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클레치아 왕국의 경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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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클레치아 왕국]]의 경제는 명목 국내 총생산 기준으로 경제 규모에서 세계 13위로 [[어나더어스]] 세계의 1.1%를 차지한다. 수출국으로는 8위, 수입국으로는 7위이다. 수도 [[일리오스]]는 경제 중심지로 유명하며 [[노르문티아주]]의 [[시르코]], [[에바른]], [[코이라]], [[바우루스]], [[사카루아]]는 공업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남부 지역인  닭이나 소, 돼지 등을 사육하기 때문에 가장 많이 발달하며 일리오스 지역에서는 맥주 산업이 발달하여 게르마스 왕국에 이어 두번째로 맥주 생산량이 많은 나라로 알려져 덕분에 현재까지 부유한 도시가 되었다. GDP를 산업별로 나누자면 1차 산업이 49.8%로 50%에 가까우며 2차 산업이 그 뒤를 잇는다. 4차 산업은 5.2%로 이미 유로아에서 4차 산업혁명이 조금씩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클레치아 왕국]]의 경제는 명목 국내 총생산 기준으로 경제 규모에서 세계 13위로 [[어나더어스]] 세계의 1.1%를 차지한다. 수출국으로는 8위, 수입국으로는 7위이다. 수도 [[일리오스]]는 경제 중심지로 유명하며 [[노르문티아주]]의 [[시르코]], [[에바른]], [[코이라]], [[바우루스]], [[사카루아]]는 공업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남부 지역인  닭이나 소, 돼지 등을 사육하기 때문에 가장 많이 발달하며 일리오스 지역에서는 맥주 산업이 발달하여 게르마스 왕국에 이어 두번째로 맥주 생산량이 많은 나라로 알려져 덕분에 현재까지 부유한 도시가 되었다. GDP를 산업별로 나누자면 1차 산업이 49.8%로 50%에 가까우며 2차 산업이 그 뒤를 잇는다. 4차 산업은 5.2%로 이미 유로아에서 4차 산업혁명이 조금씩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클레치아는 자본주의에 기반한 혼합 경제 체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헨리가]]부터 [[율리우스가]] 초기까지 상업과 공업이 발달하면서 [[헨리 2세]] 시기의 경기 침체를 제외하면 부유국이 되었으며, 헨리 2세 집권 후반기엔 경기 침체가 일어나면서 [[헨리 계획]]을 통해 경기 침체를 어느 정도 막아냈다. 율리우스가 집권 이후 시장 경제를 도입했으며 이를 반영한 시장 길드들이 등장하면서 길드원, 상인들에겐 이득이 되는 것은 물론 모든 백성들의 사유 재산권을 보장받았으나 무분별하게 도입하다보니 가톨릭교회, 귀족들이 시장 경제를 옹호하기 시작하면서 국가적으로는 제도까지 만들어 친길드, 친귀족 체제가 되자 야당의 반발이 커졌고, 한 때는 보루를 [[사클레치아 조폐공사]]에서 많이 찍어버리는 바람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유로아스피아 전쟁]] 이후 [[율리우스 카이포스]]의 국가 재건을 추진하면서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다시금 성장했으며 계획 경제 체제를 조금씩 도입하는 가 싶더니 카이포스가 퇴진하자 율리우스 5세 집권 후부터 사실상 국가자본주의에 의존한 군주국가가 되었다. 이 때문에 율리우스 6세 임기 초반까지만 해도 실업률이 11%로 실업률이 높았고 시민행복지수도 굉장히 낮은 상태였다. 200년부터 [[민주당 (사클레치아 왕국)|민주당]] 정부가 시장 경제 체제에서 혼합 경제 체제로 전환하여 경제 발전을 이룩하기 시작했고, 인프라 사업에도 집중하기 시작했으나 사이버-200 계획이 사이버 공격으로 무산되었고, 아페렌스 체제를 거쳐 [[베르디아 폰 마리조니치]]의 일자리 창출 계획이 노사 갈등으로 번지면서 노사 해결은 여전히 사클레치아의 문제로 떠오른다. 217년 [[줄리아 메이 내각]]은 경제재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으나 220년 선출된 [[율리우스 레이소라]] 총리는 이 계획을 무산시키면서 노동자들의 반발이 커졌다.
사클레치아는 자본주의에 기반한 혼합 경제 체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헨리가]]부터 [[율리우스가]] 초기까지 상업과 공업이 발달하면서 [[헨리 2세]] 시기의 경기 침체를 제외하면 부유국이 되었으며, 헨리 2세 집권 후반기엔 경기 침체가 일어나면서 [[헨리 계획]]을 통해 경기 침체를 어느 정도 막아냈다. 율리우스가 집권 이후 시장 경제를 도입했으며 이를 반영한 시장 길드들이 등장하면서 길드원, 상인들에겐 이득이 되는 것은 물론 모든 백성들의 사유 재산권을 보장받았으나 무분별하게 도입하다보니 가톨릭교회, 귀족들이 시장 경제를 옹호하기 시작하면서 국가적으로는 제도까지 만들어 친길드, 친귀족 체제가 되자 야당의 반발이 커졌고, 한 때는 보루를 [[사클레치아 조폐공사]]에서 많이 찍어버리는 바람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유로아스피아 전쟁]] 이후 [[율리우스 카이포스]]의 국가 재건을 추진하면서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다시금 성장했으며 계획 경제 체제를 조금씩 도입하는 가 싶더니 카이포스가 퇴진하자 율리우스 5세 집권 후부터 사실상 국가자본주의에 의존한 군주국가가 되었다. 이 때문에 율리우스 6세 임기 초반까지만 해도 실업률이 11%로 전보다 높았고 시민행복지수도 굉장히 낮아 국제 사회에 조명되었고, 200년부터 [[민주당 (사클레치아 왕국)|민주당]] 정부가 시장 경제 체제에서 혼합 경제 체제로 전환하여 경제 발전을 이룩하기 시작했고, 인프라 사업에도 집중하기 시작했으나 사이버-200 계획이 사이버 공격으로 무산되었고, 아페렌스 체제를 거쳐 [[베르디아 폰 마리조니치]]의 일자리 창출 계획이 노사 갈등으로 번지면서 노사 해결은 여전히 사클레치아의 문제로 떠오른다. 217년 [[줄리아 메이 내각]]은 경제재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으나 220년 선출된 [[율리우스 레이소라]] 총리는 이 계획을 무산시키면서 노동자들의 반발이 커졌다.

