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중립국)

대한민국
大韓民國 Repubilc of Korea
국기
국장
국가 정보
위치
국가 아름다운 나라
표어 삼균주의(三均主义)
정치체제 민주제, 공화제, 의원내각제, 양원제, 단일국가
수도 서울특별시
행정수도 개성행정특별자치시
행정구역 1특별시, 1행정특별자치시, 9광역시, 18도
역사
정사혁명 1917년 10월
제1공화국 출범 1919년 2월 15일
3.12 쿠데타 1930년 3월 12일
제2공화국(파시스트 정권)출범 1930년 11월 10일
한만전쟁 1935년 11월 13일~ 1936년 7월 28일
4월 항쟁(민주화) 1955년 4월
제3공화국 출범 (56채제) 1956년 3월 12일
정치 정보
공화국 대통령 유시민
총리 문재인
부총리 정세균
상원의장 정영호
하원의장 박주민
대법원장 김명석
헌법재판소장 이혁수
지리
국토 면적 253,620km²
내수면 비율 0.3%
시간대 KST(UTC+09:00)
DST 없음
인구
2020년 인구 72,375,280 명
2021년 어림 72,475,80 명(2020년)
인구밀도 285.0 (50등)
경제
1인당 GDP $35.420 달러 / 세계 24위
GDP (명목) $2조 3,930억(2020년 4월 기준) / 세계 8위
통화 대한민국 원(₩, won)
인문
공용어 한국어, 한국수어
지역어 제주어, 육진어, 연길어
기타
국가도메인 .kr, .한국
국제전화코드 +82
국가코드 KR, KOR, ROK

대한민국(한국 한자: 大韓民國, 영어: Republic of Korea)은 동아시아의 한반도에 위치해 있는 민주공화국이다. 북쪽과 서쪽으로 황해를 사이에 두고 중화인민공화국이, 동쪽으로는 동해를 사이에 두고 일본국이 위치하며, 수도는 사실상 서울특별시이고, 실질적 행정 수도는 개성특별행정자치시이다. 대한민국의 국기는 대한민국 국기법에 따라 태극기, 국가는 관습상 아름다운 나라, 국화는 관습상 진달래이다. 공용어는 한국어와 한국 수어이다. 인구는 약 7,200만 명이다.



1847년, 기해박해를 구실삼아 한성까지 쳐들어 온 프랑스군과의 불평등 수교를 통해 개항을 하게 된 조선 제 24대 국왕 고조와 박규슈를 비롯한 개화파들의 지휘를 통해 대대적인 근대화를 추진해나가기 시작한다. 조선은 개항 당시 세도 정치와 삼정의 문란으로 인해 국력이 크게 훼손된 상태라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는데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겪었다. 그로 인해 비슷한 시기 때 강제로 개항을 하여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낸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근대화 정책이 더디게 진행되었다. 물론 일본은 조선에 비해 상공업이 발달하고 인구와 자원이 많았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1894년, 조선은 일본제국과 손을 잡고 한반도 북부, 요동, 간도, 만주에서 청나라 군을 상대로 승리하면서 200여년 간 이어져 온 청의 속국 신세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주국으로 거듭나게 되는데 이 전쟁을 동양삼국전쟁 혹은 조선독립전쟁이라 부른다. 승전의 댓가로 조선은 연길도(북간도), 요동도(서간도), 산둥반도의 봉래시, 배상금 4천만 냥을 휙득할 수 있었다. 동양삼국전쟁 승전 직후인 1895년, 고조는 칭제건원을 행하며 대한제국의 건국을 선포한다. 제국 선포 당시에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았던 고조는 후대에 무능한 황제가 왕위에 오를까봐 우려 되어 황실을 보전하기 위해 입헌군주제를 택하기는 하지만 사실상 독일제국과 마찬가지로 외견상으로만 그랬고 실질적으로는 전제군주제나 마찬가지였다.



이후 1903년, 극동으로 세력을 확장하며 만주 병합의 야욕을 보인 러시아와 이를 극히 우려하던 영국의 동맹이던 일본이 사할린, 연해주, 동해, 대마도, 훗카이도 등지에서 벌인 러일 전쟁에서 대한제국은 엄정한 중립을 지켰고 그 덕에 한반도가 전쟁터가 되는 걸 방지할 수 있었다. 당시 전체적인 국력은 극동의 세르비아 정도로 평가받던 대한제국이었지만 정병 14만에 예비군 24만이라는 만만치 않던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던지라 가능한 일이었다.



