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훈/선수 경력

개요

대용 비터즈 선수이자, 대용 비터즈 영구결번, 現 대용 비터즈 코치인 박종훈의 선수시절 경력을 정리한 문서.

아마추어 시절

대용 비터즈

No.11 박종훈
2000~2024


자신의 야구인생을 바친 대용 비터즈 시절.

2000년


대용 버니즈 우승반지
2000


2000년 인별시리즈 3차전에서 포스트시즌 첫 홈런을 때리고 최주환과 함께 환호하는 모습. 박종훈의 이 홈런으로 대용 버니즈는 분위기를 완전히 잡고 5전 4승으로 통합우승을 이뤘다.
2000년 신인드래프트 1차지명에서 대용 버니즈의 지명을 받았다.

데뷔 직후 엄청난 타격력을 보여주며 당시 노장 1루수였던 박철완의 후계 주전 1루수로 기대를 모았다. 데뷔 시즌인 2000년 87경기 출장해 43안타 8홈런 .203을 기록했다. 포스트시즌에서 박철완과 함께 1루수로 엔트리되어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

2001년


대용 버니즈 우승반지
2001

그러나 2001년 시즌 극심한 부진에 빠져 오랫동안 2군에 있었다.

2001년 9월 1군에 다시 콜업되어 지명타자로 출전하기 시작했다. 17경기 나와 10안타 .250을 기록했다.

인별시리즈 엔트리에 1루수 대신 지명타자로 등록되었다. 1루수는 박철완이 맞게 되었다. 페넌트레이스와 달리 인별시리즈에선 데뷔 당시의 성적을 기록하며 다시 부활했다. 인별시리즈 우승 후 대용자유군에 입대했다.

2002년

대용 자유군 야구단에서 활약하며 차세대 버니즈 1루수로 기대를 모았다.

2003년

프로 적응을 위해 스스로 2군에 머물렀다. 그리고 2군을 완전히 폭격하며 6월 1군에 등록되어 다시 주전 1루수 자리를 잡았다.

6월 10일 데뷔 첫 만루홈런을 때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꾸준히 타점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6월 한달동안 15타점을 쌓으며 데뷔 이후 최고타점 기록을 세웠다.

7월엔 4번타자로 기용되기 시작했다. 7월에는 5개의 홈런을 쏘아올렸다.

8~9월엔 지적받던 수비도 개선하여 여러 호수비를 보여주었는데, 특히 8월 13일 빠지는 타구들을 마구 잡아대며 수비에 큰 기여를 했다.

75경기 나와 52안타 14홈런을 기록했다.

2004년

2군에 머물렀다. 2군에서 자신의 선배 1루수였던 박철완 당시 2군 타격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타격능력을 키웠다.

5월부터 다시 1군에 합류했다. 그러나 당시 1군 코치진이 대부분 무능했었고,[1] 결국 1군에 올라온 박종훈은 2군에서 받은 타격능력이 전부 초기화되며 6월에 말소됬다. 팬들과 전문가들은 박종훈을 실패한 유망주라 평가하며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이렇게 더 이상 1군에 보이지 못하게 되나 싶었으나...

2005년

데뷔시즌보다 완벽히 돌아온 2005시즌

2004시즌 이후 김익상 감독이 경질되고, 김광혁 감독이 선임되고, 팀의 레전드였던 박철완 코치, 박관형 코치가 1군에 콜업되는 등 2005시즌을 앞두고 코치진이 대거 개편되었고, 동시에 박종훈도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스프링캠프에서 박철완 코치에게는 타격을, 박관형 코치에게는 수비를 전수받으며 큰 기대를 모았다. 1루수 자리에 2002년엥입단한 나름 신인(?) 우상혁이 들어왔기에 박종훈 본인에겐 마지막 기회였다.

걱정과 달리 박종훈은 데뷔시즌보다 완벽한 성적으로 돌아왔다.