2020년 6월 20일 (토) 23:56 판

사클레치아 왕국의 경제
순위 13위
통화 사클레치아 보루 (SCB)
0.636$
회계 년도
역년
무역 기구
유로아스피아 무역 기구 (EATO)
통계
GDP 354,280,897,860‬$
GDP 성장률
3.3%
1인당 GDP
71,386$
산업별 GDP
1차: 49.8%
2차: 33.4%
3차: 11.6%
4차: 5.2%
증가 2.1%
33.4%
노동인구
6,191,493
실업률 3.1%
주요 산업
공업, 농업, 인프라, 제조업 등
14위
무역
수출 18,219,619,123$
수입 88,261,135,243$
[[경상수지|틀:Allow wrap]]
10,029 (100만$)
국가 재정
16,302,095,389$
1,123,059,059$
Eco A+2
외환보유고
93,938,193,029$

주요 내용 출처:CIA World Fact Book
모든 값은 달리 명시하지 않는 한 미국 달러입니다

사클레치아 왕국의 경제는 명목 국내 총생산 기준으로 경제 규모에서 세계 13위로 어나더어스 세계의 1.1%를 차지한다. 수출국으로는 8위, 수입국으로는 7위이다. 수도 일리오스는 경제 중심지로 유명하며 노르문티아주시르코, 에바른, 코이라, 바우루스, 사카루아는 공업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남부 지역인 닭이나 소, 돼지 등을 사육하기 때문에 가장 많이 발달하며 일리오스 지역에서는 맥주 산업이 발달하여 게르마스 왕국에 이어 두번째로 맥주 생산량이 많은 나라로 알려져 덕분에 현재까지 부유한 도시가 되었다. GDP를 산업별로 나누자면 1차 산업이 49.8%로 50%에 가까우며 2차 산업이 그 뒤를 잇는다. 4차 산업은 5.2%로 이미 유로아에서 4차 산업혁명이 조금씩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클레치아는 자본주의에 기반한 혼합 경제 체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헨리가부터 율리우스가 초기까지 상업과 공업이 발달하면서 헨리 2세 시기의 경기 침체를 제외하면 부유국이 되었으며, 헨리 2세 집권 후반기엔 경기 침체가 일어나면서 헨리 계획을 통해 경기 침체를 어느 정도 막아냈다. 율리우스가 집권 이후 시장 경제를 도입했으며 이를 반영한 시장 길드들이 등장하면서 길드원, 상인들에겐 이득이 되는 것은 물론 모든 백성들의 사유 재산권을 보장받았으나 무분별하게 도입하다보니 가톨릭교회, 귀족들이 시장 경제를 옹호하기 시작하면서 국가적으로는 제도까지 만들어 친길드, 친귀족 체제가 되자 야당의 반발이 커졌고, 한 때는 보루를 사클레치아 조폐공사에서 많이 찍어버리는 바람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유로아스피아 전쟁 이후 율리우스 카이포스의 국가 재건을 추진하면서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다시금 성장했으며 계획 경제 체제를 조금씩 도입하는 가 싶더니 카이포스가 퇴진하자 율리우스 5세 집권 후부터 사실상 국가자본주의에 의존한 군주국가가 되었다. 이 때문에 율리우스 6세 임기 초반까지만 해도 실업률이 11%로 전보다 높았고 시민행복지수도 굉장히 낮아 국제 사회에 조명되었고, 200년부터 민주당 정부가 시장 경제 체제에서 혼합 경제 체제로 전환하여 경제 발전을 이룩하기 시작했고, 인프라 사업에도 집중하기 시작했으나 사이버-200 계획이 사이버 공격으로 무산되었고, 아페렌스 체제를 거쳐 베르디아 폰 마리조니치의 일자리 창출 계획이 노사 갈등으로 번지면서 노사 해결은 여전히 사클레치아의 문제로 떠오른다. 217년 줄리아 메이 내각은 경제재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으나 220년 선출된 율리우스 레이소라 총리는 이 계획을 무산시키면서 노동자들의 반발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