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슬리 나 에흐트, 연방어로는 명예의 길(Slí na Éacht)이라 불리는 사회 제도는 로안 문화의 가장 독특하고도 중요한 요소로 일종의 사회적 지위와 그에 따르는 요구를 말한다.(이하 '길'이라 부름) 길은 경직되어 있고 계급 간 이동이 거의 없는 로안 사회에서 유일하게 유동적인 변화가 있는 지위이며 주로 로안 사회의 기준에서 얼마나 명예로운 행동을 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이러한 길은 그 원형이 역사 시대의 고대 문헌에서도 발견 될 정도로 전통을 중시하는 로안 사회에서도 오래 된 전통이며 그 방법 또한 오랜 세월에 걸쳐 고도로 규범화되고 변화되어 왔다.

길은 로안 문화권의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적용된다, 자유민인 세나크(Saoránach), 노예 계층인 스카바이(Sclábhaí), 귀족 계층인 아이리호트(Airíocht), 왕족인 리흐(Ríthe)까지 모두 같은 선상에서 명예를 쌓아야 하며, 공통되고 엄격한 기준을 통해 로안 사회에서 누가 더 명예로운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길은 로안 사회의 계급과는 관련이 없으며, 낮은 계급을 가진 이가 높은 명예의 단계에 있을수도, 높은 계급을 가진 이가 낮은 명예의 단계에 있을수도 있다.

전통적인 명예의 길은 귀족 사회의 전유물이었기에 전통적으로 기사도적 행동. 즉 용기있는 행동에 의해서만 변화되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메아니(Meánaic) 즉 중산 계층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며 다양한 미덕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고, 전통적 봉건 사회에서 탈피해 로안 사회가 시민 자본주의적으로 변하며 부를 거머쥔 메아니 계층의 정치적 입김이 거세져 다양한 미덕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변화되기에 이른다.

다만 여전히 로안 사회의 핵심 계층은 아이리호트, 즉 귀족 계층이며 오랜 세월 이어진 상무정신에 더불어 영웅담과 신화적 이야기를 사랑하는 로안인들의 성향으로 인해 세가지 미덕 중 가장 으뜸은 용기로 꼽힌다. 이러한 명예의 길은 단순히 사회적 시선과 평판뿐만 아니라 로안인들의 직업이나 신분(예를 들자면, 로안 연합왕국의 군대인 연합왕국군에 입대하기 위해서는 명예의 길이 일정 단계 이상이어야만 한다.)과도 직결되는 문제인데다가 로안의 여성들은 쌓아온 미덕으로 그 남성의 남성다움이나 명성을 가늠하기에 군대에 입대할 생각이 없는 이들이라도 명예의 길에 과도하게 신경쓰게 되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판단관

미덕은 로안 사회의 전통적이고 특징적인 직업인 판단관(Thearthaí)을 통해 평가된다. 이들은 오랜 시간동안 대를 이어가며 길을 오르는 이들에게 이정표가 되었으며 판단자가 되기 위해 선대 판단관에게 어떤 기준으로 미덕을 평가해야하는지, 어떤 길을 쌓아왔는지 나타내는 일종의 훈장인 표식(Comhartha)을 만드는 제작하는 방법, 표식에 새겨진 색과 문양으로 이 자가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 알아보는 법 외에도 미덕을 나타내어 표식을 받았다는 증명서의 발급 및 작성까지, 판단관은 명예의 길의 처음부터 끝을 담당하며 그만큼 로안 사회에서 가장 명예롭고 전통적인 직업으로 꼽힌다.

명예 단계의 구분


미덕의 상징색
용기(Misneach)의 적색 문예(Dúchas)의 청색 권위(údarás)의 자주색 헌신(dílseacht)의 녹색 지혜(eagna)의 황색

명예의 길은 분명 로안 사회에서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 자체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이기에 그것을 실물로써 드러낼 수 있는 도구인 표식은 매우 중요하며 표식은 대체로 약장의 모습을 하고 있다. 표식은 간단하게 몸과 꼬리로 나뉘어지는데, 로안 사회에서 미덕을 상징하는 여러 색으로 만들어진 체크 무늬 천이 몸, 그것을 고정시켜 의복이나 갑주 위에 달 수 있게 해주는 금속 재질의 테가 꼬리이다.

누군가가 표식을 얻을만큼 중요한 업적을 이룬다면 그것을 눈으로 보고 확인한 누군가가 그 자를 판단관에게 추천한다. 사실 판단관은 진실의 눈(Súile Fírinne)이라는 도구를 통해 그 사람이 세운 업적이 사실인지, 그 업적이 표식을 받기에 적합한지를 판단할 수 있기에 절차상으로는 추천인이 필요하지 않지만 전통을 중요시 여기는 로안 사회의 특성상 자신의 업적을 증명해줄 추천인이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추천인의 추천을 통해 표식에 대한 심사를 받게 된다.

판단관이 이 인물의 업적이 진실되었으며 표식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판단관은 표식을 제작한다. 표식의 꼬리 부분은 주로 그 지방이나 가문의 전통적인 모양으로 만들어지나 개인이 달성한 업적이 매우 위대하다면 그 업적에 맞는 문양을 따로 제작하기도 한다. 꼬리의 재질은 보통 금속질이며 귀족 가문에서는 금, 은, 백금과 같은 희귀한 금속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자유민이나 노예 계층은 강철, 구리 재질을 사용하고, 정말 가난하거나 혹은 특수한 목적(주로 눈에 띄어서는 안되는 특수 임무를 가진 군인 계층.), 전통적인 이유를 가진 이들(데일 혈통의 드라우 가문 등.)이라면 나무 재질의 꼬리를 사용할 때도 있다.

