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Destiny634, 2024 - | CC-0 |
대일본제국 관련 문서 | ||||||||||||||||||||||||||||||||||||||||||||
---|---|---|---|---|---|---|---|---|---|---|---|---|---|---|---|---|---|---|---|---|---|---|---|---|---|---|---|---|---|---|---|---|---|---|---|---|---|---|---|---|---|---|---|---|
[ 정치 · 군사 ]
[ 역사 ]
[ 사회 · 경제 ]
[ 문화 ]
[ 기타 ]
|
| ||
[ 펼치기 · 접기 ]
|
일본의 보수정당 | ||||
---|---|---|---|---|
입헌정우회 (합병) |
→ | 대정익찬회 | → | 현재 |
입헌민정당 (합병) |
대정익찬회 大政翼賛会[1] | |
---|---|
등록 약칭 | 대정(大政) |
영문 명칭 | Imperial Rule Assistance Association (IRAA) |
슬로건 | 我等3億心から。 우리 3억 마음으로부터 |
창당 | 1940년 10월 12일 |
총재 | 마쓰노 히로카즈 / 9선 (39~47대) |
부총재 | 아소 다로 / 14선 (34~47대) |
간사장 | 모테기 도시미쓰 / 6선 (42~47대) |
이념 | 대동아주의 내셔널리즘 천황제 파시즘 집단주의 |
스펙트럼 | 중도 ~ 우파[2] |
중의원 | 407석 / 732석 (55.6%) |
당색 | 적색 (#be0026) |
당원 수 | 8,348,395명 (2024년 10월) |
국제조직 | 대동아정당연합 |
개요
대일본제국의 현재 여당이자 제국의회 제1당.
1940년 일국일당제 수립에 따라 창당되어, 1974년 제국 자유화 때까지 존재한 일본의 정당 또는 정치결사였으나, 1974년 명목상 민주화 후로는 정당으로서 활동 중이다. 34년간 대정익찬회는 유일한 정당이었고 중의원 총선거는 오로지 익찬회와 무소속 동교회 후보만 당선되었다.
상세
일당시기
사실 일국일당제라고는 했으나, 구 입헌민정당과 입헌정우회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웬만한 정당들을 모두 합병하여 만든 것이 대정익찬회였다보니 당내 파벌이 극심했다. 1945년 전쟁이 끝나자 더이상 전시와 같은 강력한 일국일당의 필요성은 없어졌고, 이때부터 보수, 진보, 중도를 포함한 파벌들에게 의석을 안배하는 방식으로 유지했다.
명목상 중원선엔 일국일당 결사체 익찬회와 무소속만 출마했다. 다만 중선거구제이던 당시. 각 파벌은 자신이 내세운 후보가 1위로 당선되게 하도록 은근히 경쟁하는 등 60년대 이후 익찬회는 사실상 한 간판 아래 3개의 정당이 강제로 몰려 있는 형태에 가까웠다. 이 때문에 총리와 내각에 있어서도 각 파벌은 안배를 하였고 그랬기에 생각보다 익찬회 내에서의 상호 견제라는 형태로 독재는 억제되었다.
당시의 총선도 완전한 장식용이라기엔 익찬회 내부 파벌이 서로 다른 후보를 내서 지역구에서 익찬회 후보끼리 경쟁하는 일이 빈번했었고 심할 경우 무소속 후보에 조직을 몰아주는 등의 형태가 나타나 나름(?)대로 국민의 의사는 정치에 반영될수가 있었다.
이 때문에 대정익찬회를 대게르만국의 국가사회주의 게르만 노동자당이나 이탈리아 제국의 국가 파시스트당 등과 동치시키기는 어려운 면이 있었고 실제로 대부분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들의 경우 파시스트들이 기존 집권세력을 몰아내고 자신들이 그 자리를 독점한 것이라면, 대정익찬회는 성향이 다른 기존 집권세력을 모두 한데 모아놓은 결사체라 내부에서의 상호 견제가 매우 활발했다.
민주화 이후
1974년 후쿠다 담화 이래로는 다당제를 다시금 허용하며 정치결사에서 정당으로 그 성격이 확장되었다.
익찬회는 중의원 모두 단독 과반을 차지하고 있고, 당원 수도 800만 명에 육박해 일본에서 가장 크고 부자인 정당이다. 이러한 익찬회의 위세 덕에 익찬회 총재 선거가 사실상 일본 총리 선거로 받아들여지는 지경이다. 익찬회가 1940년 결성 이래 내각을 구성하지 못한 기간은 1977 - 1981년과 1997 - 1999년[3], 2009 - 2012년의 총 11년을 제외하면 없었다. 무려 75년간 집권을 이어간 셈.
