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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데우스 공===
===에른데우스 공===
장남이었던 그는 왕위 계승 서열 1순위이었기에 짧은 시일 내에 해군으로서의 삶을 끝내야만 했으며, 1885년의 해군 장교 직책에서 전역한 뒤, 1886년 8월 11일 [[구스타우스 4세]]로부터 [[에른데우스]] 공(Hertug af Erngdeus), [[리에필스]] 백작(Earlug af Liepils), [[아지즈크네]] 남작(Friherre af Ahsizkne)의 칭호를 부여 받고, [[로렌스 베르메치츠]](Lorengs Bergmechiz)로부터 헌법 및 왕실 수업을 받았다. 그의 아내였던 [[빅토리아 알렉산드라 올가 마리]](Victoria Alexandra Olga Mary)<ref>[[알렉산드라 애 단마르크 왕녀]](Alexandra of Denmark)와 [[대영제국]]의 국왕. [[에드워드 7세]](Edward VII)의 차녀였다.</ref>는 에른데우스 공 부인 전하(Hendes kongelige højhed Hertugessa of Erngdeus)의 호칭을 얻었다.


===재위기간===
===재위기간===

2018년 5월 24일 (목) 22:24 판

에스트리츠 6세
(언어 오류(da): Estrits Ⅵ)
Estrits Veyo-Vidus Alberts Wilens
에스트리츠 6세의 초상화, 아델스 위리경, 1919년
인물 정보
왕호 블라쉬덴의 국왕이자 오덴베르의 상원의장
(Kongen i Det Blaswiden og Det Ordenberg Præsident for senatet)
이름 에스트리츠 베요-비두스 알베르츠 빌렌스
(Estrits Veyo-Vidus Alberts Wilens)
생몰년도 1860년 7월 11일 ~ 1931년 9월 25일
출생지/사망지 블라쉬르펜 크노르 허스/블라쉬르펜 베른하르스
재위기간 1913년 5월 3일 ~ 1931년 9월 25일

에스트리츠 6세(언어 오류(da): Estrits Ⅵ, 1860년 7월 11일 ~ 1931년 9월 25일) 혹은 에스트리츠 베요-비두스 알베르츠 빌렌스(언어 오류(da): Estrits Veyo-Vidus Alberts Wilens)은 블라쉬덴-오덴베르 국가연합(Blaswiden-Ordenberg Konføderation)에서 블라쉬덴 왕국의 국왕이자 올르덴게르가(House of Orldengerg)의 수장이었으며, 오덴베르 공화국의 종신 상원 의장(Præsident for senatet)을 역임하였다. 아버지인 구스타우스 4세(Gustavus Ⅳ)가 1913년의 사망하자 왕위에 올랐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부터 전간기 중반이 재위기간과 겹쳤으며, 그의 재위기간은 큰 혼란의 연속이었으나, 그는 블라쉬덴-오덴베르의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으며, 그의 재위 기간 동안 전제군주제가 퇴색되고 의원내각제에 의거된 민주주의가 전격적으로 도입되었다.

전반적인 생애

유년기

에스트리츠 6세는 1860년 7월 11일 조부인 에스트리츠 5세의 재임 기간 중 블라쉬르펜의 크노르 허스에서 에른데우스 공이자 훗날 국왕으로 즉위하는 구스타우스 4세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1860년 8월 3일, 드라카르궁의 성 올르덴게르 성당에서 당시 헤르데릭스보르 대주교였던 스메스 초다르키우스(Smes Chodarkius)에게 세례 받았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학을 보냈다가, 1880년의 귀국하여 아버지에게 제왕학을 배웠다. 한편으로 그의 아버지, 구스타우스 4세는 "해군 생활이 사내아이가 받을 수 있는 최상의 교육"이라고 생각했기에, 1882년, 22세의 나이로 에스트리츠 6세는 그의 동생과 함께 KBOM(Kongelige Blaswidene-Ordeberge Marine)베르니키아의 해군 생도로 활동하게 되었는데, 그의 동생들이 해군 생활에 대해 어려움을 겪던 것과는 달리, 에스트리츠 6세는 해군 생활을 즐겼으며, 이 당시의 해군 복무 경험은 훗날 그의 양육 방식과 생활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에른데우스 공

장남이었던 그는 왕위 계승 서열 1순위이었기에 짧은 시일 내에 해군으로서의 삶을 끝내야만 했으며, 1885년의 해군 장교 직책에서 전역한 뒤, 1886년 8월 11일 구스타우스 4세로부터 에른데우스 공(Hertug af Erngdeus), 리에필스 백작(Earlug af Liepils), 아지즈크네 남작(Friherre af Ahsizkne)의 칭호를 부여 받고, 로렌스 베르메치츠(Lorengs Bergmechiz)로부터 헌법 및 왕실 수업을 받았다. 그의 아내였던 빅토리아 알렉산드라 올가 마리(Victoria Alexandra Olga Mary)[1]는 에른데우스 공 부인 전하(Hendes kongelige højhed Hertugessa of Erngdeus)의 호칭을 얻었다.

재위기간

각주

  1. 알렉산드라 애 단마르크 왕녀(Alexandra of Denmark)와 대영제국의 국왕. 에드워드 7세(Edward VII)의 차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