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가장 고귀한 연방)

신단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10월 17일 (일) 11:40 판

미엔지모제 가입국
연방 의회에 대표된 국가들의 가장 고귀한 연방
Najszlachetniejsza federacja krajów reprezentowana w parlament federalny (폴란드어)
Kilniausia federacija šalių atstovaujamų federaliniame parlamente (리투아니아어)
국기 국장
wiara, prawo, ludzie (폴란드어)
įsitikinimas, įstatymai, žmonės (리투아니아어)
믿음, 법률, 국민
상징
국가 기뻐하자, 아 어머니 같은 조국 폴란드여 [1]
국조
흰꼬리수리
국화
팬지꽃
국수
백마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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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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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방 설립 1569년
  • 데울리노 조약 1618년
  • 대홍수 1648년
  •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 1733년
  • 1차 분할 1772년
  • 2차 분할 1793년
  • 1854년 폴란드 혁명 1854년 3월 ~ 11월
  • 대타협 1854년 11월 11일
  • 제1차 세계대전 1914년 7월 28일 ~ 1918년 11월 11일
  • 제2차 세계대전 1939년 9월 1일 ~ 1945년 9월 2일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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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바르샤바
최대 도시
바르샤바
면적
565,340㎢
내수면 비율
3.1%
구성국
폴란드 왕국, 리투아니아 대공국,
서우크라이나 공국, 동프로이센 공동통치령
접경국
북독일 연방,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 연방공화국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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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44,780,237명
밀도
79명/km2
민족 구성
폴란드-리투아니아인 87.2%, 우크라이나인 7.6%, 벨라루스인 2.0%, 러시아인 1.2%, 독일인 1.0%, 기타 1.0%
출산율
1.79명
평균 수명
75.32세
기대 수명
75.32세
공용어
폴란드어, 리투아니아어, 라틴어 (명목상)
국민어
폴란드어, 리투아니아어, 우크라이나어
지역어
독일어, 우크라이나어, 벨라루스어, 러시아어
공용 문자
라틴 문자, 키릴 문자
종교
국교
없음
분포
가톨릭 90.3%, 정교회 9.1%, 개신교 0.5%, 기타 0.1%
군대
왕립 연방 국군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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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개 주
621개 시, 198개 현
35,643개 군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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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의원내각제, 양원제, 연방국가, 공화제, 대륙법계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13위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 원수 (국왕)
피요르트 2세
정부
요인
연방 총리
도날트 투스크
연방 제1부총리
브와디스와프 코시니아크카미시
연방 제2부총리
기타나스 나우세다
원로원 의장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
세임 의장
잉그리다 시모니테
여당
폴란드-리투아니아 기독교민주당
신임과 보완
자유당, 생태당
원내 야당
폴란드-리투아니아 사회당, 급진당, 좌파당, 국민전선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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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
GDP
(PPP)
전체 GDP
$7,809억 9,610만
1인당 GDP
$7,699억
GDP
(명목)
전체 GDP
$7,051억 4,100만
1인당 GDP
$39,737
무역
수입
$367.2억
수출
$346.7억
외환 보유고
$712억
신용 등급
무디스 A2
S&P A-
Fitch A-
화폐
공식 화폐
연방 즈워티
ISO 4217
PLZ, zł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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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UTC+1 (연방 표준시)
도량형
SI 단위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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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교현황
1950년 수교
UN 가입
1948년
주한대사관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
안제타워 18 - 19층(718-2) 영사관
ccTLD
.pl
국가 코드
616, POL, PL[1]
전화 코드
+48

 1 개요 1 개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Rzeczpospolita Obojga Narodów, Abiejų Tautų Respublika[2]) 혹은 정식명칭 연방 의회에 대표된 국가들의 가장 고귀한 연방[3][4]은 동유럽에 위치해 있는 연방제 왕국이다.
1569년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루블린 합병이후 러시아를 위협했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대홍수 이후로 쇠퇴하였고 이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삼국에게 분할되어 멸망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독일어권과 러시아의 불화를 이용하여 기적적으로 재기에 성공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에 연합국으로 참전하여 프랑스, 영국과 함께 유럽의 삼대 강국으로 부상하였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임 국왕은 피요르트 2세이며 총리는 도날트 투스크이다.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수도이자 최대도시인 바르샤바
연방의 제2도시이자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수도인 빌뉴스


