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미합중국 (기계들의 유산)

Tmxkffls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12월 31일 (일) 21:27 판

신 미합중국
New United States of America


자유에게 바치는 장송곡
자유의 고향이라 불리는 미국, 자유는 이제 죽어가고 있습니다.
요즘들어 일어나는 수차례의 기업전쟁과 기업들의 횡포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침묵은 깨지지 않고있습니다.

혼란스러운 국가에서 거대한 암흑의 씨앗이 피어오르고 있고 유래가 없는 기후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세계의 각종 분쟁, 기업과 독일은 미국의 패권을 계속해서 밟아버리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자유를 찾아온 이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님께서 결코 후퇴 없는 전진 나팔을 부시었고 그분께서는 심판의 자리에서 병사들의 용기를 재단하실지어니 - 줄리아 워드 하우

개요

미국은 북아메리카에 위치한 대통령제, 연방제 국가이다. 총 49개의 주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중 21개의 주가 연방정부의 간섭을 받지않는 자유주 상태이다. 캐나다와 북부에 국경을 맞대고 있고 남부로 멕시코와 국경을 접한다.

현재 유럽을 한차례 지배한 나치독일에 맞서 민주주의 국가들을 이끌고 있고 군사,경제력에서 1위라는 수치를 기록하고 있지만 사회,문화적으로 극심한 혼란과 정치적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주요도시

역사



잃어버린 시대

1600년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고 영국에서 박해를 피해온 청교도인들이 지금의 버지니아 주에 정착하며 아메리카 식민지의 역사가 시작된다. 같은 시기 영국에서 1차 기술혁명이 시작되며 농업 생산량이 급증하고 공장식 기계공업이 들어서면서 자원과 토지가 모두 풍부한 영국령 아메리카 식민지는 순식간에 대영제국의 주요 식민지로 성장하고 1600년대 후반 영국의 아메리카 식민지 혼자서 대영제국 30%의 경제력을 보유하게 된다. 또한 이시기 유럽에서 격동의 시기를 피해 가톨릭 신자들이 들어오고 맨처음 영국으로 이주해온 청교도 신자들을 밀어내며 미국의 주요 지배층으로 떠오른다. 1701년 인도에서 영국과 무굴 제국 간의 분쟁인 벵갈 전쟁이 일어나고 영국은 전비를 보충하기 위해 미국에서 막대한 세금을 징수해간다. 1711년 전쟁은 끝나지만 영국은 여전히 무지막지한 세금을 징수하고 있었고 이는 약 60년간 이어지게 된다. 이에 1776년 미국인들이 자체적으로 무장을 하고 들고 일어나는 아메리카 폭동이 발생하게 되고 영국 본토에서 진압을 명령하며 이는 미국 독립혁명으로 확산되게 된다. 1777년 서쪽 끝 캘리포니아에서도 봉기가 일어나며 마침내 전쟁은 미국전역으로 확산한다. 이후 1778년 조지 워싱턴을 비롯한 독립군 지도자들을 모아 필라델피아에서 독립선언문을 발표하며 영국으로 부터 독입했음을 선언하게 된다. 1780년 마침내 영국을 몰아내고 정식으로 미합중국이 탄생하게 된다. 독립군의 영웅인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이 되지만 여전히 미국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남아있었다. 바로 노예제고립주의였는데 초기 미국의 양당을 구성하던 연방당민주당은 각각 자유주의,보수주의를 주장하며 첨예하게 대립하였고 1799년 상원에서 양당의 의원들이 혈전을 벌이는 1799년 미국 국회의사당 폭동이 발생하게 되고 당시 대통령인 제임스 먼로는 의회 해산을 명령하고 먼로 독트린을 발표하며 내부정리에 들어가는 동시에 외부와의 소통을 중단하고 아메리카 끼리 뭉치기 시작한다. 행정부의 개입으로 정치 갈등은 줄어드는줄 알았으나 마틴 밴 뷰런 시기부터 다시 갈등은 눈덩이처럼 커지게 된다. 반 노예제를 부장하던 연방당은 휘그당으로 발전해 적극적인 사회개혁을 주장하지만 노예제가 대세이던 남부로 텃밭을 잡은 민주당은 보수적으로 변하며 갈등의 골은 더욱 커지게 되지만 당시 미국의 경제는 눈부시게 성장중이었고 프랑스와 중국을 제치고 영국의 턱밑까지 쫓아오고 있었다. 또한 이시기 대기업이라 불리는 메가코프들이 급속하게 증가하는 동시에 무섭게 성장하며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를 잠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제가 커지면서 노예제의 규모도 커지게 되고 1830년 기준 미국의 흑인 노예 비율은 전체 인구의 15%까지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1861년 끝내 노예제 철폐론자인 에이브러햄 링컨이 당선되고 남부의 주들이 대규모로 연방탈퇴를 선언하는 대사건이 터지면서 제1차 미국내전이 발발하게 된다.

