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퉁안
Mǎ tōng ān ,馬通安

출생 1962년 3월 15일(1962-03-15)
소련 사할린알렉산드로프스크 사할린특별구 두에
국적 소련
사할린 사회주의 인민 공화국
학력 소련 사할린알렉산드로프스크 사할린 레닌그라드 대학 졸업
직업 정치지도자
정당 사할린 공산당
종교 불교
배우자 진유연

생애

관오란이 2차 임기를 마치고 자진사퇴하자 그의 옆에서 국방을 책임지던 국방장관 마퉁안이 50표중 39표를 얻고 2번째 주석에 당선되었다. 마통안은 그 전 직책이 국방부장관이었던 만큼 국방에 온혈을 쏟아냈는데, 그는 특히 육군의 중요성을 중시하여 2014년까지 전차수를 25,000대까지 늘렸다. 또한 보병수를 43만명까지 늘린 결과 육군은 전 세계 5위, 보병수는 전세계 13위에 달하는 육군전력 강국으로 만들어놓는데 성공하였다.

또 마퉁안은 러시아 정부에게 사할린 석유산업에서의 이권을 주는 계기로 러시아정부와 온화한 외교노선을 트는데 주력함으로서 군사적 위협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또 러시아가 추진하던 시베리아 개발정책과 마퉁안의 외교술이 맞물려 러시아 니콜라예프스키 소베츠카야반과 사할린 알렉산드로프스크 사할린스키 포르기비를 잇는 해저터널을 건설할 계획도 세우며 러시아와의 앙숙관계를 보다 협력관계로 발전시키는데 주력했다.

이렇듯 마퉁안 정부시대 러시아는 더 이상 사할린의 적국이 아니라 협력의 국가였다. 전쟁의 위험이 사라지는 듯 하여 안도의 한숨을 내쉴듯 했으나 이번엔 中國이 '하나의 중국' 모토를 내세우며 사할린을 중국으로의 귀속을 발언 했고 이에 사할린은 '중국이야말로 다시 청나라에게 귀속되어야 한다'며 으름장을 내놓았다. 이에 후진타오는 격분 하여 사할린을 겨냥하는 군사적 옵션까지 계획할정도 였으며 이에 마퉁안은 日本과의 관계를 더 돈둑히 하고 中國 을 견제하는 韓國과 米國에게도 손을 뻗어 중국을 견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