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ARSAW FICTIONAL PROJECT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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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민국
小韓民國 | Little Republic of Korea
국기 국장
신께서 자유대한을 원하신다
新께서 自由大韓을 원하신다
상징
국가 애국가 (관습상)
반공가 (법적상)
국조
독수리
국화
무궁화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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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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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4월 11일
  • 8·15 광복 1945년 8월 15일
  • 대한민국 정부 수립 1948년 8월 15일
  • 한국 전쟁 패배, 망명정부 수립 1950년 12월 29일
  • 소한민국 정부 수립 1951년 2월 25일
  • 사모아인 학살 1951년 3월 14일
  • 소한민국 제2공화국 수립 1961년 5월 16일
  • 소한민국-사모아 전쟁 1963년 12월 13일
  • 신원준 통치 체제 1991년 4월 4일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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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신한성
최대 도시
신한성
면적
2,944㎢
접경국
아메리칸사모아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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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114,303명
밀도
38.8명/km2
인종
한국인 99.2%, 폴리네시아인 0.6%, 기타 0.2%
출산율
1.15명
기대 수명
79세
공용어
한국어, 영어
지역어
사모아어
공용 문자
한글, 라틴 문자
종교
국교
기독교 (제정일치)
분포
기독교 99%, 무종교 0.72%, 기타 0.28%
군대
소한민국 국군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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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구역
7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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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단일국가, 대통령중심제, 단원제, 공화제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100위 (혼합된 체제)
국가 원수 (대통령)
이덕환
정부
요인
국무총리
주석현
국회의장
김홍길
국방부장관
노현진
외교부장관
김정식
재외부장관
이재범
문교부장관
문선일
질서부장관
황일
체신부장관
임석민
상농부장관
김재욱
교통부장관
이성열
여당
대한발전촉성국민연합회
연립 여당
대한민족성장촉진애국연합
국민민족단결연합회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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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GDP
(PPP)
전체 GDP
$1억 4,103만
1인당 GDP
$5,504
GDP
(명목)
전체 GDP
$1억 2,330만
1인당 GDP
$6,102
무역
수입
$6,540만
수출
$4,400만
예산
세입
$1,300만
세출
$970만
외환 보유고
$1,600만
화폐
공식 화폐
소한민국 환
ISO 4217
KRH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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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GMT+13
도량형
SI 단위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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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가입
1999년
ccTLD
.kr
국가 코드
882, KR, KOR, LRK
전화 코드
+82
여행 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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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여행주의보
전 지역 (코로나19)


소한민국(小韓民國, Little Republic of Korea)는 오세아니아에 위치한 나라로, 수도는 신한성이다. 국조독수리, 국화무궁화, 국가는 관습상 애국가지만 법적상으로는 반공가를 국가로 보고 있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사실상 국민들 때문에 국가가 막장 테크를 타며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게 될 수준으로 전락했고 1963년 사모아 침공 이후에도 자국민 중심주의와 매카시즘 때문에 인종차별과 좌빨몰이가 심각해졌지만 이덕환 대통령 취임 이후 높은 사회 제도와 복지 시스템을 갖췄음에도 불구, 여전히 국민들의 막장 행보로 국제 사회에서 비판을 받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다. 근데 존나 불쌍하다

역사

한국은 광복 이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란 이름으로 나라를 수립하였으나 한국 전쟁에서 소련, 중국의 지원을 받은 북한군에 의해 낙동강 방어선이 붕괴되자, 미국의 사령관이었던 월튼 워커에 의해 1950년 10월 9일 피난민 62만 명을 서사모아에 망명시키고, 같은 해 12월 29일 망명정부의 설립과 함께 항복을 선언했다. 하지만 망명정부가 설립되었을 당시 피난민은 9만 명 밖에 남지 않았고 남은 53만 명은 서사모아로 도착하는 과정에서 공산군에 의해 격침당했다.

이후 망명정부는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여 미국의 원조를 받은 채 새롭게 내각을 구성하였고, 1951년 2월 25일 명칭을 '대한민국 망명정부'에서 '소한민국'으로 바꾸게 된다. 하지만 대통령인 이승만을 포함한 정부 인사들은 이 국명을 원치 않아했는데 '소한(小韓)'이란 명칭이 이미 한국 전쟁 때 없어진 대한민국과 한국인들을 비하하기 위한 국명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었고 1951년 3월 14일 한국계 사모아인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암살한 사건을 시작으로 약 3만 명의 사모아인들이 학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 이후 이승만은 다시 명칭을 '대한민국'이라 바꾸며 소한민국의 이미지를 지우려 했으나 실패하였고 끝내 소한민국으로 환원되었다.

결국 이승만은 국민의 지지를 받고도 1952년 6월 1일 학살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사모아인들에게 암살당했으며 이기붕이 대통령 임시자리를 맡았다. 이기붕은 소한민국 내의 사모아인들을 몰아내기 위해 자국민을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한민족 순혈정책을 펼치며 사모아인의 40%가 소한민국에서 쫒겨났고 이로 인해 사모아에서의 반한 감정이 자극되었다. 이는 뉴질랜드에도 퍼지며 1961년 김주혁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까지 뉴질랜드와 한국 간의 반감이 이어지게 된다.

1961년 5월 16일 소한민국은 제2공화국을 선포했고 김주혁을 대통령으로 하고, 부통령제를 폐지하는 대신 국무총리를 신설하는 대통령중심제로 개편되었다. 여기에 소한민국은 국군을 창설하고 국가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내걸었다. 1962년 1월 1일 사모아가 뉴질랜드로부터 독립하자, 소한민국은 사모아를 자신들의 영토로 삼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고 1963년 12월 13일 국군은 사모아를 기습 공격하며 전쟁이 발발한다.

1964년 1월 10일 국군은 마침내 수도 아피아를 점령하고 사모아의 항복을 받아냈는데 사모아인들은 결국 사모아에서 쫒겨났고 그 자리엔 한국인들이 차지하게 된다. 1965년 8월 8일부터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실시하며 전쟁으로 무너진 우폴루사바이를 재건하고 산업화가 이뤄지며, 경제가 개발되고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한민국은 외교 정책에 힘을 쓰기 시작했는데, 제일 먼저 반한 감정이 심했던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와 수교하고 '오세아니아의 힘의 균형'을 원칙으로 함에 따라 범오세아니아조약동맹을 창설하여 오세아니아판 북대서양 조약 기구를 지향했고, 나중에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파푸아뉴기니가 가입하며 아시아 단독 자유 진영을 형성했다.

1980년대에는 반중, 반소, 반공 노선을 중심으로 더욱 강력한 반공정책을 추진하는 대신 한미합병을 거듭 추진했고, 미국의 51번째 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면서 한동안 사대 정책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1987년에는 정당 설립, 시위, 출판 및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 등이 포함된 신헌법을 제정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의 권위주의가 남아있어 권위주의 청산을 노력했다.