 2 국가 상징 2 국가 상징

 2.1 국명 2.1 국명

정식명칭은 연방 의회에 대표된 국가들의 가장 고귀한 연방[3][4]으로 이 국호는 1867년 대타협과 함께 변경된 국호이며 이전의 국호는 두 민족의 공화국 (Rzeczpospolita Obojga Narodów, Abiejų Tautų Respublika)이였으나 대타협으로 리투아니아인들과 우크라이나 코사크들의 권리를 대거 확충시키며 국명을 바꾸었다. 또한 폴란드어 국명의 Rzeczpospolita (제치포스폴리타)라는 단어는 폴란드 민족국가를 상징하는 명칭이였기에 현재는 연방구성국인 폴란드 공화국에서만 쓰인다. 일반적으로 많이들 쓰이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라는 명칭은 사실 정식 국호였던 적이 없으며 영어 국호인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폴란드-리투아니아 공화국)를 한국어로 번역 할 때 커먼웰스를 연방으로 번역하며 생긴 오류이다.

 2.2 국기 2.2 국기

연방기
Flaga Federalna
Federalinė Vėliava
지위 공식 국기
채택일 1906년 6월 21일
근거 법령 연방 헌법 제3조 1항
비율 3:2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국기는 연방기로 1906년 6월 21일에 제정되었다. 빨강-하양-빨강의 가로 삼색기로 중앙에는 중형 국장이 위치해 있다. 하얀색은 환희를, 빨간색은 독립을 상징한다. 한편 각 구성국들의 경우에도 각각의 국기를 보유하고 있는데 폴란드 왕국은 하양-빨강 가로 이색기에 독수리 문양,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붉은 바탕에 비티스[5], 서우크라이나와 동프로이센은 종전의 국기를 그대로 사용한다.

 2.3 국장 2.3 국장

왕실문장
Herb Królewski
Karališkasis Herbas
지위 공식 국장
채택일 1906년 6월 21일
근거 법령 연방 헌법 제3조 3항
사용처
  • 국가기관
  • 국가문서
  • 여권
  • 훈장
  • 해외공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국장는 왕실문장으로 1906년 6월 21일에 공식적으로 제정되었다. 1906년 이전에는 국왕이 바뀜에 따라 왕실문장도 바뀌었으나 이후에는 현재의 국장을 공식 국장으로 제정하였다.

 2.4 국가 2.4 국가

기뻐하자, 아 어머니 같은 조국 폴란드여
Raduj się, matko Polsko
Džiaukis, motina Lenkija

지위 공식 국가
채택일 1906년 6월 21일
근거 법령 연방 헌법 제3조 2항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국가는 기뻐하자, 아 어머니 같은 조국 폴란드여로 1906년 6월 21일에 공식적으로 제정되었다. 원래는 성 스타니슬라오를 기리는 찬송가이자 추모가였으나 이후 연방의 관습상 국가로 널리 불렸고 1906년에는 정식국가로 제정되었다.

 3 역사 3 역사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역사
Historia Polsko-Litewska
Lenkijos-Lietuvos istori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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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폴란드 리투아니아 루테니아
고대 켈트족 발트족 슬라브족
게르만족
슬라브족 키예프 루스
중세 폴란드 영지 리투아니아 대공국 갈리치아-불히니아
폴란드 왕국
근세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근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제국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현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주요 민족: 슬라브족, 발트족, 폴란드인, 리투아니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3.1 연방의 성립과 발전 3.1 연방의 성립과 발전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성립은 1386년 튜튼 기사단의 위협을 분쇄하기 위해 폴란드 왕국의 여왕과 리투아니아 대공국 대공의 결혼으로 이루어진 동군연합이 그 시초이다. 동군연합 형성이후 리투아니아 내에서는 폴란드의 영향력이 차츰차츰 강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16세기에 들어서 리투아니아는 루스 차르국에 맞서 리보니아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이 당시 리투아니아는 전쟁으로 인해 물자가 고갈되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기 시작했으나 폴란드 측은 양국이 아직 단일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지원에 반대했고 지원에 대한 조건으로 양국의 합병을 요구했다. 리투아니아 측에서는 반발했으나 결국 1569년 루블린 조약으로 양국은 합병되기에 이른다.

