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대한제국 용보.png 대한제국 대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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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초대 황제 고조 문황제 | 高祖 文皇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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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호 | 고조 (高祖) | |||
시호 | 고조강녕헌무정인익정효문황제 (高祖康寧憲武章仁翼貞孝文皇帝) | |||
출생 | 1827년 9월 8일 | |||
조선국 한성부 창경군 경춘전 | ||||
즉위 | 1834년 12월 18일 (7세) | |||
조선국 한성부 경희궁 숭정문 | ||||
1864년 8월 16일 (39세) | ||||
대한제국 한성부 창덕궁 인정문 | ||||
사망 | 1872년 6월 25일 (향년 45세) | |||
대한제국 한성부 창덕궁 대조전 | ||||
능묘 | 성릉 (聖陵) | |||
재위 | 조선국 왕세손 | |||
1830년 10월 31일 ~ 1834년 12월 18일 (4년) | ||||
조선국 제24대 국왕 | ||||
1834년 12월 18일 ~ 1864년 8월 16일 (30년) | ||||
대한제국 초대 황제 | ||||
1864년 8월 16일 ~ 1872년 6월 25일 (8년) | ||||
연호 | 영락 (永樂)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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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영락지치 永樂之治 |
恩德洽于皇天, 武威振被四面. 황상의 은덕이 황천에 두루 미치었나니, 또하나여 위무를 사면에 떨치시었다. |
고조 강녕헌무정인익정효문황제(康寧憲武章仁翼貞孝文皇帝) 이환은 조선의 24대 국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이다.
현재 대한인들 중 그 누구도 고조의 위업과 업적을 부정하는 이는 없다고 볼수 있으며, 멸망을 향해 가던 조선의 근대화를 이룩한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생애 |
> 효명세자의 아들 |
> 즉위와 수렴청정 |
> 기유사란(己酉士亂) |
> 서구와 마주하다 |
> 청과의 전쟁 |
> 천명의 계승자 |
가계 |
평가 |
여담 |
- 《고조실록》 1권에서 '외모가 준수하고 명랑하며 큰 목소리가 마치 금석(金石)에서 나오는 것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얼굴은 준수한 건 물론이고 목소리도 좋았다는 뜻이다. 다만 17세 때 천연두를 앓은 기록이 있다.
상은 용청(龍睛)에 서각(犀角)이고 외모가 준수하고 명랑하며,
큰 목소리가 마치 금석(金石)에서 나오는 것 같으며 백일이 되기 전에 능히 일어서셨다. |
- 《고조실록》 1권, 고조황제 행장 中 |
- 《조선왕조실록》에 고조가 즉위할 때 신하들이 절실하고 시급한 여섯 가지 일들을 아뢰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중 궁위를 엄하게 하라고 하는 내용이 나온다. '더욱이 어리신 나이라 보통 한가로이 계실 때쯤 무리들과 쉽게 친숙해지고 자질구레한 장난감으로 이러한 무리들은 쉽게 유혹하니 심지를 고혹시켜 성공에 누를 끼침은 모두 이에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입니다. 선묘께서는 어린 나이에 즉위하셨으나 환시를 거느리심이 매우 엄해 항상 말을 붙이지 아니하시어 전하께서는 힘쓰소서.'라면서 언급된다.(《고조실록》 1권, 고조 즉위년 12월 16일 병오 1번째기사) 고조가 미남이라 젊은 궁인들이 승은을 입기 위해 유혹했다는 설이 있는데 이는 아마 앞서 말한 《실록》에 언급된 내용을 '미남이라 궁인들이 유혹하기에 안달났다' 이런 뉘앙스로 호사가들에 의해 널리 왜곡되어 알려진 것 같다. 《실록》을 보면 알다시피 '고조가 미남이라 궁인들이 유혹했다'보다는 '젊은 나이에 즉위해 궁인들이 쉽게 유혹을 해서 누를 끼친다' 이런 식으로 실제로 얘기했기 때문이다. 당시 젊은 임금은 외모와 상관없이 궁인들의 관심 대상이었는데 승은 받기가 더 수월한 이유도 없지 않아 있다.
- 고조은 4세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인 광조를 여의었으므로 늘 아버지를 그리워했는데,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마음 아프게 여겨 한 신하에게 물었더니 "진전에 모신 수용이 오히려 매우 닮으신 전하의 용안에 미치지 못합니다."라는, 쉽게 말해 자신의 얼굴이 아버지와 똑같다는 대답을 듣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