1907년, 고구려의 고토 회복을 운운하며 남만주 병합을 노리던 제3대 황제 광덕제가 즉위하면서 대한제국은 급격히 호전적으로 변해갔으며 러일전쟁에서 승리해 남연해주 지역, 남사할린 지역, 쿠릴 열도 등을 휙득한 일본제국과 만주의 패권을 놓고 대립하기 시작했고 1909년, 한국은 일본의 동맹 영국과 건함 경쟁들을 펼치며 대립 중이던 독일제국과 동맹을 체결했다. 이는 일본을 크게 자극하며 불과 10년 전까지 동맹이었던 한일간의 관계는 점점 최악을 향해 가고 있었다. 결국 이는 1914년, 한일 전쟁으로 이어졌다. 3년 간의 참혹한 전쟁 끝에 200만 명의 사상자를 내며 패전한 대한제국은 일본에게 요동도와 산둥반도 조차지 봉래시를 할양하고 국가 예산 4년치의 배상금을 지급하는 뼈아픈 결과를 거두고 말았으며 이는 2천 만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패전 직후인 1917년 10월, 무오혁명이 터지며 제정은 완전히 붕괴되고 안창호를 대통령으로 한 대통령제 민주공화정 대한민국이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동맹국이었던 독일을 비롯해 많은 유럽 국가들의 군주제가 붕괴되었는데 한국 역시 그 흐름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1919년에 공식적으로 출범한 안창호 정부는 안정적으로 전쟁복구에 힘썼고 1924년에는 경제 성장률 8.1% 라는 대단한 성과를 보기도 했지만 안창호의 뒤를 이은 조만식 정부는 1929년 경제 대공황의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사회는 다시 패전 직후와 마찬가지로 대혼돈 속으로 빠지게 된다.


이런 와중에 파시즘 성향을 지니고 있던 제6사단장 김우진 소장이 1930년 3월 12일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조만식 정부를 무너뜨리고 국가비상대책최고위원회를 설치했다. 한편 같은 해 6월에 공산주의자들이 함흥 소비에트를 결성해서 군사정권 타도와 공산 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대대적인 무장 반란을 일으켰지만 3개월 만에 완전히 진압되고 말았다. 이를 6월 공산반란이라 부른다. 이 사태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의 상당수가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억울하게 처형당하거나 불이익을 받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살아남은 소수의 공산주의자들은 북쪽으로 도망쳤지만 일본령 남연해주와 만주 전체를 장악하고 있던 일본 제국군에 의해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1932년, 제2공화국 출범과 함께 대한민국의 총통이 된 김우진은 취임하자마자 이런 공산 반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엄격한 총기규제정책을 실시하였으며 권총, 소총은 물론 산탄총, 엽총까지 총이란 총은 모조리 국가에 몰수되었는데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치안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김우진 정부는 대규모 지출을 통해 내수 경제를 활성화 시키며 대공황의 여파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고 1936년, 중일 전쟁이 터지자 중립을 표방하며 일본에게 물자를 엄청나게 팔아먹으면서 경제적 이득을 챙겼으며 태평양 전쟁 때도 한국은 중립을 지켰다.그러나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통치로 인해 인권이 유린되는 사태가 빈번해졌으며 3S 정책을 펼치며 우민화 정책을 철저하게 진행시켰다. 한편 중일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이던 1935년, 월드컵 예선전 경기에서 한국 축구 대표팀과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 대표팀 사이에 오심으로 인한 충돌이 발생하며 이로 인한 나비효과 때문에 한국과 만주국 사이에 8개월 가까이 전쟁이 터지기도 했다. 이 전쟁은 한만전쟁, 제2차 한일 전쟁, 축구 전쟁이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나 폭압적이던 김우진 정부는 2차 대전 종전 직후인 1945년 9월, 유신헌법을 선포하며 영구 집권의 야욕을 노골적으로 들어냈으며 이로 인해 군사 정권에 반감을 품는 국민들은 날로 늘어만 갔다. 결국 1956년 4월에 전국적인 민주화 항쟁으로 이어졌으며 김우진 정부는 군과 경찰을 투입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강경하게 진압했지만 결국 국제 사회의 여론과 진압하던 군과 경찰의 동요로 인해 무너지고 말았으며 김우진을 비롯한 군사 독재 정권의 수괴들은 사형, 종신형 혹은 추방 당하며 24년 간 이어진 군사 독재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되었고 민주화를 이루어 낸 대한민국은 기존의 대통령 제에서 서독식 의원내각제로 전환했다. 그리고 4월 민주화 운동을 이끌던 사민당의 당수 여운형이 1956년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해 첫 번째 총리로 임명되었고 제3공화국은 2021년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대한민국은 6,7,80년대에 고도 경제 성장을 이어나갔으며 세계적인 경제 강국과 아시아의 유이한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했으며 대내적으로는 최상의 복지 정책을 실현하며 극동의 스웨덴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중립외교를 지향하며 냉전 시절에는 공산권 국가들과도 무난히 지내려 노력했고 미국과 안보적으로 협력관계를 맺으며 중국과 소련을 경계했으며 동남아와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신생 국가들에게 꾸준히 원조도 진행했다. 냉전이 끝난 지금까지 한국의 중립정책은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2016년 유엔의 인간 개발 지수(HDI) 조사에서 세계 18위로 '매우 높음', 국제 통화 기금(IMF)에서는 대한민국을 선진 경제국으로 분류하였다. IMF에서는 경제 선진국으로 분류되었으며 이코노미스트에서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 조사에서는 2019년 기준 23위의 '8.0점'을 기록하는 등 아시아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온전히 작동하는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현재 주요 20개국(G20),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개발 원조 위원회(DAC), 파리 클럽 등의 국제기구의 회원국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