연방 성립 이후 지그문트 2세의 아들인 피요르트 1세가 왕위를 이었다. 그의 치세동안 연방은 제1차 전성기를 맞게 된다. 군사 개혁을 통해 농민병인 피에호타 비브라니에츠카라 불리는 사실상의 상비군을 창설하였으며 코사크 또한 비정규군으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이 당시 윙드 후사르라 불리는 정예기병이 창설되어 연방과 동유럽의 들판을 지배하였다. 연방을 탈퇴하려던 단치히를 복속시키고 러시아의 리보니아 (현재의 발트 연방)을 침공하여 러시아의 주요도시인 프스코프까지 점령, 리보니아를 영토로 편입하였다. 스웨덴과의 전쟁을 겪으며 일시적으로 국가가 혼란스럽기도 하였으나 이후 다시 회복하여 러시아아의 모스크바를 점령하기도 하였다.

이후 오스만 튀르크와의 전쟁을 통해 남쪽의 영역을 드네스트르 강으로 확장했고 튀르크의 힘을 약화시키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몰다비아 공국에 대한 종주권을 포기해야 했으며 여러 장수들이 죽어 군사력의 약화를 야기해왔다. 이후 스웨덴과의 결혼문제로 붉어진 스웨덴 왕위계승 전쟁에서 윙드 후사르가 패하고 결국 스웨덴의 왕위계승을 포기하자 연방의 위신과 국력은 점차 추락하기 시작한다.

 3.2 침체와 쇠퇴 3.2 침체와 쇠퇴

1632년 브와디스와프 4세가 새로 연방의 왕위에 올랐다. 그는 연방의 위신과 국력을 회복하기위해 노력하였는데 군대를 개혁하여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지휘관을 사로잡고 배상금을 얻었으며 오스만 제국을 압박해 크림과 카자크에 대한 지배권을 보장받았다. 심지어 그는 루마니아 일대를 오스만과 공동으로 지배하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스웨덴을 압박하여 이전 전쟁에 잃었던 영토 중 일부를 되찾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서 흔히들 대홍수라고 불리는 대규모 코사크 반란이 일어나게 된다. 당시 코사크들은 연방의 국왕에게는 충성을 다하고 있었으나 자신들을 가혹하게 착취했던 폴란드인 지주들에게는 큰 불만을 품고 있었고 결국 보흐단 흐멜니츠키의 주도로 이런 대형사태로 번지게 된것이였다. 이 사태로 충격을 받은 브와디스와프 4세는 결국 사망하였고 대규모 피해를 입은 연방은 즈바라즈에서 휴전협정을 체결하게 된다.

하지만 조약에 불만을 품었던 보흐단 흐멜니츠키와 코사크들은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다시한번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당시 국왕이였던 얀 2세는 어떻게든 반란을 수습해보려 애썼으나 러시아와 코사크, 스웨덴의 협공으로 연방의 군대는 붕괴되어 버렸고 일부 슐라흐타 (귀족)들은 리투아니아를 분할하려는 시도까지 하는 등 국가 막장 테크를 타기 시작한다. 심지어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까지 독립을 목적으로 이 전쟁에 참전하며 일말의 희망까지 사라져가던 참이였다. 결국 스웨덴에게 바르샤바까지 털려 얀 2세가 망명을 가는 상황에서 농민들의 봉기와 편을 갈아탄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과 타타르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국체를 수호하는 지경에 이른다.

전후 연방은 동우크라이나 일대를 러시아에세 할양하고 발트의 지배권을 포기했으며 프로이센의 독립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후 얀 3세 올브라흐트의 주도로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고 잠시동안 부흥기를 맞기도 하였으나 그의 사후 후임 왕들의 뻘짓(...)과 수차례의 전쟁으로 연방은 재기 불능수준의 만신창이가 되고만다. 한편 1733년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이 발발하여 이미 죽어가던 연방에는 사실상의 사망선고가 내려졌고 이는 이후 분할의 서막이 되고 말았다.

 3.3 분할과 암흑기 3.3 분할과 암흑기

1763년 아우구스트 3세 사후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스타니스와프 2세가 러시아의 지지를 받아 연방의 새로운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스타니스와프 2세는 러시아의 사실상 보호국으로 전락한 연방을 개혁하고 다 쓰러져가는 나라를 일으켜세우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이게도 연방내 반러파를 자극하였고 러시아도 이에 대해 반감을 품게된다. 한편 동유럽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져만 가는 상황에서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과의 마찰이 우려되자 프로이센측은 평화를 재의하였는데 이 평화 조약에는 오스트리아-러시아 양국의 오스만 진출을 막는 사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프로이센은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반대를 무마하고자 희생양을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였다. 1771년 바르샤바에서 봉기가 발생하자 삼국군은 진압을 빌미로 무단으로 국경을 넘었으며 봉기진압 후 1772년에는 삼국군이 동시에 국경을 넘어 연방을 분할하기에 이른다. (제1차 폴란드 분할)

