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벨트크리그 | 주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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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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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제7차 대타협 · 헝가리 반란 |
11월
사막전쟁
1938년
7월
하산 호 전투
1939년
9월
독일 침공(제2차 벨트크리그 발발겨울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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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6월
포항 상륙작전 |
9월
쾨니히스베르크 포위전 |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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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한니발 작전
1941년
3월
함부르크 공방전 |
8월
드레스덴 공방전 |
9월
개성 전투 |
11월
청색작전 |
12월
진주만 공습
1942년
2월
프라하 전투 · 사라예보 공방전 |
3월
백마고지 전투 |
6월
오데사 상륙작전
1943년
1월
트리폴리 회담 |
7월
포젠 공방전
1944년
4월
브라이턴 상륙작전(바다사자 작전) |
8월
마르세유 상륙작전 |
9월
바르바로사 작전 |
11월
키이우 봉기
1945년
1월
드네프르-돈 공세 |
1월
슈비네뮌데 회담 |
2월
협상국의 글래스고 재상륙 · 리즈 폭격 |
4월
모스크바 공방전 · 러시아국의 항복 |
8월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 일본인민공화국의 항복 |
9월
제2차 벨트크리그 종전
※ 매년 전황·추세 등 상세한 내용은 연표 해당 연도 참고
개성 전투
Battle of Kaesong
個性の戦い
제2차 벨트크리그아시아 전선의 일부
날짜
1941년 9월 22일~1942년 2월 16일
장소
대한제국, 개성시
교전국 대한제국 파일:일본공산당 당기.webp 일본인민공화국
지휘관 안중근[1]
김홍일[2]
이범석[3]
파일:일본공산당 당기.webp 우메즈 요시지로[4]
파일:일본공산당 당기.webp 이무라 조[5]
병력 52만 6천명 81만 2천명
피해규모 총 사상자 약 35만명 총 사상자 약 51만명
결과
대한제국의 결정적 역전승
영향
대한제국이 임진강 이북을 사수함
한국전선 반격의 시발점
임진강을 건너 북쪽으로 피난가는 피난민

개요

개성전투는 1941년 9월 22일 부터 1942년 2월 16일일까지 개성을 비롯한 임진강과 예성강 전역에 걸쳐 진행되었던 전투이다. 김홍일의 지휘 아래의 대한제국군이 임진강을 건너 개성을 함락 시키려는 일본인민공화국군을 격퇴하는 것에 성공하면서, 일본군의 추가적인 진격을 저지, 이후 반격의 계기를 만들어낸 매우 중요한 전투였다.

서론

개성 전투는 아시아 전선에서 가장 중요했던 전투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한성 전투 이후 약 300년만에 일본군에게 다시 한번 한성이 함락 당한 대한제국은 겉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있었고, 안중근의 계획대로 북한 지역에서 군을 재편하고, 반격의 구심점을 만들어내려면 임진강과 개성의 수비는 매우 필수적인 것이었다.

끝내 대한제국군이 예성강으로의 병력지원을 성공 시키고, 개성을 사수하여 일본군을 임진강 남쪽으로 철수 시키면서 개성 전투는 대한제국의 대승으로 마무리 되었다. 긴 전투에서 피해만 누적되고 오히려 임진강 이남으로 철수한 일본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이후 대한제국을 향한 추가적인 공세를 진행할 수 없게 됐다. 개성 전투가 대한제국군의 승리로 귀결되면서 대한제국은 안중근의 계획대로 북한 지역에서 군을 재편할 수 있었고, 이는 훗날 반격의 구심점이 됐다.

배경

  1. 당시 한국군 총사령관
  2. 개성 방위군 사령관
  3. 1 야전군 사령관
  4. 당시 일본군 총사령관
  5. 당시 개성 공세작전 사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