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분단과 통일 과정


A WARSAW FICTIONAL PROJECT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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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분단과 통일 과정
1945년

연합국의 독일 군정

1949년

삼독 분할

1974년

서독-남독 통일

1990년

독일의 재통일

 1 개요 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4개국에 의해 실시된 독일 군정을 시작으로, 서독, 동독, 남독으로 이뤄진 삼독 체제, 그리고 통일 과정을 다루는 문서이다.

 2 독일에서의 군정 실시 2 독일에서의 군정 실시

제2차 세계 대전이 종료된 후, 나치 독일이 패망하자 미국, 소련, 프랑스, 영국 4개국은 6월 5일 얄타 회담에 의거한 연합국 관리위원회를 설치 후 분할통치 및 베를린 공동 관리에 대한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동프로이센은 각각 폴란드와 소련이 차지하였으나 오데르-나이세 선 이동 지역, 슐레지엔, 포메른, 서프로이센 일부 지역 등이 여전히 소련 점령 하 독일이 차지하였기 때문에 폴란드와의 귀속 문제가 대두되었다. 1943년 모스크바 회담에서 오스트리아 합병은 무효인데다 오스트리아를 히틀러 치하 독일에 의한 첫 희생 지역으로 인정해 해방된 독립국으로 대우하겠다고 합의했고, 1945년 예정대로 군정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는데 군정이 시작되기도 전인 1945년 미국이 오스트리아 전체를 가져가버리자 영국, 프랑스, 소련은 반발했고 미국은 오스트리아를 바이에른 지역과 합친 새로운 독립국으로 만들기 위해 실시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와 동시에 나치 청산을 목표로 관리위원회를 통해 관련 법률을 단계적으로 폐지시키기 시작하였고 나치 패망 이후 체결된 런던 협정에 따라 '국제군사재판소설치헌장'이 채택되고, 이는 후에 뉘른베르크 재판이 열리게 되는 계기가 된다.

 3 마셜 플랜과 삼독 체제 3 마셜 플랜과 삼독 체제

1948년 미국은 마셜 플랜을 발표해 유럽을 재건시키겠다는 명목을 내세워 서유럽에 무상으로 130억 달러를 원조하였다. 그리고 2월 5일부터 2월 23일까지 영국, 프랑스 점령 하 독일이 통합되고, 2월 26일에는 미국 점령 하 독일-오스트리아 지역이 독립국 헌법을 공포함에 따라 서독남독이 형성된다. 한편 소련은 자신들의 점령 치하 독일에 대한 관리와 규제에 더욱 열을 올리게 되고, 이후 동독이라는 나라를 형성시켰다.

한편 서방의 점령 하 독일은 통일 후 독일 마르크를 재도입했고, 남독에서도 마르크가 도입되었지만 1950년대 이후부터는 쉬드마르크로 개편되었다. 소련은 이러한 개혁에 반발하며 6월 8일부터 21일까지 베를린을 봉쇄시키고 서베를린에 대한 통행과 지원을 통제했다(베를린 봉쇄). 거기다 마르크가 아닌, 오스트마르크 도입을 발표함에 따라 이는 훗날 독일이 통일된 후 여러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하지만 미국의 서베를린 공수와 압도적인 물량에 밀려 봉쇄가 실패되었고, 이후 1961년 봉쇄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베를린 장벽을 설치하는 계기가 된다.

1948년 7월 1일 3개국은 프랑크푸르트 문서를 전달함에 따라 서독에서는 중앙정부가 들어서게 되었고, 8월 1일에는 뮌헨 문서를 전달, 남독에서도 중앙정부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1949년 10월 7일 동독에서 임시인민회의에 의해 헌법이 선포되었으며 이후 서독, 남독, 동독이라는 이른바 삼독체제로 이어지게 된다.

 4 남서통일 4 남서통일

1974년 12월 8일, 서독의 헬무트 슈미트 총리와 남독의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 총리는 '남부 독일과 서부 독일의 통일에 관한 조약' 즉 남서통일조약을 체결함으로써 1974년 12월 19일 서독은 남독과 흡수 통일되며 5개 주를 새로 흭득하였다. 그리고 바이에른, 의 경제적 성장과 서독의 라인강의 기적으로 경제 성장이 이뤄지게 되었으나 이것이 크게 작용함에 따라 경제 성장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5 독일의 세번째 통일과 종료 5 독일의 세번째 통일과 종료

1989년 11월 9일, 분단의 상징으로 불렸던 베를린 장벽이 마침내 무너졌고, 동독에는 자유로운 왕래를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에 수많은 사람들은 베를린 장벽 앞에 모여들었고, 비자와 여권을 요구하던 국경경비대의 질서가 마비되었으며, 국가보안부 청사는 시민들에 의해 파괴되고 약 2,000명이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는 등 통제력을 상실했다.

이 때 서독은 동독에 유화적인 외교를 펼치기 시작했으며, 1990년 3월 동독의 자유선거에서 독일연합의 압승으로 급속한 통일이 진행되었다. 이후 동독은 멸망하는 대신 5개 주가 서독에 가입하는 것을 조건으로 통합이 결정되었고 8월 31일에는 통일 조약에 서명, 9월 12일에는 2+4 조약을 승인받아 베를린의 주권을 되찾는다. 마침내 10월 3일 정식으로 독일이 통일된다. 통일 이후 일부 인사들은 독일 정부에 합류하였고, 국가인민군의 해체, 인권 탄압을 벌인 동독 인사 청산 등이 이뤄지게 되지만, 통일 이후 벌어진 독일의 사회 문제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