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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포격사건
날짜 2018년 11월 16일
시간 오전 4시
위치 독도 서도
참여자 청화국 해군 동도 경비단(46명)
원인 불명
결과 한국 독도경비대 대원 20명 사망
청화국 동도경비단 대원 2명 사망
청화국 해군 강제해산
피해
사망자 22 명
부상자 8 명

개요

해산 위기 청화국 해군의 마지막 발악

2018년 11월 16일 오전 4시 청화국 해군소속 동도경비단이 한국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서도를 향해 무려 30분동안 무차별적으로 포격을 가하고 서도에 상륙한 사건. 포격으로 한국 독도경비대 대원 11명이 사망하였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오전 5시 무렵 청화국 동도경비단 46명은 서도에 상륙을 시도하여 독도경비대와 교전을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한국 독도경비대 대원 9명이 추가로 사망하였고 청화국 동도경비단 대원 2명이 사망하게 되었다.

원인

전개

2018년 11월 15일 청화국 동도경비단은 이때부터 포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 독도경비대도 이러한 움직임을 포착은 했으나 포구를 남쪽으로 돌리는 동도경비단의 속임수에 방심을 하게되었다. 남쪽을 향해있던 포구들은 11월 16일 오전 1시부터 서서히 서도 쪽으로 돌아갔다.

청화국 동도경비단은 이전에도 여러차례의 독도경비대 저격미수사건과 일본을 향해서, 인근을 지나던 일본 선박을 향해 포사격을 진행한 적이 있기 때문에 포구가 남쪽으로 돌아갔다고 해서 완전히 방심을 한 것은 아니었다.

청화국 해군참모본부도 동도경비단의 포병전력들의 포구가 서도쪽으로 향해 있다는 보고를 접하긴 했으나 해군참모총장 현일봉 대장이 총리와 합참의장에 보고하지 않고 고의로 덮어버리는 실책을 저질러버렸다.

그대로 시간이 흘러 오전 4시, 비극이 시작되었다. 동도경비단은 서도를 향해 30분 동안 무차별적으로 포격을 가했다. 독도경비대는 갑작스런 공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본토 쪽에 알리지도 못했다. 한국이 이를 보고받은 것은 포격이 멈춘 이후인 오전 4시 35분이었다. 한국정부는 보고를 받자마자 주한 청화국 대사 강건일을 소환하여 강력 항의하였고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해 해군함대와 해병대를 서도에 파견할 것을 명령하였다.

항의를 받은 청화국 정부도 분주하게 움직이며 공군에게 정보수집과 공수부대 파견을 준비시켰다.

그 시각 동도경비단 46명은 반쯤 무력화된 틈을 타 경비정에 탑승하여 서도에 상륙하였다. 이들은 서도에서 독도경비대와 교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동도경비단 대원 1명과 독도경비대 대원 9명이 사망했다.

오전 11시 준비를 마친 청화국 공군공수특전단이 동도에 침투하여 잔류하던 동도경비단을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무력화시켜 포대들을 탈환했다.

때마침 한국의 해병대가 서도에 상륙하여 동도경비단과 전투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동도경비단 1명이 사망하였다. 압도적인 공격으로인해 동도경비단의 일원들은 우왕좌왕하며 경비정을 타고 다시 동도로 도주했으며 동도에서 대기중이던 청화국 공수특전단에 의해 전원 체포되어 사건은 종결되었다.

결과

독도 포격사건 직후 한국정부는 청화국에 항의하는 동시에 함대와 해병대를 파견하였으며 청화국의 김재인 총리대신은 현일봉 해군대장을 해군참모총장에서 경질시키고 박동헌 공군대장, 이석규 공군중장과 권용건 육군대장, 한원석 육군대장을 불러들여 회의한 끝에 해군 해산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건의 책임자들인 동도경비단 46명은 불명예 퇴역하였으며 46명 전원 수감되어 있다. 이 사건의 여파로 해군이 해산되며 육군과 공군과 분할 편입되었다.

한국 내부에서는 유가족들이 청화국에 배상을 요구하고 청화국에 대한 전쟁 여론이 거세졌으며 국교단절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