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하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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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헤스페로스벨트  ·  바네버베센  ·  투디아  ·  낸팬  ·  신디아  ·  헤르니소스  ·  바필리아  ·  펜데아시아  ·  디흐트에이븐
국가
키르수스 제국 게파르토 제국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베른하이어 베른하이어 공국  ·  에르미니아 에르미니아 합중국  ·  마그니우스 마그니우스 제국  ·  프리슬란드 프리슬란드 자유국  ·  그란치프 그란치프 국민국  ·  코르보날 코르보날 연합국  ·  크래스터프 크레스터프 왕국
사련 구성국과
혁명수도
헤스페로스벨트  ·  바네버베센
투디아  ·  낸팬  ·  신디아
헤르니소스  ·  바필리아  ·  펜데아시아  ·  디흐트에이븐
연표


-546
1423
고전고대
고대 후기
중세 초기
중세 성기
중세 말기


1423
1664
근대
현대


보편전기
연표
-546
1483
1664
고전 고대
고대 후기
중세 초기
중세 성기
중세 말기
근대
현대














보편전기
무기
권총  ·  기관단총 소총  ·  기관총 차량

게파르토 ㅔㄱㅣㅋㅔㅈㅔㅅ·ㅍㅜㅅㅡㅋㅏ 49M

게파르토 Moosmeier 32M pistol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26식 수포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엘빙거 권총



게파르토 ㅍㅜㅅㅡㅋㅏ1651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41형 표준 영도진 보병소총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이리야-야조프 45식 보병용 소총

그란치프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르브 소총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무흐타레프 장비

키르수스 Maschinen Gewehr 57

게파르토 ㅗㅌㅗㅁㅏㅌㅏ·ㅍㅜㅅㅠㅋㅏ

키르수스 Panzerabwehrkanonen 1656

게파르토 49M 6.3qb bombarde

게파르토 51M 6.3qb Bergbombarde

게파르토 52M 6.3qb bombarde

게파르토 50/54M 33qb Bergbombarde

키르수스 1656년식 야전차량 경형

키르수스 1654년식 전선장갑차량

게파르토 53M 3톤 중형트럭 어비거일



잠수함 함선 전투기 폭격기
키르수스 퇴브리크크루비엔 Ddkf.V

그란치프게파르토 가르당 17

게파르토 53M 반도르

마그니우스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피어스마린 F.3 키드

마그니우스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피어스마린 F.5 돌핀

키르수스 그니베겐 GFz.III

마그니우스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하디 베넷 타입P

아인종
카노쿠겔
Kanokugel
드베르그
Dweorg
리겔
Ligel
테살리데스
Teßalides
죄뢰이
Jöröi
라퓰러이
Lafülöi
오르바나 학회  ·  케네우스 의사회  ·  마법
무기
권총  ·  기관단총 소총  ·  기관총

게파르토 ㅔㄱㅣㅋㅔㅈㅔㅅ·ㅍㅜㅅㅡㅋㅏ 49M

게파르토 Moosmeier 32M pistol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26식 수포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엘빙거 권총



게파르토 ㅍㅜㅅㅡㅋㅏ1651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41형 표준 영도진 보병소총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이리야-야조프 45식 보병용 소총

그란치프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르브 소총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무흐타레프 장비

키르수스 Maschinen Gewehr 57

게파르토 ㅗㅌㅗㅁㅏㅌㅏ·ㅍㅜㅅㅠㅋㅏ

차량
키르수스 Panzerabwehrkanonen 1656

게파르토 49M 6.3qb bombarde

게파르토 51M 6.3qb Bergbombarde

게파르토 52M 6.3qb bombarde

게파르토 50/54M 33qb Bergbombarde

키르수스 1656년식 야전차량 경형

키르수스 1654년식 전선장갑차량

게파르토 53M 3톤 중형트럭 어비거일



잠수함 함선
전투기 폭격기
키르수스 퇴브리크크루비엔 Ddkf.V

그란치프게파르토 가르당 17

게파르토 53M 반도르

마그니우스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피어스마린 F.3 키드

마그니우스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피어스마린 F.5 돌핀

키르수스 그니베겐 GFz.III

마그니우스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하디 베넷 타입P

아인종
카노쿠겔
Kanokugel
드베르그
Dweorg
리겔
Ligel
테살리데스
Teßalides
죄뢰이
Jöröi
라퓰러이
Lafülöi
오르바나 학회  ·  케네우스 의사회  ·  마법
제작진  ·  도서  ·  만화  ·  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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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이어
Wernheir
베른하이어 공국
Herzogtum Wernheir
675년 - 현재
국화 물푸레나무꽃
국조 물수리
표어 Das Vaterland segnet nur die Zukunft derjenigen, die qualifiziert sind.
( 조국은 오직 자격있는 자의 미래만을 축복한다. )
수도 외텔슈비어
최대 도시
면적 312,100 km²
대공
총리
카를 무어
라그렌센트 연합왕국 675년~1514년
베른하이어 공국 1514년~1627년
인문 환경
인구 전체 인구 약 30,480,000명 (1663년 기준)
민족 구성 슈베른-라그리안 35.7%
운터란트-라그리안 21.6%
크레페인 13.4%
에르미니아인 9.5%
키르수스인 7.1%
마그니우스인 4.9%
게파르토인 3.3%
기타 4.5%
인구 밀도 약 95명/km²
공용어 라그란센트어
공용 문자 슈베른 문자
군대 베른하이어 공국군
세부 군대 육군 베른하이어 지상군
해군 베른하이어 해상군
베른하이어 해병대
공군 베른하이어 공군
행정구역
행정
구역
8개 주
89개 시
758개 구
특별시 2개 특별시
자치령 3개 자치령
정치
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국가
원수
대공 드리에스 4세
정부
요인
총리 카를 무어
부총리
총무부장관
디르크 바커르
재무부장관 빌럼 리히터
법무부장관 다미안 피터스
내무부 장관 로베르트 베테
외무부 장관 미힐 스완
교육부 장관 미힐 보스만
과학부 장관 레이커르트 드코닝크
산업부 장관 레나르트 판플리트
도시부 장관 피터르 분
사회부 장관 오델리아 리히텐베르크
토지부 장관 단 포스
상원의장 에른스트 로젠탈
상원부의장 빌레커 헨드릭크스
하원의장
사법원장
시민원장
경제
경제 체제 자본주의 시장경제
명목
GDP
전체 GDP 5,273,040ℳ
1인당 GDP 1,730ℳ
화폐 공식 화폐 길더스 (Ǥ)
1kg Gold = 1,000Ǥ
통계
자료
경제성장률 7.5% (1663년)
고용률 92.2% (1663년)

