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통일 국가
대한민국
大韓民國 / Republic of Korea
대한민국 제7공화국
통일 한국
국가 임을 위한 행진곡
아름다운 나라
국목 소나무
국화 진달래(참꽃)
국조 학(두루미)
표어 홍익인간
통일대한 선진조국 건설
대한민국의 영토를 그린 지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야경.
2027년 대개발 직전 평양의 야경.
수도 서울특별주 서울특별시
최대도시 서울특별주 서울특별시
면적 220,941km2
내수면 1.47%
대통령
2025년~2035년(예정) 박무진
국무총리
2025년~ 김지훈
이북재건부총리
2028년~ 강민준
역사 - 독립 선언 1919년 3월 1일
- 임시정부 수립 1919년 4월 11일
- 광복 1945년 8월 15일
- 통일 2028년 3월 1일
- 제7공화국 출범 2028년 3월 1일

인문 환경


인구 전체 인구 77,538,575
민족 구성 한민족 98%
인구 밀도 344명/㎢
출산율 2.3
출생 인구 829,393명
사망률 6.1
사망 인구 398,820명
기대 수명 82세
성비 99.1
HDI 0.906
공용어 한국어, 한국수화언어
지역어 제주어, 육진어
공용 문자 한글, 한글 점자
문해율 99.9
종교 불교 20.4%
개신교 19.2%
무종교 60.0
군대 대한민국 국군
세부
군대
육군 대한민국 육군
해군 대한민국 해군
대한민국 해병대
공군 대한민국 공군
기타 대한민국 경찰 국경경비대

하위 행정구역


행정
구역
6개 주 (특별주 1, 자치주 5)
62개 시 (특별시 1, 자치시 61)
군, 구 69개 행정군, 292개 행정구
특구 28개 특구 (16개 관광역사특구, 10개 경제특구, 2개 정치특구)

정치


정부 형태 대통령중심제
정치 체제 민주공화제(국민주권), 자유민주주의, 단일국가, 문민통제, 대통령제, 단원제, 다당제, 지방자치, 성문법주의(한국법계)
입법부 대한민국 국회
민주주의 지수 8.01 (완전 민주주의)
부패 인식 지수 66 (매우 높음)
국가
원수
대통령 박무진
정부
요인
국회의장 박병석
대법원장 김명수
헌법재판소장 유남석
국무총리 김지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노정희
감사원장 최재형
이북재건부총리 강민준
여당 통일민주당

경제


경제 체제 자본주의 시장경제, 혼합경제,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소유권 절대의 원칙, 사적 자치의 원칙, 과실책임의 원칙
명목
GDP
전체 GDP 2조 5460억 달러
1인당 GDP 41,898달러
GDP
(PPP)
전체 GDP 3조 8230억 달러
1인당 GDP 48,707달러
수출
입액
수출 8,055억 달러
수입 6,350억 달러
외환보유액 4,088억 달러
신용등급 무디스 Aa2
S&P AA
Fitch AA-
화폐 공식화폐 대한민국 원(₩, won) (KRW)
환율 1,115:1달러
국가
예산
1년 세입 621.1조 원
1년 세출 612조 원
통계
자료
경제성장률 6.4
물가상승률 2.8
고용률 82.4
실업률 3.4
지니계수 0.34 (매우 낮음)

코드와 단위


ccTLD .kr,.kp(신규 등록 불가),.한국,.ko
국가 코드 410, KO, KOR, KR, ROK
국제 전화 코드 +82
단위 법정연호 서력기원
통일연호
시간대 대한민국 표준시(UTC+9)
도량형 SI 단위
날짜형식 yyyy-mm-dd
전압 및
주파수 표준
220V, 60Hz
운전석
(통행방향)
왼쪽(우측통행)

외교


수교국 194
현재 국가
대한민국

개요

대한민국(大韓民國, Korea)은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영토로 하는 공화국이다. 약칭은 약칭은 대한(大韓) 또는 한국(韓國)/조선(朝鮮).

상세

대한민국 헌법상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면적은 220,941km²로 한반도의 전부를 차지한다. 인구는 약 7,700만 명이다.

10차 헌법의 제3조 2항에 따라 수도는 서울특별주서울특별시라고 판시하였으며,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집무실과 행정부, 그리고 입법부, 사법부 및 주한외교공관 대부분이 집중된 서울특별시가 수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이라는 명칭은 그 자체가 수도라는 뜻으로 순우리말이다.