붕괴와 재건

1863년 본격적으로 내전이 진행되게 되고 남군은 흑인 노예들을 총알받이로 내세우며 북군을 몰아세우고 있었고 버지니아 전투에서 북군이 대패하며 워싱턴 D.C가 함락되게 된다. 수도가 함락되고 대통령인 링컨도 포로로 잡히자 휘그당은 분열되어 협상을 주장하는 국민당과 항전을 주장하는 공화당으로 분열되 외부의 적을 뒤로한채 이권 다툼에만 열중하는 모습이다. 이후 북군은 디트로이트를 임시수도로 정하고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남군은 북군의 해군을 궤멸 시키고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우수한 전쟁 무기를 바탕으로 대규모 학살을 자행하며 임시수도 코앞인 클리브랜트로 진격해오는 와중에도 내부 갈등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북군인 미합중국이 붕괴되고 결국 보다못한 북군의 총사령관 윌리엄 테굼세 셔먼이 쿠데타를 일으켜 행정부를 장악하고 의회를 해산 시키며 전쟁을 지휘하기 시작한다. 이 쿠데타를 기점으로 전황은 다시 북군이 가져가나 전쟁은 10년 이상 이어지게 되고 막대한 피해를 남긴채 북군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화학무기의 사용으로 미국 전체의 농경지중 40%가 황무지로 변했고 산림의 20%가 파괴되었다. 거기에 전쟁 특수로 세력을 키운 메가코프들은 군사복합기업으로 발전하며 독자적인 민병대를 보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후 셔면은 대통령직 사임을 거부하고 미합중국 군사정부를 선언하며 기존의 헌법을 모두 무시한채 새로운 헌법을 만들며 독재권력을 만들고 공포정치를 진행하였으며 기업들을 등에 업은채 절대권력을 휘두루기 시작한다. 1891년 셔먼은 사망하고 문민정부가 복원되기를 기대하였지만 그의 뒤를 이은 윌리엄 메킨리는 민정 이양을 거부하며 독재를 이어나간다. 이에 보다못한 국민들은 1897년 자체적으로 무장을 하고 봉기를 일으키는 워싱턴 폭동이 일어나게 되고 영국과 프랑스의 개입으로 이는 제2차 미국내전으로 번지게 된다. 민병대는 신 미합중국의 건국을 선포하게 되고 민주주의 정권이 복원 되었음을 알리게 되자 국민당의 정치인인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민병대를 통합하고 기업들의 지원을 이끌어내며 군사정권에 맞서기 시작한다. 1903년 윌리엄 메킨리가 멕시코로 망명하며 전쟁은 국민들의 승리로 끝나게 되지만 전쟁의 피해는 참혹했다. 20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죽거나 다쳤고 공업력의 70%가 파괴되었다 강과 산들은 대부분 오염되었고 더스트 볼리라 불리는 황무지들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었다. 거기에 분쟁에 개입하지 않고 조용히 있어왔던 가톨릭들이 기업들과 함께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고 혼란은 내전 이전보다 더욱 커지게 되었다. 결국 루스벨트의 뒤를 이은 윌리엄 J. 브라이언은 1910년 브라이언 독트린 일명 명예로운 고립을 선언하며 자발적으로 다시 문을 걸어잠근다.