하지만 1991년 4월 4일 신원준 대통령이 새로 취임함과 동시에 약 20년 간 독재 정권이 들어섰지만 계속되는 우민화 정책과 함께 사회 질서, 공공 복리, 경제 시스템의 활성화 등의 정책을 펼치면서 엄청난 사랑을 받아왔고 현재까지 신 대통령을 위대한 한국인이라 추앙받고 있다. 2011년 5월 9일 신 대통령이 죽고 이덕환 대통령이 취임하여 국민 행복과 민생 안정을 위해 '국민행복정치', '민생정치'를 강조하며 복지 정책, 사회 질서 제도를 도입하면서 마침내 현재 작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복지 시스템과 높은 사회 제도를 가진 나라로 급성장하게 되었다.

상징

국호

소한민국 헌법에 따라 정식 명칭은 소한민국(小韓民國)이다. 정식 영문으로는 Little Republic of Korea라고 한다.

1950년 국무원고시 제7호 「국호및일부지방명과지도색에관한건」에 따라 약칭은 대한(大韓)한국(韓國)으로 정해져 있지만 1961년 법안이 개정된 이후에는 약칭을 소한(小韓)한국(韓國)으로 변경되었다. 영문 약칭 및 통칭은 Korea를 쓰며, 국가코드로는 KR, KOR, LRK가 사용된다. 국가별 리스트를 일람할 때는 편의상 K를 앞으로 따와 Korea, Little Republic of로 표기한다.

하지만 이 국호 때문에 사모아인들이 학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었는데,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원래 대한민국 망명정부 대신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써야 했으나 누군가의 편지를 통해 작지만 큰 나라가 될 것이라는 뜻으로 작을 소(小)자를 붙여서 지금의 소한민국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부 수립 다음 날 낌새를 알아차린 이승만은 '소한(小韓)'이란 명칭이 이미 한국 전쟁 때 없어진 대한민국과 한국인들을 비하하기 위한 국명이라며 원치 않아했고, 결국 3월 1일 다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고친 후 소한민국이란 국명을 지은 주동자를 찾으라고 명령했다. 그 후 3월 14일 한국계 사모아인인 김지나를 살해하고, 총 3만 명의 사모아인들이 희생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대통령기록관에서도 이 사건의 기록물을 전시하고 있다.

국기

소한민국기
지위 공식 국기
제정시기 1961년 5월 16일
근거법령 법률 제XXXXX호 <소한민국국기법>

소한민국의 국기는 흰 바탕에 소태극이 들어가 있고, 하얀색은 대륙, 검은색은 소한민국(사모아), 태극 문양은 양과 음, 자유와 민주주의, 애국과 헌신, 정신과 희생을 의미하는데 정식 명칭은 소한민국기이다.

건국 당시에는 태극기를 사용하였으나 제2공화국 수립 이후 김주혁 대통령이 태극기를 폐기하고 새 국기를 제정함에 따라 현재의 국기가 되었다.

국장

소태극
width=150
width=150
지위 공식 국장
제정시기 1961년 5월 16일
근거법령 법률 제XXXXX호 <나라문장 규정>

국가

애국가 (愛國歌)
지위 관습상 국가(國歌)
제정시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1942년 10월 29일)
대한민국 정부 (1948년)
소한민국 (1951년 2월 25일)
근거법령 없음
작사가 미상 (1900년대 초)
작곡가 안익태 (1935년)
저작권자 안익태 (1935년 ~ 1950년 12월 29일)
반공가 (反共歌)
지위 법적상 국가(國歌)
제정시기 1972년 12월 29일
근거법령 반공법
작사가 미상
작곡가 미상
저작권자 소한민국 정부

소한민국은 총 두 개의 국가로 구성되는데 관습 상 국가인 애국가와 법적 국가인 반공가가 각각 소한민국의 국가로 쓰인다. 애국가는 법에 나와 있지 않지만 방송 뿐만 아니라 국민의례 등 일부에서만 사용된다. 반공가의 경우에는 법적상 국가이며 반공법에도 반공가를 의무적으로 제창해야 된다고 나와 있으며 사실상 국가 취급을 한다. 하지만 반공가가 워낙 자극적인 가사인데다 무조건 부르지 않으면 공산주의자로 몰릴 수 있다는 매카시즘적 인식이 강해서 거의 대부분이 반공가를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행정 구역

소한민국의 행정 구역은 약 7개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도이자 최대 도시인 신한성신경기, 신충청, 신전라, 신강원, 신경상, 신탐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신한성, 신경기, 신충청, 신전라 네 지역을 합쳐서 동부 지역, 신강원, 신경상, 신탐라를 서부 지역이라 부른다. 경우에 따라서는 각각 도시와 농촌, 수도권과 지방, 부유 지역 vs 가난 지역 등으로 불리고 있다.

동부 지역은 서부보다 국민 소득이 높고, 산업화가 잘 되었으며, 사람들이 살기 꽤 적합한 곳으로 불린다고 한다. 원래 사모아인들이 거주하던 지역이었으나, 사모아와의 전쟁으로 영토가 확장됨과 함께 산업화를 진행하며 부유국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1980년대 이후 신한성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도시가 되었고 신경기는 1기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두번째로 부유한 지역이 되었다. 신전라는 말할 것도 없이 그냥 부유한 지역이었지만 2010년대 이후 신한성을 따라하기 위해 산업화가 진행되며 어느 정도 부유한 지역으로 발전하고 있다.

중부 쪽으로 가게 되면 신경기와 신강원을 거쳐 신경상을 잇는 쌍경고속도로가 있다. 쌍경고속도로(Ssangkyung Expressway)는 1967년 김주혁 대통령의 고속도로 건설 추진에 따라 1969년 공사를 시작하였으며, 약 20년 뒤인 1989년 11월 7일에 정식 개통되었다. 그래서 동쪽 사람들이 서부 지역을, 서쪽 사람들이 동부 지역을 횡단할 때 이 고속도로를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차가 자주 막히고 고속도로 주변에 금이 생기는 등 문제점이 많은 탓에 이덕환 정부는 쌍경고속도로 2차 공사를 강행하여 공사가 종료되는 2024년 말까지 동서부 지역은 현재 각각 보트나 여객선을 이용해서 상봉을 하고 있다.

서부 지역은 동부보다 국민 소득이 적고, 산업화도 이뤄졌을 뿐 정작 주 경제 활동은 농업인 지역이다. 그 중에서도 신탐라는 여기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쓰레기같고 역겨운 곳이라고 불릴 정도로 심각한 지역인데, 인구 수는 그렇다 쳐도 오염도가 심각하다. 이유는 '그 지역' 못지않게 거대한 쓰레기 매장지가 있고, 하루에 30톤 이상을 바다에 버리고 있어 주변국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이 있으며 사람들이 살기에 부적합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탐라 사람들은 쓰레기 매장지를 폐쇄해달라는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 신강원과 신경상은 신탐라보다는 경제 활동이 그나마 정상적인데, 주 경제 활동이 농업인데도 국민 소득이 어느 정도 높은 지역이지만, 신강원은 대부분 국민들이 일을 하며 약 50년 전에 공급되었던 감자씨를 심어서 감자 재배에 나서고 있어 감자랜드(...)라고 부르는 반면 신경상은 조직폭력배들이 판치는 지역이라 동부 지역민들에겐 일명 고담랜드(...)라고 까이며 살기에 부적합한 지역이기도 하다.

