 협정의 내용을 명분으로 비잔티움을 침공하였다. 초반의 비잔티움군은 국지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나, 마누일 6세 팔레올로고스가 저항의 중지를 선언하면서 작전은 한 달이 채 안 걸려 종결되었다. 마누일 6세는 스스로를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포로'라고 표현하며 연합군의 출궁 요구를 거부하였는데, 이는 그리스-터키 전쟁으로 이어지는 단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