제1차 폴란드 분할 이후 스타니스와프 2세는 프로이센과 동맹을 맺고 정치개혁에 착수하여 5월 3일 헌법이라 불리는 새 헌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전의 개혁과 마찬가지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고 연방내 친러파들의 반란을 기회삼아 연방을 침공하였다. 개혁이 못마땅했던 프로이센은 도와주기는 커녕 오히려 2차분할을 러시아에 제시했고 결국 러시아의 압박으로 연방은 프로이센과 러시아에 남은 영토의 상당수를 할양하는 수 밖에 없었다. (제2차 폴란드 분할)

제2차 분할이후 연방에 남은것은 4백만의 인구와 두 나라의 완충지대가 되어버린 21만 5천 km2의 영토, 꼭두각시 정부와 러시아의 감시 뿐이였다. 다행히도 당시 오스트리아-프로이센과 러시아의 대립, 프랑스 혁명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유럽의 상황으로 인해 제3차 분할과 국가 붕괴는 면할 수 있었으나 사실상 사망선고가 내려진 상태였다. 나폴레옹 전쟁당시에는 프랑스에 협력하여 이전의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시도또한 하였으나 결과는 완전 실패, 오히려 빈 체제가 들어서며 연방은 사실상의 완충국이자 러시아의 괴뢰정부로 존재하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3.4 1854년 혁명과 대타협 3.4 1854년 혁명과 대타협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의 종전이후 이전 연방의 국왕이였던 루드비히 2세가 러시아에 의해 강제퇴위 당하고 아우구스트 4세가 연방의 새로운 국왕으로 즉위하였으나 연방내의 혼란은 더욱더 심해져만 갔다. 비록 나폴레옹이 실각하고 빈체제가 성립되었으나 나폴레옹이 뿌리고간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씨앗은 이미 유럽 전체에 깊게 뿌리박혀 버렸으며 1830년에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 반동 전제군주였던 샤를 10세가 실각하자 연방 내에서도 러시아, 프로이센과 빈체제에 반대하는 자유주의, 민족주의적 목소리가 차츰 차츰 나오기 시작한다.

결국 1848년 혁명의 물결을 타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역시도 크나큰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휘말리게 된다. 대략 2월 말부터 변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알음알음 나오기 시작하더니 3월 초순부터는 바르샤바, 빌뉴스, 크라쿠프등의 도시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크라쿠프에서는 행정권이 무너졌고 리투아니아에서는 군대가 혁명에 가담하였으며 리투아니아-러시아 접경지대의 일부 코사크들도 봉기하였다. 정부는 대도시에서의 통제권을 잃었으며 리투아니아 빌뉴스 일대에서는 리투아니아 민족을 상징하는 바티스(추격자)가 세겨진 구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깃발이 시청과 광장에 휘날렸다.

연방 정부는 이를 타계하기 위해 1848년 4월 1일에 루블린에서 각 지역의 혁명 지도자들과 유력자들을 모아서 회의를 열게 된다.(루블린 국민대표회의) 국민대표회의에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쏟아져 나왔는데 귀족공화제 같은 반동적 의견부터 지방분권을 주장하는 온건파와 심하게는 연방의 완전한 해체를 주장하는 급진파까지 여러 의견이 충돌했다. 그러나 아직 연방내 분위기는 상당히 보수적이였고 주변국들의 시선이 연방으로 향해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압박으로 보수파가 정권을 유지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이런 결과는 연방내 자유주의자들과 계몽주의자들을 자극했고 이는 1854년 혁명의 불씨역할을 하게된다.

1854년 크림전쟁이 발발하며 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의 신성동맹이 붕괴되자 러시아의 지원을 받던 연방내의 보수파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던 연방내 자유주의자들은 또다른 혁명을 준비하니 그것이 바로 1854년 폴란드 혁명이다. 전국적으로 번진 혁명의 불길은 이미 정부의 통제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달았으며 이번에는 지난 48년 혁명과는 달리 독립파들이 전면에 나서자 연방 해체의 위기감을 느낀 연방정부는 재2차 국민대표회의를 열었다. 독립파들과의 설전과 타협끝에 결국 정부는 국명의 변경과 완전한 입헌군주제의 도입, 폴란드, 리투아니아 양국으로 구성된[6] 현대적 연방국가로의 체제전환등을 골자로 한 일명 대타협을 발표하게 된다.

