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황 (아침해의 원유관)

커피와 사탕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4월 26일 (금) 16:2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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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 목록 ] 
 [ 소개 ]  
아침해의 원유관
아침해의 원유관은 임진왜란 축소로 인해 뒤바뀐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세계관입니다.
청화대에 이화문이 꽂혀있는 이 세계의 국가, 사회, 정치 및 문화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대한국

일본국

대금민국

러시아 차르국

중화민국

티베트 왕국

중화인민공화국

소련

마다가스카르 왕국

몽골

타이완민주주의인민공화제국

대한제국

대한 공화국

예케 몽골 울루스

대청제국

만주 사회주의 공화국
대한제국 장조 고손
완흥군 이재황
完興君 李載晃|Yee Jae Hwang
출생 1852년 9월 8일
조선 한성부 정선방 구름재동 흥선군 사저
사망 1946년 2월 17일
대한국 한성부 사저
국적 조선 → 대한제국 대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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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흥선군 이하응 흥선군비 민씨
배우자 완흥군비 민씨 (정실)
이씨 (첩)
장씨 (첩)
엄씨 (첩)
자녀 슬하 4남 1녀
종교 유교
작호 완흥군(完興君)
명부(明夫) / 성림(聖臨)
주연(珠淵)

개요

대한제국의 황족이자 유명 정치가 흥선군 이하응의 아들, 그리고 푸이와 결혼한 혜양공주의 아버지.

개화기 당시에 전통적 유학 보존을 지지하며 근대원격제도 등의 제도적 보장에 앞장선 경력 또한 존재한다.

생애

1852년 조선 한성부에서 흥선군 이하응의 아들 중 하나로 태어났다. 개혁 단행 이후에 성인이 되고부터는 제국주의에 동요하여 정만론 찬성파에 소속되었으며, 이후 황국협회에서 이하응을 잠시 보조하기도 했다. 이 뿐만 아니고 근대원격제도 제정 당시에는 황명을 받아 직접 제정식을 선포하는 등의 이벤트성 행사도 종종 주관하는 등 나름 전통, 명분과 관련된 내무에서는 감초같은 황족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1925년에는 이영 황태자의 유럽 순방을 함께하기도 했으며, 이 당시에 유럽산 사치품들을 원가 가격대로 구매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관제원이었던 인천 충렬서원의 관리를 잠시 맡기도 했는데, 하필 이 직종으로 인해 국가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황족이 김창암의 집권기간동안 국체유교 숭배 활동의 중심지 중 한곳에서 일했다는 명분으로 전범황족으로 분류, 전범재판에서 3개월형과 벌금형을 선고받고 잠깐 형무소에서 복역했으나, 고령으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1달간 복역한 뒤 풀려났다.

문제는 저 전범황족 이력에 포함되는 바람에 미국의 재산압류 대상에 포함되었다는것. 결국 그는 본가에 보관해두었던 재산을 전부 정부에게 압류당하는 사태를 겪게 되었고, 평소에 크던 그의 씀씀이도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면세특권도 사라지면서 신분과 재산을 잃고 빈곤한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고, 졸지에 만왕가의 재산이 남아있던 딸 덕혜에게 의존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한번은 건강검진을 위해 잠시 집을 나선적이 있었는데, 이 당시 비어있던 그의 집에 누군가가 침입하여 남아있던 양장이나 귀중품을 전부 털어가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한동안 한복만 입고 지내야 했었다고.

결국 1946년, 병세가 악화되어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나마 다음 해부터는 본격적으로 황적이탈령이 시행되어서 황족 취급조차 못 받았을테니, 어찌 보면 때를 잘 골라서 간 편.

가족관계

기타

부이와 덕혜의 결혼을 그닥 탐탁치 않아했다고 한다. 망국의 왕조인 애신각라 왕가와 엮여서 좋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듯.

젊은 시절 황제였던 이연보다 오히려 서양 문물에 더 관심이 많았고, 와플과 커피 등으로 대표되는 양식도 상당히 즐겼다고 한다. 이러한 면모 탓인지, 그를 중심으로 당대 젊은 황족들 사이에 급격히 서구화 문화가 퍼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낮에는 일을 하지 않고 저녁 때부터 일을 해서 밤을 새었으며, 아침이 돼서야 잠이 드는 올빼미족이었다고 한다. 부인인 민씨도 밤을 샌후 새벽 5시쯤 잠들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야식도 즐기게 되었다고.

한번은 만주를 방문했을 당시 만주에서 수가 줄어가던 여우가 만주 총독부에 의해 포획되어 그에게 진상된적이 있었는데, 이에 크게 기뻐한 완흥군은 총독부에 은사금을 내렸다고 한다. 참고로 저 여우의 꼬리털은 죽을때까지 고급 목도리로 만들어 두르고 다녔다고 하며, 지금도 한국 황실방물관에 전시품으로서 소장되어 있다.

역대 가장 장수한 황족이라는 타이틀의 소유자로, 그가 죽을 당시 향년 104세였으며, 칭제건원 이래 한국의 연호가 4번이나 바뀐 시점이기도 했다. 어찌보면 대한제국사의 살아있는 증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물.

대중매체에서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