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중 하나의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관리자. 문서를 고치려면 이메일 인증 절차가 필요합니다. 사용자 환경 설정에서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고 이메일 주소 인증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틀:세화국}} {{틀:블랑슈/3대세계관}} == 조직도 == {| class="wikitable" style="margin: auto; color: black; border: 2px solid black; background-color: white; width: 70%; text-align: center;" |- | [[파일:세화국_조직도.png]] |- | style="border: 2px solid black;" | 세화국 정부 조직도 |} == 개요 == 세화국은 평원전 775년, 제46대 양왕인 명정왕 사후 왕위 승계 문제로 왕실이 직계와 방계로 분단되었다. 분단된 두 세화국은 정통성을 가지고 경쟁하며 체제 경쟁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세화국은 격동의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사회 변화를 겪고 눈부신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특히 평원전 420년 경 직계 세화국에서 발생한 '대혁명'은 세화국을 넘어 세계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대혁명은 세화국 역사상 최초로 국가원수가 쫓겨난 사례로 남았으며, 민중의 힘으로 국가원수를 교체한 선례를 남겨 훗날 칠서가 왕정을 폐지하고 민권국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혁명 이후 새로 양왕이 된, 제54대 양왕인 민견왕은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양왕이 되었기 때문에 정계 기반이 매우 약했다. 이에 정치적 밑천을 확보하고자 했던 민견왕은 백성들 중 몇몇을 불러 국정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민사원'을 설치하게 된다. 민사원은 오늘날 민의회로 계승되며<ref>민사원의 기능은 국정부 산하 국정자문원이 이어받았다. 이로 인해 민사원의 후계가 민의회인지 국정자문원인지 논란이 좀 있는 편이다.</ref> 세화국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었고, 대혁명으로 위기에 처한 직계 세화국이 방계 세화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정치사(史)로 인해 세화국은 세화국 고유의 입헌군주정<ref>현실에 비유하면 프로이센식 입헌군주정과 영국식 입헌군주정의 중간에 해당한다.</ref>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양왕이 국정의 최상부에 있고, 양왕 아래 모든 조직이 속해 있는 형태이다. 다만, 양왕이 국정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블랑슈/3대세계관 (원본 보기) 틀:블랑슈/4대세계관 (원본 보기) 틀:세화국 (원본 보기) 세화국/정치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