대굴욕

1910년 명예로운 고립을 선언한 이후 미국의 경제는 다시 회복되지만 여전히 기업과 정치 문제는 남아있었다 보잉을 비롯한 군사복합기업들은 자체적으로 기술혁신을 일으키고 초 메가코프로 발전하며 경제를 잠식시키고 정치에 개입하고 있었고 국민당은 민주당을 흡수해 국민진보당으로 변신하며 공화당을 물리적으로 굴복시키고 사실상 미국 제1당에 등극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1914년 유럽과 아시아에서 1차 기업전쟁이 터지고 러시아 내전이 일어나지만 협상국의 지원 요청에도 미국은 여전히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고 기업들은 유럽에서 막대한 이득을 뽑아온다. 1918년 양측의 협상으로 전쟁은 끝나고 기업들이 유럽에서 벌어온 돈은 광란의 20년대를 겪는데 큰 영향을 끼친다. 이시기 미국은 브라이언 독트린을 폐지하고 당시 대통령인 제임스 콕스개입을 선언하며 세계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광란의 20년대 동안 쌓아진 경제력은 모두 거품이었고 1928년 찰스 커티스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커티스는 거품경제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기존의 자유방임 정책에서 JP모건을 비롯한 기업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입주의적 정책으로 변화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시장개입 정책은 대실패로 끝났고 오히려 거품이 모두 꺼지며 대공황이 일어나게 된다. 미국 경제의 반비 증발하게 되고 노업을 비롯한 산업 전반이 파탄난다. 공화당의 지지율은 바닥을 쳤지만 경쟁 상대였던 국민진보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암살되고 부정선거로 커티스는 연임에 성공한다. 이후 그는 부정부패로 공황을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묵살한채 개인 재산을 늘리는데만 집중했고 대공황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게 된다. 결국 1933년 보다못한 공화당이 직접 탄핵시키며 캘빈 쿨리지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한다. 쿨리지 정부는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의견을 받아들여 수정자본주의 정책을 시행하게 되고 미국은 대공황에서 점점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1936년 선거에서 국민진보당의 강경파인 존 낸스 가너가 당선되고 모든 정책은 다시 백지화 되게 되고 유럽과 프랑스가 블록경제를 형성하며 공황은 다시 심해지게 된다. 1939년 나치독일이 일본과 추축국을 결성하고 프랑스를 침공하며 2차 기업전쟁이 터지게 되고 독일은 순식간에 영국과 서러시아를 제외한 전유럽을 재패하고 일본도 중국을 무섭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1940년 가너가 재선에 실패하고 원델 윌키가 당선되며 미국의 외교정책은 급변한다. 추축국에 무역 금수조치를 내리고 영국과 중국에 무기대여법으로 지원해주며 전쟁 특수로 장기불황에 빠져있던 경제도 다시 살아나게 된다. 하지만 1941년 여름 금수조치에 반발한 일본이 진주만과 필리핀을 동시에 침공하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미국을 전쟁에 끓여들었고 얼마뒤 독일도 소련을 침공하는 독소전쟁을 일으켜 미국과 소련도 참전하게 된다. 하지만 이 두 국가도 루스벨트와 스탈린의 부재로 경제가 박살나있는 상태였고 그해 겨울 모스크바가 함락되고 1942년 봄 레닌그라드와 볼고그라드도 함락되며 소련은 항복하게 된다. 태평양에서는 니미츠의 활약으로 일본 해군을 미드웨이 해전에서 수장시키며 전쟁의 주도권을 잡는다. 하지만 미국이 태평양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서 독일은 바다사자 작전을 진행하며 독일 공수부대가 도버 항구에 착륙하게 되고 독일군이 영국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하자 속수무책으로 밀려 결국 미국은 캐나다,호주와 합의한 뒤 독일과 비밀협정을 맺어 전쟁에서 이탈하게 되고 일본과의 전쟁에 집중하게 된다. 정부는 이를 은폐하지만 얼마전 실각된 국무장관 코델 헐이 뉴욕 타임즈에 이를 전달하게 되고 그대로 언론에 뿌려버리며 미국 전체는 충격에 휩싸인다. 굴욕적인 패배에 대해 미국 전역에서 윌키 정부를 타도하는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고 수도 워싱턴에서는 워싱턴 대폭동이 일어나 한때 백악관 까지 위협당하며 정부가 필라델피아로 피신하기도 하였다, 분노한 국민진보당은 자기 당 소속 주지사들을 설득하여 연방을 탈퇴시키는 1944년 미국 헌정위기를 일으켰고 대선을 앞둔 웬델 윌키는 울며 겨자먹기로 협상해 이들을 정부에서 간섭받지 않고 온전한 권한을 갖는다는 신헌법을 만들며 자유주 상태로 사실상 독립적인 국가로 활동하게 된다. 얼마뒤 선거에서 전국민적인 공분을 샀던 윌키는 당연하게 재선에 실패하게 되고 전쟁을 끝내겠다고 선언한 앨번 버클리가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고 당선된다. 이시기 미군이 필리핀을 탈환하고 이오지마 까지 위협받으며 미 공군이 일본전역을 폭격하는 상황에서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일본공산당이 혁명을 일으켜 정부를 전복시키고 일본인민공화국을 건국하며 협상을 하기 시작한다. 일본군의 해체 식민지에서의 철수, 기존 지도부의 미국 송환을 조건으로 난징 강화 조약이 채결되며 전쟁은 끝나게 된다.