행정 구역을 지랄맞게 이상하게 만든 탓인지 지역 간의 정치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서부 지역은 농업이 강한 곳이라 신민회와 촉련의 지지세가 강하고 동부 지역은 공업이 강한 곳이라 발촉의 지지세가 강하다. 2011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덕환 후보의 지지세가 동부 지역에 가장 많이 나타났고 서부 지역에서는 김민자 후보의 지지세가 강했으며,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부 지역에서 신민회와 촉련의 지지세가 많고 동부 지역에는 발촉 지지세가 많으니 말 다했다.

지리

연평균 기온은 27℃로 열대 기후 중에서도 열대 우림 기후에 속한다. 그래서 서부 지역이 농업을 주 활동으로 하고 있지만 플랜테이션 농업을 주로 하고 있다.

연강수량은 3,000~4,000mm 안팎으로 11월부터 4월까지 비가 많이 내리는데, 이 때문에 동부 지역에서는 자주 물난리가 일어나기도 한다.

정치

소한민국의 중앙권력기관
국회(입법부) 법원(사법부) 정부(행정부)

입법부

정식 명칭은 국회로, 정원은 약 130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한민국은 단원제이고, 국회는 국회의원들과 국회의장, 국회부의장으로 구성된 입법부이다. 매년 7월 1일에 정기 국회가 열리고 정기회·임시회의 50일 이내의 회기가 열린다.

국회의장의 임기는 약 1년으로 1년마다 국회의장을 교체하는 무기명 투표가 진행된다. 국회의장은 소속 정당이 되면 탈당해야 하며 국회부의장은 국회의장의 무기명 투표와 함께 진행된다. 국회의원의 임기는 총 4년으로 65석은 소선거구제에 의한 지역구 의원을, 65석은 비례대표에 의한 전국구 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단점으로는 몸싸움이 심각하다는 점인데 때문에 국회의원보다는 공무원 쪽에서 사망자가 많이 나오고 몸싸움이 한 달에 10번 정도 일어날 정도이다. 발촉 소속 의원들은 당의 엄격한 규칙 때문인지 몸싸움 시 호신용으로 쓸 수 있는 호미를 1인당 하나씩 챙기고 있는데 야당 의원들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다고 한다. 신민회는 최루탄을 던지거나 지렛대를 이용해 문을 부수는 등 과격한 공격을 선보이는 한편 심지어 촉련은 총까지 소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포도당은 양당이 자주 건드리진 않지만 탱커 역할을 한다.

행정부

소한민국의 행정부는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여 입법부에서 내건 법률 사안을 시행한다. 대통령은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으로 구성된 국무회의의 조력을 받아 사무를 담당한다.

대통령은 법률에 대한 거부, 헌법재판소 재판관이나 대법관 등을 임명하거나, 조약 체결, 외교사절단 신임, 선전포고 및 강화 등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 대통령의 임기는 무기한으로 사망이나 탄핵, 중도 사퇴 시 선거가 치러지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국무총리를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이 있고 주로 여당 쪽에서 국무총리를 뽑는다.

사법부

소한민국의 사법부는 총 30곳으로 신한성에는 가정법원, 고등법원, 대법원, 헌법재판소가 있다. 소한민국은 삼심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에서 소송 → 항소 → 상고를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독립적인 사법기관으로 위헌 법률 심판, 권한 쟁의 심판, 헌법 소원 심판, 탄핵 심판, 정당 해산 심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재판관은 대통령, 국회, 정당의 추천으로 임명된다.

정당

소한민국에는 다음과 같은 정당이 있다.

  • 대한발전촉성국민연합회 - 현재 집권여당이자 우파 성향의 정당. 자유주의 우파 정당이라 주장하지만 사회보수주의, 재정보수주의, 국민보수주의, 제한적 세계화 성향이 강한 정당이다. 일단 이덕환 대통령이 속해 있는 정당이지만 당원들도 꽤 많은 편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들은 학벌주의와 엘리트에 찌들어있는 교육지상주의자들과 대깨환, 거지, 무지성 보수주의자 등이 전부이다. 이 당이 등장하기 전에는 이승만 등이 이끄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존재했으나 이승만 등이 사라진 뒤 국민발전당과 합당해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외교적으로는 사모아의 한국화와 미국과의 사대 정책, 아시아 멸공통일을 지지한다. 현재 국회에 56석을 가지고 있다.
  • 대한민족성장촉진애국연합 - 현재 연립여당이자 극우 성항의 정당. 반동주의, 일민주의, 매카시즘, 네오파시즘 성향이 강한 정당이다. 주료 노령층의 지지를 받는데 다른 정당들과는 달리 당원이 매우 적고 조직력도 적다... 발촉과 마찬가지로 강경한 외교 성향이 있다. 현재 국회에 29석을 가지고 있다.
  • 국민민족단결연합회 - 현재 연립여당이자 우파 성향의 정당. 공화주의, 협동조합주의, 애국주의, 국민주의 성향이 강한 정당이다. 현재 국회에 13석을 가지고 있다.
  • 신민회 - 현재 야당이자 중도우파 ~ 우파 성향의 정당. 이름만 봐도 어느 정도 정상적인 정당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옛날에 노동 착취를 위해 지주를 역할했던 사람들이 대다수로 이 점 때문에 진짜 극우 정당 아니냐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물론 신민회는 발촉, 촉련 등의 정당을 비판하기에 야당으로 분류되며 현재 국회에 21석을 가지고 있다.
  • 포도당 - 현재 야당이자 듣보잡 정당. 이름만 봐도 장난으로 만든 정당이지만 소한민국에서는 진짜 있다. 일단 포도당은 이름은 물론이고 정책, 로고까지 완전 유치함의 극치를 보여주었고 이런 당이 2016년부터 국회에 입성한 적이 있었는데 정책만 봐도 포도 재배와 세금 완화, 유아 복지 확대, 어린이은행 신설 등등 수없이 많으나 정작 시행되는 정책은 하나도 없고 발의한 법안들은 내는 게 필수인데 귀찮아서 안하는 것에 가깝다. 오타쿠, 혐영, 혐중, 친일, 친미 성향이 있다. 그래서 포도당은 다른 정당들에게 견제를 받고, 지지율도 현저히 낮기 때문에 존재감이 없다는 것이다. 불쌍하다 현재 국회에 4석을 가지고 있다.

선거

소한민국의 선거는 대통령 선거국회의원 선거로 나뉜다.

대통령 선거는 대통령이 사퇴하거나 사망, 혹은 정계 은퇴 등을 선언했을 때 치러진다. 총 4개의 정당이 각각 4명의 후보를 정하게 되는데 중간에 두 후보가 사퇴하거나 단일화를 하는 등이 자주 일어나 결국엔 선거 직전에 두 후보만 남고 선거를 치르는 경우가 많다. 최근 선거인 2011년 대선에서도 발촉의 이덕환 후보와 신민회의 김민자 후보가 대결하였지만 압도적인 표차 (90.3% vs 9.7%)로 이덕환 후보가 당선되었기 때문에 신민회는 부정선거라며 주장하는 중.