 3.5 양차 세계대전과 부활 3.5 양차 세계대전과 부활

한편 대타협 이후 유럽의 정세는 복잡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유럽의 강대국 이였던 프랑스, 영국이 저물어가고 신흥 강대국인 독일제국이 떠오르면서 유럽의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신흥 독일제국이 떠오르자 이에 위기감을 느낀 프랑스가 앙숙이였던 영국과 동맹을 맺었고 이에 폴란드가 가담하면서 3국 협상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당시 연방은 대타협으로 길고 길었던 암흑기를 끝마치고 군 현대화와 경제성장을 통해 큰 성장을 이루어냈다. 원래 같으면 러시아가 눈에 불을 켜고 반대하고 이미 러시아 제국군이 국경을 넘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지만 독일을 영향력이 커져가고 자신들도 러일전쟁으로 기력을 소진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를 묵인하였다.

이렇게 유럽의 긴장이 고조되는 와중에 세르비아에서 오스트리아의 황태자가 암살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다. 연방은 러시아와 함께 협상국에 가담하여 유럽 동부전선에서 독일 - 오스트리아 동맹군과 맞서 싸웠다. 물론 발칸반도가 동맹국에 완전히 점령당하고 러시아에 혁명이 일어나며 위기가 닥치기도 하였으나 미국이 참전하면서 결국 독일이 항복하자 연방은 당당하게 승전국으로써 베르사유 조약을 조인 할 수 있었다. 연방은 기존에 소실했던 서부와 남부지역을 회복하였으며 혁명이 일어나 혼란에 빠졌던 러시아를 침공하여 (폴란드-소비에트 전쟁) 동부 영토를 상당수 수복하고 우크라이나, 발트, 벨라루스를 독립시켜 완충국으로 삼았다.

그렇게 연방은 잠시동안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GDP는 계속해서 올랐고 전국적인 산업화와 독일에서 받은 배상금으로 경제 성장률은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이런 잠시동안의 호황은 1929년 비롯된 검은 목요일 사태와 그로 인해 일어난 대공황으로 인해 완전히 박살나게 된다. 연방의 경제는 악화일로를 달렸으며 정치혼란이 극대화 되어 1930년 총선거에서 극단주의 정당인 폴란드 민족국가당과 리투아니아 국가파시스트당이[7] 대약진을 하며 기존 사회당과 기독교 연합[8]의 양당제가 흔들릴 지경에 이르자 일부 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군부의 정치개입으로 인해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원수가 총리로 집권하는 등[9] 막장의 막장을 달리게 된다.

그리고 이런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던 와중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이 연방을 침공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초기 연방은 정치 혼란으로 인하여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하였고 순식간에 북부는 비스와 강 일대, 남부는 크라쿠프 지역까지 밀리게 된다. 동맹이였던 헝가리 또한 순식간에 관광당하고 남부에서는 우크라이나가 불가리아-독일-루마니아 추축군에 의해 점령당하며 키예프와 북서부 일대만 간신히 유지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 당시 나치 점령하 폴란드에서는 수많은 학살들이 자행되었다. 점령지 내의 수많은 폴란드인들과 유대인들을 비롯한 여러 소수민족들과 정치적 반대파, 인권운동가와 성소수자들이 학살당했으며 특히 크라쿠프에서 서쪽으로 고작 5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오시비엥침[10]에서는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절멸수용소가 운영되어 대략 110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연방은 포기하지 않았고 원내 5개 정당이 연합하여[11] 거국내각을 구성하여 전국에 총동원령을 선포후 총력전을 선언하며 나치에 맞서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하기 시작한다. 한명이 죽으면 두명이, 두명이 죽으면 네명이 총을 잡고 깃발을 들었으며 점령지에서는 여러 저항조직[12]이 결성되어 나치에 맞섰다. 그러나 전황은 점점 불리해져 41년에는 크라쿠프가 함락되고 바르샤바에는 포탄이 떨어지는 등 패색이 짙어져 갔다. 그렇게 연방의 멸망의 목전에 닥쳤다고 생각했던 그때 한줄기의 빛이 연방과 그 동맹국들에게 내려왔는데 그것은 바로 독소전쟁이였다.