거인의 기상, 그리고 현재

2차 기업전쟁이 끝나고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들의 수장으로써 독일에 맞서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고 1948년 바클리는 바클리 독트린을 발표하며 독일과의 냉전을 공식화 했다. 사라진 유럽 국가들을 대신해 미국은 중화민국과 호주,캐나다,뉴질랜드, 남아메리카를 포섭해 자유국가기구를 구성해 라이히스팍트를 창설한 독일과 대립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전쟁중 잠잠하던 기업과 정치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고 국민진보당이 분열되어 일부 민주당계 인사가 공화당에 합류하며 공화당은 공화민주당으로 재편된다. 전쟁 기간중 설립된 군사복합기업인 록히드 마틴은 보잉과 방산기업을 통합하며 초거대 기업으로 발전했고 전세계에서 각종 계열의 기업들에서도 통합된 초거대 기업이 등장하면서 기업이 본격적으로 국가를 완전히 집어삼키는 사례가 나오기 시작한다. 록히드 마틴은 국민진보당에 대규모 로비를 하여 친기업 정당으로 변질시켰고 정치갈등을 부추겨 의회가 단결하여 기업 독재를 막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다 1960년 반기업 성향의 인물이었던 해리 F. 버드가 당선되고 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키며 기업들을 통제하기 시작하자 포드는 공화민주당과 국민진보당 양측에 로비를 하여 대통령을 탄핵 시키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키고 이것이 뉴욕 타임즈를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지자 격분한 군부와 시민들이 1963년 반기업 폭동을 일으키며 4개가 넘는 초거대 기업이 해체 당하게 되고 수천명의 기업 인사들이 처형된다. 대통령직을 승계한 리처드 닉슨은 당황하며 국민들을 말리기 사작했고 1964년 대선 시즌이 다가와서야 폭동은 잠잠해진다. 살아남은 기업들은 신 메가코프를 형성하며 더욱 거대해졌고 폭동 이전과 변한것은 없었다. 1964년 공화민주당의 극우파인 베리 골드워터가 당선되고 골드워터는 지난 폭동을 다시 이용해 기업 대숙청을 준비하게 된다. 1965년 리먼브라더스 강제 국유화를 시작으로 공수사단을 동원한 강압적인 제압으로 기업들을 찍어누르기 시작했고 기업이 갖고있던 80%가 넘는 미국 주식 지분은 상당수가 정부와 공기업에게 넘어가게 된다. 기업들은 반발하였고 미국 시장 철수로 정부를 압박했지만 기업만큼은 미국과 뜻을 같이하고 있던 독일이 정부를 지지하면서 협박도 먹히지 않게되고 기업 대숙청은 골드워터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또한 이시기를 기점으로 미국이 독일의 경제력을 추월하고 국민들의 생활수준도 크게 올라가며 광란의 60년대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기업 문제에 가려져 수면 아래에 있던 사회 문제가 크게 대두되었고 인종차별을 계기로 일어난 1966년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을 시작으로 흑인 민권법운동이 전국으로 퍼져 골머리를 앓고있다. 거기에 1969년을 기점으로 남아메리카 정치위기멕시코 내전,카리브해 분쟁은 라틴아메리카 전역의 쿠데타,내전,전쟁으로 번지고 있었고 이는 남미를 세력의 큰 축으로 두고있던 미국에게 큰 타격으로 온다. 수백만명의 난민들이 멕시코 국경과 바다를 건너 매년 미국으로 불법이민을 해오고 있었다. 골드워터는 이민관리국을 설치하며 강경하게 대응하지만 난민 행렬은 막을수 없었고 선거에서 넬슨 록펠러에게 모든걸 떠넘기며 도망치게 된다.

사회


대기업
폭군이 죽으면 그의 지배는 끝나지만, 순교자가 죽으면 그의 지배가 시작된다. - 조이 산타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