베른하이어 공국 (라그렌센트어: Hofiglijke Herzogtum Wernheir 호피흘러커 헤르촉툼 베른하이어) 또는 베른하이어 입헌연방 (라그렌센트어: Federale Constitutiestaat Wernheir 페더랄러 콘스티튀치에스타트 베른하이어)은 헤스페로스벨트 운타란트 지역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이자 키르수스의 명목상 제후국이다. 북쪽으로는 키르수스, 동쪽으로는 코르보날, 서쪽으로는 에르미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수도이자 최대 도시인 외텔슈비어외텔슈비어 증권거래소를 중심으로 한 세계 최대 규모의 증권가를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이외에도 과거 수도였던 빈헌을 비롯하여 칼스베르펜, 로벤하르트, 알카레흐트 등의 주요 대도시가 위치해 있다. 연방제 국가로, 덴다트 공작령, 라인스트 공작령을 독립된 자치지방으로 두고 있다.

국토 면적은 약 312,000km²이며, 기후는 전반적으로 서안 해양성 기후를 띠고 있다. 남쪽으로 갈수록 점차 온화해지는 경향이 있다. 1663년 기준 인구는 약 3,048만 명으로, 이 중 약 70%가 라그렌센트인이며, 나머지 30%는 에르미니아, 키르수스, 마그니우스, 게파르토 등지에서 유입된 이민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라그렌센트인은 민족적 특성에 따라 슈베른-라그리안, 운터란트-라그리안, 크레페인으로 구분된다. 공용어는 라그렌센트어이며, 상당수의 화자가 키르수스어알레니아어를 함께 구사한다.

베른하이어의 기원은 슈베로니아 제국의 붕괴 이후, 베른하이트가밀레우스 1세운타란트 지역에 건국한 라그렌센트 왕국에 있다. 이 왕국은 지역 군벌들을 통합하여 왕국연합으로 발전하였고, 10세기 이후 운타란트의 패권국으로 자리매김했다. 11~13세기 동안 대항해시대를 주도하며 크레페 반도를 영토에 편입하고 광범위한 식민지를 개척했으며, 금융과 무역의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헤스페로스벨트 내 최강국의 지위에 올랐다.

14세기 이후 에르미니아 왕국, 커네디아 연합과 해양패권을 두고 경쟁한 라그렌센트는 덴다트 상인조합의 무역권을 바탕으로 우위를 점했으나, 16세기 초 대양전쟁에서 마그니우스키르수스와의 전쟁, 내부 분열, 배신 등 복합적 요인으로 패배하며 키르수스의 제후국인 ‘사성공국’으로 격하되었다. 이후 산업화와 금융 혁신을 통해 회복을 도모했으나 내전과 모르티민 불황으로 반복되는 위기를 겪었다.

1627년 추성협상1630년 입헌정부 수립은 베른하이어의 정치 구조에 중대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17세기 중반, 키르수스-그란치프 전쟁에서의 패배로 국난을 맞았으나, 1655년 총리에 임명된 카를 무어는 전쟁배상금 상환 세금 개혁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며 재기에 성공하였다. 그의 지도 아래 베른하이어는 다시금 경제와 외교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강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베른하이어는 입헌군주제 의회내각제 제한연방제 국가다. 1663년 기준, 카를 무어 총리를 정부수반으로 하는 제2기 카를 무어 내각이 집권하고 있다. 명목상 국가원수는 베른하이어 대공이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제한적이며, 오히려 입헌군주제 국가로서 실효 군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키르수스의 황제이다. 총리는 내각의 수장이자 베른하이어의 행정수반으로서 아우뎀 조약으로 인해 키르수스의 제가 지목·임명한 5대를 제외하면 역대 총리는 전부 총선을 통해 구성된 상원 내 신임투표로 선출되었다. 1630년 공표된 시민헌법(Civilier Heersakte)은 베른하이어의 핵심 권력 기구를 5개로 지목하는데 각각 행정, 입법, 대의, 사법, 분배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 중 타 국가의 입법부에 해당하는 입법기구(상원)과 대의기구(하원)은 기존 입법부의 역할을 두 개로 분리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고 시민헌법의 작성이념인 시민엘리트주의적 권력을 분배하는 분배 기구가 존재한다는 것 또한 베른하이어 정치만의 고유적 요소이다.

국명

베른하이어 공국(Herzogtum Wernheir)이라는 국호는 1514년, 슈베른란트 통일전쟁에서 패배한 아렌트 베른하이어가 키르수스로부터 독립국임을 인정받는 조건으로 키르수스 제국의 공작위를 서임받으면서 기존의 라그렌센트 연합왕국(Lagrencent Vereinigteshofigreich)이 공국으로 격하되면서 당시 왕가였던 베른하이어 가문의 이름을 따서 정해졌다.

국기

베른하이어의 국기
100%
베른하이어의 정부기
100%

현재 사용되고 있는 베른하이어 공국의 정부기는 건국력 1627년, 추성협상 이후 베른하이어 임시정부에 의해 제안되었다. 푸른 배경에 흰색 별 13개와 띠, 국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단 13개의 백색성(白色星)은 베른하이어의 위대한 학자 13인을 상징하며, 하단의 흰 띠는 자유를 의미한다. 가운데의 월계수 잎과 책으로 이루져 있는데, 월계수잎은 지혜와 영광을 상징하며 중앙에 책은 지식의 추구를 의미한다.

역사

라그렌센트 왕국 시절

건국사

베른하이어의 기원은 한때 헤스페로스벨트를 호령했던 슈베로니아 제국의 베른하이어 공작에서 출발한다. 제국력 582년에 게이먼 족의 침략으로 슈베로니아가 멸망할 때 베른하이어 가문은 자신의 군벌을 이끌고 운터란트 지역으로 피신한다. 슈베로니아의 후예를 자칭하는 아슈트카이트 국가연힙의 가입에 거절당한 베른하이어 가문은 운터란트에 세운 빈하이른(Winheirn, 오늘날 빈헌)을 거점으로 삼아 군벌로서 명맥을 잇는다. 토착민족과의 전쟁과 협상을 통해 영토와 세력을 확장하던 베른하이어 군벌은 운터란트 지역에서 가장 큰 세력으로 거듭나고, 밀레우스 베른하이어를 시조로 하여 제국력 675년에 라그렌센트 왕국을 세운다. 라그렌센트(Lagrencent)는 '남쪽의 영광'이라는 뜻을 가진 운터란트 토착어로, Lagro(남쪽의-)와 Encent(영광)의 결합어이다.