대한민국은 일제 치하이던 1919년 3·1 운동을 통해 독립을 선언하여 같은 해 중화민국 상하이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광복 이후 1948년 8월 15일 이념 대립으로 인해 둘로 나누어진 한반도의 남부에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여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정부 수립 초기에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한국전쟁을 치렀으며, 전후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하는 국난을 겪었다. 냉전체제의 최전방이라는 지정학적 특성으로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진영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제3공화국 이후 수출과 제조업 집중 육성 및 새마을운동을 통한 고도성장을 거듭하여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이후 2027년 3월 8일, 국민투표에 의하여 제정된 10차 헌법이 발효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대한민국에 흡수 통일됨에 따라 대한민국 제7공화국이 선포되고, 남북통일이 완수되었다.

대한민국은 OECD 출범 이후 원조를 받던 수혜국에서 원조를 주는 공여국으로 바뀐 나라이며 G9 회원국이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하고 경제대국 반열에 서고, 통일을 이룬 몇 안 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 선진국이며, GDP 7위, GDP(PPP) 9위, 수출 4위, 수입 6위이다. 군사적으로 GFP 4위, 국방비 7위의 세계적인 지역강국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한민족 역사상 가장 부강하고 발전된 국가라고 볼 수 있다.[1]

상징

국호

대한민국 헌법 전문 및 제1조에 따라 공식 국호는 대한민국(大韓民國)이며, 대한민국의 상징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식 영문으로는 Republic of Korea라 한다.

2027년 제정된 대한민국의 상징에 관한 법률에 따라 약칭은 대한(大韓) 및 한국(韓國), 조선(朝鮮)으로 정해져 있으다. 영문 약칭 및 통칭으로는 Korea를 쓰며, 국가코드로는 KO, KR, KOR, ROK가 사용된다. 국가별 리스트를 일람할 때는 편의상 K를 앞으로 따 와서 'Korea, Republic of'로 적기도 한다.

그러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로 줄임말인 '한국'보다 공식 국호인 '대한민국'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잦다. 오늘날에는 생소하게 느끼겠지만 2002년 이전만 하더라도 '한국'보다 '대한민국'이라고 칭하는 게 도리어 어색했다. 법전이나 교과서 등의 공적 문서에서나 이따금 보이는 표현이었다. 그런데 월드컵 8강전 대한민국 대 스페인 경기부터 방송에서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표기하기 시작했고, 점차 사용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2002 부산 아시안 게임까지는 '한국'과 '대한민국' 두 개의 단어가 병용되다가, 2004 아테네 올림픽부터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자리잡았다.

통일 이전 대한민국 지역에서 남/북부 관계를 언급할 때에는 대한민국이라는 호칭 대신 남부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국기

대한민국의 상징에 관한 법률에 따라 태극기 (太極旗)이다.

국가

국가는 대한민국의 상징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임을 위한 행진곡아름다운 나라 두 곡이 있으며, 주로 국가 행사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민간 차원의 행사에서는 아름다운 나라를 사용한다.

국화

대한민국의 상징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화는 참꽃이라고도 불렸던 진달래다.

국장

대한민국의 상징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장은 대한민국 국장이다.

국새

대한민국의 국새는 나라도장이라고도 하며, 국가의 권력과 정통성을 상징하고, 공문서에 날인함으로써 대한민국 정부에 의한 행정권의 발동을 표상적(表象的)으로 나타내는 도장이다. 이는 동아시아 제국(諸國)의 전통적인 '어보', '어새', '옥새'의 예를 따른 것이다. 국새는 대통령이 관리하며, 다음과 같은 경우에 대통령이 직접문서 본문 첫째 면의 중앙에 날인한다.

1. 헌법개정공포문의 전문

2. 대통령이 임용하는 국가공무원의 임명장 및 「공무원임용령」 제5조제1항에 따라 대통령이 소속 장관에게 임용권을 위임한 공무원의 임명장

  • 「군인사법 시행령」 제37조의2제3항에 따른 영관급 장교의 임명장
  • 「군무원인사법 시행령」 제46조의3제3항에 따른 4급 이상 일반군무원의 임명장
  • 「소방공무원임용령」 제3조의2제3항에 따른 소방령 이상 소방공무원의 임명장

3. 상훈법 제9조 ㆍ제19조 및 동법시행령 제17조의 규정에 의한 훈장증과 포장증

4. 대통령 명의의 비준서등 외교부장관이 날인을 요청하는 외교문서

5. 기타 행정안전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문서

국새는 대통령령 제30515호 국새규정에 따라 '대한민국'의 네 글자를 인문으로 새기며, 원래는 한자 전서체로 새겼으나 제2대 국새부터는 한글로 새기는 것이 명문화되었다. 글자가 새겨져 있는 부분인 '인면'이 10.4센티미터의 정방형이어야 하며, 재질은 금을 주성분으로 은ㆍ구리ㆍ아연 및 이리듐의 합금으로 제작하여야 한다.