국회의원 선거는 약 4년마다 모든 선거구의 국회의원들을 뽑는 선거를 말한다. 총 4개의 정당이 출마하는데 촉련과 발촉은 하필이면 선거 막판에 단일화를 하는 경우가 크고 여당은 경제를 살리겠다 한마디에 모든 국민이 여당을 뽑고, 야당인 신민회는 여당 독재 막겠다며 큰소리 치다가 폭망하는 경우가 크다. 최근 선거는 2020년 국회의원 선거인데, 발촉이 56석을 가져갔고, 촉련이 29석을 가져갔으므로 둘이 연립 내각을 구성했는데 총 85석으로 과반수를 넘겼다. 신민회는 1960년 창당 이후로 계속 선거에서 매번 지긴 했지만 1991년 대선에서 이철승이 신민회 후보로 나가고 약 30.1%를 득표하면서 선전하긴 했다.

소한민국의 행정구역은 전부 대통령이 시장직을 맡기 때문에 지방 선거는 없다.

민주주의 지수

소한민국의 민주주의 지수 현황
2006년 5.3 (혼합된 체제)
2007년 5.2 (혼합된 체제)
2008년 5.2 (혼합된 체제)
2009년 5.4 (혼합된 체제)
2009년 4.7 (혼합된 체제)
2010년 4.5 (혼합된 체제)
2011년 4.8 (혼합된 체제)
2012년 5.2 (혼합된 체제)
2013년 6.1 (결함있는 민주주의)
2014년 5.7 (혼합된 체제)
2016년 4.5 (혼합된 체제)
2017년 4.4 (혼합된 체제)
2018년 4.4 (혼합된 체제)
2019년 4.3 (혼합된 체제)
2020년 4.3 (혼합된 체제)

사회

복지

소한민국은 2000년대 이전까지 복지에 관한 지출을 거의 하지 않고 대부분을 국방비 등에 쏟아붓는 등 복지에 관한 것은 하나도 없었으며 오히려 국력 강화와 경제 발전에 사용되었는데 당장 신원준 정부만 해도 국민 세금의 60%를 경제 개발에 썼고, 거지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인 것을 보면 복지따윈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1990년대 이후 소한민국에서는 80세 이상 노인들에게 부분적 복지 정책을 시행하긴 했으나, 여전히 빈곤층이 늘어나는 현실을 직감하지 않고 그 이상의 복지 정책을 시행하지 않았다.

그러다 2011년 이덕환 정부가 출범하면서 다양한 복지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국민연금, 누리복지 정책이다. 국민연금 시스템은 노년층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고, 누리복지 시스템은 대부분 지역에서 시행하는 중이다. 이렇게 해서 소한민국은 복지 시스템과 높은 사회 제도를 가진 나라로 발전하긴 했지만 소한민국의 복지 정책을 두고 '사회주의적이고 반시장적인 정책', '한국병'이라며 비판하는 쪽과 '모든 사람들이 먹고 살아야 한다'며 지지하는 쪽으로 갈려 여전히 갈등하고 있다.

교육

소한민국의 교육 제도는 초등교육, 중등교육, 고등교육으로 나뉘는데, 6-3-3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소한민국은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의무교육으로 채택하고 있는데 고등학교는 일반계, 전문계, 특성화고로 분리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소한민국에는 대학교가 없으며 예전에 한성대학교, 경상대학교, 조선대학교 세 개의 명문 대학이 존재했으나 1990년대 이후 국립화를 포기하고 사립대학교로 전환함에 따라 비리 의혹이 불거지게 되었고 결국 2012년 세 대학을 싸그리 폐교시키며 전 세계 중 처음으로 대학교가 없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2020년 기준 재학자는 약 2만 5천 명이고, 중퇴자는 30명, 졸업자는 1만 6천 명에 불과하며 교육 수준은 문교부 왈 가장 높다고 주장하나 실상은 사모아급으로 보통인 수준이다. 하지만 이 교육 제도 때문인지 경쟁이 너무 커져서 누군가는 이기거나 지는 등의 현상이 나왔고 결국 '교육 카스트 제도'라 불리는 신조어도 나오고 말았다. 또 정부의 교육 정책 때문에 청년실업을 야기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뭔가를 했어도 큰 실수만 했다하면 무조건 정부 탓으로 돌리며 심하면 퇴진해야 된다는 나쁜 시민 의식이 낳은 병폐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다.

현재 교육에 관한 업무는 문교부가 담당하고 있다. 문교부는 교육 정책 발표나 재난 시 비상 대책 실시, 교과서 집필 감독 및 기획 등을 담당하는데 워낙 권위주의적인 국가라서 그런지 조직폭력배들을 문교부가 가지고 있어, 공무원들에게는 월급도 안 주는 더러운 세상, 학생들에게는 수용소 이상이나 다름없는 학교에 다니면서 일주일에 하루 72시간 과업을 하면서 쉬는 시간 따윈 없고 결국 과로사로 죽는 경우가 많아 끔찍한 인생을 겪는다고 한다.

노동

소한민국은 노동자들이 동부 지역에 많이 거주하고, 약 9,889명이 일을 하기 위해 소한노동소라는 곳에서 일을 한다. 헌법에 따르면 노동 3법과 노동자들의 권리를 존중한다라는 내용이 나와 있어 누가 보면 노동자들의 권리를 국가가 존중하고 있다고 한 줄 알았다.

하지만 실상은 소한노동소라는 소한민국의 노동교화소이자 굴라그에서 144시간 동안 일만 하며 과로사가 생겼음에도 국가가 이를 무시하고 강제 노동을 벌이는 사실상 인권 탄압에 가깝다.

인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인권따윈 개나 줘(...). 소한민국의 인권은 헌법에 나와있음에도 정작 나라 자체엔 인권이 거의 없는, 그저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사회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으면 전부 빨갱이로 몰아 소한민국에서 추방당하거나 혹은 살해당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물론 체포되었더라도 바로 고문 후 처형이 국가적으로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이런 현상이 계속되고 있어 전문가들은 이게 인구 감소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여자는 있지만 사회적 약자는 어딜 가도 소한민국에는 없고, 소한민국에 입국하거나 거주 시 영구 추방될 수 있다. 만약에 사회적 약자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을 경우 없애버리는 방법이 있는데 인민재판(?)을 벌인 다음 국가가 강제 추방시키면 끝이라는 막장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다. 그보다 더 심한게, 하루에 144시간 굴라그급의 노동교화소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나, 하루 72시간 과업하며 과로사가 되도록 공부하는 학생들을 국가가 엄청나게 감시하는 걸 보면 국가는 인권 탄압을 저지르는 꼴을 보여주고 있는데 정작 정부는 정신교육 겸 국민정신개조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 이상으로 심각한 국가이다 카더라

이덕환 정부부터 복지 정책과 함께 인권 신장을 추진 중이나, 인권 신장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많아서 폐기되었다.

