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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도사태 金南島事態 | Singapore (Geumnamdo) Inciden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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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들을 진압하는 제국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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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
1964년 4월 10일~1964년 5월 28일 | |
장소 | |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주(現 대한제국 금남도도독부) | |
원인 | |
하단 항목 참조 | |
교전 세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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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세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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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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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피해 | |
68명 사망 301명 부상 |
400여명[5] ~ 8,000[6]명 사망 5,000여명 부상 |
결과 | |
한국의 금남도 합병,중국인 반대시위 진압성공 중화민국 임시정부의 사실상 와해 | |
영향 | |
냉전의 심화 |
개요
금남도 사태는 1964년 4월 10일부터 5월 28일까지 당시 말레이시아였던 싱가포르,현 금남도에 대한제국군이 개입하여 화교의 영향력을 제거,최종적으로 한국령 금남도로 합병된 사건이다.
배경
본래 영국령 말레이의 중심도시이던 싱가포르였으나 1963년 독립한 친한 국가이던 말레이시아에서 화교계가 다수이던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의 입장에서 부담이었고,다른 친한 동남아 국가들에서 축출당하던 화교들이 싱가포르로 오면서 중국인들이 늘어 이대로면 화교중심의 독립국이 나올가능성또한 있는 상황이었고,이는 한국입장에서 좋게보일 현상은 아니었고,이때 한국정부[7]는 말레이시아정부에 싱가포르를 밟아놓을테니 한국에 넘겨달라 제안하였다.[8]
한국은 남방에 확고한 거점을 확보할 목적이었고,말레이시아 또한 화교자본이 가득한 싱가포르를 계속 쥐고있다간 화교자본에 국가가 잠식당할판이었기에 이를 수락하고,1964년 작전명 남방의 맹호가 개시되었다.
전개
계엄령이 발효 중입니다. 자택에 머무르십시오. 명령 준수는 의무입니다. |
당시 싱가포르 시내에 방송된 포고문,계엄기간동안 매일 아침 9시경마다 방송되었다. |
4월 8일 해남도에 주둔하던 대한제국 20군이 싱가포르 인근인 조호르등에 집결 본격적으로 싱가포르를 포위하여 봉쇄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4월 10일 말레이시아 정부는 싱가포르에 계엄령을 선포하였고,대한제국군이 이에 개입할것이 선언되었다.그와 동시에 싱가포르에 제국군 군병력이 진입했고,해군또한 일대 해상을 봉쇄하였다.
보병은 물론 탱크까지 시내로 진주하기 시작하였고,싱가포르에선 이에 반발해 시위가 대대적으로 발생하고,이는 한국군에의해 폭력적으로 진압당해가며 분위기는 격화되어갔다.
결과
5월 28일 시청에서의 최후진압을 끝으로 시위는 끝이 났다.
시위가 끝나고도 2개월간 계엄이 지속되었고,그동안 폭력적 진압에대한 진상은 은폐되어갔다.그리고 9월 2일,조약을 통해 싱가포르는 한국에 합병되었고,이름또한 남방영토+전임황제의 연호인 금명의 금을 따서 금남도가 되었다.[9]
거기다 중국이 무너진뒤 중화민국 임시정부가 싱가포르에서 수립되었는데 금남도사태로 이또한 주석인 장징궈의 죽음과 함께 세력이 박살나버리고 세력이 대폭 줄어든체 인도네시아로 이주했다가 인도네시아 전쟁으로 인도네시아에도 친한정부가 수립되며 인도의 하이데라바드로 도피,현재까지 그곳에서 작게나마 명맥을 유지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