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멕시코 내전

Lordvictory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7월 31일 (월) 14:37 판
제2차 멕시코 내전
Second Mexican Civil War
Segunda Guerra Civil Mexicana
날짜
1994년 1월 1일 ~ 2002년 11월 4일
장소
멕시코 전역과 과테말라 북부
원인
페소 위기, 치아파스 반란 격화
결과
멕시코 연방정부 해체, 남미 정세 혼미, 과테말라 내전 연장
영향
전후 조직 범죄 급증, 미국의 마약과의 전쟁 전면화, 멕시코 전역 황폐화, 미주 대륙 내 진영간 분쟁 격화
교전 세력
멕시코 합중국
미합중국
과테말라
EZLN
EPR
FARC
MCP
유카탄 공화국(1998~2000)
시날로아 카르텔
걸프 카르텔
할리스코 누에바 제네라시온
후아레스 카르텔
로스 카바예로스 템플라리오스
지원국
캐나다
콜롬비아
칠레
이스라엘
호주
쿠바
베네수엘라
URNG
FMLN
ELN<
중화인민공화국(1996~2000)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1997~1999)
MS-13
지휘관
에르네스토 세디요†(1994~1996)
에밀리오 추아페트(1996~2000)
빈센트 폭스(2000~)
부사령관 마르코스†
사령관 라모나
사령관 사파타
에드먼도 레예스
캡틴 에밀리아노
엘 마요
엘 차포
나초 코로넬†
엘 차피토
병력
xx명 xx명 xx명
피해 규모
(피해규모) (피해규모2) (피해규모3)

개요

제2차 멕시코 내전(스페인어:Segunda Guerra Civil Mexicana)은 궁극적으로는 멕시코 정부 및 친정부 세력과 치아파스 반군을 포함한 멕시코 내 좌익 세력 사이에서 벌어진 내전이다. 에르네스토 세디요 대통령의 멕시코 정부로부터 분리되고자 한 치아파스 반란 세력과 다른 국내외 좌익 게릴라, 그리고 마약 카르텔이 포함된 비대칭 분쟁이었다.

멕시코 정부의 위기는 1994년, 페소 위기 및 1994년 EZLN의 멕시코시티 폭탄테러와 그 직후의 멕시코 정부군이 EZLN 수뇌부를 암살한 것에서부터 촉발된 후 전면적인 내전 형태의 무장 충돌로 확전되었다. 치아파스의 반란을 시작으로 같은 해 결성된 EPR이 벌인 전쟁은 미국의 참전과 베네수엘라, 쿠바의 직접적인 개입 이후 대리전으로 비화되었다.

멕시코군과 멕시코 연방정부, 그리고 미국 및 과테말라로 알려진 동맹국은 멕시코 정국의 안정화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반면 멕시코 정부 전복 및 적화를 목표로 베네수엘라, 쿠바, 중국 등의 지원을 받고 있는 좌익 야권 세력과 대규모 게릴라 군벌의 연합 그룹이, 또 다른 진영은 처음 멕시코 정부에 의해 용역되었으나 게릴라 군벌화된 다수의 카르텔 조직들이다.

참전 세력 거의 대부분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치아파스 반란세력(EZLN)과 내전이 고조되며 유카탄 반도의 마야인들이 19세기 유카탄 공화국의 후신으로서 건국한 유카탄 공화국이 설립되는 등 분리주의가 난립하며 전쟁의 향방은 극히 혼란스러워졌다. 내전은 1996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2000년 이후 잠정적으로 모든 교전 및 폭력행위는 중단 및 축소되었다.

미국과 과테말라 같은 많은 인근 국가들이 내전에 직접적으로 개입해 멕시코 정부를 지원했다. 쿠바와 중국, 북한, 그리고 FMLN과 ELN, URNG 등 남미 게릴라들은 멕시코 내전의 좌익 반란군에게 군사 부문의 지원을 보였으며, 베네수엘라는 직접적으로 군사력을 투입해 멕시코 내 정부군에 대한 공습 및 광범위한 파병으로 멕시코의 신생 MCP 정권을 후원했다.