당시 히틀러는 연방과 연방의 동맹국들이 전쟁 발발 초기에 완전히 밀려버리면서 곧 연방이 항복 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41년 5월경에 바르샤바 코앞까지 독일군이 진격하자 이런 추측은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곧 소련을 향했다. 히틀러는 그들의 레벤스라움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거쳐 소련을 침공했다. 당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소련은 금세 스탈린그라드 (현 볼고그라드)까지 밀렸으나 그 이름도 유명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승리하며 승기를 잡았고 이후 연방-소련-서방 연합국의 협공에 나치는 점점 뒤로, 뒤로 후퇴를 이어갔다. 결국 독일은 패망했으며 연방은 승전국으로써 당당히 일어날 수 있었다.

 3.6 냉전과 현대 3.6 냉전과 현대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이후 세계에는 냉전의 기류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소련은 발칸 일대를 점령하여 베오그라드 조약기구를 만들었고 미국은 나토를 만들어 자본주의 제1세계와 공산주의 제2세계의 대립이 심화되던 시기였는데 예나 지금이나 반러감정 세계 1위를 자랑하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정부는 나토에 가담하였고 연방의 동맹국인 발트,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또한 나토에 가입시키는데에 일조했다. 당시 연방은 대대적인 군비 확장을 통해 동유럽의 패권국으로 자리매김 하였으며 프랑스와 협력하여 미국에 얽매이지 만은 않는 외교 정책을 표방하였다. 이 당시 핵무기 개발 시도도 있었으나 미소 양국과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포기해야만 했다.

한편 1968년 68혁명으로 보수적이였던 연방 내에서도 진보적인 분위기가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고 1970년대 초반을 전후로 해서 미소 양국간의 데탕트 분위기가 조성되자 연방 정부내에서도 기존의 냉전적 반공주의 노선에 대한 회의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는 냉전 후반부에 들어서며 약해졌으나 이후 다시 해빙기가 도래하자 연방은 본격적으로 사회, 문화적인 개방의 시기, 일명 '대개방'의 시대를 겪게 된다. 대개방 시기 이후 반공법이 폐지되는 등의 여러 진보적 조치가 이어지며 연방은 한층 더 진보적인 시대로 나아가게 되었다. 냉전 종식이후에는 지속적으로 경제가 성장해 왔으나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로 인해 큰 타격을 입게되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로는 다시 성장률이 반등하며 프랑스, 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실명부한 유럽의 강대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4 정치 4 정치

 4.1 국왕 4.1 국왕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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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국왕 혹은 정식 명칭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및 모든 연방 소속 영토의 국왕'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군주로 연방의 국가원수이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국왕은 960년 폴란드 영지의 공작이 그 기원이며 이 당시에는 현재의 야기예우워 왕조가 아니라 피아스트 왕조에서 공작이 배출되었다. 이후 1025년 폴란드 영지가 영지에서 폴란드 왕국으로 승격되자 폴란드 공작 또한 폴란드 국왕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1386년 리투아니아의 요가일라 대공이 튜튼 기사단의 침입을 막기 위해 브와디스와프 2세라는 이름으로 폴란드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하고 야기예우워 왕조를 개창하며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동군 연합체제가 시작되게 된다. 1569년 지그문트 2세 치세때 루블린 합병으로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합병되자 공식적으로 양국은 하나가 되게되었고 지그문트 2세부터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국왕으로 대우한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입헌군주제 국가로 연방의 국왕은 연방의 국가원수이다. 국왕은 연방의 국가원수이기 때문에 명목상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의회 해산권과 연방군 통수권, 연방 총리에 대한 임명권과 해임권을 가지고 있으며 이외에도 연방 의회가 의결한 법률에 대한 재가권과 거부권, 불기소권, 사면권, 선전포고권 등이 있고 모든 훈장과 작위또한 국가원수인 국왕의 이름으로 수여되며 모든 법률또한 국왕의 이름으로 선포되기 때문에 연방법에 한해서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1854년 폴란드 혁명 이전에는 연방이 전제군주제 국가였기 때문에 이러한 권한이 실제로 사용되었으나 혁명과 대타협, 입헌군주제 헌법 도입 이후에는 이러한 권한들은 대부분 연방의 행정수반인 총리에게 사실상 넘어간 상태이다.