인구


소한민국 인구 추이
(1960 ~ 2020년)
1952년 소한민국 건국
1960년 9,105명
1965년 13,580명
1970년 22,779명
1975년 35,915명
1975년 36,210명
1980년 42,672명
1985년 45,600명
1990년 72,650명
1995년 89,023명
2000년 90,780명
2010년 96,076명
2015년 101,502명
2020년 114,303명

소한민국의 인구는 1952년 건국 이후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이다. 현재 인구 수는 2020년 기준으로 114,303명으로, 도착 당시 추정 인구 9만 명, 망명정부 당시 1,200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큰 수치이다. 이렇게 인구가 늘어나는 이유는 사모아와의 전쟁 이후 영토가 늘어나면서 산업화와 출산 장려 정책 등의 국내 정책은 물론, 관광 사업 등으로 큰 성과를 이뤘기 때문인데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출산 장려 정책으로 한 가족 당 4명 이상의 자녀가 늘어나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2000년대 후반까지 이 장려 정책을 통해 약 9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동부 지역에서 비혼층이 증가하고 출산율이 점차 줄어들며 출산 장려 정책을 부활시키자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결국 2009년 출산 장려 정책을 부활시키긴 했으나 실효성 문제와 함께 2011년 폐지되었다. 이덕환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는 출산 장려 정책을 세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였고 이는 2014년 10만 명 달성과 함께 성과를 이룩했다.

경제

소한민국은 자유시장경제를 채택하는 국가로, 주 산업은 농업과 공업이다. 이는 서부 지역의 농업과 동부 지역의 공업이 존재하지만 두 지역 모두 상업적으로 발달된 지역들이다.

서부 지역은 농업이 발달되어 있고, 대부분 플랜테이션 농업이 주 활동인데 이 곳에서 , 감자, 수수, 를 심어 재배하는 것 외에도 코코넛, 바나나, 카카오 등을 재배하고 있다. 물론 산업화가 늦게 시작된 지역이라 제조업과 가공업이 발달된 지역이지만 동부 지역과의 소득 격차는 여전하다.

동부 지역에서는 공업이 발달된 지역으로 서부 지역에 비해 가장 크게 발달되었으며 정부가 이 지역을 관광, 무역의 중심지라고 대놓고 홍보하고 있다. 물론 시민의식이 나쁘고 다짜고짜 시비나 거는 시민들이 아닌 이상 관광 명소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많으며 자유 진영과의 무역 활동도 미국이나 유럽같은 나라들을 제외하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사모아와의 전쟁 이후 영토가 사모아 전체로 확장됨에 따라 사모아인들이 거주하던 동쪽 지역에 산업화를 감행하여 수많은 자연이 파괴되었고 그 곳에서 도시를 세웠고, 1980년대 이후 도시가 확장되며 동부 지역의 소득이 크게 높아진 반면 서부 지역은 너무 농업에 의존하다보니 소득이 낮아지며 동서 간 경제 격차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당시 서부 지역의 소득은 1인당 1,269환이고, 동부 지역은 2,240환으로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게 1980년대 후반 서부 지역에도 산업화가 이뤄지게 되고 제조업과 가공업 등이 점차 들여오는 등 산업 양성에 힘을 썼지만 여전히 80%가 넘는 사람들이 농업에 종사하는 분위기이다.

교통

소한민국은 우측 통행을 하며 운전석은 왼쪽에 있다. 하지만 지하철이나 버스, 비행기가 없고 사실상 8개 국도와 2개 지방도를 연결하는 쌍경고속도로가 존재한다. 쌍경고속도로는 약 80km에 달하며, 신경상에서 신한성까지 경유, 횡단할 수 있다. 1969년 공사 이후 1989년 정식 개통된 고속도로인지라 최근 들어 2차 공사가 진행 중이다.

항구도 몇 개 존재하지만 무역이나 이동 등에서 많이 활용하고 있다.

화폐

소한민국은 이라는 화폐를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1환을 미국 달러로 환산하면 약 0.00087 달러로, 1달러는 우리 돈으로 약 800환이다. 환은 1환, 5환, 10환, 50환, 100환, 500환짜리 동전과 천 환, 오천 환, 만 환, 오만 환, 십만 환짜리 지폐가 있으며 한국은행이 발행을 감독하고 있다.

고액권이 있다보니 돈세탁이나 비리 등에도 많이 활용되는데, 특히 유일한 대기업인 성강의 일부 고위 공무원들이 비리를 저지르기 위해 고액권을 이용하기도 한다.

물론 이 걸 많이 찍어버려서 한 때 인플레이션이 치솟았던 나라였지만 지금은 약 100장 정도 찍어낸 다음 일주일 뒤에 또 100장을 찍는 방식으로 발행하고 있어 인플레이션은 그만큼 높지 않다고 주장한다.

문화

언어 및 문자

소한민국은 한국어한글을 공용어와 공용 문자로 사용하고 있다.

언론 및 방송

소한민국에는 대한신문이라는 사실상 유일한 언론이자 방송국이 존재한다. 이름에 '신문'이 들어가서 그런지 특이한 이름의 방송국이라고 생각하지만 국영언론이자 국영방송이며, 정부가 공직자를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통해 사장을 선출한다. 하지만 실상은 허구한날 정부 홍보, 정치, 종교, 연예, 경제 기사가 전부이며, 국영방송답게 시청률도 90%에 달하는데다 방송종료시간에 틀어주는 애국가 시청률은 거의 없지만 방송시작시간에 틀어주는 반공가는 무려 97%가 시청한다는 아이러니함이 있다.

스포츠

소한민국에서는 경제 성장 이후 스포츠 발달에 중점을 두기 시작했는데 특히 축구, 야구, 농구에 집중하였다. 그리하여 1990년대에는 올림픽 출전을 위해 계속해서 훈련하여 국가대표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소한민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내는 등 성과를 보여주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소한민국 선수들의 활약을 보여줬지만 하필이면 심판이 병X이라 그런지 동메달 하나 밖에 주지 못했고, 축구는 한 술 더 떠서 올림픽 참가국 중에 제일 못하는 나라(...)로 낙인이 찍혀버리며 16강은 커녕 조별예선에서도 광탈해버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것 때문에 2006년 토리노 올림픽부터 계속 보이콧을 진행하고 있는데 최근 올림픽인 2020년 도쿄 올림픽역시 보이콧과 함께 불참 선언을 했다.

음악

한국의 음악은 사모아에서 세워진 나라다 보니 초기에는 전통 음악인 국악이나 농촌 가락, 사모아 전통 음악이 대표적이었는데, 사모아와 전쟁을 겪은 이후 1960년대 후반에는 미국식 이 동부 지역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서부 지역에도 록 밴드 공연이 이뤄지는 등 1970년대 후반까지 록의 인기가 많았는데 물론 반영 감정을 자극해서인지 영국식 록 음악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록의 유행에 염증을 느낀 서부 출신 기성 음악가들이 반퇴폐 운동을 벌였고, 여기에 죽창 등을 이용하여 민병대를 결성하는 등 퇴폐적 유행보다는 전통적 유행을 지켜야 한다며 테러와 폭동을 저질렀다. 이 때문에 황금기라 불리던 록의 유행이 약간 누그러들었다.

그럼에도 기성 세대들의 록 음악에 대한 저항은 계속되어 왔고 1975년에는 록 밴드 일성 블루스의 멤버들을 향해 돌을 던지거나 무대에 난입하는 사건이 벌어지는가 하면 1978년 코리안 스피릿이란 밴드의 대규모 행사에서 폭탄 테러를 일으켜 약 150명이 사망하는 일을 저질렀다.

