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천황(일본어:
1921년부터 1926년까지 부황 다이쇼 천황을 대신해 대리청정을 한 그는 즉위 이후 1926년부터 1989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1926년부터 1941년까지 친정을 하였고 1941년부터 1944년까지 도조 히데키 총리대신이 실권을 잡았으며 1944년부터 이듬해 1945년까지 다시 1년간 친정을 하였고 연합군에게 무조건 투항을 선언한 1945년부터 이듬해 1946년까지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1년간 실권을 잡았으며 다시 1946년부터 1952년까지 윌리엄 시볼드 주일 미국 대사가 6년간 실권을 잡았다가 1952년부터 1989년에 붕어할 때까지 또다시 친정하였다.
히로히토가 천황 자리에 오르던 1920년대 전후반, 일본은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극심한 불황 상태에 빠져있었고 정치적으로는 통제파, 황도파, 사회주의·공산주의·아나키즘 등의 여러 사상이 대립하였다. 1930년대 초, 수차례의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들의 비호 아래 쇼와 천황과 그 측근들은 일본 군부의 중국 침략, 동남아시아 침략을 묵인했다. 또,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거치면서 장군과 제독의 임명과 승진 과정에도 참여하는 등 일본 제국의 대외 침략 전쟁을 도왔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결국 패배하자, 쇼와 천황은 일본으로 진주한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인사들과 유착 관계를 유지하면서 전범 기소와 황위 박탈은 면했지만 연합군은 새로운 헌법의 초안을 완성하면서 쇼와 천황, 그리고 앞으로의 천황들의 정치적 실권을 빼앗았다. 정치적 실권을 잃은 쇼와 천황은 해양생물학 연구에 매진하는 등 개인적인 삶을 살았다. 쇼와 천황은 죽은 뒤에도 일본 제국이 자행한 전쟁과 전쟁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