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4세
Karl 4
1994년
1994년
지위
부르고뉴 국왕
재위 1989년 5월 7일 ~
즉위식 1989년 5월 5일
전임자 카를 3세
총리 셍쟝드몽 샬롱 (1989 ~ 1994)
샤토브리앙 로에악 (1994 ~ 2005)
발렝시엔 랑스 (2005 ~ )
신상정보
출생일 1950년 1월 31일(1950-01-31) (74세)
출생지 아우플란트 아우플란트 그로닝헨
가문 합스부르크 왕가
부친 카를 3세
모친 플라츠 왕비
배우자 아우스 왕비
자녀 크리스티안 공작
베르나르 공작
종교 티베트 불교

카를 4세(독일어:Karl 4), 본명 에리히 폰 힐데스하임(독일어:Erich von Hildesheim)은 부르고뉴왕정국의 국가원수이다. 1950년 태어나 황태자로 20여년을 지내다가 1989년 (39세) 부르고뉴 칼레의 클로펜부르크(Kloppenburg)궁에서 대관식을 가졌다.

생애

아우플란트의 마스베르크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직후 부르고뉴 칼레의 궁궐로 옮겨져 어린 시절을 보냈고, 15세까지 칼레의 클로펜부르크 궁에서 기거하다가 1965년 보안상의 이유로 모뵈쥬의 로젠하임궁으로 이사하였다. 20세에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였으며, 신 케인스주의에 대한 고찰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1979년 논문을 받았다. 1980년 부르고뉴로 돌아와 왕세자 직위를 받았다. 1989년 4월 30일 부친인 카를 3세의 사망으로 1989년 5월 5일 즉위식을 가졌고, 5월 7일부터 공식적으로 부르고뉴의 국왕이 되었다.

대인 관계/정치 성향

카를 4세는 진보주의자로 분류된다. 그가 대학을 다니던 1970년 ~ 1979년 사이는 반전 분위기와 68혁명으로 인한 혁명적 분위기가 20대 사이에서 퍼지던 때였는데, 카를 4세는 여기에 영향을 받아 진보적 사관을 갖게 된것으로 보인다. 동성애 찬성, 마리화나 합법화, 빈민층 적극 지원등을 지지했으며, 1990년 국가안전법을 폐지하는데 힘을 보탰다.

본인 스스로는 케인지언이라고 주장하지만 역대 총리와는 사이가 좋지 못한것으로 알려져있다. 강력 공화파였던 샤토브리앙 로에악과는 관계가 최악이어서 총리가 수시로 왕실 폐지를 주장할 정도였다. 카를 4세는 공화당의 케인스주의적 사관은 좋으나 300년의 전통을 파괴할 권리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최근에 취임한 발렝시엔 랑스는 이런 왕실<->공화당간 험악해진 관계를 고려하여 왕실에 비위를 맞춰주고있고 사이도 그럭저럭 좋은 편이다.

독일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잉글랜드 국왕 찰스 1세와도 잘 지내는 편이다. 스스로 중립을 잘 지키려는 편이어서 외교적으로는 순탄하다. 공화파들은 이런 면을 보고 그냥 적을 만들지 않으려는것일 뿐이지 속으로는 욕한다며 겉과 속이 다르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종교

대학교에 다닐때 친구들의 소개로 티베트 불교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가톨릭교도가 많은 부르고뉴 사회 특성상 꽤 충격적 일이었으며 왕세자 직위 선정도 미뤄졌다.

논란

2013년 총선 직후 사석에서 사회평화당에 투표했다고 말해서 크게 논란이 되었다. 국왕이 선거의 4대 원칙중 하나를 어겼으니 대단히 논란이 되는 일이다. 카를 4세 본인은 말실수였다고 해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