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하원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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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8대 하원의장
박근혜
朴槿惠 | Park Geun-hye
출생 1952년 2월 2일 (72세)
경상부 대구시 삼덕동1가
재임기간 제18대 하원의장
2007년 1월 4일 ~ 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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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박정희
어머니 육영수
학력 서강대학교 (전자공학 학사)
종교 무종교
의원 선수 13선(하원)
의원 대수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정당 공화당

개요

대한민국의 제18대 하원의장

박정희 전 대통령의 차녀이며, 대구에서 태어났다. 1965년부터 1973년까지 경무대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내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2번의 임기를 마치자 신당동 사저로 돌아갔다. 이후 세간에서 잊혀졌다가 1996년 중순, 11월 대선을 6개월 앞두고 공화당의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을 지지하며 공화당에 입당한다. 1996년, 공화당 소속으로 제25대 경상부 대구시의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연달아 13선을 하며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2006년 중간선거에서 다시 한 번 하원의원으로 출마한 박근혜는 처음으로 하원의장에 오른다. 이후 현재까지 16년에 걸쳐 하원의장을 역임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이자, 첫 미혼 하원의장이다. 또한 첫 이공계 출신 하원의장이며, 현재까지 최장기 재임한 하원의장이다.

정계 입문 이전

생애 초반

출생과 초기 활동

박근혜는 1952년 2월 2일경상부 대구시 삼덕동 1가 5-1번지에서 전시(戰時) 대구 주재 육군본부 작전‧교육국 작전차장 박정희 대령과 중등학교 교사 출신인 그의 부인 육영수의 딸로 태어났다. 현재 이 삼덕동 1가에는 돈부리집이 있는 상가가 위치해 있다. 어머니 육영수에게는 첫 소생이었으나 아버지 박정희는 이혼 경력과 전처소생의 장녀 박재옥이 있었으므로 박정희에게는 차녀가 된다. 형제로는 이복언니 박재옥이 있고 동복동생인 여동생 박근령과 남동생 박지만이 있다.

아버지 박정희1917년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현재의 경상부 구미시 상모동)에서 소작농 박성빈과 부인 백남의의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구미공립보통학교(현재의 구미초등학교), 대구사범학교(현재의 경상부립대 사범대학)를 거쳐 만주군관학교 예과와 일본육군사관학교 본과를 졸업하고 만주국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중위 때 해방을 맞아서 귀국, 국방경비사관학교(현재의 육군사관학교) 제2기로 임관하여 재직 중이였다.

어머니 육영수충청북도 옥천군의 대지주인 육종관과 부인 이경령의 차녀로 태어나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현재의 배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옥천공립여자전수학교(현재의 옥천여자중학교)에서 가정과 교사로 1년 반 동안 봉직한 경력이 있었다. 외조부 육종관은 딸이 과거 혼인 경력이 의심스럽고 가난한 군인에 불과한 박정희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였으나 박정희와의 결혼 결심을 굳힌 육영수가 어머니 이경령, 동생 육예수와 함께 박정희가 있는 대구로 가서 결혼식을 강행하였다.

박정희는 소령이던 1949년, 여순 사건에 따른 숙군 여파로 육군 특무대(현재의 국군기무사령부)의 가혹한 고문끝에 남조선로동당 가입 혐의로 육군 고등군법회의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파면되어 육군 정보국에서 직제에도 없는 문관으로 근무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의 발발로 인해 가까스로 복직하고 대구사범학교 후배이자 부하 장교인 송재천(육영수의 이재종오빠)의 소개로 만난 육영수와의 재혼에 따른 안정기를 구가하던 시절이 박근혜가 태어난 무렵이다. 한국 전쟁이 휴전에 들어가자 군인인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전라남도 광주시, 서울특별시에 거주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5.16 사건에 관한 박근혜의 회고

1961년 5월 15일 오후 10시 경, 거사를 위해 집을 나서려던 육군 제2군 부사령관 박정희 소장에게 부인 육영수가 "근혜 숙제 좀 봐주세요."라며 가족간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면담을 에둘러 요구하였다. 이에 박 소장은 잠시 방에 들러 숙제를 하고 있던 초등학교 5학년생 박근혜와 곁에서 잠든 장모 이경령과 3녀 근영, 장남 지만을 훑어본 뒤에 집을 나선다. 이 때 "무슨 숙제입니까?"라는 거사 동지 장태화의 물음에 박정희는 "어, 뭐 그림 그리는 거야!"라고 답한다. 하지만 박근혜는 아버지의 기척은 알았으나 자신이 무슨 숙제를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후술하였다.

"그날 아버지께서 들어오셔서 저를 한번 보고 나가신 것은 기억나는데요. 무슨 숙제를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아요. 어머니께서는 집안을 정리하시고 계셨습니다. 그날은 집안이 평소와 다르게 긴장되어 있었으나 저는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하니 어머니께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주변을 정리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학창 시절

서울장충초등학교에 입학하여 1964년 2월 졸업하였으며, 정몽준 전 국회의원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그의 초등학교 동창이다. 그 뒤, 카톨릭계 미션스쿨인 성심여자중학교를 거쳐 성심여자고등학교로 진학하였으며, 1970년 서강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에 진학하여 1974년에 졸업하였다. 같은 해 프랑스 그르노블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청년기

박정희 퇴임 이후

1980년 1월 20일 아버지 박정희가 2번의 임기를 마치자 경무대를 떠나 동생들을 데리고 서울특별시 신당동 사저로 돌아갔다. 1980년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1982년 육영재단 이사장, 1994년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정계 입문 전의 사회 사업

1982년 박근혜는 육영재단, 1994년 정수장학회 등을 인수하여 운영하였다. 이후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정치적 발언은 삼가하며 육영재단과 정수장학회 일에 전념하다가 1998년이회창의 정계 입문 권유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그러나 육영재단정수장학회, 영남대학교 재단 운영 과정에서 비판이 있었고 후일 그가 공화당 대표나 2008년 유력 대선 주자로 나올 때마다 비판이 제기되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