어느정도 재질이나 문양의 자유가 있는 꼬리와는 다르게 몸통은 철저히 성문화된 규범에 맞추어 제작된다. 일단 판단관이 해당 인물의 업적이 어떠한 미덕에 해당하는지 판단해 그에 맞는 색의 실(고대~중세의 로안 사회에서 이 미덕을 상징하는 색의 원료들은 상당히 고가였다.)을 사용해 가로로 긴 직사각형 형태의 패치를 만들고 그 위에 업적의 종류에 맞는 기호를 금색으로 새겨넣음으로써 완성되는 몸통은 약장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일상생활에서 불편하지 않도록 세로로 길게 늘어뜨리고 일정 길이를 넘어서면 정사각형 모양의 패치로 다시금 재가공해 간략화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점이 훈장이나 약장과는 큰 차이가 있는 부분으로 기본적으로 일상생활에서도 착용할 것을 전제로 하기에 너무 큰 부피를 차지해서는 안 되며 애초에 로안 문화권의 거의 유일한 국가인 로앙 연합왕국은 자체적으로 서훈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훈장과 함께 표식이 수여되는 경우도 많다. 이는 표식을 제작하고 수여하는 판단관들이 국가의 공인기관이 아닌 민간기관에 가깝기 때문이며 국가단위의 큰 행사에 참여한 고위 인사들은 이러한 표식과 훈장을 같이 착용하고 참석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표식을 일정 숫자 이상 얻어 길이가 부담이 될 정도로 길어진다면 이 표식들을 재가공해 약장 한개정도의 크기로 만들어 압축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것을 방점, 로안어로는 벨리라고 부른다. 벨리가 있다는 것은 로안 사회에서 무엇이 되었든 자신의 직업에서 전문가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이 때부터 다른 로안인들에게 존경받는 베테랑으로 인정받으며 명예의 길에서는 이제금 본격적으로 길을 오를 수 있는 능력을 증명했다는 의미로 첫걸음(Chéad céim)이라 부른다. 이는 로안 문화의 숙어인 첫번째 계단에 오르다라는 문장에서 따온 것인데, 실력을 증명하다, 혹은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다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평범한 로안인들은 거의 방점 한개 정도를 얻는 선에서 만족한다. (이러한 방점을 30대 후반까지도 얻지 못하는 이들도 꽤 있다.) 이는 로안 사회에서 첫걸음은 이 사람이 성실한지 아닌지에 대해 판단하는 척도이고 사실상 이 이후부터는 눈에 띄는 업적을 이루지 못하면 추가로 표식을 얻을 수 없을 정도로 기준이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욱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자 하는 야망을 가진 이들은 뛰어난 업적으로 표식을 받아 두번째 벨리를 얻는데, 이것을 봉우리(cnoic)라고 부른다. 이는 다른 이들을 내려볼 수 있는 자리라는 뜻이다.

봉우리의 단계까지 도달한 이들은 명예를 숭상하는 로안 사회에서도 상위 10%안에 들어가는 상위층이다. 사회적으로도 성공했을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명예에 대한 도전과 시험을 받으며 진정으로 봉우리에 도달할 수 있을만큼 고귀한 사람인지에 대해 평가당하기 때문이다. 이들 정도가 되면 로안 사회 내에서도 상위 계층일 확률이 매우 높으며 국가 차원에서도 인정받을 정도의 뛰어난 업적을 세워야만 봉우리라는 명예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봉우리의 다음 단계인 손(lámh)은 비율적으로 로안 사회의 1% 이내를 차지한다. 로안어로는 라우라고 발음되는 이 영광스러운 자리는 역사 시대 로안 문화권의 국가 원수였던 리(Ri) 들의 손에 입을 맞추고 직접 징표를 하사받는 전통에서부터 비롯된 이름으로, 그 수는 손에 꼽힐만큼 적으며 로안 연합왕국에서는 정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능력이 되어도 정원이 비기 전 까지는 오를 수 없는 단계이기도 하다. 라우의 단계에 오를 정도면 국가의 영웅정도가 되어야 하며 로앙 연합왕국의 국왕조차도 라우의 단계에 오르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 대단함을 엿볼 수 있다.

명예의 길에서 가장 위대한 경지는 단 하나(An té), 로안어로는 안 테라고 발음되는 이 자리는 이름 그대로 단 하나만이 존재하는 명예의 경지이다. 그 어떤 필멸자보다도 위대하며, 그 어떤 전사보다도 용맹하고, 그 어떤 학자보다도 지혜로우며 그 어떤 바드보다도 화려한 이에게만 추존되는 안 테는 '수여한다'라는 단어를 쓰는 다른 경지들과 달리 올린다, 드린다, 추존한다와 같은 경어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그 화려한 위광을 단번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로안의 역사에서도 오직 한 명만이 올랐던 가장 안 테는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이자 로안의 세 민족인 로안족, 데일족, 콜족을 통합하고 어둠 속의 괴물들에게 고통받던 이들 사이에서 분연히 일어나 그에게 평생 충성을 바치길 서약한 서약 기사들과 함께 괴물들을 몰아냈으며, 어둠 속 괴물들의 왕이자 가장 강력한 마법사였던 드라오-히툴로(Drao-itheolach)와 싸워 세상의 끝과 연결된 영원한 골짜기 밑에 같이 떨어짐으로써 어둠의 시대를 끝낸 아리온 막 시나너(Aireán Mac Sionnaigh)에게만 추존된 경지로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안 테의 경지에 도달할 이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