확장과 안정

3대 국왕인 라르스 1세는 717년에 운터란트 남부의 다섯 해양 가문과 결혼 동맹을 맺고, 공(Herco) 작위를 수여하여 운터란트 내에서의 영향력을 크게 확장하고 라그렌센트 왕국연합 체제를 확립했다. 각각 4대 국왕과 5대 국왕인 루카스 1세와 라르스 2세는 국왕령 북부, 리니츠펠트 산맥 민족들을 정벌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북부 민족들은 광산 및 금속제련, 그리고 공작 기술이 발달한 군사 민족이었다. 30년 가까이 이어진 전쟁을 통해 왕국은 북부 민족들을 정복하는 데에 성공했고 작위를 주어 다스렸다.

북부를 정복한 후 8세기 말에서 9세기, 라그렌센트는 북부의 뛰어난 공작 기술을 받아들여 더욱 발전시켰다. 한편, 북부 리히테나워 지역에는 슈베른란트와 운타란트를 분단하는 리니츠펠트 산맥 중에서도 특히 고도가 낮은 계곡 지형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마침 리히테나워는 라그렌센트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강인 셰데른 강과 헨데 강의 상류가 모두 위치한 곳이었다. 리히테나워는 라그렌센트와 아슈트카이트 국가들이 교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육상 통행로였고 9세기와 10세기를 걸쳐 치열한 주변국 및 내부 전쟁을 수행했던 아슈트카이트에 무기와 물자를 공급하며 라그렌센트는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6대 국왕인 발데마르 1세부터 발데마르 2세, 그리고 에베르트 1세, 2세, 3세, 마지막으로 11대 국왕인 빌럼 1세까지의 약 100년 간의 기간을 흔히 발데마르-에베르트 치세라고 부르는데 이전까지 왕국이 운타란트의 다른 민족들과 전쟁하며 흡수하던 시기를 지나, 내부 안정과 통치 체제 정비에 힘을 쓰며 평화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왕국은 행정적 질서를 확립할 수 있었고, 주변국들이 전쟁을 치르는 동안 위에서 언급한 리히테나워 교역로를 통해 안정적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 시기의 왕국은 슈베른란트와 라즈베니아 지역의 전쟁 난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여려 지역의 문화와 지식, 기술을 수용하고 연구하는데 적극적이었다. 덕분에 국내 식량 생산량이 증가하고 학문이 발전하면서 인구가 성장하고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발데마르-에베르트 치세의 마지막 국왕이었던 빌럼 1세는 행정적으로 유능하거나 군사적으로 뛰어난 군주는 아니었지만, 베른하이어 왕조에서 손에 꼽는 성군으로서 자비로운 인품으로 유명하다. 평화롭고 부유하던 시기에 어울리는 좋은 정치를 펼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870년대에 라즈베니아의 5부족 내전에서 밀려난 라스티야 왕국의 국경 침입이 계속되자 연합 구성국들의 불만을 이기지 못해 전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군사적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고 했던 빌럼 1세는 더 유리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전선에서 장기간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한편, 빌럼 1세가 안타까운 사고로 붕어하자, 조카였던 루카스 2세가 12대 국왕으로 즉위한다. 선왕 시절부터 군사를 지휘하던 장군 출신이었던 루카스 2세는 빠르게 전선의 승기를 잡고, 기세를 몰아 라스티야 왕국의 영토까지 전진해 2년간의 전쟁 끝에 라스티야 정복을 성공시킨다.

라스티야 정복 이후, 운타란트에서는 더 이상 라그렌센트 왕국의 적수가 없었다. 비로소 라그렌센트 왕국이 운타란트의 패권국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는 여전히 다섯 개의 왕국과 여러 소국으로 분단되어 있던 라즈베니아와 아슈트카이트 연합 구성국들 간의 권력 균형이 첨예한 슈베른란트와는 크게 다른 풍경이었다. 이후 남부 5공 중 하나인 덴다트 가문에서 시작된 상인연합의 등장을 통해 셰데른 강과 한데 강을 중심으로 한 강상 무역로 정비, 수차 조절을 위한 전국적인 댐 건설, 동부 운타란트와의 무역로 개척, 통화와 거래 표준 확립 등이 체계적이고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라그렌센트는 유래 없는 상업 강국으로 거듭난다. 이는 향후 라그렌센트가 항해시대를 주도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 되었다.

항해시대와 황금기

운타란트에서 경쟁자 없는 패권국으로 부상한 이후, 라그렌센트는 약 200년 동안 평화와 번영의 황금기를 누렸다. 이 시기의 번영은 남부 5공 중 하나인 덴다트 가문과 덴다트 상인조합의 역할이 컸다. 덴다트 가문의 8대 공왕(Herco)이자 덴다트 상인조합의 창설자인 아르노 1세는 라그렌센트 최대의 항구인 덴다트 만을 중심으로 대규모 상업적 발전 계획을 세웠다.

아르노 1세는 셰데른 강 하류 지역의 전략적 위치에 있는 하중도에 항구와 건물들을 세우고 지방관을 파견하여 무역 거점을 구축했다. 이곳이 현재 베른하이어의 수도인 외텔슈비어로 발전했으며, 라그렌센트 최초의 도시적 모델이 되었다. 이후 덴다트는 셰데른 강을 따라 덴다트-외텔슈비어-빈헌을 거쳐 북부의 라인스트와 슈베른란트로 연결되는 주요 교역로인 리히테나워까지 그 세력을 확장했다. 그는 강 유역의 상인들을 포섭하여 상인조합에 가입시키고, 주요 무역 도시를 연이어 설립하여 조직적 상업 체계를 구축하였다.