미국과 과테말라는 멕시코 정국이 파탄적인 상황에 이르렀을때, 자국 내에 미칠 영향력을 고려하여 멕시코 정부 및 친정부 군대를 군사적으로 지원해왔으며 미국은 1996년 멕시코 정부의 요청으로 치아파스 지역에 미 해병대 일부를 파병하였으나 1997년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발생한 멕시코계 좌익 반란의 동조자들에 의한 폭동과 테러리즘으로 1997년 이후 직접 개입을 택했다.

미국은 1996년부터 치아파스 반군과, 1997년 이후부터는 EPR 등의 좌익 반란세력 등과 싸워왔으며, 멕시코 내 반정부 세력들을 억제하기 위해 여러번의 대규모 지상 교전 끝에 멕시코 내 북서부 지역들을 점령하고 있다. 동시에 2001년 이후부터는 멕시코 정부가 사실상 유명무실화 된데다, 카르텔 및 남은 좌익 반군에게조차 밀리자 빈센트 폭스의 멕시코 자유정부로 대체하였다.

1997년과 1999년 사이에 멕시코에서만 발생하기 시작한 전투가 과테말라로도 확산되었다. 멕시코 정부군에게 밀려난 사파티스타나 몇몇 EPR 파벌들이 URNG의 호의, 그리고 지원들을 바탕으로 아예 과테말라 국경 너머에서로 교전이 이동, 확대되면서 과테말라군과도 직접 교전을 벌였다. 이는 남미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다.

과테말라는 기존에는 멕시코 정부를 간접적으로 지원했으나, 대규모 난민들이 북쪽 대신 남쪽으로 도망쳐와 냉전 종식 직후 혼란스러웠던 과테말라 국내의 상황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하자 처음에는 난민 수용의 억제와 국경에서의 산발적인 분쟁들, 무엇보다 국내 좌익 게릴라였던 URNG가 무장해제를 이행한지 고작 2년 밖에 흐르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민감하게 대응했다.

실제로도 다수의 URNG는 유엔의 감시 하에도 불구하고 과테말라 정부에 대한 무력 행위를 포기하고 무장해제를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유한 군사 자산들을 대거 멕시코 남부의 사파티스타 반군에게 넘겨주고, 옛 URNG의 방식을 포기하지 못한 URNG 내의 호전적인 성향의 파벌들이 멕시코로 직접 이동해 EPR과 EZLN을 지원했다.

또한, 내전에 대해 불개입을 선언한 콜롬비아는 자국 내 게릴라가 멕시코 반정부 세력을 돕기 위해 베네수엘라에 의해 용병처럼 투입되고, 나아가 2000년 이후부터 베네수엘라가 직접적으로 멕시코 지역에 군사를 배치하고 반정부 세력에 대규모 군사 원조를 보내기 시작하면서 콜롬비아 군을 파병하고, 국경에서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양 군이 대치했다.

이 전쟁으로 약 200,000여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며 멕시코 내전은 20세기 냉전 종식 직후 냉전 당시부터 이어지던 이념간의 충돌로 인해 벌어진 마지막 제1진영과 제2진영 양측의 대리전이자, 동시에 최초의 냉전 이후 이념 전쟁이었다. 이런 경향은 21세기 들어 대부분 해체되거나 정당조직으로 변화한 옛 좌익 게릴라들이 멕시코 내전을 위해 결집한 것에서도 나타난다.

멕시코 내전 동안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심지어 동북아시아와 북아메리카에서 위태롭게 존재하던 수 많은 해산되거나, 해산중인 많은 무장 좌익 세력들, 또는 그들에 동조하거나 지지하는 이들이 멕시코 반정부 세력에 개인 단위부터 조직 전체가 가담했다. 이들 대다수는 전쟁이 끝난 뒤 멕시코 정부에게 그들의 신변에 대한 문제를 야기했다.

구 멕시코 합중국이 아닌 신생 멕시코 정부는 이러한 반란이 재차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거의 대부분의 이념형 전쟁범죄를 엄단하려했으나, 이들 대부분의 국적이 외국인인 이상 극형에 처하는 것은 내전 이후 신뢰를 잃은 멕시코 정부로서는 우려되는 일이었다. 미국은 이들을 내전이 끝난 2002년 이후부터 그들의 본국으로 송환했다.