개막전부터 홈런과 타점을 쏘아올리며 개막전 승리를 이끌었다. 수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우상혁을 밀어내고 사실상 주전 1루수로 다시금 자리잡았다.[2]

이후 전반기에 13홈런을 기록하며 신인시절 기대받던 거포라는 타이틀을 드디어 보여주기 시작했다.

후반기에는 우상혁의 수비경험을 쌓기 위한 목적으로 1루수보다는 지명타자로 자주 출장했다. 후반기에도 타격감을 끌어올리며 59안타와 12개의 2루타를 쳤고, 10홈런을 기록하며 23홈런을 기록했다. 팀은 최종 3위를 기록했다. 이후 준플레이오프에서도 타격감을 끌어올리며 플레이오프 진출을 꾀했으나, 팀은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2006년

6월까지 공격에선 57안타 21홈런을 기록했으나, 수비에서 크게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지명타자로 미뤄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나오기 시작했다. 7월부터 지명타자로 나오기 시작했으며, 지명타자로 보직을 바꾸자마자 크게 활약하면서 박지딱[3] 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7월 10일 4타수 3안타 1홈런을 기록했다.

7월 12일 4:4 동점 2사 만루에서 끝내기 만루홈런을 때려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8월 27일 우상혁과 함께 맹타를 휘두르며 4타점을 기록했다.

9월 2일 한 경기에서 2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9월 13일 3위 자리가 걸린 경기에서 3연타석 홈런[4] 을 쏘아올리며 혼자 5타점을 기록했고, 상대팀을 압도하며 14:1로 승리를 거두었다. 점점 홈런을 더 많이 쏘아올리면서 팬들의 환호를 받고있다. 후반기에 13홈런을 더 기록하면서, 정규시즌 최종 34홈런을 기록했다.

포스트시즌에서 3경기 나와 7안타 2홈런을 기록했다. 팀은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2007년


대용 버니즈 우승반지
2007


시범경기에서 주루도중 옆구리 부상을 당하면서 1군에서 말소됬다. 이후 퓨처스리그에서 몇 경기를 나와 예열을 마쳤고, 4월 27일 1군에 콜업되어 3타수 3안타 1볼넷 1홈런을 기록했다.

4월 28일 경기에선 3타수 1안타 1볼넷을 기록했다.

4월 14타수 나와 6안타 2볼넷 1홈런을 기록했다.

5월 1일, 5:6으로 지던 8회 1사 2ㆍ3루 역전 찬스에서 쓰리런 홈런을 때려내며 8:6의 스코어를 만들어냈다. 이후 팀이 점수를 유지하며 역전승을 할 수 있었다.

5월 7일 3타석 내내 범타로 물러났다가, 8회초 7:5로 앞선 상황에서 쐐기를 박는 2타점 3루타를 기록했다.

5월 8일부터 1루수로 나와 시즌 4호 홈런을 기록했다. 불안했던 수비가 많이 안정됬다.

5월 18일 시즌 5호 홈런을 기록했다.

5월 23일 선발타자들이 전부 안타를 때려냈으나 혼자 4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다.

5월 26일 시즌 6, 7호 홈런을 기록했다. 5월 80타수 24안타 5홈런을 기록했다.

6월 1일 시즌 8호 홈런과 3안타를 기록했다.

6월 4일 경기에서 안타나 홈런 없이 2볼넷을 얻어냈다.

6월 6일 4타수 4안타 2타점을 기록하며 점점 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이 날 옆으로 빠지는 타구를 몸을 날려 잡아내며 두개의 직선타를 잡아냈다.

6월 11일 시즌 9ㆍ10호 홈런과 2안타 4타점을 기록했다. 3년 연속 10홈런을 추가로 기록했다.

6월 13일 6회까지 동점인 상황에서 시즌 11호 홈런을 쏘아올려 점수를 얻었다.

6월 16일 시즌 12호 홈런과 3안타를 기록했다.

6월 23일 시즌 13호 홈런을 기록했다.