이후 덴다트 가문은 세대를 거쳐 지속적으로 상인조합의 확장과 체계화에 힘썼다. 덴다트는 헨데 강 지역에도 동일한 전략을 적용했고, 수문과 댐을 설치하여 강을 통한 무역의 효율성을 높였다. 또한 표준 화폐로 길더스를 발행하여 라그렌센트 내의 화폐 및 도량형을 통일하였으며, 거래법과 상업 보험 제도를 도입하여 근대적 상업 구조의 기초를 마련했다.

10세기 중반, 덴다트 상인조합은 국내 무역을 완전히 지배하며 영향력을 서부 운터란트와 슈베른란트까지 확장했다. 이 과정에서 상업의 발전으로 인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상인들과 귀족 계층은 학문과 예술 발전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귀족 가문의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지자, 1029년 레나르트 1세 국왕이 귀족 작위의 세습 제한령을 발표하였고, 이에 따라 귀족의 차남 이하 자녀들에게는 학자 또는 상인의 길만이 개방되었다. 이 정책은 이후 라그렌센트에서 항해술과 조선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11세기 초부터 모험과 탐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모험가는 덴다트 가문의 아르노 덴다트로, 상인조합의 창설자 아르노 1세와 동명이인이었다. 그는 활발한 항해와 탐험으로 이름을 알렸으며, 특히 1062년과 1079년 두 차례의 항해로 각각 성단양 너머 바네버베센(Varneverwessen) 대륙과 금정양 반대편 신디아-모르티민 대륙에 도달했다. 아르노 덴다트의 이러한 업적은 라그렌센트의 항해술 발전과 세계관 확장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본격적인 대항해 시대를 열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였다

라그렌센트는 헤스페로스벨트 외부의 대륙들을 발견한 이후, 12세기부터 남부 5공 국가들을 중심으로 대양을 넘나들며 타 대륙 국가들과 본격적인 교류와 무역을 시작했다. 당시 헤스페로스벨트에서 대륙 간 항해를 수행하는 유일한 국가는 라그렌센트였으며, 이러한 시기를 일반적으로 초기 항해시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장거리 항해는 막대한 자금과 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거대 귀족 가문이 직접 항해를 계획하거나 대규모의 후원을 제공하지 않는 이상 일반 상인의 적극적인 참여는 어려웠다.

이에 덴다트 상인조합은 자금 조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방안을 마련하였다. 1147년, 외텔슈비어에 본부를 두고 외텔슈비어 증권거래소를 설립하여 개별 상인이 투자증서를 발행하고 이를 통해 항해 자금을 모집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구축하였다. 외텔슈비어 증권거래소의 설립은 대규모 항해와 무역사업에 일반 상인들의 참여를 가능하게 했으며, 이를 통해 수많은 거대 무역회사가 탄생했다. 남부 5공 가문들도 자신들의 이름을 내걸고 자체적인 무역회사를 설립하여 활발히 활동하였다.

이 시기 설립된 무역회사 중 가장 영향력이 컸던 회사는 덴다트 가문이 1195년에 설립한 모르티민 동양 회사(MOC)는 모르티민에 본부를 두고 신디아, 낸팬을 비롯한 동양 대륙 국가들과의 무역과 교류를 중개하며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상업적 번영과 국제교류의 활성화를 특징으로 하는 시기를 일반적으로 중기 항해시대라고 부르며, 이 시기에 에르미니아와 마그니우스 등 헤스페로스벨트의 다른 국가들도 대양항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이 시기 라그렌센트는 막대한 금을 국내로 유입시키며 굉장한 부를 축적하였고, 특히 덴다트 상인조합은 이러한 대규모 항해의 유일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면서 영향력을 점차 확장했다. 가히, 황금기라고 불릴만한 시기였다.

삼제국시대

삼제국시대는 14세기 중엽부터 15세기 후반까지 라그렌센트 왕국, 에르미니아 왕국, 알레니아 왕국이 중심이 되어 세계 질서를 주도하던 시기를 일컫는다. 이 시기의 발단은 1338년, 에르미니아의 옛 왕가가 몰락하고 가리발디 가문의 샤를 1세가 왕위에 오르며 시작된다. 그의 아들 엔조 1세는 라즈베니아 통일 전쟁을 주도하여 1351년 통일 에르미니아를 수립하였고, 이후 왕위에 올라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를 완성해 나갔다. 이와 동시에 에르미니아는 커네디아 연합을 결성하여 알레니아-글레니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시도했다.

1369년, 에르미니아는 크레페 반도 반환을 요구하며 라그렌센트 왕국과의 갈등을 고조시켰고, 결국 1370년부터 ‘가리발디-베니토 전쟁’이라 불리는 장기전이 발발하였다. 전쟁은 1377년 에르미니아 측의 승리로 종결되었으나, 라그렌센트는 크레페 반도의 양도에 끝내 응하지 않았고, 에르미니아 역시 동맹과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국제적 신뢰를 잃게 되었다. 이 전쟁의 여파로 라그렌센트와 에르미니아는 군사적 경쟁과 정치적 불신 속에 80년간의 긴장 관계에 돌입하였으며, 동시에 커네디아 연합과 덴다트 공국은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입지를 대폭 강화했다.

15세기 들어, 에르미니아는 엔조 2세와 블랑카 1세의 치세 하에 ‘엘 콘소르시오 델 트레소’라 불리는 강력한 자본-군사-정보 연합기구를 통해 부흥을 꾀했다. 라그렌센트는 해양 패권과 문화적 우위를 바탕으로 여전히 세계 최강의 자리를 유지하였으나, 내부적으로는 덴다트 상인조합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왕실 권위는 약화되었다. 한편 알레니아 왕국은 덴다트 경제권에 편입되며 빠르게 성장했고, 신디아 및 바네버베센 북부 식민지 경영을 통해 삼제국 중 하나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이들 세 국가는 세계 무역, 식민 경쟁, 해군력 강화 등에서 서로 경쟁하며 삼자 균형 체제를 형성하였다.

1455년, 에르미니아의 후안 1세는 라그렌센트에 선전포고하며 군사적 충돌이 본격화되었다. 과학혁명을 통한 기술력으로 해군 우위를 확보한 라그렌센트가 결국 승리함으로써 오랜 라이벌 관계는 라그렌센트의 우위로 일단락되었다. 이어진 1461년, 알레니아는 에르미니아의 은광을 약탈하고 외교적 마찰 끝에 전쟁을 선포하였다. 이 전쟁은 해적세력 카시엘로 군벌까지 개입하는 삼파전으로 확산되었으며, 전쟁 말기에는 알레니아가 승리하여 에르미니아의 식민지를 흡수하고 삼제국 내 위상을 강화하였다. 동시에 해적 선장 로지에 가르시아가 명성을 얻어 1476년 쿠데타로 가리발디 왕조를 몰아내고 가르시아 왕조를 수립하였다.