1980년대에는 디스코가 소한민국에 들어오면서 록 시기정도의 인기를 얻었는데 당시 동부 지역에서는 국민 소득 증가로 롤러장 등이 생기는 등 이용 시설이 많이 생기면서 청년층의 인기를 얻었다. 물론 1983년 기성 세대들의 롤러장 테러로 디스코 유행에 타격을 입었고 1986년에는 반퇴폐 운동가들을 고엽제로 암살시킨 사건이 벌어지자 위기를 맞은 사이에 신경상에 롤러장이 생기는 등 서부 지역에도 디스코 열풍이 조금씩 불어오고 있다.

신원준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중 가수들을 건전가요 대상에 포함시키고, 1995년 퇴폐문화 금지 조치가 시행되자 록 음악이나 디스코를 서들이는 암시장들이 생기게 되자 정부의 탄압에 맞서 시위를 벌였는데, 당연히 정부는 이들을 퇴폐순응자로 간주하여 체포하거나 사상교육, 고문 등을 자행했다. 결국 소한민국에서의 디스코는 1997년 이후 몰락을 맞았고 2000년대 들어 서부 지역에서 박순자, 임택 등의 가수 등이 주도하여 트로트가 유행을 타게 된다. 지금은 규제가 많이 풀려서 서부 지역에서는 트로트, 동부 지역에서는 록이나 디스코를 즐겨 듣고 있다.

최근 등장한 K-POP이나 해외에서 유입된 등의 장르는 거의 존재감이 없어질 정도로 비중이 거의 극소수이고, 종교를 믿지 않거나 신생아들이 청소년기에 접어들었을 때, 혹은 일부 청년층들이 즐겨듣는다고 한다. 힙합, 발라드는 당연하게도 존재감이 없긴 하지만 발라드는 출산율 감소의 원인(?)이 되고 힙합은 자국 비하로 국민 정서에 위배되기 때문에 듣는 것만으로도 징역형을 때리기 때문에 절대 들어선 안된다.

종교

국교 기타 종교 종교 비율
기독교 불교, 천주교, 유대교, 도교, 원불교, 증산교 등 기독교 99.0%
무종교 0.72%
기타 종교 0.18%

현재 소한민국의 국교는 기독교로 약 99%가 이 종교를 믿고 있다. 어느 정도냐면 대부분의 인구가 예배를 다니고 아멘을 외치며 가정집에서도 십자가를 이용해서 기도를 들 정도인데 집안 자체는 예수가 지켜주신다고 하여 '예수에, 예수에 의한, 예수를 위한' 집안이다. 그렇지만 기독교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는 당연히 포르노나 게임 등을 원천 차단하기 때문에 실상은 사회보수적이고 반공 성향이 강한 극우 기독교에 더욱 가깝다는 점.

물론 정치 활동을 할 때 쓰이는데 대표적으로 극우 목사 등이 주도하는 예배 행사가 가장 많다. 예배 행사는 극우 목사의 가르침과 꾸짖음을 통해 정신을 맑게 해준다는 점인데 반대로 반공, 개독 사상을 자극하여 광신도로 변하는 단점도 있다.

무종교인들은 0.72%로 거의 축소되었다. 건국 당시 무종교인들은 33.36%에 불과하였는데, 기독교가 소한민국을 덮치면서 빠르게 감소하며 지금은 광신적인 기독교에서 벗어나 공동체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공동체 의식을 통해서 반기독교 투쟁을 벌이고, 국민의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신념을 통해 소한민국 체제를 전복시켜야 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는데 소한민국에서는 이들을 '회색 공산주의자'로 불리는 반면 자신들은 '자유투사'라 불리고 있다. 다만 여기에 기독교 성향이 남아있는 무종교인들도 적지 않게 나온다.

불교, 천주교, 유대교, 도교, 원불교 등의 기타 종교인들은 0.18%로 절대 다수가 기독교인데 반해 이 쪽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천주교를 믿는 사람은 0.005%, 유대교는 0.001%로 극히 낮은데 불교는 0.09%로 가장 많다.

그러나 신흥 종교라 자칭하는 사이비 종교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사비교'라 불리는 기독계 신흥 종교부터, '사랑의 예수교회', '신천지' 등의 유명한 사이비 종교까지 점차 기독교의 지분을 독식하고 있다.

외교

남북 관계

한국 전쟁 패배 후 사모아에서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엄청나게 싫어한다. 그래서 건국 초기에도 북한이라 불렸으나 지금은 조선이라 부른다.

소한민국 건국 후 이승만 대통령은 한반도를 자기 나라의 영토로 지정하고 조선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명시하였다.

한미 관계

미국과는 친한 나라이지만 유일하게 미국과 소한민국에 대사관이 설치되어 있다. 소한민국 건국 이후 미국은 한국을 몰락시킬 수 없다며 무제한 원조를 감행했는데, 소한민국은 덕분에 경제적인 안정을 되찾긴 했으나 오히려 후에 있을 신자유주의 도입에 영향을 미쳤다.

1963년 사모아와의 전쟁이 터졌을 때 미국이 소한민국을 지원했었는데 당시 아메리카사모아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을 이용해서 양공을 퍼부어 사모아인들을 처리하는데 성공하고 덕분에 1964년 9월 20일 신한성에 대사관을 설치하였다. 그 때 소한민국이 범오세아니아조약동맹(POTA, 포타)를 결성하자 미국도 포타에 가입하여 준회원국 지위를 얻었으며 반공 진영에선 큰 강점이 될 것으로 보였고 여기에 여러 유럽 국가들이 통합한 유럽 연방국과도 수교를 맺음과 동시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와 공유하며 반공 진영의 강화를 목표로 하였다.

1982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만나며 한미합방을 추진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1994년에는 신 대통령이 빌 클린턴 대통령과 비밀 정상회담을 맺어 미사일 배치를 약속한 적이 있었는데 조지 W. 부시가 집권한 이후부터는 사실상 사대 정책을 펼치며 한미합방 아니면 공산주의 대항이라는 조건을 내걸고 미사일 배치, 실시간 모니터링, 비밀 교류 등을 활발히 이어나갔다. 그런데 부시가 애국법이란 삽질을 함으로써 미국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는데 정작 소한민국 국민들은 애국법을 선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자 상황이 급변하게 되는데, 오바마 대통령은 "이제 소한민국과의 군사적 협력을 할 수 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혀 미사일 기지 철수를 선언하였다. 이로 인해 많은 시민들은 미국의 행보에 분노하였으며 아예 단교해야 한다는 여론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론을 의식했는지 2012년에는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미사일 기지가 다시 들어서긴 했다. 도널드 트럼프 집권 이후에는 다시 미국 사대주의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정작 트럼프는 한국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무조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때리고 있다. 후에 이것이 알려진 후 국민 여론이 갈라지며 한미동맹 무조건 강화해야 한다는 찬성파와 과한 동맹보다는 경제적 교류를 해야 한다는 반대파로 나뉜 적이 있었다.

