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중 하나의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관리자. 문서를 고치려면 이메일 인증 절차가 필요합니다. 사용자 환경 설정에서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고 이메일 주소 인증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아펜테티아 타이틀}} {{VITA MORS EST 타이틀}} <small>《TIP:[[하우젠베르크 침공]]을 지휘한 헤르베르트 위겐 린덴부르크는 참모총장서리로 활동하면서 [[베넨치에 침공]] 계획에 있어서 여러모로 의견을 낸 군사이론가적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small> '''룽겐하임 사변'''(<small>[[론디니아어]]:Lungenheim Incident</small>)은 [[바르덴우펜 제국]]의 상급대장, [[헤르베르트 위겐 린덴부르크]](<small>[[바르덴우펜어]]:Herbert Wigan Lindenburg</small>)가 [[하우젠베르크 공국]]의 대공, [[크루프 1세]](<small>Krupp I</small>)와 대공비, 테레나 마리오(<small>Terena Mario</small>)를 살해하고서 [[하우젠베르크 군정청]](<small>[[델튼어]]:Military Administration in Hauzenberg</small>)을 설치한 뒤 최종적으로 [[바르덴우펜 휘하 하우젠베르크 왕국]]을 세워 스스로 국왕을 칭한 사건을 말한다. 하우젠베르크 국왕직을 참칭하여 대관식을 이룬 것이 [[성 룽겐하임 성당]](<small>[[룬디니아어]]:Church of Saint Dediel</small>)이었기에 '룽겐하임 참변' 혹은 '하우젠베르크 참칭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개요== R.1919년 4월 6일을 기점으로 시작된 [[하우젠베르크 침공]](<small>[[룬디니아어]]:Invasion of Hauzenberg</small>)으로 인한 상황속에서 [[뒤겐러스크 전투]]가 발발, [[바르덴우펜 제국군]]과 [[발루아 공화국군]] 및 [[하우젠베르크 친위대]]간의 소규모 접전 끝에<ref>소규모 접전이라고 했을지라도 이 전투에서 하우젠베르크 친위대는 당시 가용 병력의 90%인 800명을 동원했으며, 발루아도 약 1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바르덴우펜은 3만 명에 달하는 병력과 함께 50여 대의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중전차, [[DT7]]과 장갑차, [[D-O/1 란치하르트]]를 동원했다. 이외에 [[하우젠베르크]] 상공에서 [[발루아 공화국]]의 일시적이기는 하나 항공 지원이 있기도 했다.</ref> 하우젠베르크 방위 발루아군이 패배함에따라 수도였던 [[하우젠베르크]]는 물론이며, 국토 전역이 바르덴우펜 제국에게 장악되었다. 하우젠베르크 침공을 지휘한 [[헤르베르트 위겐 린덴부르크]]는 '하우젠베르크 돌격대'를 조직하여 하우젠베르크 전역에 남아있는 라디오 통신 시설을 장악하고 바리케이드를 해체하는데 나섰으며, [[크루프 1세]]와 테레나 마리오 대공비는 대공세자 일가를 먼저 [[베넨치에 왕국]]으로 피신시켰으나, 뒤늦게 [[슈트로비엔 대공궁]]을 나오던 도중 이들 돌격대에게 발각되면서 망명은 실패하였으며, [[에슈알제트 주]]에 위치한 임시 하우젠베르크 군정청 수용소에 수감된다. R.1919년 4월 9일, [[크루프 1세]] 대공이 린덴부르크의 겁박으로 대공위를 비롯한 모든 작위를 포기할 것을 선언하면서, 동시에 민간인 저항부대였던 [[하우젠베르크 슈덴단트]](<small>[[바르덴우펜어]]:Hauzenberg Studendant</small>)<ref>'슈덴단트'(Studendant)는 [[바르덴우펜어]] [[하우젠베르크 방언]]에서 '저항' 혹은 '불복'을 의미한다.</ref>의 해체를 요구했다. 이에 하우젠베르크 슈덴단트를 이끌던 [[기욤 스펠러]]는 대공에게 불복할 것을 표명, 대공세자 [[장 뒤퐁]]이 이끄는 [[하우젠베르크 망명정부]]를 따를 것을 선포했다. [[하우젠베르크 슈덴단트]]의 게릴라전이 지속되자 린덴부르크 군정청장은 "지속된 슈덴단트의 위협이 있을 시, 전(前) 대공과 대공비를 즉결 처분할 것"을 선언했고 실제로 이에 대한 본보기로서 임식 군정청 수용소에 포로로 수용되었던 [[하우젠베르크 친위대]] 3명에게 교수형을 집행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굴복치 않자, 린덴부르크는 최대의 결단으로 조치를 취하게 된다. ==룽겐하임의 눈물== 슈덴단트가 굴복하지 않자, 린덴부르크는 [[크루프 1세]]와 테레나 마리오 대공비를 [[성 룽겐하임 성당]]으로 압송했으며, 린덴부르크는 이들에게 당시 룽겐하임 성당 내부에 위치한 [[베르디니우스]] 제1사도의 유해를 모셔둔 옥좌 앞에서 [[바르덴우펜|제국]]에 대한 비협조적 행위로 인해 초래한 양측간 신뢰가 무너진 점, 이로 인해 떠나간 민심과 피해 입은 민간인들에 대하여 고해성사 할 것을 지시했다. 이후 [[크루프 1세]]가 내놓은 작위들을 본인이 그대로 서임할 것을 발표했으며, 곧장 전(前) 대공과 대공비에 대해서 총살형을 집행했다. 형을 집행한 후 린덴부르크는 성 룽겐하임 성당에 대공과 대공비의 시신을 그 자리에서 버려둔 채, 군정청으로 복귀하였으며,<ref>집행후 1주일 뒤에야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서 두 명의 시신을 [[하우젠베르크 슈덴단트]] 소속의 청년이 수습한 뒤 망명 정부로 전달했다.</ref> [[슈트로비엔 대공궁]]에게 '린덴부르크 왕궁'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뒤, 당시 [[바르덴우펜 제국]]의 [[하이젠링거 1세]](<small>[[바르덴우펜어]]:Hizenlinger I</small>)에게 '하우젠베르크 국왕'이라는 작위를 하사받아 [[바르덴우펜 휘하 하우젠베르크 왕국]]을 수립했다. ==각주== {{각주}} [[분류:아펜테티아]]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VITA MORS EST 타이틀 (원본 보기) 틀:각주 (원본 보기) 틀:아펜테티아 타이틀 (원본 보기) 룽겐하임 사변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