가르시아 왕조는 팽창 대신 내정 안정에 집중하면서 해양 패권 경쟁에서 한걸음 물러났고, 삼제국 체제는 라그렌센트와 알레니아 두 제국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이후 세계의 지정학적 구도는 이 두 해양 강국 간의 경쟁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으며, 에르미니아는 사실상 삼제국에서 탈락한 셈이 되었다.

대양전쟁

베른하이어 공국 시절

상업의 위축과 증기혁명

대양전쟁에서의 패배와 그로 인해 잃어버린 식민지, 연합동방회사(UOC, United Oriental Company)의 부상, 국제사회에서의 위신 및 신용도 하락 등으로 인해, 전쟁 이후 1515년의 베른하이어는 심각한 경제적 충격을 겪었다. 특히, 라그렌센트 경제구조에서 핵심적인 비중을 차지하던 상업 부문이 크게 위축되었다. 이는 덴다트 상인조합이 더 이상 국제무역을 주도할 수 없게 된 데에 기인한다.

한편, 전쟁에서 승리한 마그니우스와 키르수스 역시 막대한 군비 지출과 영토 확장에 따른 행정적 부담으로 인해 경기 침체를 겪었으며, 이에 따라 무역량이 급격히 감소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국제적 경기 하락 국면은 통상적으로 1515년 전후불황이라 불린다.

패전에도 불구하고, 수세기에 걸쳐 해상 무역의 중심을 담당해온 남부 상인들은 여전히 상당한 부를 축적한 상태였다. 그러나 상업의 전반적인 위축은 이들이 보유한 자금을 운용할 새로운 투자처를 모색해야 함을 의미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510년대 후반부터 마그니우스 사회 전반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한 증기 산업의 혁명은 상인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주머니 속에 감춰져 있던 막대한 자금이 서서히 시장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상인들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속히 투자조합을 조직하였고, 중부 및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다수의 산업은행이 설립되었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는 칼스베르펜 투자은행이었다. 칼스베르펜은 당시부터 빈헌과 견줄 정도로 명성을 떨치던 대표적인 공업도시였다. 이 은행은 칼스베르펜 공작 페르메이른 가문의 재산과, 라그렌센트 남부 5공 가문 중 하나였던 하우베른 가문을 필두로 한 남부 상인들의 투자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당대 산업은행 중에서도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였다.

마그니우스에서의 증기 혁명이 여러 시대적 요인의 결합으로 자연스럽게 꽃을 피운 결과였다면, 베른하이어의 증기 혁명은 그와는 상이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마그니우스에서는 시장의 수요에 따라 산업 전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사업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역동적인 흐름이 특징이었다. 반면, 베른하이어에서는 거대 산업은행들이 중심이 되어 증기 기술의 확산과 산업화를 계획적으로 주도하고 모방하는 형태를 취했다.

즉, 베른하이어의 증기 혁명은 철저히 투자의 관점에서 진행된 것이었다. 투자자들은 자금을 보다 효율적이고 집중적인 방식으로, 유망한 기업에 선별적으로 공급했다. 그 결과, 산업 전반이 동반 성장하기보다는 소수의 우량 기업들이 빠르게 경쟁 기업들을 흡수하며 시장을 장악하는 구조로 발전하게 되었다.

마르코-라인스트 시대

베른하이어 증기 혁명기 동안 특히 두각을 나타낸 기업은 단연 마르코 그룹라인스트 그룹이었다. 이 두 회사는 당시 산업계를 대표하는 쌍두마차로 불릴 만큼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베른하이어 증기 혁명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실제로, 베른하이어에서 증기 혁명이 절정에 달했던 1530년부터 1563년까지의 시기는 산업계에서 흔히 ‘마르코-라인스트 시대’라고 불린다. 이 시기 동안 베른하이어의 산업 발전은 마르코와 라인스트 두 기업의 치열한 경쟁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이는 증기 혁명의 방향성과 속도를 결정짓는 핵심 동력이 되었다.

마르코 그룹의 기원은 1518년, 금속 가공업자 마르셀 마르코가 증기 기관차에 대한 초기 소문을 접한 데서 비롯된다. 당시 마그니우스에서 점차 논의되기 시작한 증기 기관 기술에 주목한 그는, 칼스베르펜 투자은행으로부터 25,000 길더스의 자금을 유치하여 마르코 철도회사를 설립하였다.

그의 선제적 판단은 곧 현실로 입증되었다. 바로 이듬해인 1519년, 마그니우스에서 최초의 증기 기관차가 운행되며 증기 철도 산업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마르코는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빈헌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철도망을 빠르게 확장하였다. 이후 그는 기존에 주요 노선을 운행하던 라그렌센트 서부 철도(LWS)와 라그렌센트 남부 철도(LSS)를 인수함으로써 기업의 규모를 크게 확대했다.

라인스트 그룹의 기원은 라그렌센트 북부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귀족 가문, 라인스트 변경공 가문의 사업에서 비롯된다. 라인스트 가문은 이미 16세기 이전부터 금속 가공 및 무기 제작 분야에서 명성을 쌓아온 전통 있는 공업 귀족 가문이었다. 본래 북부 지역은 라그렌센트 전역에서 공업 역량이 가장 뛰어난 지역으로 손꼽혔으며, 1520년대에 수도권과 중부에서 증기 혁명이 본격화되자, 이에 자극받은 라인스트 가문은 본격적으로 증기 기관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1530년, 라인스트 가문은 라인스트 철도회사라는 이름으로 외텔슈비어 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며 기업화의 전기를 마련한다. 이 시점에서 마르코 그룹은 이미 수도권 및 중부 철도망을 통합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증기 기관차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해 있었다.