6월 27일 4타수 1안타 1볼넷을 기록했다. 6월 87타수 22안타 5홈런을 기록했다.

7월 4일 4타수 2안타를 포함, 시즌 14호 홈런을 기록했다.

7월 10일 5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다.

2007년 IBO 올스타전 베스트12에 선정되어 1루수로 출장해 2타수 2안타 1홈런을 기록했다. 그러나 올스타전 이후 타격에서 크게 부진하며 7월을 29타수 8안타 1홈런으로 마쳤다.

8월 11일 9회말 동점에서 끝내기 홈런을 기록했다. 이 날 경기에선 시즌 15ㆍ16호 홈런을 기록했다.

8월 18일 시즌 17호 홈런을 기록했다. 이후 홈런없이 8월 52타수 20안타 3홈런을 기록했다.

9월 1일 지명타자로 나와 2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면서 살아나기 시작했다. 시즌 18ㆍ19호.

9월 7일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9월 13일 시즌 20호 홈런을 쏘아올리면서 3년 연속 20홈런을 기록했다.

9월 19일 7:6으로 뒤지는 상황에서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을 기록하며 짜릿한 역전승을 이끌었다. 시즌 21호. 시즌 내내 6번 타순에 나오고 있지만, 상위타순에 있어야하는거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있었다.[5]

9월 23일 시즌 22ㆍ23호 홈런을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 대용 버니즈가 승리하면서 정규시즌 우승을 이끈 주역이 되었다. 9월 80타수 31안타 5홈런을 기록했다.

10월 1일 100타점까지 4타점 남은 상황에서 딱 4타점을 기록하면서 20-100을 기록했다.

10월 5일 4타수 2안타 1볼넷을 기록했다. 정규시즌 우승도 확정됬고, 20홈런-100타점도 기록했기에 타격에선 좀 쉬어가는 분위기이다.

10월 11일 시즌 24호 홈런을 기록했다.

10월 13일부터 인별시리즈 준비를 위해 우상혁을 1루수로 기용하고 덕아웃에서 휴식을 가졌다.

인별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1차전에서부터 크게 활약했는데, 이 경기에서 2개의 홈런과 4타점을 기록했고, 1차전 데일리 MVP에 선정되었다.

2차전에선 4타수 3안타 2타점을 기록하고 우상혁으로 교체되었다. 3차전에선 4타수 1안타로 부진했지만, 4ㆍ5차전에서 홈런을 몰아쳤고, 특히 5차전에서 11:2로 크게 앞선 상황에서 쐐기를 박는 쓰리런 홈런을 때려내며 우승을 확정시했고 자신의 3번째 우승을 맞이했다.

인별시리즈 MVP
2007


생애 첫 인별시리즈 MVP에 선정되었다.

2008년


대용 버니즈 우승반지
2008
IBO리그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
2008

최우이박 콰르테의 활약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1차 FA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차 FA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6]
박종훈의 현역 마지막 시즌

각주

  1. 당시 감독만 봐도 김익상, 이상진 감독이 만들어놓은 버니즈의 전력을 크게 약화시키기도 모자라 악화시켰다.
  2. 다만 우상혁에 비해 수비에선 약간 밀리기도 해 가끔 지명타자로도 출장했다.
  3. 종훈은 명타자가 이야. 그러나 정작 박종훈 본인은 이 별명을 딱히 좋아하진 않았다고 한다.
  4. 투런홈런-투런홈런-솔로홈런.
  5. 그러나 2007년 당시 상위타선을 보면 다리빠른 이적생 문상호와 말년이지만 여전히 강력한 이경언의 테이블세터, 고수중최주환의 상위 타순, 5번에 이연영이 지명타자로 타순이 이루어져있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강력한 타선을 자랑했다. 하위타선 역시 소종욱을 시작으로 8번에는 소영완김경태가 나뉘어 투입되었고, 9번에 민수종까지 있었다.
  6. 왼쪽에 액자를 들고 있는 선수는 우상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