그렇게 한 참을 싸우다 조 바이든이 당선되자, 그동안 원조를 받고 '아메리카 만세'를 외치며 미국을 사대하던 친미파 일부가 바이든을 공산주의자 + 신독재자 + 페미니스트로 싸잡아 몰아감과 동시에 반미로 돌아서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그럼에도 정부는 2021년 한미합방 카드를 다시 꺼내고 있는 상황인데 어떤 상황이 펼쳐질 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또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하나님의 구원으로 세워주신 위대한 나라라고 불리며 이는 신국창조론과 유사한 음모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한영 관계

영국과의 관계는 너무 험악하다. 물론 수교 따윈 없었고 정부는 영국을 "영국 음식마냥 쓰레기 못지 않는 나라"라고 칭하고 있어 반영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한영 관계는 소한민국 건국 이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1969년 소한민국에서 영국인 3명이 방문하자 충격적인 일을 겪다 귀국한 사건이 한영 관계에 큰 악영향을 미쳤다는 얘기가 있다. 대충 설명하자면 한 영국인은 젊은 국민들에게 비틀즈를 소개해봤더니 "비틀즈? 그거 먹는건가?"라며 영국 록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으며 다른 영국인은 엘리자베스 2세를 보여주고는 반역자다, 무슨 그냥 늙은 사람 아닌가라는 반응이 나왔고 마지막 영국인은 영국산 를 대접했더니 이를 뱉으면서 영국 욕을 내뱉었는데 여기서 엘리자베스 2세를 향한 모욕적인 욕설이 나오자 심기가 불편한 영국인들은 결국 귀국했으며 해럴드 윌슨은 이 것 때문에 "내가 알던 한국이 아니다"라며 한국에 수출을 전면 중단시켰다는 것.

이 사건 이후로 국민들은 영국을 "스포츠에는 훌리건이 판치고, 정치는 부패하고, 요리는 쓰레기인데다가 우리 정서에 맞지도 않는 미개한 나라"라며 비난하고 있으며 전 국민의 99.95%가 미국을 추종하는 마당에 미국이 탄생한 이유도 영국의 식민지가 아닌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했다거나, 영국은 나라 자체가 없고 그냥 유럽의 섬일 뿐이라며 계속해서 영국을 아예 없던 나라 취급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중심에는 신원준 정부가 있었는데 이 시기만 해도 반영 감정이 엄청났고 공공장소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데서 영국 노래를 듣거나 피시 앤 칩스 같은 영국 음식을 먹으면 처맞는다는 얘기까지 돌았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영국 요리나 음악은 상점에서 거의 팔지 않는다.

그러다 이덕환 정부로 넘어가면서 세계화를 이루겠다며 반영 정서를 완화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국민들의 반영 정서만 심화되었으며 이는 현재까지 영국 혐오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가 터진 시기에 보리스 존슨 총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소한민국 국민들이 잘 죽으라거나 환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정작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확진 판정을 받으면 국민들이 눈물을 흘리지만 존슨 총리가 확진 판정을 받으면 만세를 외친다는 이유 때문인지 언론에도 보도되며 영국인들은 소한민국 자체를 "병X들의 천국"이라며 까고 있다. 결국 총리 보고 죽으라는 것 때문에 영국에 혐한 감정을 촉발시킨 꼴이다.

한중 관계

소한민국 외교부는 중국을 이렇게 소개하는데, '현재까지 수교한 적도 없던데 마오쩌둥의 악행 때문에 오히려 국민 정서만 키운 미개한 나라 중 하나'라고 설명되어 있는데 대만의 경우 '위대한 바위섬 국가이자 자유애국 부국국방 연합국'이라고 소개하고 있어 정부 기관이 대놓고 친중화민국/혐중을 드러내고 있다.

처음 한중 관계가 시작된 것은 1952년 수립 당시 중화민국장제스가 소한민국을 방문하여 수교한 것이 시초인데 이 때부터 한중라인이라 부르는 군사적, 경제적 연락망이 설치되어 장제스가 죽은 1975년 이후에도 계속 활발한 교류를 이어나갔다. 그러다 장제스 사망 이후 장징궈1986년 한중라인을 끊어버린 탓에 우방국이라고 주장하던 중화민국과의 관계과 악화되었고 2000년에는 민주진보당천수이볜이 대한국 보호 정책을 펼치면서 상황이 나아지긴 했으나 2008년 마잉주가 한중라인 재설치를 두고 갈등하며 다시 얼어붙었다. 그래서인지 한중 관계는 2012년에는 소한민국에만 대사관만 설치한 후 아무런 행보를 보이지 않았으며, 2016년 차이잉원이 집권하고 나서도 한중 관계 따윈 없었다...가 2020년 중국이 하나의 중국을 이유로 중화민국을 침공했다는 소식과 함께 우리나라가 위기에 빠지게 되고, 대만 시민들이 갈 곳을 찾던 중 소한민국을 그 대안으로 자리잡은 덕분에 일단은 핫 플레이스(?)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여전히 중국과의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혹시 몰라 중국공산당의 지령을 받은 사람이 있을까봐 대만 내 중공 지지자들을 색출해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과는 혐오를 넘어서 아예 민족 자체를 가장 미개한 민족 0순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1952년부터 계속해서 좌파 독재 국가 프레임을 씌우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2000년대 이후부터는 소수 민족의 독립 아니면 힘에 의한 협박을 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2020년 이후부터는 코로나19에 관해서 혐중 감정이 크게 작용했고, 2021년 3월에는 모 우파 유튜버가 중국 네티즌들의 무차별 공격, 조선족의 한국 비하가 중국공산당우마오당의 커넥션을 통해 소한민국을 차지하려 든다는 주장이 일자 소한민국 정부가 이 유튜버에게 '올해의 착한 애국시민'으로 지정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티베트위구르, 내몽골 독립에는 무조건 찬성하고 있고, 그 중 극소수는 아예 중국 민족들을 분열시켜서 각 민족끼리 살게 해야 하고 영원한 통합을 해선 안된다는 주장까지 서슴치 않고 있다. 소한민국 정부 역시 대놓고 혐중을 드러내고 있고, 심지어는 김정식 외교부장관이 "한국이 세계 일류 국가로 발전하려면 중국부터 없애버려야 한다"라는 발언을 해 전 국민의 99%가 사이다라는 반응을 보인 바 있다. 여기에 코로나19의 진원지인 중국이 전 세계에 엿을 먹이려 한다는 이유로 혐중 감정을 드러내는데, 대만 사람들은 소한민국에 들어오면서 중국 사람들은 엄청나게 차별하는 등 소한민국의 모 커뮤니티와 버금가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일 관계

소한민국과 일본과의 관계는 현재까지 험악한 상태인데,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한국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조선국(朝鮮國)이라고 쓴다. 이유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이미 수교한 상태이고 동시에 이 나라를 조선(朝鮮)이라고 표기하기 때문에 일부러 혼동하지 않게 나라 국(國)자를 넣어서 반한 감정을 자극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는데 소한민국 입장에서는 불만이 있을 수 밖에 없다.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한국을 도와줬던 나라였지만 한국이 밀리자 1952년 중립을 선언해 한국에서 반일 감정이 두드러진 적이 있었고, 1963년 사모아 침공 사건 당시 일본 기자가 이를 취재하면서 소한민국의 실체를 폭로해버리는 바람에 반일 감정이 가속화되었다.