역사

대한민국의 역사는 세계사적으로도 손꼽힐만큼 파란만장하다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불법적으로 강점당한지 9년이 지난 1919년, 조선인들은 3.1 운동을 통해 독립을 선언한다. 그리고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정부를 세움으로써 대한민국의 역사는 시작된다. 1919년부터 1945년까지 26년 동안 일제에게서 국토와 국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자 광복을 맞았다. 그러나 해방됨과 동시에 미국-소련 양국의 분할 점령과 신탁 통치를 겪었고, 미소 군정기의 정국 속에서 벌어진 혼란한 시국 아래에서 냉전 초기의 극도의 좌우 이념 대립을 겪게 되었다. 김구, 김규식등의 중재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친미 우익 세력과 친소련 좌익 세력의 반목은 심화되었고, 소련 당국이 남북 공동 총선거를 위한 UN한국임시위원단의 입장을 거부하면서, 이승만 대통령은 민족 통일을 위한 노력을 멈추고 남한 지역에서만 선거를 실시하기로 해 선거를 통해 제헌국회를 구성하였다.

1948년 8월 15일, 미군정에게서 정권을 이양받으면서 한반도 이남 지역에 정부를 수립하였다. 이후 6.25 전쟁을 거쳐 나라 전체가 극빈함에 시달렸으며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의 권위주의 통치를 국민의 힘으로 몰아냈으나, 그 후 민주당(1955년)을 중심으로 의원 내각제를 기반으로 세워진 제2공화국은 갈피를 잡지 못한채, 정파간에 첨예한 대립으로 국정운영이 제대로 되지않고, 국내에 혼란한 정세를 틈타 박정희는 5.16 군사정변으로 무너뜨리고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수립하고 의원 내각제에서 대통령 중심제로 바꾸는 개헌안을 마련해 1962년 국민투표로 이루어지며 이후 제5대 대통령 선거로 제3공화국을 세움에 따라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인 출신 권위주의 통치가 이루어지며,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들의 거센 요구가 계속됨에 따라 부마민주항쟁,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 등을 거쳐 6.29 선언에 따른 9차 개헌을 통해서 제도적인 민주화를 이룩하게 되었다.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 석달만에 불법 사조직 하나회를 완전히 해체시키면서 군인 출신의 권위주의 통치와 잔해는 완벽하게 끝이 나게 된다.

이 와중에도 경제 개발을 시작하고 대성공하여, 1988 서울 올림픽, GDP 1만 달러 돌파, OECD 가입 등으로 1980년대~1990년대 중반은 경제 부흥으로 대한민국의 자신감이 가장 부풀어올랐던 시기였다. 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라는 충격을 받은 뒤 한국 국민들은 언젠가 자신들이 지금 누리는 부가 다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이후 2000년대 들어 2만 달러대까지 성장한 뒤 2018년 3만 달러를 돌파하였고, 통일 직전 4만 달러를 돌파한 뒤 통일 이후인 현재, 남한 지역의 GDP로만 한정할 시 5만 달러를 돌파하였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성공적으로 이뤄내면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뤄냈으며 21세기에 들어서 선진국으로 들어선 몇 안 되는 국가이다. 또한, 한국은 세계 최초로 원조를 받던 수원국에서 원조를 주는 공여국으로 바뀐 국가이기도 하다.

물론, 시대가 빠르고 급작스럽게 변화하면서 많은 사회 문제들이 생겼다. 그리고, 조금씩 해결되는 기미가 보이지만 아직까지 대한민국 내부에서 여러가지로 해결해야 될 산적한 문제들이 많이 사회 밑바탕에 남아있고, 통일 이후 더욱 증폭되었다.

다른 국가의 역사와 비교하여 대한민국의 역사의 특이점은 유시민이 썰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의 역사는 한민족이라는 단일 민족으로부터 시작된다. 왜냐하면 다른 국가와 다르게 한국은 단군 이래 한민족이 다른 민족에 밀려나거나 사라져서 한민족이라는 민족이 단절되거나 교체된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발굴되는 유물에서도 한민족의 고유의 문화적 특성이 단절되지 않은 채로 연속적으로 보여진다. 반대로 중국은 선비족이나 북방 민족 등의 민족 교체와 유럽같은 경우에는 여러 민족이 흥하고 망하여 대부분이 다민족 국가이다.

자연환경

대한민국 전도

영토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2]

UN에 제출된 실효지배 면적은 220,941㎢이다.

대한민국의 극점은 다음과 같다.

  • 최북단 :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면 풍서동
  • 최남단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마라리
  • 최동단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 최서단 : 평안북도 용천군 신도면 모래동

수도 확정

남북통일은 2027년 3월 15일, 제10차 헌법인 통일헌법 제정 국민투표가 투표율 96.8%, 찬성 92.4%의 압도적 수치로 승인되고, 부칙에 따라 공포 즉시 실행되어 2027년 3월 15일, 역사적인 남북통일이 완수되었다. 10차 헌법에서 대한민국 헌법의 전문과 69조는 일부 수정되었고, 4조[3]삭제되었다.

