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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멘션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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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수많은 아우성과 함께 밑으로, 밑으로, 밑으로, 밑으로 떨어졌다. 지구를 뚫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오랫동안 떨어졌다. 한 수십 분 뒤였을까, 떨어지는 세찬 바람소리는 멈췄지만 강하게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쨌든 끝도 없이 떨어지는 것은 멈췄고 드디어 빛이 보였다.


대체 여기가 어디인지, 왜 떨어졌는지에 대해 너무 혼란이 왔다. 일반적인 재난이라 하기에는 떨어지기 직전 봤던 그 거무스름한 게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찰나에 빛이 밝혀졌다. 우리가 떨어진 곳은 무언가 형용할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이곳은 더 이상 지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떨어졌던 깊은 통로는 빛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이곳은 어디로 통하는 문이 없는 게임 튜토리얼 같은 느낌이었다.


뭔가 음침한 기분이 들어 뒤를 돌아봤다. 우리가 타고 왔던 크루즈는 사라져있었고, 크루즈에 타고 있었던 친구들과 다른 사람들도 통째로 사라진 것이었다. 결국 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세상에 인간이라곤 나 밖에 남지 않은 것이었다.


온갖 의문들이 겹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왜 우리는 떨어졌고, 나밖에 남지 않은 것이며, 여긴 어디인가. 우선은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보기로 했다.


“그 공간”에서는 시계 하나가 걸려있었다. 시계의 일자는 8712년이었고, 시침과 분침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속도를 견뎌내지 못했는지 얼마 가지 않아 시계는 폭발했고, 양옆에는 또 어딘가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었다. 우선 이 통로로 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통로로 간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이 세계는 나를 통로 속으로 가게 했다. 아마도 통로는 “이 세계”에서 꽤나 깊은 곳에 있었고, 나는 “이 세계”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닐까 했다. 추측이 맞았는지 통로 밖은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이동한 거리는 많아보였지만, 그에 비해선 꽤나 빠른 시간 안에 통로의 끝에 도달했다. 점점 통로 밖이 밝아지기를 시작할 즈음에 통로가 열렸기 때문이다.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우선적으로 떨렸다. “여긴 어디인가?”라는 질문이 아까부터 머릿속을 맴돌았는데, 그게 정점을 찍은 것 같다.


통로 밖은 상상조차 못했던 공간이었다. 한 단어로 형용하기 힘든, 자유분방하고도 그들만의 규칙이 있는 것 같았으며 난장판 같으면서도 사진 한 장을 찍고 싶은 장관이었다. 무채색 따위는 없는 다채로운 세상. 상식을 벗어나는 건물들. 이때도 나는 “여긴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발걸음은 쉽게 떼어지지 않았고, 검은 눈동자는 이 장관을 보기 위해 쉴 새 없이 굴려졌다


확인해보니, 내가 밖으로 나왔던 이 영문을 알 수 없는 통로 밖은 “이 세계”에서 꽤나 가장자리에 있는 듯 했다. 상식을 벗어나는 그 건물들이 밀집해있는 곳은 저 멀리에 보였다. 일단은 그곳으로 가는 것이 유일한 답이라고 생각했다.


중심지? 같은 건물들이 밀집해있는 곳은 꽤나 멀었다. 둘을 잇는 길은 들판으로 뒤덮여있었다. 그런데 내가 처음 “이 세계”를 봤던 그 때처럼 형용하기 어려운 풀이 내 키를 뛰어넘고 순식간에 바오밥나무처럼 자랐다.


뒤이어 내 근처의 풀들도 그와 똑같이 자랐다. 땅을 봤더니, 내가 아는 그 “나무”가 풀보다 훨씬 작게 자라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에선(사실 이걸 하늘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미 열매까지 맺어버린 풀들이 열매를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열매가 말랑했기에 별로 아프진 않아 다행이었다.


“중심지”는 내가 살던 세계의 도시들처럼 건물들(건물 같았지만, 내 상식 선에서는 건물이라고 하긴 좀 어려웠다.)이 밀집해있었다. 무언가 사람? 생명체? 이 문명을 일궈낸 어떤 것들도 가득 있는 것 같았다. 그 중심에는 가장 높은 건물 하나가 있었다.


그 뭐라 설명하기 힘든 생명체들이 조금 두려웠지만, “여긴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은 우선 저 곳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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