소련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관계를 맺지 않다가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총리대신이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정상 회담을 연 끝에 수교를 선언했다. 하지만 신원준 정부는 2011년 단교할 때까지 일본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해 전 국민의 5%를 오타쿠로 만들어버렸다는 점에서 극우 기독교 세력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러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소련의 지령을 받은 스탈린주의자들이 일본을 공격해버리며 일본소비에트공화국이 수립되자, 이덕환 정부는 일본과의 단교를 선언해버렸다. 동시에 오타쿠들은 단교 소식에 분노하며 정부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유혈 진압된 적이 있었다. 2015년 소련이 조선, 일본, 중국과 군사 동맹을 맺어 군사적 위기가 돌기 시작했고 2019년 7월 7일에는 소한민국으로 망명한 일본인 700명에게 입국을 허용하는 척 하면서 자경단을 동원하여 학살을 저지르자 야마모토 겐시로 일본소비에트공화국 제1서기장은 "자국민을 죽인 조선국(朝鮮國)은 각오하라"라며 소한민국을 비판하였다.

2020년 도쿄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코로나19가 퍼진 상황에서, 재한 일본인들이 겪을 굴라그식 방역과 고강도 봉쇄 조치, 강제 노동 교화, 그리고 자칭 떠오르는 인민의 별이자 극우에서 스탈린주의로 전향한 극좌 혐한 인사인 사쿠라이 마코토의 트롤짓 때문에 반일 감정을 넘어 중국 뺨치는 혐일 감정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한소 관계

소한민국 건국 당시 소련의 국가 원수인 이오시프 스탈린은 한반도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조그만한 나라가 미국을 사대하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당시 이 발언 때문에 한국인들의 심기를 건드려 현재까지 소련과 교류를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 후 오랫동안 소련과 수교를 맺지 않다가, 1991년 12월 9일 블라디미르 레오코프스키 서기장이 소한민국을 방문하여 유엔 가입과 함께 수교를 맺겠다는 조약을 체결하였고 여기에 미국의 승인을 받아 유엔 회원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두었다. 그 후 8년이 지난 1999년 소한민국은 소련과 수교를 맺음과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였다. 하지만 2008년 블라디미르 푸틴 서기장의 소련 민주화 시위 탄압과 더불어 신원준 대통령의 강력한 반공·반일 정책으로 인해 한소 관계가 다시 얼어붙기 시작했고 급기야 2011년 9월 9일 이덕환 대통령의 발표로 일본과 함께 단교를 선언했다. 2013년에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서기장이 소한민국을 언급하며 소한민국과의 재수교를 요청했지만 이 대통령은 러시아어로 "당신같은 좌파 독재 국가와는 수교할 생각도 없다"라며 답장을 보내자 심기를 건드린 소련은 2015년부터 중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일본소비에트공화국과의 군사 동맹을 체결하여 소한민국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대부분의 국민들이 소련을 "중국, 조선, 일본이나 다름없는 좌파 독재 국가", "불곰인데 불곰인 척 하는 독재 국가"라고 비난해 반소 감정이 심화되었고, 추가로 이 대통령의 반소 행보로 인해 온 국민이 소련을 혐오하고 비난하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결국 2021년 7월 1일 소련은 소한민국 침공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온 국민이 충격에 빠지게 되었고 소련의 한 국영방송은 현재 소련군이 소한민국과 약 50km 떨어져 있는 곳에 무장한 상태라 만약 도발을 했을 경우에는 군사적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유 관계

1965년 유럽 연방국이 수립되자 소한민국은 유럽의 원조를 요청했으나 거부한 적이 있었다. 당시 콘라트 아데나워 초대 유연방 총리는 소한민국이라는 소국에 원조를 하기보다는 경제 성장에 집중하겠다는 얘기만 하고 원조를 거부했는데 그 이유는 소한민국이 사모아에 위치해 있어 유럽에서 소한민국으로 가는 길이 너무 멀고, 중간에 카리브해중앙아메리카 횡단 시 미국에 의해 테러를 당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진영에게 발각된다면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또 혹여나 도착했을지라도 소한민국인들이 보급선을 불태울 수 있을 것이라는 요인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초에 유럽 연방국 자체가 중립국이라 미국과 소련으로 고립되었기 때문에 동네북 신세를 지는 나라다 보니 유연방 측 친미파들은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선 친미로 가야한다는 뭣같은 소리만 지르고 있다. 결국 1973년 친미로 돌아서면서 미국과 수교를 맺었다.

어쨌든 이것 이후로 꾸준히 유럽의 원조를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했으며 1975년 베트남이 통일되고 공산주의 진영이 크게 성장함에 따라 소한민국도 크게 고립된 상황이 되어버렸고, 여기에 오세아니아에 영국, 프랑스였던 식민지들이 죄다 독립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1985년 미국 루트를 타고 보급선을 보내 식량과 무기를 지원해줬다. 1986년에는 유럽 연방국과 수교를 맺어 자유 진영이 한층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긴 개뿔... 1991년 유럽 연방국과 영국 간의 갈등으로 서로를 "X이나 까라"며 신나게 까고 까이던 사이가 되자 소한민국은 유럽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생기기 시작했다.

급기야 2004년 올림픽 때 소한민국 선수가 출전하긴 했지만 고작 동메달 하나밖에 주지 못해 국민들이 분노해버렸고 결국 2005년을 기점으로 IOC를 빨갱이로 모는 가 하면 유럽과 단교하는 척하면서 무역 관세를 존나게 때려버렸다(...) 거기다 지방선거에서 유럽 독립당이 대약진을 해버리자 서서히 X망을 겪고 있는 사이에 소한민국의 관세 트롤링으로 국채까지 생긴 탓에 국가 멸망 테크를 탔고 2008년 해체된다. 소한민국은 붕괴 직전 유럽 연방국과 단교하고 유럽-한국 간의 무역선까지 차단했는데 여전히 유럽은 소한민국을 트롤러라고 부르고 있다.

2021년 현재까지 유럽과 소한민국 간의 관계는 이미 영국 이상으로 심해진 상황이며, 코로나19가 판치는 상황에서도 유럽을 M.M.M(미개하고 미친 (병)명신들)이라고 부르고 있고, 심지어는 훌리건이나 난민, PC 같은 이슈가 나오면 모든 국민들이 하나가 되어 유럽을 'PC충 대륙'이라며 까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기타 관계

대부분의 나라들은 전혀 관심이 없는 편인데 그 중에서도 여전히 소한민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나라가 바로 사모아이다. 현재 아메리카사모아에 망명정부를 설립한 상태이며 자신들의 고향을 소한민국으로부터 되찾아야 한다며 복국(復國)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처음 대한민국 망명정부가 세워졌을 때 사모아는 당시 뉴질랜드의 일부였고, 당연히 이를 지원해줬었다.

그런데 몇 년 후 국명을 놓고 수색을 시작하던 국군은 김지나라는 사모아인을 찾아내 사살한 다음 사모아에 거주하고 있던 사모아인들을 대량 학살해 뉴질랜드의 비난을 받았다. 1962년 사모아 독립 후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소한민국은 결국 군대를 동원해 1년 뒤 전쟁을 일으켰으며 그 결과 사모아 전체가 소한민국의 영토가 된다. 이후 사모아인들은 아메리카사모아로 넘어오긴 했지만 이들도 공산주의자로 오인해 학살을 당해야만 했다. 그렇게 사모아인들은 1999년 망명정부를 설립해 소한민국으로부터의 복국을 주장하고 있으며 동시에 소한민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물론 이곳에서는 구 사모아 문화권과 비슷한 문화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망명정부를 인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