한편, 같은 시기 마그니우스에서는 라텐스-히튼 철도의 개통을 기점으로 철도 산업에 대한 열풍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라인스트 그룹도 남북철도 개통을 통해 공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섰고, 결과적으로 마르코 그룹과의 본격적인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베른하이어 철도 산업의 패권을 둘러싼 마르코 그룹과 라인스트 그룹 간의 경쟁은 남북을 대표하는 양대 축의 대결 구도로 전개되었다. 두 기업의 급속한 성장에 따라, 전반적인 산업 발전은 이들 대기업의 사업 확장을 보조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으며, 국가적 차원에서도 두 그룹 중심의 산업 구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마르코 그룹은 철도 노선을 운영하며 축적한 자본을 바탕으로 철강 산업에 진출하였다. 이에 따라 철도에서 시작된 경쟁은 자연스럽게 철강 산업으로 전이되었다. 이후 1630년대 후반, 두 기업 간의 경쟁은 각기 다른 분야에서의 우위로 정리되었다. 즉, 철도 분야에서는 마르코 그룹이, 철강 분야에서는 라인스트 그룹이 우위를 점하는 구조가 확립되며 산업계의 새로운 균형이 형성되었다.

덴다트 반란

베른하이어 남북전쟁

찬란한 10년과 자본가당의 등장

모르티민 불황

금융업 부흥과 투자은행 열풍

향략주의 세대와 사회의 어둠

추성 협상과 정치전쟁

입헌정부 이후

레미 반스데데킨트 정권, 30년 총선과 반스데데킨트 개혁

뤼카 브람스 정권

핀 하이드 정권, 자유-보수 연정과 건함경쟁

필립 바스크 정권, 시민당의 재집권

키르수스-그란치프 전쟁

카를 무어 정권

자연 환경

지리

리니츠펠트 산맥과 하향식 지형

셰데른 강과 헨데 강

곷과 만

기후

생태

지역

수평구분

수직구분

도시권에 의한 구분

정치

정치적 특이성

베른하이어의 정치 체제는 시민 엘리트주의와 오권분립을 핵심으로 하는 독특한 입헌주의적 시스템으로, 헤스페로스 대륙 내 여타 국가들과 뚜렷한 차별성을 지닌다. 베른하이어는 17세기 초반 대규모 사회개혁을 통해 기존의 군사·봉건적 권력 구조에서 벗어나, 지식인 계층 주도의 합리적 국가 설계를 바탕으로 현대적인 정치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이러한 체제는 특히 시민시험을 통한 자격 기반 시민권 분배와, 다섯 개의 권력 기관으로 분산된 권력 구조를 통해 정치적 합리성과 지속 가능성을 도모한다.

베른하이어는 중세 시절 라그렌센트 연합왕국 시기를 거치며 중앙집권적 재정 군사 국가로 발전하지 못했고, 키르수스 제국으로부터의 탈분리 이후에도 정치적 불안정이 지속되었다. 2차 베른하이어 내전 이후 의회를 중심으로 한 권력 집중과 개혁이 시도되었으나, 본격적인 체제 개편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17세기에 들어 금융 시장의 과열과 향락주의 풍조가 만연하면서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들이 심화되었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빌레이법은 소비자 물가 상승과 유통망 붕괴를 초래하며 실패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금융 시장의 취약성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1623년 소침체를 계기로 지식인 계층은 시민 의식과 교육의 부재를 사회적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하였다.

1627년 추성협상과 3년간의 정치적 논쟁 끝에, 1630년 입헌정부가 수립되었다. 초대 총리 레미 반스데데킨트는 시민 엘리트주의라는 정치 이념을 채택하여, 사회 전반을 정교한 시스템으로 재설계하는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하였다. 반스데데킨트의 재임 7년간 교육, 경제, 법률, 지방자치, 사회,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행된 이 개혁은 훗날 반스데데킨트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시민엘리트주의와 시민시험

시민 엘리트주의는 베른하이어 입헌정부의 국가 이념으로, 시민의 정치적 권리와 권력은 혈통이나 재산이 아닌 지성과 시민의식에 기반해야 한다는 철학을 핵심으로 한다. 이는 베른하이어가 17세기 초, 금융시장 과열과 사회 불안정 속에서 국가를 재구조화하는 과정에서 정립되었으며, 입헌정부 초대 총리 레미 반스데데킨트에 의해 국가 운영의 기초 원리로 제시되었다.

이 이념은 "사회적 희소가치나 정치 권력의 집중 자체는 문제되지 않는다. 다만, 그 권력을 지닌 계층이 정당한 자격을 갖추었는지가 본질적인 문제"라는 명제를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시민 엘리트주의는 권력의 소유 여부보다 권력의 자격성을 중시하며, 자격 기준으로는 오직 탁월한 지성과 성숙한 시민의식이 제시된다.

오권 분립

베른하이어 정치 시스템의 또 다른 핵심은 오권분립이다. 기존의 삼권분립 체계(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에서 더 나아가, 입법부를 입법기구(상원)와 대의기구(하원)로 분리하고, 시민권 및 권력 분배를 관리하는 분배기구(시민원)을 추가하여 총 다섯 개의 권력 기관으로 구성하였다.

행정부(내각): 국가 정책의 집행을 담당.

사법부(사법원): 법률 해석 및 분쟁 해결.

입법기구(상원): 시민에 의해 선출된 최고외 시민 엘리트로 구성된 고도의 기술관료 집단으로서, 하원이 수립한 안건을 바탕으로 법안을 설계하고 심의.

대의기구(하원): 민의를 수렴하여 입법 안건을 마련하는 기구로, 상원과 달리 소선거구제와 1인 1표 원칙 채택.

분배기구(시민원): 시민시험, 선거, 시민권 등 정치적 권력 분배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체제의 공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담당.

이러한 권력 구조는 권력의 집중을 방지하고, 민의와 기술적 전문성을 균형 있게 반영하는 시스템으로 설계되었다. 상원은 정당 논리로부터 자유로우며, 오직 입법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고려하여 법안을 설계하는 한편, 하원은 시민들의 삶과 감정을 반영하는 민의의 장으로 기능한다. 시민원은 시험과 시민권 관리라는 민감한 분야를 관장하며, 체제의 근간을 유지하는 핵심 기관으로 자리매김한다

대공

입법기구

베른하이어 상원(Hogerhuis van Wernheir)는 베른하이어의 입법기구로, 의회내각제를 채택한 체제에서 행정부에 해당하는 내각이 전원 상원의원으로 구성되는 특징을 가진다.