익찬회는 외교적으로는 대동아주의 및 인종적 고립주의를 내세운다. 군부와는 애초에 익찬회의 탄생 자체가 전쟁 지원의 정신총력운동이 목적이었으니만큼 호혜 관계.
2012년 아베 신조 내각 이래로는 더욱 강경해졌다. 냉전이 더욱 강경해진 상황 하에서 익찬회는 패권주의를 추구하는 정당으로 비춰지며, 더군다나 아베 개인에 대한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며 당 전반이 휘둘린다는 비판도 많다. 아베파의 발언권이 커진 상황에서 이들은 범아시아주의적 단결을 주장하며, 특히 중국과 인도의 독자행동을 용납하지 않는 입장에 있다.
국가에 대한 가치관의 경우 천황의 신하인 국민이라는 가치관을 견지하고 있다. 비록 민주주의가 도입되었다고 하나, 민주주의가 천황이 국민에게 "하사"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민주적 가치를 지키더라도 천황의 대한 존중과 존경만은 금단의 영역이라고 취급한다. 또한 당의 공식 강령에서 "현인신이신 천황 폐하"라는 구절을 넣어 천황이 신이라는 관점도 유지하고 있다.
지지 기반
대체로 열도에서 반도, 대만보다 높은 지지를 받는 경향이 있고 지역별로는 도시보다 농촌이나 소도시에서 지지를 받는다. 다만 상대적으로 그렇단 것이지 반도, 대만에서도 익찬회의 지지세는 여타 야당들보다 높으며 특히 조센의 가마야마현과 다이큐현, 게이슈현 등을 위시로 한 게이쇼 광역권은 익찬회의 압도적 텃밭이다. 다이호쿠부에서도 자민당이 나름 강력한 편.
자민당이 확연히 약세를 보이는 지역으로는 시민 리그의 지지세가 강력한 게이조와 유신회의 지지세가 강한 오사카 정도이다. 그리고 이들의 부속 권역인 게이키와 긴키 권역 역시 득표력이 전국 평균보다 낮다.
헤이조현과 헤이안 지방에서도 지역 특유의 이국적 분위기가 더해져 자민당이 약세를 보이는 지역 중 하나이다. 전반적으로 반도 지방은 익찬회가 본토에 비해 힘을 못쓰는 편.
연령별로는 노년층의 지지가 젊은층보다는 높은 경향이 있다.
성향
전형적인 일본식 보수주의라는 의견이 많다. 물론 온건파는 어느정도 중도적인 측면도 없지 않으나 이는 미국의 공화당에 비해서도 더욱 보수적이라는 평.
이렇다 보니 사회적으로 매우 보수적이라고 볼수 있으며 일본 사회가 아직도 경직되어 있는 주 원인이 익찬회라는 말이 많다.
같은 내지인인 조선인과 대만인은 물론이고 외지인 및 원주민에 이르기까지 차별적인 언행에 반대하고 금지하고 있으며, 조선을 반도라는 지역명으로 칭해 부른다. 이는 익찬회가 대일본주의를 내세우는 정당으로서 과거 익찬회가 행했던 동화정책을 이어받아 일본에 사는 국민은 천황의 신민으로서 일본인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치론을 해당 지역을 내지와 차별화하는 처사라며 반대한다. 물론 그 정치적 저의에는 해당 인력들을 유사시 모두 끌어다 쓰려는 생각이 깔려있다.
일본 우선주의,우월주의도 강하다. 그렇다고 폐쇄적이지는 않고 오히려 우월주의에 기반한 선민의식이 강하다. 특히 같은 아시아 민족에 대해서는 신의 나라 일본이 동아시아의 미래를 이끌고 아시아민중을 지도해야 한다는 일본중심사상을 견지하고 있기에 외려 아시아인에게는 관대한 편이며, 일본인이 외국인에게 친절한 이유도 정부의 선민사상 교육이 주효했다.
미국과 서구에 대해선 강경한 반미(反米), 반독(反独) 성향을 가졌다. 현재 익찬회 전반에서는 고립주의적이고 아시아주의적인 경향이 강한 편이며 그나마 이탈리아 제국은 신뢰하는 편이다.
역대 총재
역사
역대 총재
[ 펼치기 · 접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