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문서는 티베트 관련 공식 설정입니다.
이 문서는 철황이 만든 티베트 관련 공식 설정이기 때문에 함부로 편집을 시도하시면 반달행위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오류 및 오타 교정이라도 꼭 수정여부를 설정자에게 물어봐주십시오.
송첸 감포
본명 སྲོང་བཙན་སྒམ་པོ་
재위 629년? ~ 649년
대관식 629년?
출생일 605년 또는 617년(추정)
사망일 649년(31~32세)
부친 남리 송첸
전임자 남리 송첸
후임자 망송 망첸

송첸 감포(티베트어: སྲོང་བཙན་སྒམ་པོ་, 중국어: 松赞干布, 605년?, 617년? ~ 649년)는 토번국의 33대 왕으로 주변 왕국을 정복하여 최초로 토번을 통일하였다. 비단길과 쓰촨 방면을 공격하여 토번 세력을 확대하여 당을 압박했다. 634년 에 공주와의 결혼을 요청하였으나 당이 이를 거절하자, 토욕혼을 공격하여 함락시켰으며 20만 대군을 이끌고 당의 국경을 공격하였다. 이후 당나라는 송첸 감포 왕과 당 공주의 결혼을 허락하였다.

즉위

야룽왕조의 32대 찬보인 남리 송첸이 중앙집권화에 실패하여 토번 귀족들에게 암살당한 후 불과 13세의 어린나이로 33대 찬보로 즉위하였다. 전대 찬보였던 자가 독살됨으로서 어린나이에 즉위하였기 때문에 그는 힘이 없는 군주로 시작되었다.

생애

출생 년도는 정확하지 않으며, 다만 티베트에서는 당 고조가 제위에 올라 당나라가 건국되기 1년 전인 617년에 태어났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가 13세가 되던 629년 전통에 따라 왕위에 오른 것으로 추측된다. 독살당한 그의 아버지 남리 송첸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올랐을 때 그는 힘없는 군주였다.

송첸 감포는 분열되었던 토번왕국들을 하나로 묶어서 전국을 6대 행정구로 개편해 통일왕조를 새웠으며 이미 발전되어 있던 당나라로부터 선진기술들을 받아들여 토번의 농업과 목축업을 발전시켰다.

이후 토번의 국력이 강성해지자 서쪽의 사막으로 이어진 실크로드와 서촉 지방을 공격하여 서역과 당나라의 직접적인 교류를 방해하며 당나라를 압박했고, 이후 634년경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당 황실의 공주를 왕비로 맞이하겠다며 통혼을 요청하였으나 당나라에서 이를 묵살하자 대군을 파견해 당나라의 속국이였던 토욕혼을 함락시킨 후 당나라의 국경지대인 송주를 공격한다. 이에 당태종은 후군집을 보내어 이를 격파하였고 다시 토번이 통혼을 요청하자 문성공주를 토번에 시집보낸다.

송첸 감포는 티베트 문자를 만들기 위해 인도에 특사를 파견하여 티베트의 문학과 번역, 그리고 법률 기록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는 또한 많은 새로운 문명과 기술의 발전을 이룩하였다. 《당서》에는 648년 인도에서 건너온 군대를 중국의 도움으로 격파한 후, 649년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당고종이 ‘빈왕’이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비단 삼천필 하사했으며, 티베트 왕의 요청을 받아들여 누에씨와 회반죽, 술을 만드는 기계, 종이와 먹을 만드는 장인을 파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송첸 감포는 중국에서 수공예품과 천문학을 들여왔으며, 문자와 불교는 인도에서, 재화는 네팔과 몽골에서, 행정체계와 법은 북쪽의 위구르의 것을 들여왔다고 추측하고 있다.

그리하여 송첸 감포는 라싸를 수도로 하여 영역을 확대하고, 티베트 문자를 제정하였다. 가르통첸과 같은 인재를 등용하여 외교에 힘썼으며, 네팔로부터 왕녀 브리크티 데이비(타크리 왕국의 창시자 안슈 바르만 왕의 딸)를 왕비로 맞이하였고, 장중(象雄)왕과 민약왕의 딸도 왕비로 맞이했다. 당 태종에게 청원하여 문성공주를 아들 궁송 궁쳉왕(재위 641-643)의 왕비로 맞이하게 하였다. 궁송 궁쳉왕이 낙마사고로 죽은 후, 63세에 복위하여 아들의 미망인 문성공주를 자신의 왕비로 맞이했다.


이후 당나라는 서역교역로의 패권을 두고 기나긴 세월 동안 토번과의 화친과 전쟁을 반복하게 된다.

같이 보기


전임
남리 송첸
제33대 토번 찬(贊)
629년? ~ 649년
후임
망송 망첸