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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향'''({{llang|zh|花鄕}}, {{llang|en|Kingdom of Haron}})은 [[동중국해]](東中國海)에 위치한 국가이다. [[화향 제도]](花鄕諸島)를 국토로 하고 있으며, 수도는 [[낭경]](朗京)이다. 북동쪽으로는 [[대한민국]](大韓民國)과 [[일본]](日本), 서쪽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남쪽으로는 [[중화민국]](中華民國)과 인접하게 위치하고 있다. | '''화향'''({{llang|zh|花鄕}}, {{llang|en|Kingdom of Haron}})은 [[동중국해]](東中國海)에 위치한 국가이다. [[화향 제도]](花鄕諸島)를 국토로 하고 있으며, 수도는 [[낭경]](朗京)이다. 북동쪽으로는 [[대한민국]](大韓民國)과 [[일본]](日本), 서쪽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남쪽으로는 [[중화민국]](中華民國)과 인접하게 위치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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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중엽에 이르러 [[해창국]](海蒼國), [[무심국]](霧深國), [[안지국]](安地國) 등으로 분열되었던 [[화향 제도]]가 [[신손가]](神孫家)를 중심으로 통일하면서 통합 사회를 일구어낼 수 있었다. 이후에는 [[네덜란드]](和蘭), [[포르투갈]](葡萄牙)을 비롯한 서구와의 교역 및 중계 무역을 적극 활용하면서 번영을 구가했다. | 15세기 중엽에 이르러 [[해창국]](海蒼國), [[무심국]](霧深國), [[안지국]](安地國) 등으로 분열되었던 [[화향 제도]]가 [[신손가]](神孫家)를 중심으로 통일하면서 통합 사회를 일구어낼 수 있었다. 이후에는 [[네덜란드]](和蘭), [[포르투갈]](葡萄牙)을 비롯한 서구와의 교역 및 중계 무역을 적극 활용하면서 번영을 구가했다. | ||
19세기 후반부터 서구 열강들에 아시아 침탈과 [[일본 제국]](日本帝國)의 노골적인 침략이 가시화되었으나, 구미 열강의 대외 진출에 대한 방어 거점의 필요성을 염두하고 있던 [[청나라]](靑國)와 태평양의 이권이 위협받을 것을 염려한 [[율리시스 S. 그랜트]]의 중재를 통해 [[경진수호조규]](庚辰修好條規, 1880)를 통해 어렵사리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ref>이와는 대조되게, 똑같이 [[율리시스 S. 그랜트]]의 중재가 이루어졌던 [[류큐]]는 청 지도층의 무대응 지연책으로 [[일본 제국]]이 먼저 류큐 일대를 장악하면서 국가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ref> | |||
열강들의 개입에 자주성이 크게 흔들렸던 화향은 [[단화개혁]](端和開革, 1882)을 단행하고 서양 군함을 구입하는 등 국력 신장을 위해 노력했다. 특히 지도층과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외세간의 분쟁을 이용해 내부 정세를 복잡하게 만들어 침략을 단념토록 하기 위해 시도한 [[중립 외교]](中立外交)를 최우선 정책으로 삼고 [[프랑스 제3공화국]]에게서 차관을 도입하고 [[영국]]을 통해 [[청나라]]에 대한 특수적 지위를 자국에게도 부여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ref>이는 [[일영동맹]](英日同盟)을 통해 [[일본 제국]]이 영국의 지지를 바탕으로 침탈 행위가 인정받을 것을 염려한 부분에서 시도된 것이었다. 이러한 노력은 [[보회함 사건]](普恢艦事件)에서 화향에 대한 영국의 이권이 침해될 것을 우려한 개입으로 일본이 주춤하면서 효력을 발휘했다.</ref> | |||
== 각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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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2일 (토) 22:00 판
대화향국 화향제국 / 대월민국 | |||||
大花鄕國 Empire of Formosa / 大越閩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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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어 |
흥아쇄국(興亞刷國) (동아를 일으켜, 나라를 닦으라.) | ||||
수도 | 낭경(朗京) | ||||
최대도시 | 유신주(庾信州) | ||||
정치 | |||||
공용어 | 향어(鄕語), 민어(閩語) | ||||
정부 형태 | 군주제, 훈정→헌정[1] | ||||
황제(皇帝)[3] |
성화제(成華帝) 1852~1885 건녕제(建寧帝) 1915~1926 광화제(光和帝) 1930~1944 | ||||
군기장경(軍機章京) 흠차대신(欽差大臣) |
위하문(魏夏文) 1854~1867 박중돈(朴中旽) 1913~1919 아예기원(阿禮岐元) 1865~1879 강유혼(强兪混) 1920~1928 | ||||
입법 |
의정원(議政院)1854~1888 입법원(立法院)1888~[2] | ||||
역사 | |||||
• 갑인변법[4] | 1854년 2월 6일 | ||||
• 태평천국 운동 | 1851년 ~ 1864년 | ||||
• 화청전쟁 | 1865년 ~ 1867년 | ||||
지리 | |||||
면적 | 299,610㎢ | ||||
내수면 비율 | 약 2.8% | ||||
인구 | |||||
1930년 어림 | 37,936,684명 | ||||
기타 | |||||
통화 | 화향 원(元) | ||||
화향(중국어: 花鄕, 영어: Kingdom of Haron)은 동중국해(東中國海)에 위치한 국가이다. 화향 제도(花鄕諸島)를 국토로 하고 있으며, 수도는 낭경(朗京)이다. 북동쪽으로는 대한민국(大韓民國)과 일본(日本), 서쪽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남쪽으로는 중화민국(中華民國)과 인접하게 위치하고 있다.
공용어로는 한반도(韓半島)와 제주도에서 넘어온 한국어족인 향어(鄕語)를 표준어로 지정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중국어의 방언인 민어(閩語)를 사용하기에 부분적 공용어로 취급하고 있다. 중국 대륙(中國大陸)에 가까이 위치해 있으나, 한반도에서 유입된 도래인(渡來人)들의 후손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서 문화적으로는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15세기 중엽에 이르러 해창국(海蒼國), 무심국(霧深國), 안지국(安地國) 등으로 분열되었던 화향 제도가 신손가(神孫家)를 중심으로 통일하면서 통합 사회를 일구어낼 수 있었다. 이후에는 네덜란드(和蘭), 포르투갈(葡萄牙)을 비롯한 서구와의 교역 및 중계 무역을 적극 활용하면서 번영을 구가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서구 열강들에 아시아 침탈과 일본 제국(日本帝國)의 노골적인 침략이 가시화되었으나, 구미 열강의 대외 진출에 대한 방어 거점의 필요성을 염두하고 있던 청나라(靑國)와 태평양의 이권이 위협받을 것을 염려한 율리시스 S. 그랜트의 중재를 통해 경진수호조규(庚辰修好條規, 1880)를 통해 어렵사리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1]
열강들의 개입에 자주성이 크게 흔들렸던 화향은 단화개혁(端和開革, 1882)을 단행하고 서양 군함을 구입하는 등 국력 신장을 위해 노력했다. 특히 지도층과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외세간의 분쟁을 이용해 내부 정세를 복잡하게 만들어 침략을 단념토록 하기 위해 시도한 중립 외교(中立外交)를 최우선 정책으로 삼고 프랑스 제3공화국에게서 차관을 도입하고 영국을 통해 청나라에 대한 특수적 지위를 자국에게도 부여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