'상원'이라는 명칭에도 불구하고, 베른하이어는 법적으로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대의기구인 하원(Lagerhuis van Wernheir)과는 조직 및 기능 면에서 명확히 구분된다. 이러한 이중 구조는 입법 기능을 시민의 의지를 대변하는 대의기구와, 실제로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기구로 분리함으로써 입법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의회의 권한 남용을 방지하려는 목적에서 도입되었다.

베른하이어 상원은 시민엘리트주의적 기술관료제 이념을 입법부에 직접 적용한 결과물이다. 상원은 총 6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전국 단위의 완전비례대표제를 통해 선출된다. 단, 상원의원으로 출마하기 위해서는 25세 이상의 1등급 시민이어야 하며, 이는 시민시험을 통해 선별된 최고 수준의 엘리트만이 법률 제정에 참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상원의원은 고도의 지적 능력과 법률·경제·사회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특정 전문 분야에서의 탁월한 역량을 전제로 한다.

상원은 헌법이 규정한 기준에 따라 법률을 ‘어떻게’ 제정할지를 결정할 수 있는 독점적인 권한을 지닌다. 이 과정에서 상원의원의 검증된 전문성과 지식은 법률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담보하는 역할을 한다. 다만 ‘무엇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권한은 상원이 아닌 하원에 있다. 즉, 하원이 결정하여 상원에 제출한 입법 의제에 대해 상원은 법안을 발의하고, 제정 여부를 논의·결정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행정기구

베른하이어 정부는 베른하이어 연방의 중앙정부이자, 수도권 및 중부 지방의 지방정부 역할을 겸하는 이중 구조의 행정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 체계의 핵심은 연방 정부의 최고의결기구인 내각이며, 내각은 총리, 부총리(총무부장관 겸임), 그리고 10명의 각 행정 부처 장관으로 구성된다. 베른하이어는 의원내각제 국가로, 내각의 모든 각료는 상원의원 신분을 가진 자들로 구성되며, 총리에 의해 임명된다. 이들은 상원의원으로서의 입법 활동과 행정부 각료로서의 집행 권한을 동시에 수행한다.

베른하이어의 중앙행정기관은 그 기능과 위상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내각 부처 (11개)

장관급 중앙부처 (7개)

비장관급 중앙부처 (15개 / 유동적)

내각 부처는 부총리(총무부장관 겸임)와 10명의 장관이 각 부처를 관할하는 중앙 행정부의 핵심 기구이다. 각 내각 부처는 장관을 부처장으로 두며, 그 아래 정무차관이 1명 이상 배속되어 세부 정책을 담당한다. 모든 정무차관 역시 상원의원 출신으로, 정치적 정당성과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행정에 참여한다. 내각 부처 중에서는 특히 재무부가 가장 많은 4명의 정무차관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그 정책적 복잡성과 중요성을 반영한다.

내각 부처의 장관은 부처 내 정책에 대한 광범위한 자율권을 가지며, 이로 인해 장관 책임주의가 적용된다. 이는 정책 실패 또는 행정상 문제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해당 장관이 단독으로 지는 체계를 의미한다.

장관급 중앙부처는 내각 부처에 준하는 위상을 갖는 부처로, 장관급 인사가 수장으로 임명된다. 그러나 이들은 상원 출신이 아닌 인사들로 구성되며, 임명 권한 역시 총리가 아닌 내각 전체의 결정에 의해 행사된다. 이들 부처는 대부분 내각의 직접 명령에 따라 운영되며, 사실상 정책 집행을 담당하는 행정부의 실행기관으로 기능한다. 이에 따라 해당 부처에는 내각 책임주의가 적용되며, 개별 부처장의 정치적 책임보다는 내각 전체의 결정과 집행에 대한 집단적 책임이 강조된다.

예외적으로, 장관급 중앙부처 중 하나인 중앙은행은 내각의 직접 명령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정책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중앙은행 총재는 장관급 인사로서 독자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중앙은행에는 내각 책임주의가 아닌 장관 책임주의가 적용된다.

비장관급 중앙부처는 내각 직속의 정책사무부처로, 주로 사무차관급 인사가 부처장으로 임명된다. 국가의 핵심 기능을 상시적으로 담당하기보다는, 당기 내각의 정책적 필요에 따라 유동적으로 설치되거나 해체되는 특성을 가진다. 헌법에 구성과 기능이 명시된 내각 부처 및 장관급 중앙부처와 달리, 비장관급 부처는 전적으로 총리의 명령에 의해 설치되며 법적 근거보다는 정치적 필요성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부처장을 공석으로 두는 경우도 있으며, 시기에 따라 그 수와 구성은 크게 달라진다.


내각


Regering Kabinet van Wernheir
베른하이어 정부 내각
Karl Moore Kabinet II
1 Januari 1662 -
Kanselier
van Wernheir
베른하이어 총리
Karl Heiness Moore
카를 무어
1662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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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당
Visenkanselier
van Wernheir

베른하이어 부총리
Dirk Bakker
디르크 바커르
1662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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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당
Minister für Finanz-Aangelegenheden
재무부장관
Willem Richter
빌럼 리히터
1662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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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당
Minister für Justitie-Aangelegenheden
법무부장관
Daamien Pieters
다미안 피터스
1662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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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당
Minister für Binnenlandse Aangelegenheden
내무부장관
Roberte Bete
로베르트 베테
1662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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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당
Minister für Buitenlandse Aangelegenheden
외무부장관
Michiel Swan
미힐 스완
1662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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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당
Minister für Vorming-Aangelegenheden
교육부장관
Michiel Vosman
미힐 보스만
1662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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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당
Minister für Lehre-Aangelegenheden
과학부장관
Reijckert De Koninck
레이커르트 드코닝크
1662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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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당
Minister für Industrie-Aangelegenheden
산업부장관
Renaart Van Vliet
레나르트 판플리트
1662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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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당
Minister für Stad-Aangelegenheden
도시부장관
Pieter Bun
피터르 분
1662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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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당
Minister für Sociale Aangelegenheden
사회부장관
Odelia Lichtenberg
오델리아 리히텐베르크
1662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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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당
Minister für Land-Aangelegenheden
토지부장관
Daan Vos
단 포스
1662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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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당

대의기구

베른하이어 하원(Lagerhuis van Wernheir)은 베른하이어의 대의기구로, 입법기관인 상원과는 별개의 조직이다. 총 30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상원의 정원의 5배에 해당한다. 하원은 법률의 제정이나 심의 권한을 보유하지 않으며, 대신 지역 주민의 정치적 의사를 대변하고, 상원에 제출될 안건을 상정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이러한 구조는 상원과 하원의 기능을 의도적으로 분리한 결과이다.