현재 연방 국왕과 왕실에 대한 연방 국민들의 지지는 거의 80%를 상회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연방 국민들은 왕당파이다. 그러나 68년 혁명이후 폴란드 공화당을 비롯한 여러 공화주의-좌익 정당들이 창당되었으나 대부분 70년대를 넘기지 못하고 단명하였으며 그나마 살아남은 정당들도 80년대 초반 후반부 냉전 시기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인한 반소-반공-반좌파 열풍과 자금난으로 해체된 이후에는 좌파당의 일부가 공화주의를 지지할 뿐 실질적으로 공화주의를 매인으로 내걸고 있는 단체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고 설령 있다고 한들 중앙정계에 미치는 영향 또한 사실상 없기 때문에 왕정이 폐지 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4.2 행정부 4.2 행정부

 4.2.1 총리 4.2.1 총리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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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비히 3세
초대
아가톤 길러
지그문트 3세
초대 제2~3대 제4대 제5대
아가톤 길러 스테판 보브로프스키 지그문트 시에라코프스키 드루스키 로무알트 트라우굿
브와디스와프 5세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로무알트 트라우굿 요나스 바사나비추스 볼레스와프 로만 드루스키 브와디스와프 니에골레프스키
제9대 제10대 제11대
프란시삭 바후셰비치 지그문트 밀코프스키 볼레스와프 프루스
카지미에시 5세
제12대 제13대 제14~16대 제17대
도나타스 말리나우스카스 가브리엘 나루토비치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요나스 스밀게비치우스
제18대 제19대 제20~21대 제22대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가브와디스와프 라츠키에비츠 브와디스와프 시코르스키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
루드비히 4세
제23대 제24~25대 제26대 제27대
볼레스와프 비에루트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 페트라스 클리마스 미콜라스 비르지슈카
제28대 제29대 제30~31대 제32대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 에드바르트 기에레크 브로니스와프 게레메크 스타니스와프 마체크
제33대 제34~35대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레흐 바웬사
피요르트 1세
제36대 제37대 제38대 제39대
레흐 바웬사 게디미나스 키르킬라스 레흐 카친스키 잉그리다 시모니테
제40~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로베르트 비에드론 지알기르다스 부트케비추스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 도날트 투스크

연방 총리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행정수반으로 입헌군주제-의원내각제 국가인 연방의 실질적인 국가 지도자이다.

연방 총리는 하원인 세임에서 선출되며 주로 세임내 다수당의 총재가 총리가 된다. 그러나 세임 의원의 1/2 이상이 동의해야 총리로 임명 될 수 있기에 연정 등으로 과반 이상을 차지한다면 다수당의 총재가 아니더라도 총리가 될 수 있다. 이론상 총재가 아닌 다른 의원이 총리가 되는 것도 가능하지만 한 당의 총재라는 것부터가 이미 당의 실권자이자 집권 세력의 수장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총재가 아닌 다른 의원이 총재가 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4.2.2 내각 4.2.2 내각

 4.3 입법부 4.3 입법부

 5 각주 5 각주

  1.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국가 코드, 도메인의 POL과 PL은 폴란드가 아닌 폴란드 - 리투이니아의 약칭인 폴리투 (Polithu)의 약자다
  2. 폴란드어, 리투아니아어 : 두 민족의 공화국
  3. 3.0 3.1 폴란드어 : Najszlachetniejsza federacja krajów reprezentowana w parlament federalny
  4. 4.0 4.1 리투아니아어 : Kilniausia federacija šalių atstovaujamų federaliniame parlamente
  5. 리투아니아어로 '추격자'라는 뜻
  6. 양국은 각각 총리를 선출하지만 명목상 양국의 국가원수는 연방국왕임
  7. 공산당은 폴란드-소비에트 전쟁을 전후하여 연방정부의 탄압으로 사실상 자취를 감추었다.
  8. 폴란드 기독민주인민당-리투아니아 기독사회당의 선거연합(현 기민당)
  9. 이와 별게로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에 대한 평판은 연방내에서 상당히 좋은 편이며 당시에도 나름 민주적인 선거로 집권하기도 했다.
  10. 독일어로 아우슈비츠
  11. 폴란드 기독민주인민당-리투아니아 기독사회당(현 기민당), 사회당, 자유당, 급진당, 우크라이나 민족전선(이후 급진당에 통합)
  12. 폴란드-리투아니아 해방전선, 우크라이나 인민해방연맹, 민주해방동맹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