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클레치아 왕국의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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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클레치아 왕국의 경제
순위 13위
통화 사클레치아 보루 (SCB)
0.636$
회계 년도
역년
무역 기구
유로아스피아 무역 기구 (EATO)
통계
GDP 354,280,897,860‬$
GDP 성장률
3.3%
1인당 GDP
71,386$
산업별 GDP
1차: 49.8%
2차: 33.4%
3차: 11.6%
4차: 5.2%
증가 2.1%
33.4%
노동인구
6,191,493
실업률 3.1%
주요 산업
공업, 농업, 인프라, 제조업 등
14위
무역
수출 18,219,619,123$
수입 88,261,135,243$
[[경상수지|틀:Allow wrap]]
10,029 (100만$)
국가 재정
16,302,095,389$
1,123,059,059$
Eco A+2
외환보유고
93,938,193,029$

주요 내용 출처:CIA World Fact Book
모든 값은 달리 명시하지 않는 한 미국 달러입니다

사클레치아 왕국의 경제는 명목 국내 총생산 기준으로 경제 규모에서 세계 13위로 어나더어스 세계의 1.1%를 차지한다. 수출국으로는 8위, 수입국으로는 7위이다. 수도 일리오스는 경제 중심지로 유명하며 노르문티아주시르코, 에바른, 코이라, 바우루스, 사카루아는 공업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어나더어스 1차 산업(천연자원)의 경우 점점 줄어드는 추세지만 2차 산업(제조업, 가스 공급업)은 약간 줄어드는 추세를 보인다. 3차 산업(관광업, 교통)과 4차 산업(인프라, 지식정보업) 중 3차 산업 비중이 가장 많고 최근에는 4차 산업 발전에 열중하고 있다. 축산업의 경우 남부 지역에서 닭이나 소, 돼지 등을 사육하기 때문에 가장 많이 발달하며 일리오스 지역에서는 맥주 산업이 발달하여 게르마스 왕국에 이어 두번째로 맥주 생산량이 많은 나라로 알려져 덕분에 현재까지 부유한 도시가 되었다. 노르문티아주에서는 공업 시설이 발달한 곳이기 때문에 사클레치아는 과거 율리우스가가 집권할 때까지 상업과 공업이 발달하면서 부유국으로 성장했었다. 하지만 후기에 경기 침체가 일어나자 헨리 2세의 헨리 계획을 통해 경기 침체를 어느 정도 막아내긴 했다. 하지만 율리우스가 집권 이후 무분별한 시장 경제를 도입하면서 한 때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등의 불안정한 영향을 끼쳤다. 다만 카이포스 집권기에서 경제 부문에서는 경제성장률이 10%로 안정적인데다 151년에는 실업률이 무려 4%까지 줄어드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카이포스 사퇴 이후 경제성장에 빨간불이 켜질 듯 했으나 다시금 불안정한 영향을 끼쳤고 율리우스 6세 초반에도 실업률이 다시 11%로 늘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200년부터 민주당 정부가 시장 경제 체제에서 혼합 경제 체제로 전환하면서 경제 산업에 힘을 실어주기 시작했고 인프라 사업에도 집중하면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듯 했으나 사이버 공격 등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그 후 아페렌스 총리도 경제 살리기에 주력했으나 돈세탁 의혹이 터지고, 사퇴까지 이어지면서 경제정책은 실패하였다. 결국 베르디아 폰 마리조니치에게 되돌아왔고 일자리 100만개 창출을 위해 노력했으나 돌아온 것은 자본가들의 불만이었고 결국 자본가들이 촉발시킨 노사 갈등에 총파업까지 이어지면서 마리조니치는 특단의 조치인 노사 합의를 내려야만 했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노사 합의를 거절하고 군주당을 지지하는 한편, 실업자들은 자본가들을 비판하면서 친노동자 성향의 노동당과 반자본주의 성향의 개혁당에 들어갔으나 노동당 계열은 대규모 파업에 참가했고, 개혁당은 자본가들을 비판하면서 노사 갈등이 점점 심화되었다. 결국 마리조니치는 노사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가지 수법을 동원하였으나 소용이 없었고 오히려 자본가들의 불만만 높아졌다. 실업률은 조금씩 상승하면서 마리조니치 내각은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결국 사측 자본가들과 군주당원들은 퇴진 시위를 벌였고 결국 민주당의 23대 총선 패배 요점이 되었다.

이후 217년 정부는 강력한 노사 합의, 최저임금제 도입, 일자리 50만 개 창출 등을 담은 경제재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했고 가능하면 220년부터 시행하기로 결정했지만, 220년 5월 율리우스 레이소라 총리가 경제재개발 5개년 계획을 사실상 폐기했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과 사업 측은 반발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