하원은 입법 전문성이 요구되는 상원과는 달리, 대표성에 중점을 두고 구성된다. 상원의 경우 출마 자격이 1등급 시민으로 제한되는 반면, 하원은 5등급 이상 시민이면 출마가 가능하여 자격 요건이 크게 완화되어 있다. 선거 방식 또한 차별화되어, 상원이 전국단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는 데 반해 하원은 각 지역의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다. 특히 하원 선거에서는 9등급 시민을 제외하면 모든 유권자에게 동일한 투표권이 부여되어, 시민 등급에 따른 투표권 차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원의 임기는 기본적으로 2년의 고정 임기제로 운영되며, 불신임 투표 등으로 임기 중 해산될 수 있는 상원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하원의 경우, 특정 지역구의 의원이 임기 중 사직 또는 직무 수행 불가능 상태가 되었을 경우, 해당 지역구에서 신속한 보궐 선거가 실시되어 대표성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사법기구

베른하이어의 사법부는 사권 중 하나인 사법권을 독점하는 기관으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여 현실의 권리 및 의무 관계를 판단하고 운영하는 기관이다. 베른하이어 사법부의 최고 기관은 사법원이며 최고법원으로 연방대법원과 원로법원을 두고 있다. 사법원은 심판기관인 법원의 한 종류가 아니라 사법행정 및 판사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의결 기구이다. 사법원의 장은 사법원장이라고 한다. 한편 베른하이어는 연방제 국가이기 때문에, 공작령인 덴다트와 라인스트는 시민 헌법을 준수하는 한 일정한 사법권의 행사를 보장한다. 따라서, 이 문단에서는 베른하이어의 수도권-중부 지방 및 연방 차원에서의 사법기구에 대해서만 다룬다.

수도권-중부 지방의 경우 각 주 단위로 사법 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베른하이어에서는 형사재판과 민사재판 간 사법 절차가 상이하다. 베른하이어의 재판의 심급제도는 하급법원 - 상급법원 - 주 법원으로 이어지는 삼심제도를 따르고 있다. 반면 민사재판의 경우, 일반민사재판과 전문민사재판으로 구분하여, 일반민사재판은 형사재판과 마찬가지로 삼심제를 따르고, 전문민사재판의 경우 주 법원 예하에 있는 전문법원에서 단심제를 따른다. 이때 전문법원의 종류는 분야에 따라 여러 개이며, 전문법원 판사들은 해당 분야에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전문민사재판은 판결이 나더라도 몇 번이든 다시 소를 신청할 수 있고, 이때 각 사건은 후속 재판에서 무효 처리가 명령되기 전까지 별개로 취급된다.

한편 최고법원에 속하는 연방대법원과 원로법원에 대해서, 연방 대법원은 각 주나 공작령이 관할하는 사법 심판 공간적, 제도적 범위를 넘어가는 사건에 대해서, 연방 차원의 재판을 진행하는 가장 큰 단위의 법원이다. 하나의 사건이라도 연방대법원의 심판 대상은 어디까지나 하급 법원에서 심판할 수 없는 범위에 국한되므로, 연방대법원에서 먼저 판결을 내면, 사건의 나머지 판결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재판과 똑같이 취급된다. 그리고 원로법원은 주 법원 등에서 법률상 모호함이나 사건의 특수성 등을 이유로 법에 근거하여 명징한 판결을 내리기 어렵다고 판단되었을 때, 중재심을 요청할 수 있는 기관이다. 원로법원이 중재심을 수락하면, 9명의 원로 판관들은 먼저 기존 법률의 유권해석을 통해 해당 사건이 정말 법률로서 처리할 수 없는 대상인지를 먼저 심사하는데, 이를 법률심 단계라고 한다. 법률심 단계에서 해당 사건이 법률만으로 다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이 판명되었을 때, 원로법원은 공의심을 시작한다. 공의심은 법률이 아니라 원로 판관 개개인의 자의적 판단과 토론을 통한 사법명령으로, 법률과 같은 효과를 가진다.

분배기구

시민원은 베른하이어의 고유한 오권분립 체계의 하나로, 일반 입법·행정·사법 권력과는 구분되는 독립적 권력기구이다. 공식 명칭은 분배기구이며, 그 설립과 운영은 베른하이어의 정치 철학인 시민 엘리트주의에 근거를 둔다. 시민 엘리트주의는 정치 권력을 자격 있는 시민에게 분배해야 한다는 이념에 바탕을 두며, 시민원은 이러한 자격 심사와 권력 분배를 제도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시민원의 주요 기능은 다음과 같다. 첫째, 베른하이어의 시민자격을 평가하는 시민시험을 출제하고 주관한다. 이 시험은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 정치 이해력, 사회 윤리 등을 갖춘 시민만이 공직과 참정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둘째, 시민원은 연방 및 지방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선거의 관리 감독을 담당하며, 공직자 선발시험과 각종 전문자격시험의 출제 및 시행 역시 시민원의 권한이다. 셋째, 이미 임용된 고위공직자에 대한 감사 및 징계 권한도 시민원에 귀속된다.

이러한 기능을 통해 시민원은 단순한 자격 검정 기구를 넘어, 베른하이어 정치 질서의 정당성과 자격 기반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 기관으로 간주된다.

행정구역

경제

  • 1인당 국민총생산 세계 1위
  • 상장기업 시가총액 세계 1위
  • 중앙은행 금보유량 세계 1위
Unser Geld ist der Geld, der die Welt bewegen.
우리의 돈은 세상을 움직이는 돈.

베른하이어 재무부
대공황에는 정말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지만 결정타는 베른하이어 증시의 폭락이었습니다. 11월 26일의 아침을 시작으로 전 세계 금융이 무너지기 시작했죠.

마그니우스 왕립은행 직원

베른하이어는 헤스페로스벨트 최대의 부국이자 전세계에서 가장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는 국가이다. 200년간의 독점적인 식민지 경영으로 축적한 부와 압도적인 과학기술력을 기반으로 금융업, 중공업, 해운업, 철강업, 에너지산업, 전자장비제조업 등을 주력산업으로 하며 특히 전 세계 주식시장의 절반을 베른하이어 자산가들이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세계금융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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