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공산당/역사


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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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한공산당의 역사를 설명하는 문서.

창당과 해산, 지하활동기 그리고 12.10 운동

1909년 10월 12일, 여운형을 비롯한 전국 대학이나 공장에서 활동하던 공산주의 사회주의 그룹이 연합하여 만들어졌다. 이 때 공산당은 반왕정-반제국주의를 내세워 무력투쟁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실현하여 공화정을 세우려는 목적으로 각지에서 총파업, 무장봉기를 모의하였으나 1910년 5월 7일, 여운형을 비롯한 각 노동자협회 지도자들이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고 공산당은 한차례 강제 해산된다.

그러나 중국이나 러시아로 도피하는데 성공한 일부 인사들은 각지에서 대한공산당을 재조직했고 연락부를 통해 재결합, 한국 본토에도 지하 연락부를 두어 지하활동을 계속해나갔다. 또한 중국에서 활동하던 대한공산당은 마르크스의 <자본>과 <공산당 선언>등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배포했고 리다자오, 천두슈등 젊은 중국 지식인들과 연대하였다. 이는 1917년 중국 공산당이 창당되는 배경이된다.

이후 김세원등 중국에서 활동하던 대한공산당내 지식인들은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제국주의들끼리 전쟁이 터지자 전세계가 공산주의를 통해 무산계급의 국가를 만들면 평화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서 칸트주의의 영향을 받아 <공산주의 영구평화론>과 <한국과 지나, 일본의 삼국 공산주의 평화체제>등을 집필하여 한국과 중국, 일본이 공산혁명을 통해 무산계급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시대를 종말시키면 세계 평화의 첫발을 내딛을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또한 박원술등 다른 지식인들은 중국의 상황에 맞추어 농민 중심의 혁명을 구상하였고 각 국가마다 혁명의 주체와 그 방식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대한공산당과 중국 사회주의 지식인들은 이에 대한 열렬한 지지선언을 보냈으며 때맞추어 만주에서 여운형이 공산주의 세력을 규합하자 1918년 2월 베이징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의 사회주의자들이 한데 모여 <동아시아공산당연합>을 결성, 동아시아의 공산화를 위한 무력투쟁을 결의했고 1918년 12월 10일 한국 대련에서 항구 노동자들을 시작으로 장장 8개월에 걸친 공산주의 운동이 일어난다. 이것이 12.10 운동으로 한국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최근

2020년 중추원 선거에서 원내 2당이라는 고무적인 성적표를 받아든 대한공산당은 얼마뒤 사민당 탈당파 의원 32명에 대한 심사후 입당을 허용하며 국민원에서도 제1야당으로 올라섰다. 대한공산당 창당 이후 유례없는 부흥기라 당원들도 기대감이 높아진 상황이며 대한공산당은 2023년 차기 선거에서 집권하기 위한 계획을 20년 연내로 세워 발표할 예정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비연정, 독자노선을 버리고 좌익 세력의 단결을 추구하고 노동자 계급에 대한 과감한 정책 홍보등이 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12월 1일, 집권 가이드라인이 공개되었다. 예상외로 비연정과 독자노선은 유지하되 지역 현안에 대해서는 여타 좌파 정당, 인사들과 협력을 강화해나갈 것이며 정책적 선명성을 강화하고 국민당이 조명하지 못하는 주택 부족 문제, 일부 지역에서의 빈곤과 일자리 문제를 집중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2021년 2월 20일, 주택공사 직원 부동산 투기 사건이 터지면서 국민당 정권에 대한 여론이 급격하게 악화되자 올해 6월 2일에 예정된 지방선거 여론조사에서 국민당을 역전, 3월 첫째주 기준 38%라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이며 16%인 국민당을 여유롭게 제쳤다. 국민당 텃밭인 외흥안령부를 제외하면 모든 성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예측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성부급 정부장 23명중 18명을 당선시키면서 창당 이후 최초로 지방권력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