약 한 달 뒤 실시된 23대 총선거에서는 집권 신민주통일당이 통일로 인한 보수 대분열의 상황에서 이전의 164석에서 100석 이상이 증가한 268석을 획득, 제1야당이었던 새보수연합은 기존의 94석에서 64석이 감소한 30석을 획득한다. 이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폐지하고 통일 선언이 발표됨에 따라 22대 국회에서 일어난 보수 분열로 인하여 131석의 새보수연합의 의석 중 개혁 성향 의원 47명이 탈당하여 의원직을 전원 자진 사퇴하고 신민주통일당의 후보로 출마하였기 때문이다. 새보수연합은 기존 지지 기반이던 강원도와 경기 북부의 유권자들이 통일로 인하여 민주당을 지지하고, 충청도와 부울경의 의원들이 민주당으로 대량 이탈하였기 때문에 TK 지역의 지역구 의석을 제외하면 비례대표 득표율도 7%로, 사실상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보수진역의 완전 궤멸과 몰락을 상징하는 선거가 되었다. 그러나 집권 민주당의 보수 성향 의원들이 새롭게 탈당을 시도하고 있어, 이번 전당대회로 선출될 당의 지도부는 계파갈등의 해결을 위하여 노력해야 할 것이다.

22대 국회는 여대야소였지만, 140석 가량을 확보한 범야권의 발언력이 강하였다. 따라서 개헌안에 적용할 수도의 위치를 두고 논란이 많았는데, 구 북한 지역에 대한 안배 차원에서 10차 개헌에서는 기초의회를 없애고, 광역의회 의원의 수를 3배 가량으로 늘리며 인구 300만 명이 넘는 두 도시, 즉 평양과 부산을 헌법에 명시된 부수도로 지정'하게 되었다. 이에 정부세종청사를 폐지하고 정부조치원합동청사로 격하,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1호청사와 인민대학습당, 북한 내각 종합청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청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외경제성 청사를 합쳐 정부평양청사로 지정, 기존 세종에 있던 부처와 통일부를 평양으로 이전했다. 기존 주석궁으로 불리던 금수산태양궁전은 통일기념관으로 새로이 명명하여 북한 관련 유구들을 전시하기로 하였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기념관은 3개(통일, 독립, 전쟁)로 늘어났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은 약 2배의 규모로 개장하여 전쟁기념관을 이전했다. 이전의 용산 전쟁기념관 건물에는 만수대 의사당에는 평양시청과 평양시의회, 평양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를 위치시켰다. 조선중앙력사박물관은 국립평양박물관, 고려역사박물관은 국립개성박물관으로 개칭했다. 대성산혁명열사릉과 애국열사릉, 재북인사릉은 국립평양현충원으로 재개장했다.

경주역사유적지구와 백제역사유적지구에 이어 서울역사유적지구와 개성역사유적지구, 평양역사유적지구가 신규로 지정되었다. 더불어 백두산국립공원, 개마고원국립공원, 구월산국립공원, 금강산국립공원, 칠보산국립공원, 묘향산국립공원 등 총 9개가 추가로 지정되어 대한민국의 국립공원은 기존 22개에서 총 31개로 늘어났다.

대한민국 국군은 평양의 개선문에 총병력의 무려 절반에 해당하는 30만 명을 행진시키며, 대한민국 체제의 완전한 승리와 1919년으로부터 기원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홍보하고 존 체제를 의미하는 문구들과 부조를 전부 제거한 뒤 민주주의와 통일 관련 내용을 넣는은 뒤 대통령의 참석 하에 통일문으로 개칭하며 통일식이 마무리되었다.

  1. 현 통일한국의 위상은 고대 시대에 만주를 호령했던 고구려나 중세 시대에 문화적으로 발전을 이루었던 고려의 전성기를 능가한다고 평가된다.
  2. 국가상징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는 가운데서도 자국 영토를 헌법에 규정하는 세심함이 있었다. 하지만 '한반도'가 정의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부속도서 또한 모호한 상태다. 무슨 말이냐면 동아시아의 지형상 어디서 어디까지로 반도를 구분짓느냐에 따라 해석은 무궁무진해질 수 있다. 지금의 휴전선 이남만을 두고도 반도라 할 수 있고, 요동에서 연해주까지 묶어서 반도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부속도서도 마찬가지다. 쓰시마 섬보다 먼 제주도는 부속 도서가 되고 독도보다 가까운 쓰시마 섬은 부속 도서가 되지 않는가 하는 합리적 의문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3.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