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카타투데라 연방
የላካታቱዴራ ህብረት
국기 국장
ትንሽ እና ጠንካራ ሀገር
작고도 강한 나라
상징
국가 ኩራተኛ!
자랑스럽도다!
국조
타조
국수
사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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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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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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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마푸티바
최대 도시
미마누탕
면적
약 280.02㎢
접경국
케냐, 남수단, 에티오피아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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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792,824명
밀도
41명/㎢명/km2
인종
라카타투데라인 37%, 에티오피아인 24%, 영국인13%, 아랍인 15%, 이탈리아인 11%, 기타 1%(2020년)
출산율
3.79명(2020년)
공용어
암하라어(라카타투데라 방언)
지역어
이탈리아어, 영어, 아랍어
공용 문자
그으즈 문자, 라틴 문자
종교
국교
국교 없음 (정교 분리)
분포
토착종교 47%
기독교 28%
이슬람교 12%
기타 종교 13%
군대
라카타투데라 부족군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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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
39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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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연방제,공화제,대통령제,지방자치제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45위-결함있는 민주주의(2027년)
정부
요인
대통령
아미나퉁 니상파루
부통령
사라데눈 아논무싸
원내 의장
미나데신 우부토자
여당
연방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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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GDP
(PPP)
전체 GDP
$1조9,020억
1인당 GDP
$48,596
GDP
(명목)
전체 GDP
$7, 824억
1인당 GDP
$6, 195
무역
수입
$3,279억
수출
$1조 1798억
신용 등급
무디스 AA
화폐
공식 화폐
라카타투데라 파운드
ISO 4217
LKT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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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TUC+01:24
도량형
SI 단위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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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교현황
대한민국 수교 1972년
UN 가입
1948년
주한대사관
서울특별시 용산구 회나무로44길 31
ccTLD
.lt
국가 코드
254, lt, lkt
전화 코드
+254

개요

라카타투데라 연방(암하라어:የላካታቱዴራ ህብረት)은 동아프리카 지방에 위치한 연방제 국가이다. 수도는 마푸티바이며, 국명은 프랑스어로 흔히 Lachartue'la 로 불리나 현지인들은 본토 발음인 Rakatatudera 라 불러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상세

제 1차 에티오피아-이탈리아 전쟁 이후 에티오피아의 지배 하에 있던 라카타투데라인들은 열강의 위협, 그리고 에티오피아의 몰락을 예상하고 독립하였으며, 이후 마마투오바바 롱 라카타투데라가 황제로 집권하였다. 식민시대에는 이탈리아와 영국 사이에서 줄타기에 성공해 보호령으로 남아서 왕좌를 간수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뒤 1989년에 연방을 수립하여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식민시대때 발견된 다이아몬드, 금, 석유 등으로 아랍 못지않은 부유국이 되었으며,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자원 보호도 잘하고 정치도 매우 안정적인 편이다. 오죽하면 아프리카의 진정한 오아시스로 불릴 정도이다. 그러나 국토 대부분이 정글이기 때문에 국토의 75%는 개발이 덜 됐으며, 현재 주요 거주 지역은 국토 외곽, 즉 국경 지역이다. 그러나 마푸티바, 미마누탕 등은 개발에 성공해 현재는 어마무시한 대도시가 되었으며 미마누탕은 아프리카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걸프전-이라크 전쟁 이후, 자신도 미국의 표적이 될까 두려웠던 라카타투데라는 미국과 동맹을 맺고 효율적인 수출로 미국으로부터 적지 않은 돈을 벌었다. 이 자금으로 아프리카 최상의 복지를 이루었으나, 현재 대통령인 아미나퉁 니상파루는 여러 정치적인 실책으로 민주주의지수를 40위 안팎까지 내리고 미국과의 관계를 제외하면 외교적으로 찐따가 되는등 아프리카의 문재인이라고 불릴 만큼 정치적 실패가 상당하다.

상징

국호

국기

국장

국가

표어

역사

라카타투데라 연방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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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Independent Era
식민시대
Colonial Era
근대
Modern Period
현대
Contemporary Period
라카타투데라 제국 영국 보호령 이탈리아 보호령 마푸티바 조약 파시스트 라카타투데라 라카타투데라 제국 라카타투데라 연방

1차 에티오피아-이탈리아 전쟁 이후, 에티오피아 남부의 라카타투데라인들은 유럽 열강의 위협을 간접적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그들은 에티오피아가 곧 몰락할 것이라 예측하고,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해 남쪽으로 조금 더 이주했다. 이후 마마투오바바 롱 라카타투데라가 황제로 올라 투르카나 호수 근처에 아라라프리파리오라는 도시를 세워 수도로 삼았다. 이렇게 보기좋게 독립했지만, 곧 영국이 라카타투데라 서쪽의 수단과 케냐를 점령하며 라카타투데라 제국은 식민주의의 피해를 받을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이때 라카타투데라 서부에서 막대한 양의 금이 발견됐고, 황제인 사카타소마타는 영국과 협상해 매년 금을 보내주는 대신 보호령으로 남아 왕위를 이을수 있도록 허가받았다. 그렇게 라카타투데라는 영국의 통치 하에서 근대화에 성공했고, 시내는 번창하기 시작했으나... 위기는 그다음에 찾아왔다. 바로 이탈리아가 끝내 에티오피아를 점령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그때 영국의 왕이었던 에드워드 8세가 라카타투데라 보호령을 폐지하고 라카타투데라를 식민지로 삼으려는 시도를 하면서, 라카타투데라의 여론은 급격히 친이탈리아파로 기울었다. 결국 왕[1] 카라타오아우는 이탈리아의 보호령이 되었는데, 이게 너무 갑작스러웠기에 영국이 항의했고 결국 이탈리아군과 영국군 사이에 로루스 전투(1936)라는 소규모 교전이 일어났다.

로루스 전투 이후, 지칠대로 지친 양국은 결국 마푸티바 조약(1937)을 통해 황제는 영국이 하는대신 보호령은 이탈리아의 소유로 하기로 하였고, 이후 두 유럽 국가의 문화를 섞은 독특한 문화, 근대 라카타투데라 문화가 창시되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영국이 황제 자리에서 쫓겨나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황제가 되었으나, 전쟁 초반에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가 공격당하자 라카타투데라가 노선을 갈아탔고 그렇게 라카타투데라는 별다른 피해 없이 살아남았다.

전쟁 이후에는 꾸준한 독립운동을 전개해, 결국 미마누탕 전쟁까지 일어났으며 이 전쟁을 통해 1948년에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이후 식민시대 때 발견된 석유와 금, 다이아몬드 등으로 부유국이 되었으나, 국가예산을 황족이 마음대로 쓴 사건이 일어나면서 결국 이 여파로 1989년에 군주제가 폐지되고 연방이 수립되었다.그렇게 민주주의가 성립된 한편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이 자신도 침략하여 석유를 강탈해갈 수 있다고 생각한 라카타투데라는 두려움을 느껴 급히 친미 노선으로 갈아타고 미국과의 효율적인 외교 정책을 시행했다. 그 결과 미국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고[2] , 이전보다도 더 부유국이 되어 국토 중부의 정글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한편, 현채 대통령인 아미나퉁 니상파루는 여러 정치적 실책으로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1. 영국의 왕이 라카타투데라의 황제가 되었고 원래 황제의 지위는 왕으로 낮춰졌다.
  2. 사실 미국은 라카타투데라를 공격할 생각조차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