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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tscher Kaiser / Kaiser von Deutschland
ᐳ 1 개요ᐯ 1 개요
빌헬름 3세 (Whilhelm III, 1882년 5월 6일 ~ 1951년 7월 20일)는 1941년에서 1951년 동안 독일 제국의 제 4대 황제로 재위했다. (통칭은 "카이저") 1946년부터 독일 황제(Deutscher Kaiser)라는 군주 칭호를 독일의 황제(Kaiser von Deutschland)로 개칭하고 이와는 따로 외스터라이히까지 포함하여 독일인의 황제(Kaiser von Deutschen)라는 칭호를 만들어 제1대 독일인의 황제에 올랐다. 본명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빅토어 아우구스트 에른스트(Friedrich Wilhelm Victor Augustus Ernst)"이며 독일의 빌헬름 1세의 증손이고 독일의 빌헬름 2세의 장남이었다.
ᐳ 2 칭호ᐯ 2 칭호
빌헬름 3세가 1941년 독일 황제로 즉위했을 때의 공식적인 칭호는 다음과 같았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독일 황제, 오스트리아의 외군주, 프로이센의 왕, 브란덴부르크의 변경백, 뉘른베르크 백작, 호엔촐레른 백작, 글라츠, 슐레지엔의 공작, 라인강 하류, 포젠의 대공, 작센, 엥언, 베스트팔렌, 포메른, 뤼네부르크 의 공작,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크로센의 공작, 마그데부르크, 브레멘, 헬데를란트, 율리히 및 클레베와 베르크의 공작, 벤덴과 카슈벤 민족, 라우엔부르크, 메클렌부르크의 공작, 헤센, 튀링겐의 방백, 상 라우지츠와 하 라우지츠의 변경백, 오라녜, 뤼겐, 동 프리슬란트, 파더보른, 피어몬트 공, 하버슈타트, 뮌스터, 민덴, 오스나브뤼크, 힐데스하임, 베르덴, 캄민, 풀다, 나사우, 뫼르스 공, 헨넨베르크의 백작, 마르크, 라벤스부르크, 호헨슈타인, 테클렌부르크, 링엔의 백작, 만스펠트, 지크마링겐, 베링겐의 백작, 프랑크푸르트의 영주이신 빌헬름 3세 폐하'
이후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얻은 방대한 점령지를 명목상 제후들에게 부여했기 때문에 유럽 지형에서 호칭의 변화는 크게 없었다. 다만 식민지 영역이 크게 확장됨에 따라 몇몇 자치령의 군주이자 황제가 되었다. 그리고는 독일인의 황제를 선언하며 공식적인 칭호는 아래와 같이 변경되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독일인과 게르만 민족의 신성한 황제, 독일의 대제, 오스트리아의 외군주, 프로이센의 대왕, 브란덴부르크의 변경백, 뉘른베르크 백작, 호엔촐레른 백작, 미텔아프리카의 황제, 노이기니아 및 자모아, 클라인베네디히의 군주, 글라츠, 슐레지엔의 공작, 라인강 하류, 포젠의 대공, 작센, 엥언, 베스트팔렌, 포메른, 뤼네부르크 의 공작,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크로센의 공작, 마그데부르크, 브레멘, 헬데를란트, 율리히 및 클레베와 베르크의 공작, 벤덴과 카슈벤 민족, 라우엔부르크, 메클렌부르크의 공작, 헤센, 튀링겐의 방백, 상 라우지츠와 하 라우지츠의 변경백, 오라녜, 뤼겐, 동 프리슬란트, 파더보른, 피어몬트 공, 하버슈타트, 뮌스터, 민덴, 오스나브뤼크, 힐데스하임, 베르덴, 캄민, 풀다, 나사우, 뫼르스 공, 헨넨베르크의 백작, 마르크, 라벤스부르크, 호헨슈타인, 테클렌부르크, 링엔의 백작, 만스펠트, 지크마링겐, 베링겐의 백작, 프랑크푸르트의 영주이신 빌헬름 3세 폐하'
몇몇의 지위는 비공식적으로 추가되기도 했는데 많은 경우, 오스트리아의 황제에게 부여되었던 호칭에서 따온 것이며, 일부는 구성국의 군주로써 기입되었다. 비공식 사항에서 추가된 직책은 다음과 같다.
'오스트리아의 황제, 바이에른, 작센, 뷔르템베르크의 왕, 예루살렘의 왕, 오스트리아 황실대공, 토스카나 대공, 크라쿠프 대공, 올덴부르크, 헤센-다름슈타트,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바덴의 대공, 룩셈부르크, 리투아니아의 대공, 안할트, 브라운슈바이크, 작센-알텐부르크, 작센-마이닝겐, 작센-코부르크-고타의 공작, 로트링겐, 잘츠부르크, 슈타이어마르크, 케른텐, 카르니올라, 주데텐란트의 공작, 리페, 샤움부르크-리페, 발데크피어몬트, 로이스그라이츠, 로이스게라,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의 후작, 상하 슐레지엔, 구아스탈라, 옹슈비엥침, 자토르 및 테센의 공작, 엘자스 및 로트링겐, 모조비엔, 클라인폴렌, 시에라츠의 후작, 리히텐슈타인의 후작, 합스부르크 및 티롤, 키부르크, 고리치아 및 그라디스카의 백작, 트렌토 및 브릭센 공, 상하 루사티아 및 이스트리아의 변경백, 호에넴스, 펠트키르히, 브레겐츠, 존넨베르크의 백작, 함부르크, 뤼베크, 브레멘 자유한자도시의 영주, 트리에스테의 영주'
ᐳ 3 생애ᐯ 3 생애
빌헬름은 1882년 5월 6일 브란덴부르크주의 포츠담 마르모르팔레에서 태어났다. 그는 빌헬름 2세의 장남으로, 제3대 독일 황제 카이저 (1859년–1941년)와 첫 번째 부인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1858년–1921년)의 아우구스타 빅토리아 공주 (Augusta Victoria of Schleswig-Holstein)가 그의 부모였다.
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증조할아버지 빌헬름 1세는 황제가 되었고, 그의 조부 프리드리히 왕세자는 왕위 계승자로 빌헬름의 3번째 왕위를 계승했다. 그의 출생은 그의 부모와 그의 할머니 빅토리아 왕세자비 사이의 논쟁을 촉발시켰다. 빌헬름이 태어나기 전에, 그의 할머니는 간호사를 찾는 것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기를 기대했지만, 그녀의 아들이 그녀를 괴롭히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기 때문에, 미래의 빌헬름 2세는 그의 이모 헬레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의 어머니는 다쳤고 그의 할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은 분노했다.그의 증조부와 할아버지가 1888년년에 모두 사망했을 때, 6살의 빌헬름은 독일과 프로이센 왕좌의 후계자가 되었다.
빌헬름은 1908년년 독일 축구 협회에 컵을 기증하여 독일 축구에서 가장 오래된 컵 대회인 크론프린젠포칼(Kronprinzenpokal, 황태자컵)을 창설하였다. 독일 클럽 BFC 프로이센은 원래 그의 이름을 따서 BFC 프리드리히 빌헬름으로 명명되었다.
1914년 카이저는 포츠담에 빌헬름 왕자와 그의 가족을 위해 슐로스 세실리엔호프의 건설을 명령했다. 1917년에 완공된 이곳은 한때 황태자의 주요 거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