그러나 송환된 이들 대부분은 마치 이슬람 지하디스트들 처럼 다시 본국에서 재무장하거나 유사 조직을 지원하는 등, 냉전 종식 이후에도 좌익 게릴라들의 뿌리가 완전히 일소되지 못하게끔 만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멕시코 내전 이후 북남미는 베네수엘라와 쿠바, 또 룰라 정권의 브라질이 포함된 반미 진영과 미국을 위시로 한 친미 진영 양측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한편 내전 이후 터키의 시리아 침공과 이라크-쿠르드 전쟁 이후 레반트 내에서 전반적인 혼란과 국내적인 갈등이 발생하면서 취약해진 레반트 지역에서 알 카에다와 지하디스트가 본격적으로 레반트 내에서 궐기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무장 행위가 절정에 이르렀을때 국외의 지하디스트와의 연계가 문제되며 이 시절 멕시코 반란에 가담했던 국외의 동조세력과의 연계가 다시금 조명받았다.

분쟁은 수백만 명의 멕시코인들이 미국, 캐나다, 과테말라, 벨리즈, 엘살바도르와 같은 이웃 국가로 떠나기 시작하면서 멕시코 내전 당시와 그 뒤로 상당한 난민들이 발생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는 멕시코 난민들에 대해 1997년부터 1999년까지 미 서해안 및 남부 등의 히스패닉 거주지역에서 발생한 폭동이 재차 발생하는 것을 우려해 제한적으로 받았다.

반대로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는 그러한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 클린턴 행정부 시기보다 조금 더 미국으로의 이주를 완화하였으나, 9.11 전쟁 이후 불거진 안보 문제로 다시금 축소되었다. 이러한 멕시코 난민들의 대대적인 미국 이주는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의 초당적인 조치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은 남쪽의 이웃국가보단 미국으로의 이동을 택했다.

텍사스에서만 수십만명의 난민들이 축적되었고, 이들 대부분은 내전 이후 훗날 멕시코 국가 전반을 장악해나가기 시작한 거대 마약 카르텔들에게 동조하면서 난민 중 절반 이상이 카르텔의 공범이자 미국으로의 운반책, 공급책으로 변했다. 이들은 2002년 이후 시작된 마약과의 전쟁이 전면화되자 대부분이 미국을 떠나기 위해 노력했다.

전쟁 동안 여러번의 평화를 이행하기 위한 시도가 벌어졌다. 1996년 치아파스 반란이 멕시코군의 강경대응으로 촉발되면서 미 해병대의 파병과 주둔 이후 미 정부의 중재 하에 치아파스 측과 멕시코 정부 사이의 협상이 그 해 11월 뉴욕에서 있었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협상은 결렬되었다. 이후 치아파스 반란은 그대로 벌어졌고, 멕시코군을 상대로 교전이 시작되었다.

미 공군이 공습을 개시하면서 협상은 완전히 무산되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00년 6월, 유엔이 직접 주도적으로 나서 제네바에서 양측의 휴전을 위한 협상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는 당시 베네수엘라의 개입, 그리고 신생 MCP 정권의 탄생이 겹치며 결렬됬다. 이후 2002년 캐나다의 중재 하 뉴욕에서 MCP 반란의 중지를 골자로 한 종전 선언이 성사되었다.

같은 해 멕시코 내에서 자체적으로 EZLN과의 교전 중단에 대한 협상을 타진했다. 11월 4일, 치아파스와 유카탄 지역의 특수 자치를 허용하는 해당 협상은 선언 즉시부터 효력이 발생했다. 이때 대부분의 EZLN 및 특히나 쿠바의 지원 없이는 유지가 불가능했던 유카탄 지역의 반란군은 대부분 협상 결과에 따라 투항했다.

하지만 그들 중 EZLN의 일부 파벌의 잔당들은 EPR에 합류하거나 오지로 숨어들어 투쟁을 계속했다. 이들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들과 활동 영역이 겹치는 이웃한 카르텔에게 흡수되었고, 대부분은 몇년 후의 마약과의 전쟁 동안 미국에 의해 토벌되었고 마약과의 전쟁 이후 소탕되어 2000년대 초반 이후 완전히 사라졌다.


배경

페소 위기

뱀의 심장 작전(Operation Heart of the Serpent)

전개

세디요 대통령 암살과 멕시코 정국의 혼미

미국의 참전과 확전

쿠바와 베네수엘라의 개입

결과

주요 교전 세력

또 다른 이야기:마약과의 전쟁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